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악

 


성명
신악(申岳)
이명
이동화(李東華)
본관
평산 신씨
생몰
1892년 ~ 1945년
출생지
평안도 숙천군 우상방 도덕리[1]
(현 평안남도 숙천군 용덕리)[2]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악은 1892년 평안도 숙천군 우상방 도덕리(현 평안남도 숙천군 용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서 1919년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그후 황포군관학교를 4기로 졸업하고 국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러나 의열단 활동을 위하여 국민혁명군에서 전역하고, 1935년 4월 강소성 강녕현(江寧縣) 상방진(上坊鎭)[3] 황룡산(黃龍山) 기슭 천녕사(天寧寺) 경내에 설치된 의열단의 한국혁명군 간부양성훈련반의 교육주임을 맡아 군사훈련에 전념하였다. 또한 조선혁명당에 입당하여 중앙검사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36년에 3당 통합으로 민족혁명당이 결성되자 서기부 재무과장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38년 10월 10일 전쟁 중이던 우한시 한커우(漢口)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자 그는 의열단 동지들과 함께 이에 가입하여 중국군과 함께 항일전쟁에 참전하였다. 1940년 그는 조선의용대 본부 기요조장(機要組長)에 임명되었다가 1941년에는 김원봉 휘하의 부대장(副隊長)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권유로 한국광복군에 통합되자 그는 한국광복군 중교(中校)로서 제1지대에 편입되어 대부(隊附)의 직을 맡았다.
그후 광복군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1945년 광복을 채 보지 못하고 중국에서 별세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1896년 숙천군 우상면 도덕리 → 1914년 부군면 통폐합, 평원군 숙천면 도덕리 → 1952년 군면리 대폐합, 숙천군 용덕리[2] 인근의 통덕리·백로리·미남리와 함께 평산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영삼도 이 마을 출신이다.[3] 현 중국 장쑤성 난징시 장닝(江寧)구 샹팡(上坊)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