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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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2. 생애
1946년 서울에서 3남매 중 막내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국 전쟁 때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1] 그의 형은 LG전자 부회장을 지냈던 노용악[2] , 누나는 화가인 노숙자.
3. 활동
1968년 동양방송 공채탤런트로 연기경력을 시작해서 곧바로 주목을 받았으며[3] , 1970년대엔 한진희와 함께 TBC 멜로드라마의 단골 남자주인공으로 활약했다. 70년대 후반까지 즉, 언론 통폐합 이전에는 TV드라마는 TBC가 KBS, MBC에 비해서 압도적이었는데, 그 TBC의 간판 남주 투톱이 노주현, 한진희였으며, KBS에는 이영하, MBC에는 이정길, 박근형의 투톱시대였다.[4] 당시 드라마, 예능에서는 워낙 민방 TBC의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5]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70년대 최고스타는 노주현, 한진희 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것이다.[6] 지금의 장동건, 원빈만큼 유명한 꽃미남 스타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40대가 된 이후 80년대 후반(혹은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 이전에는 주로 높으신 분으로 출연하여 점잖은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대표적으로 김수현이 집필한 '''사랑과 야망'''의 장홍조 역 등. 90년대 초 드라마인 제3공화국에서는 장도영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높으신 분 전용 배우'''의 대표격인지라 도저히 코믹 연기하고는 접점이 없어보였지만 이후 미국 이민과 복귀를 거치고 돌아온 2000년 김병욱 PD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코믹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아니, 이미지 변신을 뛰어넘어 당시 노주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컬처쇼크를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국판 호머 심슨이라고 불릴 정도로 단순무식한 아버지를 기가 막히게 잘 살려냈으며 그 덕분에 노주현을 잘 몰랐거나 중후한 이미지로만 알아서 그다지 친근감을 느끼지 못했던 당대의 청소년과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엄청나게 높아졌다.[7]
여자 아이돌 스타들과 함께 농촌 생활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인 청춘불패에 고정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론 최초. 왕년의 청춘스타가 이젠 딸, 손녀뻘 아가씨들과 시골에서 재미있게 지낸다는 컨셉 때문에 중년층 이상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덤으로 장작을 잘 팰 정도로 힘이 세 헐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4. 여담
- 80년대부터 애견인으로 유명했던 연예인으로, 셔틀랜드 쉽독 , 저먼 셰퍼드 등을 매우 아끼고 대회 출전이 가능한 혈통 좋은 개들을 많이 키운 것으로 알려짐. 80년대에 MBC 베스트셀러 극장 드라마에 여름특집 호러물로 방영한 개에 나와 섬마을을 공포로 몰고가는 미친 개를 연기한 게 바로 노주현이 기르던 셰퍼드였다. 독일 유명 셰퍼드 브리더들도 인정했을 정도로 품종적으로 우수한 셰퍼드라고...
- 영화의 경우 긴급조치 19호에서 보여준 악랄한 이미지와 까불지마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가 전혀 상반되어 있다. 까불지마의 경우는 노주현 정도면 나이가 엄청나게 많은 연예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같이 호흡을 맞춘 2명의 배우라는 게 하나는 최불암이요 또다른 하나는 오지명인지라 노주현은 완전히 막내로 전락했다.(...)
- 특히 노주현의 리즈 시절을 상징하는 것은 속옷 전문업체 태창의 '빅맨 CF' 시리즈.[8] 이 CF는 '남성의 상징&로망=노주현, 빅맨' 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대박 of 대박을 쳤다. 오죽했으면 당시 각종 유행하던 유머 시리즈에도 '빅맨' 이 등장했을까. 예를 들면 '3代 MAN'에 슈퍼맨, 배트맨, 그리고 빅맨이라든가 말이다.
- 80년대에 베스트 드레서에 단골로 뽑힐 만큼 출중한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본인의 체형과 얼굴에 잘 어울리면서 심플하고 세련된 의상을 잘 골라입는 편, 50대까지는 넥타이 를 동반한 수트를 많이 입었으나, 60대 이후로는 노타이로 다양한 셔츠와 재킷 차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의외로 노타이의 셔츠 연출이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멋진 모습이다. 오버사이즈의 뿔테 안경 등 본인을 상징하는 아이템도 많은 편이다.
