신동혁
1. 소개
탈북에 성공한, 대한민국의 '''국민'''.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수용소, 그것도 한번 들어가면 다시 살아 나올 수 없다는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났고 22년 동안 살아남았으며 끝끝내 탈출까지 해낸, 대단하지만 매우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의 부모는 수용소 내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표창결혼'으로 맺어졌다고 한다.[3]
탈출 후에는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수기 형식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그 책의 내용이 강철환의 "수용소의 노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신동혁의 삶에 비하면 강철환의 삶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다. 물론 어디까지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둘 다 참혹하게 수용된 건 똑같다.
자신의 부모가 왜 정치범수용소에, 그것도 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되었는지 알지 못하며 다만 아버지의 형제 중 탈북자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어머니와 형은 1996년 11월경에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혔고 모진 고문 끝에 그가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했다. 본인 또한 연좌제로 수용소 내에 있는 취조실에 끌려 들어가 14살의 나이에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같은 곳에 있던 동료의 조력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본인이 회고하기를 이 때 어머니와 형이 눈 앞에서 죽었는데도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상당수를 강제 노역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감정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으로 탈북 후 검사 결과 특히 긍정적인 감정들(사랑, 우정 등)에 대해서 무엇인지 알지 못 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머니는 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저 배급된 음식을 두고 싸우는 경쟁 상대에 불과했으며, 이따금 그가 어머니의 점심까지 다 먹어버리면 그녀는 그를 사정 없이 때리곤 했었다.
완전통제구역에서의 교육은 노동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기초적인 교육만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실제 그가 출연한 동영상을 보면 간단한 돈 계산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4] 신동혁을 검색하면 결과가 뜨지만, 그의 세 번째 손가락의 첫 마디는 유독 짧은데 이는 피복 공장에서 재봉틀 수리 일을 하던 중 재봉틀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절단 당했다고 한다.[5]
갖은 수모를 당한 신동혁은 세 번의 탈출 시도 끝에 2005년 1월 2일, 마음이 맞았던 수용소 동료의 희생[6] 으로 전기 철조망을 넘어 극적으로 탈출해 성공했다고 한다.[7] 수용소 밖에서 화폐의 가치를 모르다가 한 민가에서 쌀가마니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간식과 담배를 산 뒤, 중국 국경의 경비대원에게 뇌물로 주고 북한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후 중국을 떠돌며 노가다를 하다가 상하이의 한 식당에서 만난 기자의 도움으로 주중 한국 대사관에 보호 받고 2006년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현재는 오랜 수용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각종 질환들(육체적, 정신적)에 시달리고 있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가끔 해외에 가서 특별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강연을 펼치고 있으며 남한 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8] 주로 보수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세간에 밝히고 있으며 구글에서 '신동혁'으로 검색하면 내용이 쭉 뜬다. 인터뷰의 내용은 수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12년 4월 미국에서 논픽션 장르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Escape From Camp 14>라는 책을 또 냈다. 본인이 쓴 것은 아니고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였던 블레인 하든 씨가 그를 인터뷰하여 책으로 낸 것.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를 블레인 하든 씨에게 고백했는데, 어머니와 형의 탈출 시도를 간수에게 밀고한 것은 자신이고 그 때문에 그가 보는 앞에서 각각 교수형과 총살형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2013년 3월 27일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2013년 8월, 유엔 북한인권조사관 주재로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은 어머니와 형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단지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상대로밖에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또한 탈출 논의를 하던 그들을 밀고했을 때가 가장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워낙 수용소 생활이 가혹했기 때문에 가족애나 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2014년 10월 26일 우리민족끼리가 "거짓과 진실 신동혁은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업로드 했다. 영문 자막이 첨부된 이 영상은 신동혁의 수용소 생활 증언이 모두 거짓이며 수용소에 산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신동혁이 13살 소녀를 강간하고 도주한 범죄자라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신동혁 본인은 북한에서 신동혁의 아버지를 인질로 잡고 있으며 '독재자가 내 아버지께 무슨 행동을 하든 내 눈을 가릴 수 없고 내 입을 막을 수 없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고발을 계속한다는 뜻을 밝혔다. 관련 기사
2015년 4월 6일 미국에서 미국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2. 거짓 증언 논란
2015년 1월 18일 신동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서전의 내용 일부가 사실이 아님을 시인하였다.관련기사 신동혁은 기존에 14호 수용소로 알려진 평안남도 개천 수용소에서 출생하여 2005년 탈북할 때까지 혹독한 인권 탄압을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왔다. 하지만 신동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이틀 전인 미국의 언론인인 하든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18호 수용소로 알려진 북창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밝혔다.[9] 이는 그가 기존에 주장해 왔던 14호 관리소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동혁은 자신의 글에서 14호 수용소 탈출을 계획했던 어머니와 형을 수용소 당국에 고발하여 '''어머니와 형이 눈 앞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다는 취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였다.[10] 또한 13세 때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다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였다.
