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코로나

 


신진자동차 (현 한국GM)의 소형 승용차 모델
'''신진 코로나'''

시보레 1700 · GMK 카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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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코로나 전기형출처
'''SHINJIN Corona'''
1. 개요
2. 제원
3. 상세
3.1. 코로나 1500
3.1.1. 전기형
3.1.2. 중기형
3.1.3. 후기형
3.2. 뉴 코로나
4. 여담


1. 개요


신진자동차가 일본 토요타와의 기술제휴를 통하여 당시 토요타의 소형 모델이었던 코로나 3,4세대 모델을 반제품조립생산(SKD, Semi Knock-down)방식으로 도입하여 일부 국내 부품[1]을 사용하여 1966년 7월부터 조립생산했던 소형차이다.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상류층의 자가용 및 택시로 판매되었다. 초기 국산화율은 21%였으며, 정부의 강력한 국산화정책에 따라 1969년에는 국산화율이 39%까지 올라갔으나, 여전히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저우 4원칙때문에, 계약기간 5년을 채우자 토요타가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1972년에 갑작스럽게 단종되었다[2].

2. 제원


'''코로나(Corona)'''
차종
코로나 1500(RT40)출처
뉴 코로나(RT80)출처
전장(mm)
4,085
4,170
전폭(mm)
1,550
1,570
전고(mm)
1,420
1,400
축거(mm)
2,420
2,430
최저지상고(mm)
180
-
엔진형식
I4 OHV(2R)
I4 OHV(7R)
보어 * 스트로크(mm)
78 * 78
-
배기량(cc)
1,490
1,591
최대출력(ps/rpm)
82/5,200
85/5,500
최대토크(kg-m/rpm)
12.4/2,800
-
최고속도(km/h)
145
-
차량중량(kg)
920
945
구동방식
후륜구동(FR)
변속기
수동 3단
수동 3단
변속비 ①/②/③/Ⓡ
3.337 / 1.553 / 1.000 / 4.449
-
최종감속비
4.111
-
현가장치 전/후
더블 위시본/리프 스프링
더블 위시본/리프 스프링
브레이크 전/후
모두 드럼(내부확장식)
모두 드럼(내부확장식)

3. 상세



3.1. 코로나 1500


원형은 토요타 코로나 3세대(RT40) 모델로, 1966년 7월 최초 출시 후 2회의 마이너 체인지가 있었다.[3] 편의상 전기형, 중기형, 후기형 으로 구분한다.

3.1.1. 전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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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형의 정측면출처
전기형의 후측면출처
전면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곡선적인 사각형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것과 범퍼 사이에 백색 방향지시등[4]과 보조 그릴이 위치해 있었다.[5] 테일 램프는 밭 전(田)자를 옆으로 길게 늘려 놓은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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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형의 계기판출처
전기형의 계기판은 상자형 속도계와 원형 송풍구 등 5, 60년대 미국차의 것을 그대로 붙여 놓은 듯한 디자인이었다. 스티어링 휠에는 부채꼴형 스포크가 달려 있었는데, 이 부채꼴형 스포크에 경음기와 방향지시등 스위치가 일체로 되어 있었다. 부채꼴형 스포크의 양쪽 중 한쪽을 누르면 경음기가 동작하고, 부채꼴형 스포크를 좌, 우로 돌리면 방향지시등이 작동하는 구조였다. 변속기는 컬럼식[6][7]이 쓰였고, 이 방식은 70년 출시된 뉴 코로나가 71년 1600cc 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플로어식으로 변경되기 전까지 계속 쓰였다.

