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포니

 

현대자동차 소형차 라인업
'''포니'''

엑셀프레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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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1 최초기형 출처
'''HYUNDAI pony'''[1]
1. 개요
2. 개발사
3. 제원
4. 모델별 설명
4.1. 포니
4.2. 파생 모델
4.2.1. 픽업
4.2.2. 왜건
4.2.3. 3도어
4.3. 포니2
5. 포니 쿠페
6. 후속 모델?
7. 아이오닉 5로 부활
8. 모형화
9. 대중매체에서
10. 여담
11. 둘러보기


1. 개요



현대자동차의 첫 독자생산 모델(고유모델)이자 대한민국산 자동차 최초의 독자생산 모델. 이전의 현대자동차 차량들은 전부 포드의 모델을 대한민국에 라이선스 생산 방식으로 들여온 것들이다.
참고로 아예 개발 단계에서부터 플랫폼과 엔진까지 100% 독자'''개발'''한 것과 혼동하면 안되는데, 한국 최초의 독자개발 모델은 1994년에 나온 전륜구동엑센트로, 포니는 후륜구동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미쓰비시에서 라이선스 생산 방식으로 들여왔다.[2] 이러한 방식의 고유모델 차량 개발을 스킨체인지(Skin Change)라고 한다. 포니 외에도 대우 에스페로[3], 쌍용 코란도 훼미리[4], 기아 크레도스[5], 그랜버드[6] 등이 100% 독자개발이 아닌 스킨체인지 방식의 고유 모델들이다.

2. 개발사


'대한민국 최초인 고유모델'이라는 수식어 외에도 대한민국 최초인 4도어 패스트백 세단(4도어 모델)/해치백(3도어 모델), 대한민국에서 유일했던 후륜구동 3/5도어 해치백(3도어 모델과 1982년 페이스리프트된 포니2 5도어 모델)이었다.[7]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간 생산됐다.
당시 현대자동차포드와의 기술제휴 관계를 청산하고 미쓰비시로부터 기술제휴를 받은 후에 나온 첫 작품이다. 1세대 미쓰비시 랜서후륜구동 플랫폼에 미쓰비시 새턴 엔진을 장착한 파워트레인을 도입하고, 이탈리아의 유명 카로체리아인 이탈디자인의 창업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의뢰하여 받은 차체 디자인으로 스킨체인지해 설계했다. 1974년 처음으로 포니라는 이름으로 4도어와 쿠페 모델을 토리노 모터쇼에서 선보인 후, 1975년 12월 1일 울산공장에서 본격적인 양산 및 출시를 실시하였다. 참고로 포니 쿠페는 컨셉트로만 남았다. 아래 포니 쿠페 항목 참조.

당시 영국에서 방영된 조지 턴불 다큐멘터리[8]
브리티시 레일랜드 경영진 중 한명이었던 영국인 조지 턴불(George Turnbull)을 부사장으로 데려다가 포니 개발의 수령탑으로서 배치해 개발을 완료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에서 저가형 중형차인 모리스 마리나[9]를 개발하는 데 참여했던 턴불의 경험이 포니를 개발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반영되었으며, 포니와 마리나의 설계 구조를 비교해보면 두 차 모두 리프 스프링 뒷바퀴 서스펜션에 앞엔진 뒷바퀴굴림 구성이 적용되는 등, 기술적으로 많은 점이 비슷하다.
포니의 성공 이후, 현대자동차는 상용차 부문에서도 포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산화와 고유모델 개발에 착수하여 영국 퍼킨스사와의 제휴로 버스, 트럭등에 쓰일 디젤엔진을 국산화하고 1977년 고유 상용모델인 '''현대 HD1000'''[10]과 '''현대 바이슨'''[11]을 개발하여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포니가 대성공을 거두고 70년대 후반~80년대 한국을 상징하는 모델이 된 것과 달리, HD1000과 바이슨은 출시된지 얼마되지 않아 신군부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인하여 강제로 단종되었으며 현대가 국산화했던 디젤엔진 역시 강제로 생산이 중단되어 상용차 부문 국산화와 고유모델 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했던 현대자동차는 큰 손해를 입는다.[12] 게다가 포니에서 시작된 승용차 부분에서의 고유모델 개발 및 기술력 축적이 계속 이어져 90년대에는 완전한 독자개발 모델인 현대 엑센트를 출시할 정도로 발전했던 것과 달리, 상용차와 디젤엔진 부문에선 해당 조치로 인하여 이러한 흐름이 끊어져 버려 조치 철폐때까지 해당부문의 기술개발이 크게 더뎌졌다.[13]
포니 후속 모델들은 한국에서는 포니2, 포니 엑셀, 엑셀, 엑센트로 계속 이름이 바뀌었으나 유럽에서는 포니라는 이름을 계속 이어 갔다.[14] 베르나부터는 유럽에서 엑센트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므로 포니 이름의 계보는 거기서 끊어졌으나, 현행 엑센트(2018.08)까지도 남미국가 중 택시 모델 한정으로 포니라는 차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3. 제원


'''포니(PONY)'''
차종
포니
포니2
차체형식
4도어 패스트백[15]
5도어 해치백
출시일자
1975년 12월 1일
1982년 2월 19일
프로젝트코드명
110
불명
엔진
미쓰비시 새턴 엔진
엔진 구조
수냉직렬 4기통 OHC
배기량(cc)
1,238
1,439
1,238
1,439
최대출력(ps/rpm)
78/6,300[16]
92/6,300
78/6,300
92/6,300
최대토크(kg-m/rpm)
10.8/4,000
12.5/4,000
10.8/4,000
12.5/4,000
구동방식
앞 엔진-뒷바퀴굴림(FR)
전장(mm)
3,970[17]
4,029[18][19]
전고(mm)
1,360[A]
1,327[A]
전폭(mm)
1,558[20]
1,566
축거(mm)
2,340
윤거 전/후(mm)
1,278/1,248
1,298/1,288
차량중량(kg)
870
910
현가장치 전/후
맥퍼슨 스트럿/리프 스프링
브레이크 전/후
디스크/드럼
타이어
6.15-13-4PR
변속기
수동 4단 & 자동 3단 [21]
승차 정원(명)
5[22]

