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집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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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목적
3. 구조와 특징
4. 현재
5. 기타


1. 개요


오토바이가 주력이 되기 직전까지 널리 쓰인 화물수송용 자전거를 뜻하는 단어로, 보통 삼천리자전거의 '점보' 모델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는 이미 오래전에 단종되었다. 짐자전거 또는 쌀집에서 많이 쓰였기에 쌀집 자전거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
픽스드 기어 바이크의 육체적 전신이며 팻바이크의 영혼적 전신이다. 왜 그런지는 기타 항목 참조.

2. 목적


쌀집에서 자주 쓰였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자전거의 주 사용 목적은 화물 운송이다. 1990년대 중반에 대형 마트가 생기고 그 마트에서 쌀을 취급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소매점들은 옷집, 쌀집, 채소가게, 철물점 등 각각 전문적으로 한두 종류의 물건만을 취급하고 있었는데, 이 자전거 이름의 유래가 된 쌀집의 경우 배달 위주의 영업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1]
한 가마니가 포장 제외 정량 80kg이라는 무게도 무게이거니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요즘처럼 자동차가 흔했던 시대도 아니었고, 쌀의 주 구매자인 가정주부들은 저 묵직한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대부분 수kg에서 수십kg씩 주인이 직접 바가지에 담으면서 팔았기 때문에 소비자는 무게랑 별 상관없었다. 다만 대가족 가족인 경우엔 여러명이 와서 여러포대나 봉지에 담에서 가져가기도 했었다. [2] 하지만, 골목길이 좁아 쌀집에서도 뭔가 쌀을 배달할 방법이 필요한 상황. 쌀집에도 트럭이 없거나 트럭이 있더라도 길이 좁고 특히 1970년대 이후에는 수도권은 주차난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지방도 이미 1980년대초에 주차난이 심해 골목길에 차들이 가득 차있는데, 골목길에 가득 주차된 차들 사이로, 무엇보다 자영업자인 쌀집 주인이 주차하느라 차로 쌀을 배달하면 주차 혹은 차 빼느라 시간을 다 소비하여 장사가 힘들었으므로, 쌀집 아저씨를 구원해준 비장의(?) 장비가 바로 이 자전거였다. [3] [4]
당연히 쌀만 배달한 건 아니고 양조장, 두부 가게, 석유 가게, 건재상(벽돌, 시멘트...)등 여러 곳에서 썼다. 적재칸에 솜사탕기계라든지 가스 봄베와 풍선을 싣고 판다든지 하는 요즘의 푸드 트럭이 하는 일까지도 이 짐자전거가 맡았다.
한마디로 자전거 계의 포터라고 보면 된다.

3. 구조와 특징


자전거 제작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무게를 견디기 위해 통짜 철로 만들고, 기어 변속 그런거 없는 단순한 구동 구조, 드럼 브레이크와 철사로 된 브레이크 라인 등 내구성에 올인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데, 때문에 내구성 하나는 무식하게 튼튼하다. 20년 전에 구매한 녹슨 자전거를 여전히 굴리는 것 정도는 너무나도 흔해서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 가격은 1980년대 기준으로 기본형이 20만원 선이었고[5] 여기에 용접 개조를 더하면 30만원 가까이 나가는 경우도 있었으며, 원동기를 장착할 경우 30만원 이상 나가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서 이 자전거를 운송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보강 작업을 거쳐 150kg 이상의 무게도 무리없이 운송 가능하도록 개조한다. 이런 개조를 거친 자전거는 그야말로 자전거계의 덤프트럭.
다만 이 자전거에도 단점은 있는데, 대부분의 부품이 강철제[6]이다 보니 녹도 잘 슬고, 무게도 20kg 이상, 개조하면 30kg 근처일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무겁다. 짐을 다 실은 자전거의 경우 선 상태에서 페달을 밟는 힘으로는 그냥 출발할 수가 없어서 일단 자전거를 밀면서 출발시킨 뒤 가속도가 붙을 때 안장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는 묘기가 필요할 정도. 그리고 변속 기어가 없기 때문에 언덕을 오를 때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며, 반대로 짐을 실은 상태에서 언덕을 내려갈 때는 속도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브레이크도 철제라 브레이크 잡을 때마다 끼이이익~! 하는 쇳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덤. (뒤는 밴드 방식의 드럼, 앞은 캘리퍼 방식이었는데, 앞 브레이크는 약했고 거의 뒷 브레이크 제동력으로 버텼다.)
다만 승차감은 의외로 편했는데, 일단 휠 베이스가 길고,[7] 바퀴도 크고 두터웠으며, 무지막지한 철 프레임의 무게가 진동을 다 잡아주었고 스프링이 달린 가죽 안장도 충격을 흡수해 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강철 프레임은 그 자체가 조금씩 변형되며 스프링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알루미늄 합금이나 고강도 탄소 프레임보다 승차감이 좋은 경우가 꽤 많다.