3.1.2. 중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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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형의 정측면출처
중기형에서는 전면 방향지시등과 보조 그릴이 범퍼 아래로 내려가면서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범퍼와 맞닿은 형태로 변경되었다. 다만, 곡선적인 사각형이 좌우 헤드램프 베젤 주위와 라디에이터 그릴을 감싸는 전기형 디자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테일 램프는 전기형의 것이 계속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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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형의 계기판출처
계기판은 전기형의 상자형 속도계의 디자인이 조금 변경되었으며, 전기형의 스티어링 휠에 일체로 달려 있던 경음기와 방향지시등 스위치가 분리되었는데, 스티어링 휠의 스포크가 부메랑 모양으로 변경되면서 경음기 스위치는 스포크의 양 끝단에 위치하였고, 방향지시등 스위치는 스티어링 컬럼에 레버 형태로 분리 장착되었다.[8]

3.1.3. 후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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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형의 정측면출처
후기형의 후측면출처
후기형에서는 헤드램프 베젤의 크기가 커지면서 깊어졌고, 곡선적인 사각형 대신 조금 굵은 직선이 헤드램프 베젤의 상하를 관통하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테일 램프는 기존의 큰 직사각형에서 눈 목(目) 자를 옆으로 뉘여 놓은 모양의 가늘고 길쭉한 형태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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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형의 계기판출처
전기형 및 중기형에 쓰였던 원과 사각형이 섞여 있던 계기판은 후기형에서 사각형 위주의 간결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3.2. 뉴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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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코로나의 정측면출처
뉴 코로나의 후측면출처
1970년 6월에 출시된 완전변경 모델로, 원형은 토요타 코로나의 4세대(RT80)모델이다. 차체가 좀더 유선형에 가까워졌고, 1열 창문은 쪽창을 없애고 통유리를 끼웠다. 도어 핸들도 기존의 잡고 눌러서 당기는 볼품 없는 모양에서 잡고 당기면 바로 열리는 날렵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으며, 앞선 모델에서의 마치 장식품처럼 느껴지는 소극적인 디자인이었던 C필러의 환기구는 도드라지는 세로형으로 변경되는 등, 이후 약 20여 년 간의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을 예견한 듯한 참신한 시도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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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전 모델의 상자형 계기판은 3개의 큰 원이 있는 형태로 변경되었으며[9], 스티어링 휠은 T자형 스포크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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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후로 나온 국산 승용차들[10]의 스티어링 휠도 이와 유사한 디자인이었다는 것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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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71년 3월에 엔진이 90마력 1600cc로 변경되었고, 변속기도 플로어식으로 변경되었다. 1972년 단종될 때까지, 이것 외의 외관 변경 등의 페이스리프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4. 여담