4. 모델별 설명



4.1. 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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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정측면[23]
포니 후측면
1,238cc 저배기량 모델과 1,439cc 모델로 나누어 출시하였으며[24], 4도어 모델은 현재 승용차 시장의 주류인 노치백이 아닌 패스트백으로 출시되었다.[25] 1980년에는 아이신제 3단 자동변속기[26]도 추가했다.
차체 형식에 따라 헤드라이트 모양이 달랐는데, 4도어 패스트백과 3도어 해치백 그리고 5도어 스테이션 왜건은 둥근 4등식 헤드라이트였고, 픽업은 네모난 2등식 헤드라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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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식 디럭스 모델[27]
대한민국의 첫 독자생산 모델에 대한 반응이 엄청나서 출시 첫 해인 1976년 판매량은 1만여 대로, 그 해 대한민국 자동차 판매량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경쟁자였던 기아산업브리사를 따돌리는 수준이었다.[28] 동아일보 1976년 1월 24일 기사에 따르면 계약 당시 출고 가격은 물품세 포함 228만 9천 2백원, 계약금은 50만원이었다.
1977년경 첫번째 마이너 체인지에서는, 프론트 펜더의 방향지시등[29]과 도어 핸들[30]이 변경되었고, 앞 범퍼 아래에 있던 방향지시등과 차폭등이 범퍼 안으로 들어갔다.[31][32] 1979년 두번째 마이너 체인지에서는 범퍼의 고무 프로텍터가 날렵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고 리어 램프가 좀 더 밝아졌다[33]. 특히 실내가 대폭 변경되었는데, 검은색으로만 나오던 시트 및 도어트림과 대시보드가 암청색과 암갈색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계기판 디자인도 크게 달라지고[34], 핸들도 T자형 3스포크에서 부메랑형 2스포크로 변경되었다. 또한, 충격흡수식 아웃사이드 미러가 장착되었다.[35]
대한민국 최초로 수출된 국산 승용차로, 1976년 7월 에콰도르에 5대가 선적되면서 해외 수출이 시작되었고 같은 해에는 바레인에 40대를 수출했다.[36][37]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며 현대자동차 대표 차량으로 자리를 잡아가다가 1982년에 포니 2로 대규모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일단 포니2가 나온 후에도 영업용으로 1985년까지 병행 생산되긴 했으나, 일반 구매용으로 시판되지는 않았다.[38]

4.2. 파생 모델



4.2.1. 픽업


뒷자리를 없애고 화물칸을 놓은 픽업트럭으로, 전면부 범퍼는 포니 일반모델과 같으나, 픽업은 외눈박이 사각형 형태 전조등이었다. 후면부는 포니2 픽업 후미등이 위에서부터 방향지시등, 후진등, 제동등으로 구성되어있던 반면, 포니 픽업은 방향지시등, 제동등, 후진등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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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2 픽업 정측면
포니2 픽업 후측면
1976년에 출시된 픽업은 상당한 인기를 누렸고, 포니2 픽업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포니 픽업이 나오기 전에는 3륜 트럭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균형이 안 잡혀서 거동이 매우 불안하여 커브를 틀때 롤링이 매우 심한데다 심하게는 전도(!)되는 사고까지 빈번할 정도였는데, 포니 픽업의 등장은 소상공인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80년대 한국GM 라보라 생각하면 될 듯. 최대적재능력은 400kg. 채소 노점상, 연탄 배달원, 가전제품 배달 및 수리기사, 방역 차량으로 널리 사용되었고, 포니2 픽업에는 호로가 설치되어 있는 포니2 픽업 컨버터블 탑 모델도 출시하였다.1984.9.19. 동아일보 광고 경쟁 모델로 기아 브리사 픽업도 존재하였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였고 대우자동차에서도 대항마로 출시한 새한 제미니 기반으로 제작된 맥스[39] 또한 한참 뒤에 출시된 탓에 묻혀버렸다. 그러다 1986년 현대 포터의 등장[40]으로 승용픽업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4.2.2. 왜건


트렁크 용량을 늘린 5도어 스테이션 왜건[41]도 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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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왜건 정측면
포니 왜건 후측면[42]
차체는 4도어형 대비 10mm 늘였으며, 2열 창문을 직각에 가깝게 세우고 3열 유리창을 추가하였다. 거기에 해치 도어[43]를 장착하여 트렁크 공간을 늘린 것이다. 그러나, '왜건=짐차' 라는 의식이 강해서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였다.[44] 결국 왜건은 포니 2로 넘어가자마자 단종되었다.

4.2.3. 3도어


1열 도어의 길이를 조금 연장하여 2열 도어를 없애고 후면에 뒷유리창과 트렁크 덮개가 함께 열리는 해치 도어를 적용한 모델로, 4도어보다 4년 늦은 1980년에 발매되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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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3도어 정측면
포니 3도어 후측면
이 차량의 해치 도어 중앙에는 키홀이 없는 대신, 운전석쪽 B필러 중간에 달려 있는 레버를 당겨서 열도록 돼 있었다. 즉, 반드시 운전석 도어를 먼저 열어야 해치 도어를 열 수 있었다.
포니 3도어만 해치백이었고, 포니2가 되면서 완전한 해치백이 된다.
1979년경의 TV 광고. 성우는 한상덕[46]