- 사업 수완이 좋은 인물이다. 80년대부터 사업으로 번 돈이 상당하며 1997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 망고농장을 샀는데, 제주도의 지가가 폭등하면서 이익을 보았다.
- 1977년 3월에 아내인 최성경씨(54년 생)와 결혼하여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이 개털 때문에 사망했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간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활동을 쉬었는데, 이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본인은 활동을 하기 위해 1999년에 귀국하고 한동안 기러기 아빠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 요새는 인터넷에서 비트코인 업체 모델로 볼 수 있다. 재테크 성공사례로 유명한 인물이기에 캐스팅 된 것으로 보인다.
5. 논란
5.1. "문재인 정부 들어서 섭외가 오지 않는다" 발언
'박근혜 지지자' 노주현, 문재인 정부 저격? "오비이락…드라마 섭외 안 돼"
2019년 5월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서 인터뷰 하는 도중 최근 활동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활동하지 않은지) 2년 됐다. 오비이락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 1편도 섭외가 오지 않는다”'''라고 답했는데, 이 발언은 마치 정치적인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압박을 가해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되었다. 오비이락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농으로 말한 느낌이 있지만, 사건이 사건이니 만큼 단순 농으로 넘기기 힘들다는 점이....[9]
노주현은 대표적인 보수 우파 지지 연예인으로, 그와 더불어 이순재, 최불암, 송해, 이덕화 등이 보수 우파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노주현은 이순재, 최불암과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에서 활동하며 박근혜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지지 활동을 벌였던 적이 있다. 이와 같은 보수 지지 성향의 연예인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한 편도 섭외가 오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한다면 아무래도 발언의 진위 여부 논쟁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수 우파 진영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던 다른 인물들이 문제없이 미디어에 잘만 출연하고 있어[10] 노주현의 발언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순재, 최불암, 송해, 이덕화 등이 현재까지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복수의 방송사 드라마 PD는 "노주현의 발언이 의아하다"고 전했다. 한 PD는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회사에서 특정 배우의 출연을 막았다고 들은 것은 있다"면서 "현재는 그런 일들은 없다"고 못박았다. 또 다른 PD는 "방송사에서는 드라마 한 편에 명운을 걸며 철저하게 산업 논리로 간다"면서 "트렌드와 캐릭터 등을 통해 배우를 섭외하는데, 최근의 트렌드와 노주현 씨의 이미지가 잘 들어맞지 않아서 섭외가 안됐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 지지' 노주현 "文정부 들어 섭외 안돼"..사실일까
노주현이 특별한 정치적인 의도 없이 정말 시기적으로 딱 맞는지라 "문재인 정부 들어서"라는 표현을 쓴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무언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언급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문제의 발언 일주일 뒤인 5월 14일 노주현이 드라마에 캐스팅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노주현, '내 이름은 트로트' 출연확정…5년만 브라운관 복귀 또 한번 발언의 신뢰성이 하락하는 부분이기는 하다. 이에 '섭외가 없었다'라는 발언은 5월 7일에 있었고 1주일 뒤인 14일에 와서 드라마 주연으로 확정되었으니 7일 시점에서 '1편도 섭외가 들어오지 않았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으나, 섭외 이후 캐스팅 확정이 일주일도 안돼 이루어졌을지는 의문이다.