  • 최초 출시 당시의 차량 가격은 83만7,000원이었는데, 당시 대통령 월급이 7만8,000원, 쇠고기 한근 200원, 택시 기본요금 60원, 다방커피 한잔이 40원 등이었다.
  • 66년 최초 생산 후 그해에는 3,600대, 67년 5,000대, 68년 11,000대, 69년 13,000대가 팔렸으며, ‘뉴 코로나70’을 포함하여 72년 11월까지 46,000여대가 팔렸다.출처
  • 요즘 차들은 전자회로 장치가 없으면 차가 못 움직일 정도로 전자 장치가 도배되어 있지만, 코로나는 전자회로가 들어간 부분이 고작 라디오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AM만 수신되었고, 스피커도 대시보드 가운데 라디오 위에만 딱 한 개 뿐이었다.(...)
  • 라디오 수신을 위한 안테나가 동반석쪽 펜더의 앞 유리창 가까이에 달려 있었는데[12],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안테나를 사용하려면 시동키와 함께 제공되는 별도의 작은 열쇠를 안테나 옆에 넣으면 안테나 머리가 조금 튀어 나오는데, 그것을 손으로 잡아서 끌어 올려야 했다. 당시에는 이마저도 사치품(!)이었는지, 택시 등에는 그냥 굵은 철사로 된(...) 수직형 안테나가 달려 있었다.
  • 연료주입구의 위치가 뒤 트렁크 패널 중간의 번호판 뒤에 있었다.[13] 따라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려면 뒤 번호판을 아래로 열고 연료주입구 뚜껑을 열었다. 그나마 잠금장치도 없어서, 보안성이 매우 취약하였다.(...) 그래서 일부 오너들은 두툼한 철판을 작고 길게 잘라서 번호판 뒤에 덧대고 볼트를 조였다. 이렇게 하면 번호판이 트렁크 덮개에 걸려서 열리지 않아서, 나름대로 도난방지가 되었다.[14]
  • 4세대 코로나의 단종 1년 전인 1971년에는 진로에서 "집집마다 두꺼비의 幸運(행운)을!"이라는 문구와 함께 당시 26세였던 인기 탤런트 노주현을 모델로 내세워 경품 행사를 벌였는데 이 회사에서 내건 경품이 금두꺼비(1등, 3마리)가 당시 최신 승용차였던 4세대 코로나였으며, 은두꺼비(2등, 10마리)가 금성사 전기 냉장고, 복(福)두꺼비(3등, 20마리)가 같은 금성사의 흑백 텔레비전 수상기였다.당시 신문 지면 광고 이외에도, 1966년 최초 출시 후에도 신세계백화점에서도 1등 경품으로 코로나를 냈었고, 롯데껌 에서도 코로나를 경품으로 낸 적이 있었다.
  • 대부분의 차량들은 본네트가 라디에이터 그릴 쪽에서 뒤로 열도록 설계하는데, 코로나는 반대로 본네트가 카울 탑(Cowl Top)[15]에서 앞으로 열리도록 설계돼 있다.
    이 방식으로 열리는 차량으로는 기아 브리사, 피아트 132, 현대 엑셀(X1)이 있었다. 이와같은 방식은 불편한 정비성도 문제지만, 전방 충돌시 본네트가 앞 유리창을 파손하고 객실로 침범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16] 그런 이유로 이 방식의 설계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1] 유리, 타이어, 배터리 등[2] 코로나 뿐만 아니라 퍼블리카와 크라운까지도 함께 단종되었다.(...) [3] 일본에서도 동일하게 마이너 체인지가 되었다.[4] 국내 출시된 차량에도 장착돼 있었다.[5] 이 디자인은 후에 토요타에서 코로나와는 별개의 모델인 ‘마크 II’로 계승되었다.[6] 기어 레버가 스티어링 컬럼에 달려 있어서 이렇게 부른다.[7] 운전 중에 손의 이동이 비교적 적고, 승차 정원이 1명 늘어나는 장점이 있으나, 노후화되면 구성 부품 중에 이른바 '삼발이' 라는 부품의 마모로 인하여 링크가 엉키는 증상이 자주 발생한다.(...)[8] 오늘날 대부분의 차량들에 적용된 형태가 이 때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다만, 코로나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고 당시의 경향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9] 새한 제미니 최초기형의 계기판도 이런 모양이었고, 대우 매그너스의 계기판도 이와 비슷한 디자인이었다.[10] 브리사 시리즈들과 포니 후기형 직전 모델들[11] 특히, 현대 포니의 경우는 스티어링 휠 외에 라디에이터 그릴의 패턴과 옆 창문, C필러의 강조된 환기구, 심지어 비슷하게 들리는 엔진음 등등, 마치 뉴 코로나가 환생(?)한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12] 텔레스코픽 로드 안테나였지만, 80 ~ 90년대에 유행했던 자동식은 아니었다.[13] 코로나 1500은 물론이고, 뉴 코로나도 동일한 구조였다. 당시의 도요타 크라운도 이 위치에 연료주입구가 있었지만, 번호판이 범퍼 아랫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커버가 있었다.크라운의 연료주입구 모습 보기 [14] 기름을 넣으려면 당연히 시동을 끄고 내려서 트렁크 덮개를 열어야 한다. 주유 중에 엔진 정지는 기본 사항이지만, 시동키를 갖고 차 밖으로 나가야 했다.(...) [15] 앞 유리창 아랫쪽의 공기흡입구와 와이퍼가 있는 부분. 대략 80년대 중반까지는 이 부분이 본네트 바깥에 노출돼 있었는데, 이후로는 미관상의 문제와 풍절음 감소를 위해서 본네트 안쪽으로 넣는 설계가 보편화되어 있다.[16] 본네트가 뒤로 열리는 방식은 전방 충돌시 본네트가 카울 탑 부분의 힌지에 걸려서 /\\ 형태로 꺾이며 충격을 흡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