4.3. 포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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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2 정측면
포니2 후측면
포니 후속으로 1982년에 출시되었다. 3도어 해치백과 5도어 왜건은 판매량이 부진해서 없어졌고, 4도어 패스트백이 5도어 해치백으로 변경됐다. 일반 승용모델과 픽업모델만 생산하였다. 승용모델은 트렁크 문을 열었을 때 뒷유리창도 동시에 열리는 형식의 진정한 해치백[47] 형태로 완성되었으나, 해치도어는 1985년에 등장한 포니엑셀처럼 트렁크 패널 부분까지 열리지는 않았다.(...) 이후 1985년에 사실상 후속작이자 전륜구동포니엑셀이 출시된 후에도 병행 생산하다가, 연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승용모델 판매를 1988년 4월에 중단시킨 뒤 영업용 택시[48]와 픽업을 1990년까지만 생산하며 단종된다. 그리고 단종 4년 후인 1994년뼈대와 엔진부터 전면 독자 개발한 후계 FF 소형 모델을 내놓으며 미쓰비시로부터 기술 종속 관계를 조금씩 청산해 나가기 시작한다.
포니2는 포니 풀체인지 모델로 여겨졌으나 자세히 보면 앞쪽 펜더 부분, 문짝 등이 포니와 흡사하다. 바닥판과 엔진도 바뀌지 않았다. 앞문은 내장재 부분 간섭만 없다면 서로 바꾸어 붙일 수도 있다. 픽업을 보면 포니와의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4/5도어 모델 뒷문 역시 유리창틀 부분을 제외하면 그냥 동일하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포니2를 포니로 개조하여 사용할 수 있었을 정도.(뒷문짝만 보아도 포니2 것이다) 즉, 대규모 페이스리프트였을 뿐이다.[49] 그러나, 앞모습을 크게 바꾼 것과 트렁크 부분을 해치백으로 바꾼 영향이 컸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풀체인지 모델로 여겨졌다.[50]
1984년 5월 1일에는 5마일 범퍼와 북미 규격의 헤드램프, 측면 표시기, 고급 편의사양을 적용한 카나다 수출형 포니2 CX('''C'''anada e'''X'''port)를 출시하였다.

5. 포니 쿠페


포니 쿠페는 1974년 토리노 모터쇼 컨셉트카로 제작되었던 2도어 모델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쐐기형 패스트백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는데,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다작한 디자인을 받아 탄생하고 발전한 차종들이 전세계 유수 자동차 제조사에 다양하게 퍼져 있다[51]. 따라서 간혹 현대 포니 쿠페[52]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타임머신인 DMC-12 드로리안과 형제 기종이라는 식의 표현을 듣기도 하며, 이를 매도하여 주지아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같은 디자인을 여러 회사에 복붙하듯 팔았다는 식으로 오해하기도 한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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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경 해외수출 위한 자동차 전시회에 전시된 모습
이탈디자인社 웹사이트의 관련 자료
양산까지 적극 고려하여 진행했으며 실제로 양산형 디자인까지 만들어졌고 금형 제작과 부품 개발에 착수하고 조립설비까지 갖추었으나, 예상판매량 등 채산성 문제로 양산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1981년 8월[54]에 생산계획을 전면 백지화 하였다.[55]
시대를 앞서간 쐐기형 패스트백 디자인이 돋보이며, DMC-12 드로리안과 외형이 매우 흡사하기에 위에도 언급한 이슈가 있기도 했다.[56]
여담으로 위 영상에 나온 포니 쿠페는 2021년 현재 어디있는지 알 수 없다.

6. 후속 모델?


앞으로도 포니라는 명칭의 직계 후속은 전혀 나올 생각이 없는 듯하다. 포니와 스텔라는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히기도 했고, 북미 쪽과 달리 '포니'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에서는 좀 약한 뉘앙스로 취급되는지라[57] 강력하고 세련된 이름으로 무장한 오늘날의 한국 자동차 모델들과 경쟁하기에 네임밸류상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하는 모양. 더군다나 약 15년 가량[58] 정도 되는 공백기를 극복하고 이 명칭을 다시 쓰기에는 자동차 이름이 상당히 자주 바뀌는 편인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무리가 따르기도 하다.[59]
또한 정몽구 회장 체제에서는 포니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관측도 있다. 사실 현대자동차 설립부터 포니를 개발하고 30여년간 현대자동차를 이끌어왔던 것은 정주영의 동생인 정세영 이었다. 하지만 1999년 장남에게 현대자동차를 물려주겠다는 정주영의 의지에 따라 현대산업개발현대정공을 갖고있던 정몽구에게 반강제로 뺏기다시피 했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외부에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회장 이임식 자리에서 정세영이 눈물을 흘렸던 것도 억울해서 그런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 그런데 이 정세영의 별명이 바로 '''포니''' 정... 그래서 정몽구 회장은 포니에 대한 언급 자체를 싫어한다는 소문도 있으며, 2015년은 현대자동차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 출시 40주년임에도 별다른 기념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간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의심도 있다.
'''그리고 2021년...'''

7. 아이오닉 5로 부활


2019년 6월 26일, 현대에서 포니를 부활시킨다는 기사가 공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차량 크기를 준중형차 수준으로 키운 전기자동차를 2021년에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지만 외부 디자인을 계승한 점에서, 외형상으로는 연관이 없지만 라이트웨이트 FR 스포츠카라는 기술적 공통점으로 묶인 AE86토요타 86 관계와 정반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72년식 혼다 시빅을 재해석한 혼다 e, 푸조 504 쿠페를 재해석한 푸조 e-레전드, 올드카 기반 전기차 개조 패키지들처럼 2010년대 중후반부터 불어온 레트로 트렌드와도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 전기차의 컨셉트 카 현대 45EV가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60] 이 컨셉트카는 현대 포니 양산형[61]의 디자인 큐를 가져오되 크로스오버풍으로 다듬고, 직선적으로 절제된 스타일링을 사용하면서도 면이 삼각형을 그리는 캐릭터라인, 유동적으로 변하는 램프류 그래픽같은 대범한 그래픽이 적용되었다. 또한 앞뒤 오버행이 크게 줄어들면서 프로포션도 전반적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패스트백 세단이 그냥 해치백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 참가한 현대 차량들 중에서 포니 컨셉트카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모델 이름과 디자인 코드를 계승하면서도,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서 미래기준을 제시하는 특별한 콘셉트카라고 하며, 친환경차로 변하는 현시대를 어떻게 맡이해야 할지 안내하는 기술 청사진의 역할을 맡았다. 때문에 내부는 완전자율주행을 고려한 인테리어[62]가 되어있으며 단순하고 간소한 내부공간은 여가와 휴식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앞서 말했듯, 기술적으로는 포니와 아무 연관이 없지만 콘셉트카 포니EV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디자인의 헤리티지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2월에 양산형의 스파이샷이 공개되었다. 삼각꼴의 전면부 그래픽, 현대 45 컨셉트카와 유사한 간결한 직선 위주의 유사 패스트백 실루엣, 극단적으로 짧은 오버행이 반영되었다. #
아이오닉 서브 브랜드가 창설되며 45 컨셉트카의 양산형 명칭은 아이오닉 5로 결정되었다.