4. 현재


도로가 발달하고 자동차가 일상화된 현재는 1톤 트럭이나 경상용차, 모터바이크계의 쌀집자전거(혼다 커브, 시티백)에 그 입지와 역할을 많이 내준 상태. 주로 1980년대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의 여러 작품에 많이 나오는 편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해 주는 골동품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일대, 그 외 사람 많은 시장이나 수퍼마켓, 공장지대, 시골 어딘가에서는 이 자전거가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사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동네 세탁소나 상가에 가보면 꼭 한대쯤은 보인다.
원조 쌀집자전거 신품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현재 운용되는 것 대부분이 중고이거나 고철이 된 것들 중 쓸만한 부품들을 뽑아 재생된 것들이다. 변속기도 없고, 무식하게 튼튼하게 만든 덕에 고장날 데가 없어서 녹스는 데 두지만 않으면 만든지 20년은 물론 30년이 지나도 쓸 수 있는 게 이 자전거다. 갈아 줘야 할 데라고는 타이어와 튜브 뿐. 안장도 가죽제라 10년 이상 쓸 수 있다. 다만 오래된 자전거포에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구형 신사용 자전거(표준 자전거)의 짐받이, 스탠드, 핸들을 강화하여 준 운반용으로 개조해 주기도 한다.
현재 나오는 자전거 중에서는 삼천리자전거의 "26 뉴 표준 (Strandard)" 모델이 유일하게 쌀집자전거라 할수 있다. 오랫동안 단종되었던 옛날 점보를 좀 더 작고 가볍게 만들어 재발매한 것이다. 옛날 것보다는 적재량이 많이 줄었지만, 개조를 통해 무거운 짐을 실을 수도 있다. # 발전기가 붙은 헤드램프, 스프링 달린 안장 (가죽 안장이 아닌 것은 아쉽다. 실은 가죽 안장은 요즘은 10만원이 넘는다.) ㅂ자 모양의 넘어지지 않는 스탠드 등은 과거 쌀집자전거에서 이어받은 사양이며 앞의 드럼 브레이크, 알루미늄 이중림 등은 옛날 쌀집자전거보다 발전된 것으로, 프레임도 무식한 러그 프레임[8]에서 직접 용접한 방식으로 바뀌었고 특히 림이 알루미늄으로 바뀐 덕에 전체 무게도 19kg 대로 상당히 가벼워졌다.
쌀집 자전거 동호회도 있다. 마개조한 자전거를 볼 수 있다. 블로그 글 링크.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mh0363&logNo=1010396062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5. 기타