6. 주요 출연작
6.1. 드라마/시트콤
- 결혼작사 이혼작곡 - 신기림 역
- 내 이름은 트로트
- 그래, 그런거야 - 유민호
- 오만과 편견 - 맹규식
- 압구정 백야 - 맹규식 역
- 모두 다 김치 - 박재한
- 왕가네 식구들 - 고지식
- 감자별 2013QR3 - 노수동
- 폼나게 살거야 - 조용팔
- 주홍글씨 - 윤정호
- 수상한 삼형제 - 주범인
- 조강지처 클럽 - 최군수
- 춘자네 경사났네 - 이만석
- 그 여자가 무서워 - 백동수
- 소문난 칠공주 - 공수표
- 그 여름의 태풍 - 한광석
- 장미의 전쟁 - 박 회장
- 똑바로 살아라 - 노주현
-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노주현
- 오남매 - 허정
- 선희 진희 - 최회장
- 황금시대 - 김병익
- 착한남자
- 유정 - 장동욱
- 행복의 시작 - 민기백
- 제4공화국 - 김용태
- 좋은 남자 좋은 여자 - 민성신
- 일과 사랑 - 이윤호 역
- 제3공화국 - 장도영
- 남편의 여자 - 정태
- 장미정원 - 한상준
- 옛날의 금잔디 - 윤영호
- 밥상을 차리는 여자 - 주명
- 꽃피고 새울면 - 최승명
- 사랑의 굴레 - 박인섭
- 철새 - 장선규
- 사랑과 야망 - 장홍조
- 그대의 초상
6.2. 영화
- 긴급조치 19호 : 비서실장
- 까불지마 : 임삼복
- 미워도 다시 한번 : 시리즈의 4편격인 완결편에 출연한다. 당시 스타 아역 배우인 김정훈의 성인 역할. 이복 형제 역할은 홍종현, 성인 역을 김종결이 맡았다.
- 잠복근무 : 주인공 천재인(김선아)의 삼촌이자 상관 천 반장 역
-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 무림반점 사장 역
[1] 2017년 당시 한국나이 101세에 병상에 있는 모습이 나왔다.[2] 노주현과 배재고 동문이다. 노용악이 연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금성사(LG전자)에 입사한 1965년에 노주현은 배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연영과에 입학했다.[3]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70년대 초 한진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짧지만, 사실상 드라마 쪽은 노주현의 독무대였다.[4] 당시에는 방송사별로 전속 탤런트제도가 있었다.[5] 그 TBC 드라마의 위엄이랄 수 있는 것이 흔히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히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3인은 영화와 드라마 양쪽 모두에서 스타였지만, 드라마의 경우 3명 모두 TBC에서만 활동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 여자 탤런트 경우 KBS의 한혜숙, MBC의 김자옥, 김영애가 51년생 동갑내기로 70년대 브라운관의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다.[6] 80년대로 넘어가면서 TBC 출신 인기PD와 작가들이 이적하면서 다른 방송사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으며 MBC에서 임채무가 '''사랑과 진실''' 주인공으로 80년대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후에 방송에 출연해서 과거를 얘기하던 노주현은 직속 후배였던 한진희를 인정하지만, 임채무에게는 "에이 임채무는 나한테 안 됐지"라며 자기보다 약간 아래로 보는 듯한 농담을 했다. 물론, 농담이었으나 확실히 주연 커리어가 본인들보다 늦은 임채무를 경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이가 딱 3살 차이다. 다만 임채무는 노주현과 다르게, 해병대를 나온 뒤인 20대 중반에 공채배우로 데뷔했다. 더구나 30대가 넘어서 주연으로 자리잡아 이것도 노주현보다 조금 걸렸다.[7] 재미있게도 이는 극중 노주현의 아버지인 노구 역할로 출연한 신구도 마찬가지. 노주현에 비해서는 그 충격이 덜했지만 이쪽도 그 동안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연기였다. 비슷한 시기 방영했던 태조 왕건에서 신구가 맡은 왕륭 역할과 노구 역할을 비교해 보면 이미지의 차이가 상당히 큰 편이다.[8] 90년대 초반은 가히 내의업체 자체의 최전성기로. 한창 왕성히 활동하던 남자 연예인들을 간판 모델로 기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쌍방울 트라이는 이덕화의 문짝 내려치기로 공전의 히트를 쳤고, 또 다른 라이벌 BYC는 유인촌과 김영철을 번갈아 기용하면서 자존심 대결을 했다.[9] 실제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2년 동안 작품 활동을 쉬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도 노주현의 발언의 진정성을 떨어뜨리고 있다.[10] 이순재의 경우 매니저에 대한 갑질이 논란이 되기는 했는데 그건 이순재의 부인과 연관된 문제로 이순재 본인과 직접 관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갑질 논란에 대해서는 본인이 인정하고 피해자인 매니저에게 직접 사과 의사를 밝혀(매니저 본인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매듭지었으며, 무엇보다도 해당 논란의 경우 정치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순재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송재호도 문재인 정부 출범(2017년) 이후 2020년 작고할 때까지 배우 활동 잘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