8. 모형화


  • 2012년 PCT 컬렉티블에서 포니가 1/38스케일 모형으로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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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은 빨간색과 파란색, 연회색이 있으며 2020년에는 노란색과 초록색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현대기아차의 브랜드컬렉션 대행사인 피노비앤디를 통해 유통 및 판매되었는데, 현대자동차가 포니 생산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리라 예상했으나 예상보다 판매율이 저조했었다고 한다. 2016년에 잠시 단종되었으나 패키징과 램프류를 변경하고 얼마 후 다시 재발매되었다. [63] 현대자동차에서 나오고 있는 신형 차종에 비해 단종되지 않고 꾸준히 나오는 듯 하다.
  • 포니의 레진 모형으로는 1/18 스케일과 1/43 스케일, 1/38 스케일 택시가 있다. 완성품은 지그마리 메이커가 발매했다.
  • 헬로 카봇에 나오는 카봇 마이스터의 모델이 포니다. 빨간색(정확히는 심홍색)으로 실제로도 사용했던 도색이다. 자동차 모드 변신시 디테일이 좋은 편인데, 무려 시트와 스티어링 휠 등 내부가 재현되어 있고 문짝(기본 출입문과 트렁크)도 열린다. 세척 후 광택제만 뿌려주면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해도 괜찮을 정도다(완성품 포니로는 최신형). 택시 버전은 로드세이버 완구에 들어 있다. 참고로 포니 모형 중에선 유일하게 3도어 해치백에 해당한다. 또한 마이스터 완구의 초판은 현대자동차 구 로고가 반영되어 있다(재판은 카봇 마크 적용). 물론 재판도 고증을 잘 살렸지만, 2020년 이후 버전[64]에선 그렇지 않게 되었다. 사실 현대자동차가 초이락컨텐츠 완구 회사에 해준 라이선싱이 2010년대 후반부터 끝났기 때문.
  • 포니2는 크로바완구의 1/32 스케일 다이캐스트 모형과 아카데미과학의 1/24 프라모델 제품이 있다. 두 제품 모두 발매시기가 오래된 제품이라[65] 구하기 어렵다. 프리미엄도 상당한 편.
  • 아카데미과학에서 2020년 10월 1/24 스케일 포니 프라모델 제품이 출시되었다. 색상은 빨간색만 있다. 12월 중순부터 이마트와 롯데마트에서 색상을 변경한 버전을 한정판매 한다.[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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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내외장 부품은 물론이고, 하체 부품들도 충실하게 재현하였다. 조립설명서에는 다루지 않지만, 다양한 옵션 부품들[67]도 재현해 놓았다. 제품에 대한 반응도 좋아서,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도 포니 관련 조립 글과 영상이 꽤 올라와 있다.
  • 1970년대 후반기에 '크라프트' 라는 군소 마이너 업체에서 포니 프라모델을 발매하였었다. 당시에 그 업체에서 외국산 금형을 카피해서 폭스바겐 비틀과 포드카[68]등을 발매하였는데, 포니와 유사한 형태인 포드카의 부품에다 차체만 포니 비슷하게 만든 것이었다. 전륜에는 조향 기능은 없이 철심 하나로 고정하였고, 후륜에는 태엽 장치가 들어갔다. 타이어도 모형 F1 레이싱 머신에나 쓸 듯한(...) 슬릭 타이어를 신겨 놓아서, 차체 밖으로 돌출돼 있었다. 실내 디테일은 그저 대시보드와 시트임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에 그쳤고, 핸들은 무려 D컷(...)이 달려 있었다[69]. 라디에이터 그릴과 전조등, 후미등과 가니쉬 등은 따로 조립하는 부품이 없이 그냥 차체에 매끈한 표면(...)으로 돼 있었다.[70] 2열 옆창문도 실제 모습과 많이 달랐고 실제 비율보다 크게 나오는 등, 가장 중요한 차체 디테일과 재현력은 참담한 수준이었다.[71] 외국차 일색이던 프라모델에 최초로 등장한 한국 고유모델이라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듯.