신동혁의 이러한 내용 번복은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의 주장과 같이 거짓으로는 악을 이길 수 없다는 식의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일단, 북한에 대한 유엔 인권 결의안의 배경과 논리를 제공한 것이 바로 신동혁의 증언과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즉, 신동혁의 주장의 상당 부분이 거짓이면 그러한 인권 결의안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인권 결의안이 대의원 회의에서 통과되었음에도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아예 심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
3월 27일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됐다. 관련 기사 신동혁은 북한인권운동을 계속 하겠다고 한다.밝혔다
신동혁은 3월 6일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것과 탈출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즉 14호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의 가족 등 일부만 남기고 대부분을 강건너로 보냈는데, 원래 있던 쪽을 18호라고 이름을 변경하고 강건너를 14호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만 변경된 18호에서 생활 중 탈출한 후 다시 붙잡혀 14호 수용소로 보내진 후 다시 탈출해 여기로 온 것이라고.관련 인터뷰
자신의 말로는 18호가 더 힘들어서, 14호에 있던 수용자들이 18호로 오기 위해 강을 건너 헤엄치다가 힘이 없어서 빠져 죽기도 했다고 하는데, 내가 더 고생했다는 오기로 보인다. 정치범들이 자의적으로 다른 통제구역으로 이동하려고 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11]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래 14호에 있었는데 수용소가 18호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거나, 탈출 후 잡혀서 14호로 갔다는 등의 주장은 자서전을 출판할 때는 전혀 없던 말이다. 자신이 14호에 있었다는 주장이 거짓이 아니냐고 추궁을 받자 지금 와서 등장한 새로운 주장이라, 급하게 날조하였다는 의심은 어쩔 수가 없다.
일단 15호 출신인 강철환은 신동혁의 주장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강철환이 인터넷에 쓴 글마다 보수주의자끼리 격렬한 키배가 일어난다. 한편 신동혁의 거짓 증언을 계기로 탈북자들 사이에서 새로 탈북하는 사람의 주장이나 경력을 검증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TED 강연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구한 이현서 역시 신동혁의 증언 중 일부가 거짓임이 밝혀진 뒤 외신기자들이 노골적으로 "당신의 주장이 (신동혁의 경우처럼) 과장이거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고 질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즉, 신동혁의 행동이 북한 인권 운동의 신뢰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어떤 집단이든 그 안에 일부 문제있는 인물이 섞여드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그런 일부의 문제때문에 해당 집단 전체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 집단이 건강하고 투명할수록 이런 '일부'의 문제를 스스로 자정하는 능력 역시 강해지는데, 신동혁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처음 신동혁의 주장에 거짓이 섞여있는 것 같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을 당시[12] 제대로 된 검증을 통해 자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을 색깔론적으로 음해한다거나, 실제로 신동혁의 주장에 거짓이 섞여있음이 밝혀진 뒤에도 이를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신동혁을 감싸는 등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오히려 자신들의 대외적 신뢰도를 훼손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
동아일보의 탈북자 출신 주성하기자는 신동혁이 해제민출신이라고 보고있다.# 즉 북한의 수용소에는 우리가 말하는 수용자인 공민권이 박탈당한 '이주민',형기만료나 사면등으로 수용자에서 벗어나 공민권이 회복되었는데 다른지역에서 받기를 원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해제민', 그리고 외부에서 노동력보충을 위해 투입된 '외부인' 이 거주하고 있다. 신동혁의 부모는 모두 해제민이었고 따라서 신동혁도 북한의 정식 공민이지 수용소수감자는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성하 기자는 "신 씨의 책을 보면 그가 자라면서 들었을 과거 수용소 시절의 이야기가 자신의 체험담처럼 둔갑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며 비판 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신동혁은 북한 탈출후 북한 인권팔이를 한거고 오히려 북한인권개선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 한다.
[1] 본명은 '신인근'이었지만, 남한으로 탈북 후 개명[2] 35세손 '東'자 항렬[3] 그한테 형이 있다고 하는데 그 형의 경우 이복형인지 아버지가 본인과 똑같은 사람한테서 태어난 친형인건지 표창결혼으로 태어난 탈북자는 신동혁이 유일하기 때문에 표창결혼이 이미 아이가 있는 상태이건 없는 상태이건 간에 일 잘하는 남자와 여자를 아무나 막 붙잡고 나이차 관계없이 강제로 시키는건지 아니면 한번 가정이 되면 일을 잘했을때 결혼을 한번 했던 그 부부들 끼리 시켜주는건지 알 도리가 없다.[4] 강철환이 수감되었던 혁명화구역의 커리큘럼'만'은 북한의 일반 학교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이곳에 수감되면 인간 아니 짐승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영원히 나오지 못한 채 죽어가는 운명인 것이다.[5] 이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시인하였다. 신동혁은 자신의 손가락이 절단 당한 이유로, 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고문을 당하는 도중 심문관이 손가락을 잘라버렸다고 기존의 주장을 번복하였다. [6] 우연히 평양 출신 태권도 사범 박 씨 성의 40대 남성을 수용소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서 수용소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먹을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그것만 생각나서 결국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같이 탈출하려고 했던 태권도 사범은 결국 전기 철조망에 감전되어 죽게 된다.[7] 철책을 넘는 와중에 큰 화상을 입었고 지금도 신동혁의 등과 어깨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다.[8] 이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남한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동혁 본인도 처음에는 남한에 책(세상 밖으로 나오다.)을 내는 등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결과는 꽤 좋지 않았는지 남한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했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9] 그러나 이곳도 14호 관리소보다 약한 정도지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이다. 여기도 결국은 정치범수용소이니...[10] 주성하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은 탈출죄가 아닌 살인죄로 사형 당한 것이라는 다른 탈북자의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한 문헌 자료와 일치한다.[11] 기본적으로 정치범들은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천국이라고 불리는 18호 수용자들이 지옥이라고 불리는 완전통제구역 14호로 가려고 했다는 게 그동안의 탈북자들의 주장과는 너무 배치되어 납득하기 힘들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재소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대한민국 교도소에서도 '저 교도소가 더 편하다고 하더라' 라면서 탈옥해서(...) 옆 교도소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는 않는다. 이쯤 되면 현실의 생지옥이라는 북한 강제수용소가 남한 교도소보다도 더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가벼운 유배지 정도로 보이는 수준이고 자신의 거짓말을 덮고 돼먹지 못한 오기를 부리기 위해 북한 인권운동 자체의 명분을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12] 즉,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대외적인 신뢰도를 높일 기회가 있던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