자체 무게도 많이 나가지만 그 몇 배의 짐을 싣고 달려야 하는데다 기어도 없는 자전거 특성상 이 자전거를 오래 몰면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된다 카더라. 한강에 이 자전거를 몰고 나온 사람이 있다면 자전거계의 은둔고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아버지가 슬리퍼에 나시 차림에 동네 마실나온 듯한 포스로 녹슨 자전거를 여유롭게 타고 계시다면 백프로이다.
1980~90년대에는 흔히 '찐빠', '짐바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픽스드 기어 바이크의 조상님격 되는 자전거이며,[9] 역사가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가는 자전거다. 일본군이 이런 종류의 자전거를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군산시 근대역사박물관에 가면 왜정시대에 썼던 바로 그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다르지 않은 1960-70년대에 쓰던 쌀집자전거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술 제조 가게 부근에서 볼 수 있다.
MBC의 70부작 대하드라마로 2004년경 방영되었던 영웅시대에서 청년기의 '천태산'이 쌀집 점원으로 일하며 쌀 배달 업무에 사용했던 도구가 바로 이 쌀집 자전거.[10] 이외에도 왜정 때나 근대화 시기를 묘사한 작품에 등장하는 자전거는 대개 이런 쌀집 자전거인 경우가 많다. (그 외에 타고 다니기 위한 것도 있긴 했으나, 당시에는 -주로 일본에서- 수입한 아주 비싼 물건이었다. 요즘의 일반 국산 승용차-외제 스포츠카 관계를 생각하면 될 듯.)
현재 쌀집 자전거급의 화물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는 크로몰리 전문 메이커인 미국 설리(Surly) 뿐이며, 빅 더미(Big Dummy, 최대 180킬로그램 적재 가능) 및 빅 더미의 전기 자전거판인 빅 이지(Big EZ) 모델이 쌀집 자전거급 운반력을 자랑한다. 실물을 보면 알겠지만 쌀집차와 유사점이 꽤 많다(긴 휠베이스, 긴 체인스테이, 큰 타이어 등).
[1] 당시 일자리가 넘쳐났던 이유, 옷가게나 쌀 장난감, 학용품, 기타슈퍼 등등 개인 가게로 운영을 하였고 이들 각각의 가게가 장사가 매우 잘 되는 편이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 장사하던 사람들 중에 엄청나게 부자들도 생겼으며, 이들이 1990년대 이후 많은 돈으로 노름이나 도박 혹은 어긋난 투자등으로 인해 망한 사람들도 많다. 1970~1980년대는 단군이래 대한민국이 가장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룬 시기인 만큼 장사도 매우 잘 되었고 장사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2] 당시는 현재의 5, 10, 20kg 짜리 쌀 소포장이 없었다. 3-4인분씩, 혹은 수일씩 먹을 분량을 대량 5kg 담아서 종이 봉지에 담아 팔거나, 대가족인 경우에는 가마니째도 많이 사갔으며, 보통은 말 단위로 배달해 뒤주나 쌀통에 넣고 먹었다. 일단 배달은 말 이상 단위만로 해 줬다.[3] 물론 당시 쌀집도 대부분의 손님들이 직접 방문해서 쌀을 사가는 형식이었으나, 소수의 배달을 시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장비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4] 많은 쌀집들이 가족끼리 직접 운영하고 있었고, 쌀집주인이 배달하거나 쌀집주인의 자녀가 직접 배달오는 경우도 많았다.[5] 참고로 당시 신사용 표준자전거는 9만~10만원 정도였다. 1980년대 초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이 30만원대였으니 물가 대비하면 꽤 비싼 물건이던 셈. 2019년 삼천리 스탠다드의 가격이 29만원이므로 명목가격과 실질가격 모두 현재가 더 싸다. 참고로 1970~80년대는 막일이라도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인건비가 높았으므로 어찌보면 사회적으로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은 공무원과 공기업대기업 사무직들이 기술자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지만, 당시에는 기술자가 공무원과 공기업대기업 사무직보다 임금이 더 높았다. 따라서 가전제품, 자전거 등의 물품들의 가격이 높은 편이었다.[6] 주로 무거운 하이텐강이었다. 고급 철제 자전거 프레임에 쓰는 크롬-몰리브덴강보다 저렴한 대신 강도가 모자라 두텁게 만들어야 하므로 무겁다. 요즘 철티비, 저가형 자전거를 만드는 소재. 초기 짐자전거는 상수도용 쇠파이프나 별다르지 않은 것을 프레임 소재로 썼다.[7] 옛날 점보, 쌀집자전거는 적재량 증가를 위해 휠 베이스를 늘리고, 그러기 위해 싯 튜브와 뒷바퀴 사이에 보조 프레임 들어가는 것도 있다.[8] 러그 프레임은 프레임이 모아지는 부위를 따로 만들고 거기에다가 쇠파이프를 끼워 넣고 간단하게 납이나 동 등 철보다 녹는 점이 낮은 금속으로 용접하는 프레임 조립 방법인데, 어느 부위 파이프가 망가지면 그것만 빼서 갈아 끼울 수가 있어서 정비성이 좋다. 간단하게, 외경만 같으면(조금 작은 건 유격을 메을 링을 끼워 넣어 쓸 수 있다) 어떤 쇠파이프를 쓰든 다 수리가 된다.[9] 실제로는 국내 쌀집 자전거는 대부분 프리휠을 장착하고 있었다.[10] 그런데 작중 주인공은, 아무리 150kg 이상도 너끈히 운송할 수 있을 정도로 쌀집 자전거를 손볼 수 있다지만 그런 자전거에다가 쌀 가마니 세 개, 즉 240kg을 적재해 배달하는 기행을 보여준다.(...)그런데 사실일 가능성이 꽤 높은 일이다. 모델인 정주영 현대 창업자는 씨름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젊을 때부터 장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그냥 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에 싣고 가는 것이라 쌀 세 가마니 가능하다.

이 문서의 2015년 4월 17일 이전 저작자는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