9. 대중매체에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나온다. 때문에 대중문화에서 노면전차인력거일제강점기경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것처럼, 포니 역시 신군부 5공 시절 대한민국 사회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단, 현재 국내에서 실제 포니는 자동차 박물관같은 곳에나 있기 때문에, 주로 촬영용으로 쓰이는 차를 소품으로 이용하거나 아니면 수출한 포니가 아직 현역으로 쓰이는 개도국에서 역수입해서 촬영한다.
  • 영화 빙점(원미경 주연, 1981년작)에서 부잣집/상류층 아들들의 마이카로 등장. 당시 포니의 위상을 볼 수 있다. 주인공 수진을 사랑하는 남자가 다리를 잃게 되는 것도 수진을 납치하려는 포니 차량을 막아서다가 다리를 바퀴가 밟고 지나가 버린 때문...
  • 어린이 영화인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시리즈에서 여러가지 특수 장치를 부착하고 색상을 알록달록하게 꾸민 포니가 등장한다. 또한, 로보트 태권V에서도 악당들의 차로 포니가 나왔었다.
  • 주호민 작가의 무한동력 33회에서 한원식의 차량으로 1982년식 포니2가 출연한다. 이때 진기한은 자동차박물관에 괜히 갔다는 언급을 하였다.
  •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넥슨과 제휴를 맺고 카트라이더에서 프라이드와 함께 한정판매한 적이 있었다. 등장 당시 최신형 성능이었던 PRO급 엔진을 가지고 있었으며, 차체 크기가 작아 몇몇 스피드전 맵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 영화 화려한 휴가 촬영 당시 작품의 시대인 1980년대에 맞춰 영화 장면에 포니를 투입하려고 올드카 컬렉터들에게 수소문했으나 차량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집트에서 아직도 현역 택시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촬영용으로 역수입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싼 돈을 들이고도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엔 외딴 섬에 방치되어 있다.
  • 현대자동차에콰도르에 수출한 포니 4도어 패스트백 중 택시로 쓰인 1대가 무려 누적 주행거리 150만km를 기록한 채 현대자동차 역사관에 전시하기 위해 역수입된 바 있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이후 울산 자동차박물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네덜란드에서 3도어 1대를 공수해 기증하기도 했다.[72]
  • 또한 울산에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을 유치하기 위해 1987년식 포니2가 기증되기도 했다.
  • 카톡쇼에서 브리사(K303)와 함께 포니1을 섭외해서 촬영한 적이 있다. 브리사는 도로에서 한 번 시동이 꺼져 밀어서 시동을 켜기도 했지만, 그 1번을 제외하면 성공적으로 리뷰를 마쳤을 정도로 둘 다 기본 성능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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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N의 복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금색 포니2가 김성균의 차로 등장한다.[73] 10화부터는 프라이드로 바꾼다.
  • 탑기어 코리아 시즌 6 MAXIMUM SPEED 코너에서 한 오너가 포니2를 끌고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패배였지만, 오너는 이 차를 끌고 온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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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택시운전사서울 출발 장면에서 만섭(송강호) 때문에 외국인 손님을 빼앗긴 다른 기사의 차로 등장하고, 태술(유해진)과 광주 택시기사들이 모는 자동차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지나가는 민간 차량으로 간간히 등장한다. 이 중 태술의 차는 포니2를 포니로 개조한 후 촬영했다. 뒷문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자동변속기 사양도 있었다! 포니2를 포니로 고친 이 소품용 택시는 2020년에 방송된 KBS 2TV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에도 나왔으며, 택시운전사에 나온 회사명이 그대로 찍힌 채 등장했다.[74]
  • 웹툰 좀비딸에서 주인공 이정환이 빨간색 포니를 타고 다닌다.[75]
  •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편에서도 소개가 되었다.
  •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뮤직비디오에서 하늘색 포니가 소품으로 등장한다.

10. 여담


  • 현대자동차 최초의 엠블럼(직사각형 틀 안에 'HD'가 형상화된 모습)은 포니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포니2에도 유지되었는데, 포니2 캐나다 수출형부터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HYUNDAI'라고만 적어 놓게 되었으며, 기존 엠블럼은 회사 로고로만 사용했다. 대한민국 내수모델에서도 1982년 CX트림부터 HD 엠블럼이 사라지고 1985년쯤에는 스텔라를 비롯한 다른 차종에서도 엠블럼이 사라졌으며 이 형태로 1990년까지 유지되었다. 그후론 잘 알려진 타원형 H 엠블럼이 현대 엘란트라에 적용되었다. 다만 새턴 엔진이 당시 미국 배출가스 기준에 맞지 않아 미국에 수출되지 못했다.
  • 광화문 앞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전'에 포니가 전시되기도 했다. 도색이 파란색이고 헤드라이트가 사각형인 픽업형 모델.[76]
  • 포니 픽업 이후로는 아직까지 승용차 기반 픽업 차량이 국내에서 전혀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77] 기존 소유자들이 대차할 차량이 없어졌고, 그래서 단종된 지 꽤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도 운행 가능한 차량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브리사 픽업이나 대우 맥스도 있지만, 브리사 픽업은 소품용 빼면 찾기 어렵고 맥스는 그나마 낫지만 포니보다는 적다.
  • 트렁크 덮개 오른쪽에 부착하는 pony 엠블럼이, 포니는 검은색과 크롬도금 2가지로 해서 차체 색상에 따라 구분하여 부착했었다.[78] 그러던 것이 1979년경 마이너체인지에서 은색 알루미늄 주조 및 양면접착 테이프[79] 부착형으로 통일되었다. 이후 출시되는 대부분의 현대차 엠블럼들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80]
  • 70년대 후반에 포니의 리어 가니쉬에 부착돼 있던 HYUNDAI 로고와 말 뱃지가 도난당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당시에 '백화점 완구 코너에 가지고 가면 갖고 싶은 완구와 교환할 수 있다카더라(...)'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 신문에 포니2 광고가 처음 게재되었을 때, 광고 카피의 '2' 자에 친절하게(?) 한글로 '(투)' 라고 토를 달아 놓았었다.(...)당시 신문광고 보기 [81]
  • 1981년 새교육 중흥공사 국민 정신교육 9 대덕목 [떳떳한 한국인 명예심 포스터] 촬영용으로 쓰인 의전차가 존재했다. 금성 깃발과 서울 번호판 1호까지 달아놓은 전용 모델인데, '전두환 대통령각하 내외분 아세안 5개국 공식 방문'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진행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82]
  • 차량등록 원부상 차명 표기가 다양했던 모델[83]이다.

11. 둘러보기




[1] '조랑말' 이라는 원래의 영어 뜻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리어 가니시에 HYUNDAI 로고 바로 오른쪽에 말(...) 엠블럼이 추가로 붙어 있었다.리어가니시 모습 보기 [2] 아이러니한 점은 PCD가 코티나와 동일한 108이다. 다만, PCD는 굳이 그대로 들여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는 것이므로 기술도입선과 PCD가 다른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도입선에 맞추지 않고 그동안 만들어 온 것에 맞추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또다른 스킨체인지 모델인 기아 크레도스도 독자적인 4볼트 규격을 적용했었다. 그러나 포드와의 관계가 종료된 1985년 출시된 현대 엑셀/프레스토 이후의 차종부터 현대는 미쓰비시의 규격인 PCD 114.3 / 허브직경 67.1mm를 적용하기 시작했다.[3] 대우 에스페로르망의 휠베이스를 100mm 연장하고 스킨을 바꾼 모델이며 르망은 오펠이 개발하고 대우차 창원공장에서 생산하여 폰티악이 판매한 모델로,유럽과 한국과 미국의 합작인 셈이다. 기아 아벨라의 사례와 비슷하다. [4] 이스즈 트루퍼의 스킨체인지 모델.[5] 마쓰다 크로노스의 스킨체인지 모델.[6] 히노 셀레가의 스킨체인지 모델.[7] 4도어 모델은 해치백 비슷하게 생겼으나 실제로는 트렁크가 분리된 일반적인 세단이고 단지 뒷창문 아래쪽을 뒤로 뽑아내 부드럽게 이어 패스트백으로 만든 것이었을 뿐이다. 반면 3도어 모델은 뒷유리창까지 열리는 진짜 해치백이지만, 4도어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썼기 때문에 3도어 모델도 패스트백 디자인이다. 다만, 1982년에 포니2로 페이스리프트되면서 4도어 패스트백이 5도어 해치백으로 변경되었다.[8] 영상 속에 70년대 한국의 모습이 나오는데, 군사정권 시절 답게 공장 경비원들이 턴불의 차량에 거수경례를 올려 붙이고, 턴불이 돼지머리 제사상에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공장관계자들이 지켜보는 모습이 이색적, 영상 후반부엔 21세기 방송엔 절대 내보낼 수 없는 장면도 나오는데 턴불이 관계자들과 함께 여성 접대부를 한 명씩 끼고 회식을 하고 있는 장면이 그대로 나온다.[9] 새 부품을 만드는 대신, 신뢰하는 기존 부품들을 가능한 한 최대한 활용해서 조합, 설계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이는 포니에서도 미쓰비시의 하체와 파워트레인, 포드 차량의 몇몇 부속을 조합하는 식으로 구현되었다.[10] 트럭모델은 포터, 승합모델은 미니버스로 불렸다. 1톤 트럭 및 12인승 승합차로서는 국내 최초. 트럭모델이 포터로 명명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포터현대 그레이스의 선행모델이다.[11] 2톤~3톤급 트럭. 현대 마이티의 조상이라 볼 수 있다.[12] 물론 해당 조치로 인하여 '''생산하던 이륜차와 승용차 전부'''가 날아가고 트럭 몇종만 남은 기아자동차보다는 그 타격이 적었다.[13] 결국 철폐 이후 출시된 현대 포터현대 마이티는 선행 모델이었던 HD1000과 바이슨이 고유모델이었던 것과 달리 미쓰비시 모델과 엔진을 그대로 가져오게 되었다.[14] 아마도 로터스가 유럽 시장에서 로터스 엑셀 이라는 차종을 이미 판매하고 있었던 만큼 상표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계속 쓴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 현대 엘란트라도 로터스 엘란과 상표권 분쟁이 우려되어서 유럽 시장에서는 한동안 '''현대 란트라''' 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15] 후에 3도어 해치백과 5도어 해치백(왜건)이 추가되었다.[16] 현대차 발표 수치는 80마력이지만, 자동차 등록증에는 78마력으로 기재되었었다.[17] 왜건은 3,980[18] CX 모델은 4,184[19] 픽업은 3,998[A] A B 픽업은 1,367[20] 왜건은 1,560[21] 1980년부터 추가. 픽업은 제외.[22] 픽업은 2[23] 사진의 차량에 끼워진 휠캡은 현대 스텔라의 것이다.[24] 초기에는 저배기량만 나왔다. 이후 배기량이 2원화되면서 펜더에 각각 1200 GLS, 1400 GLS 엠블럼을 붙여 구분하였으며, 이 체계는 포니2까지도 이어진다.[25] 4도어 모델는 해치백이 아니다. 트렁크는 별도인 박스로 되어 있어 트렁크를 열어도 뒷유리창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트렁크 부분 길이가 당시 경쟁차였던 4도어 세단들과 같다. 즉, 눈속임으로 부드럽게 연결을 해 놓았을 뿐이지, 오버행 등은 그냥 4도어 세단 것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5도어 왜건도 4도어 패스트백과 차체 길이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26] 후속인 포니엑셀은 미쓰비시제.[27] 사진상의 휠커버는 순정품이 아니었으며, 루프 커버와 뒷유리창의 선바이저는 출고 후 장착하는 것이었다.(...)[28] 브리사는 1973년에 첫 출시된 모델이 국산화율 60%, 이후 생산된 모델은 최대 80~90%에 육박했다. 포니는 60%로 알려졌으나, 1975년 출시 때부터 '''85%'''의 부품이 국산이었고, 1981년에는 '''93%'''까지 올라갔다.#[29] 가느다랗고 볼품없는 디자인에서 크고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30] 뉴 코티나 것에서 코티나 마크 IV 것으로 변경되었다.[31] 범퍼 아래에 있었을 때에는 방향지시등과 차폭등이 그냥 오렌지색 한가지였는데, 범퍼 안으로 옮겨지면서 차폭등은 백색으로 변경되었다.[32] 방향지시등과 차폭등을 옮기면서 남는 빈 공간을, 처음에는 따로 검은색으로 도장한 철판을 대고 고무 패킹까지도 둘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냥 차체와 함께 용접하고 차체 색으로 함께 도장하는 식으로 변경되었다.(...) [33] 포니1의 리어 램프는 단종될 때까지 두 차례 변경이 있었다. ① 최초 출시 당시에는 렌즈를 색상별로 따로따로 바탕판에 나사못으로 고정하였는데, 그래서 외부에 나사못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② 약 1년 후에 외부 전체가 나사못이 없는 매끈한 일체형으로 변경되었다. ③ 마지막인 1979년에 렌즈 밀도가 조밀해졌고, 그때까지 내부에 따로 조립하던 알루미늄 판으로 된 반사경을 없애고 바탕판과 일체형으로 변경되어서 점등면적이 넓어지고 밝아졌다. 한 가지 황당한 점은, 최초 출시 때부터 단종 때까지 외형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부품 간 호환성은 없었다는 것. 가령, ②의 것이 장착되었던 포니 차체에 ③의 것은 장착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34] 원형 3개로 되어 있던 클러스터는 길다란 상자 모양으로 변경되었고, 센터콘솔에 몰려 있었던 전조등 스위치와 와이퍼 스위치가 스티어링 핸들 주변으로 옮겨졌다. 또한 대시보드 양 옆에 한개씩만 있었던 송풍구가 센터콘솔에 2개가 새로이 추가되는 등, 오늘날 일반화된 대시보드 형태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35] 위 1976년식 디럭스 모델 이미지에서 보듯이, 기존의 것은 거울이 그냥 지지대에 달린 채로 펜더에 부착되어 있었는데, 사소한 충격에는 각도가 틀어지고 심지어 더 큰 충격에는 지지대가 부러져 버리는 단점이 있다. 사람이 부딪칠 경우, 부상의 위험까지도 있다(...). 1979년형부터는 저 위의 정측면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거울이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된 하우징 안에 들어가 있다. 사소한 충격에는 하우징만 돌아가 버리기에, 원래 위치로 돌려 놓기만 하면 그만이다. 큰 충격이 가해지면 하우징이 꺾이기는 하지만, 하우징 하부에 숨어 있는 스프링의 반동으로 원위치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기능은 새한 제미니가 먼저 선보였던 것이다. 새한 제미니의 것은 거기에 덤으로 실내에서 원격조정(!)도 가능하게끔 되어 있었다.[36] 국산 자동차 중 최초는 1966년 브루나이로 수출한 하동환 자동차 R66 리어엔진 버스. 승용차를 베이스로 한 경우로 넓혀보면 1975년 카타르에 10대가 수출한 브리사 픽업이 있으므로, 순수 승용차에서 포니가 최초이다.[37] 다만, 당시에 왜 하필 바레인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데, 지금처럼 현대자동차 해외 판매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현대건설의 바레인 진출이다. 현대건설은 1975년 10월 9일부터 1977년 9월 30일까지 아랍 수리 조선소 건설을 맡아서 진행했는데, 이때 사용할 차량으로 사 간 것일 가능성이 있다. 혹은 공사를 교두보로 삼아 현대자동차가 중동에 진출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38] 포니2 영업용 택시는 가스냄새가 2열까지 새는 문제를 잡지 못하고 단종되어서 영업용 택시 한정으로 부활한 것.[39] 최대적재능력이 850kg인 3방데크 적재함 모델과 디젤 모델까지 출시하였다.[40] 사실 현대자동차에서 1977년에 현대 HD1000이라는 1톤 트럭을 출시하긴 했으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조기에 단종되어서 빛을 보지 못한 사례.[41] 당시 현대차에서는 '웨곤' 이라고 표기하였다.(...) [42] 상태가 영 좋지 않다. [43] 해치 도어의 힌지를 처음에는 일반 승용차의 트렁크 힌지처럼 스프링식을 적용했는데, 대략 1980년경 부터 가스 리프터식으로 변경하였다.[44]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왜건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한다.[45] 4도어와 동시에 발매된 모델이 아니다.[46] 내용을 보면 유럽, 미국 NCAP에서 각종 테스트를 거쳤고 러시아에서 혹한기 테스트를 거쳤다고 한다. [47] 고급형 트림에는 최초로 뒷유리창에 와이퍼가 장착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TV 광고에서도 비오는 날에 가족이 포니2를 타고 여행을 가는 뒷모습을 넣어서 이 기능을 부각시켰다.당시 TV광고 [48] 트렁크에서 2열로 가스가 새는 문제가 있었는데,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여 단기간만에 단종되었다. 그 문제로 영업용 택시 한정으로 포니가 다시 부활하였고, 이후 후속으로 중형차량인 현대 스텔라 택시가 출시된다.
[image]바로 이 차량.
[49] 심지어 2020년 기준으로는 그냥 살짝 화장한 정도에 불과하다.[50] 엄밀히 말하면 당시 일반인들은 풀체인지인가 페이스리프트인가 등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풀체인지, 페이스리프트 개념조차도 생소했다.[51] DMC-12 드로리안, 이스즈 피아자, 현대 포니 쿠페가 같으며, 모두 동시기에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것들이다.[52] 양산차량이 아닌 컨셉카이며, 일반 포니는 쐐기형 디자인이 아니고, 이 포니 쿠페만 쐐기형 디자인이다. 그리고, 폭스바겐 골프 1세대도 쐐기형 패스트백과는 거리가 멀다.[53] 유사한 디자인을 여러 회사에 팔았다는 것 자체는 맞다. 당시에는 디자이너가 동일한 컨셉트의 차를 여러 회사에 동시에 적용하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었고, 이는 1990년대까지도 이어진다. 예를 들면 푸조 405알파 로메오 164 디자인이 흡사했다거나, 현대 포니 엑셀과 이스즈 ff제미니 디자인이 아주 유사했다거나,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시트로엥 XM/잔티아와 대우 에스페로의 디자인이 유사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즉, '오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단, 100% 똑같은 디자인은 아니며 단지 동일한 컨셉트로 디자인했을 뿐이다. 특히 차 디자인이 톡톡 튀는 것으로 유명한 시트로엥이지만, XM과 잔티아는 대한민국에 출시되기 전에 이미 출시된 에스페로 덕분(...)에 그나마 덜 이질적인 편이었다.[54] 2달전인 1981년 6월에 같은 디자이너가 거의 유사한 디자인 테마이면서도 더욱 다듬어진 디자인으로 만든 비슷한 차급의 이스즈 피아자가 출시된 것도 포니 쿠페의 양산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포니 쿠페가 출시되면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을 고려, 사실상 수출 시장에 주력해야 할 처지였었는데, 차급면에서 경쟁하게 될 이스즈 피아자와 비교하면 수출시장서 상품성에서 많이 밀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 당시의 이스즈 승용차가 일본차 중에서는 디자인은 좋으나 부식에 취약하고 내장재 품질이 떨어지고 약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고유모델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당시의 현대자동차는 그보다도 더 떨어지던 수준이었다. 참고로 포니 쿠페 컨셉트카도 원래 이탈디자인에서 Asso 시리즈의 하나인 '''Asso di Fiori''' 라는 네이밍으로 하려 했으나 토리노 모터쇼 바로 전날에 현대자동차 경영진의 요구로 포니 쿠페 라는 네이밍이 되면서, '''Asso di Fiori'''라는 네이밍은 후에 나온 이스즈 피아자 컨셉트카가 쓰게 되었다.[55] 80년에 출시한 3도어가 그나마 실질적인 양산형이긴 하다. 다만, 3도어는 처음부터 여러 형식 중 하나로 기획되었던 것이므로 포니 쿠페의 양산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포니 3도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스포티한 쿠페로 여겨졌던 것일 뿐.[56] 참고로, DMC사 창업이 1974년, 드로리안 생산 시작은 1981년.[57] 북미 지역에서 포드 머스탱이나 쉐보레 카마로머슬카들을 흔히 '포니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58] 엑센트의 수출명이 포니였기 때문에 이걸 포함한 계산법. 대한민국 안에서만 계산하면 약 30년 가량 명맥이 끊겨 있었다.[59]폭스바겐 비틀조차도 공백기가 없었고, 미니피아트 500 같은 경우도 명맥 자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포니엑셀은 명백히 포니의 후계자이지만 대한민국 내에서는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지라 어쨌든 한국에서는 거기에서 계보가 끊겼으니,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포니라는 명칭을 부활시키는 데 그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용으로는 포니엑셀, 엑셀, 엑센트가 계속 포니라는 이름을 이어갔으나 베르나부터는 엑센트 이름을 사용하면서 거기서 포니 이름의 계보가 끊겼다.[60] 포니가 모터쇼에서 공개된지 정확히 45년이 되는 해가 2019년이다.[61]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기자들이 자꾸 이 차를 포니 쿠페와 연관짓곤 했는데, '45'는 포니 쿠페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어디까지나 양산형 포니 4도어 모델을 오마쥬한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도 명백히 그렇게 밝힌 바 있으며, 포니 쿠페를 언급하지도 않았다.[62] 한편, 대시보드는 초대 포니의 클러스터형 대시보드 구조와 희미하게 공통 맥락이 닿아 있다.[63] 원판 램프가 접합핀으로 오히려 사실적이었다면 재발매품은 접합핀이 보이지 않고 어두워져 프로젝션 헤드램프를 보는 것처럼 바뀌었다.[64] 2019년에 판매한 버전이 박스는 그대로 쓰되 단순히 현대차 차종과 스케일 표기만 지웠다면(내용물은 원본 차종 고증 유지), 2020년 버전은 박스 디자인부터 바꾸면서(추가로 페이스리프트 수식어 표기) 아예 원본 차종과 차이점이 드러나게 변경했다.[65] 크로바완구 제품은 1982년, 아카데미 프라모델은 1983년 출시.[66] 이마트는 흰색, 롯데마트는 하늘색.[67] 가령, 휠을 휠커버를 끼우지 않을 경우 너트 등도 그대로 보이도록 재현하였고, 펜더 미러도 기본형과 고급형이 모두 재현돼 있다. 택시로 조립할 수도 있도록 택시 표시등과 기계식 미터기도 재현해 놓았을 정도다.[68] 차명은 그냥 '포드카' 라고만 표기돼 있었는데, 차체의 형태가 해치백이었던 것이 아마도 포드 피에스타로 추정된다.[69] 태엽 장치 위에 실내 전체를 얹는 구조라 바닥이 얕아서 원형 핸들을 넣을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D컷으로 만든 듯하다(...) [70] 조립하면서 차체에 그렸던 것으로 기억함.(...)[71] 1970년대에는 프라모델 기술이 아직 발전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다 국내 자체제작 프라모델의 품질같은 경우에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타미야나 레벨, 반다이같은 업체의 프라모델을 가져와서 금형을 무단복제해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상술한 아카데미제 포니2 프라모델도 타미야의 닷선 블루버드 터보 SSS-S 섀시를 그대로 사용했다. 심지어 겉 박스 그림토요타 수프라 2세대의 타미야 키트제품의 것을 (Gwon 모 디자이너가) 차 색상과 앞부분만 고친 것이었다(...). 저 2세대 수프라 키트는 의외로 현재도 생산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크라프트같은 경우에는 금형복제 중에서도 안 좋은 케이스. 게다가 라이센스를 받는게 아니면 차량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당연했다.[72] 참고로 이보다 약간 앞서서 자동차박물관 측에서도 어렵사리 대전광역시 쪽에서 1대 구입해 놨었다. 직접 구입한 것이 심홍색이고 기증받은 것이 은색인데, 재미있게도 둘 다 3도어 버전.[73] 정확히는 회사 자동차(법인차). 애시당초 본네트에 금성사 로고가 붙어 있다.[74] 택시운전사에 쓰인 패밀리아브리사 개조차량은 흰색으로 재도색된 후 영화 1987에 등장했다.[75] 원래는 어머니 김밤순의 차지만, 정환이 원래 타던 아반떼 AD가 사고로 반파되어 대신 타는 것.[76] 포니의 사각형 헤드라이트는 픽업 전용이었고 승용 모델이 동그라미 4개였다.[77] 승용차 기반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한국GM 라보 같은 차량이 차량 크기나 적재중량 등에서 비슷하나, 출력과 안전성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78] 당시에는 플라스틱으로 제작하여 차체에 구멍을 뚫고 부착하였다.[79] 테이프는 3M 제품이었는데, 특유인 향기(...)가 있었다.[80] 1985년 무렵부터는 Y1소나타를 시작으로 전차종 엠블럼들이 다시 크롬도금한 플라스틱으로 순차적으로 변경되었다. 단, 양면접착 테이프 부착은 그대로 유지된다.[81] 당시 포니2 카탈로그에는 '포니 2(투) 5(화이브)도어 탄생' 이라는 카피도 있었다.(...)[82] 기념 우표와 기념 포스터 다수를 만들어 크게 선전 활동을 벌였고, 그 중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다.[83] 포니는 1200cc는 "포니", 1400cc는 "포니-1400", 자동변속기 장착 차량은 "포니-1400오토매틱", 웨건은 "포니웨곤", 픽업은 "포니픽업"으로, 택시는 "포니LPG"였으며, 포니2는 1200cc가 "포니2", 1400cc는 "포니2-1400" 및 "포니2-1400오토매틱", 픽업은 "포니2-1400픽업" 및 "포니2-1400픽업컨버터블탑", "포니2-1500픽업", "포니2-1500픽업컨버터블탑" 등이었으며, 택시는 "포니2-LPG"였다. 당시에는 수기로 적었기 때문에 표기가 꽤나 다양했었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발달되어 표기가 단순해졌다. 스텔라 등 다른 차종들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