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1. 소개
2. 줄거리
2.1. 나무는 진정 행복했을까?
3. 기타


1. 소개


The Giving Tree
미국의 아동 문학가 셸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이 1964년에 쓴 동화다.

2. 줄거리


어느 곳에 나무와 친구인 소년이 있었다. 나무와 소년은 언제나 나뭇가지로 그네를 타고 열매도 따먹고 즐겁게 함께 놀았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이 찾아오는 일이 줄어 나무는 쓸쓸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성장한 소년이 찾아왔다. 나무는 기뻐하며 예전처럼 자신의 열매를 먹으며 놀자고 했다. 하지만 소년은 난 이제 너무 자라서 열매같은 걸 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소년은 자라나서 나무에게 일을 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가져가라고 했다. 소년은 나무의 열매를 가져가 팔아 돈을 얻었다.
더 자라서 어른이 된 소년이 찾아오자 나무는 예전처럼 가지에 매달려 그네타기를 하며 놀자고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난 너무 커버려서 그네타기를 하기엔 너무 무겁다고 했다. 소년은 결혼을 하려면 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베어가서 집을 지으라고 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나무의 가지를 모두 가져가서 집을 지었다.
또 더 나이가 든 소년이 찾아와 너무나 슬퍼서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다고 했다. 나무는 자신의 몸통을 베어가서 배를 만들라고 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나무의 몸통을 베어가서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났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 소년은 이제는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나무에게 피곤해서 쉴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는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밑둥밖에 없으니 와서 그루터기에 앉으라고 말했다.
노인은 그루터기에 앉았다.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했다.

2.1. 나무는 진정 행복했을까?


작품 속 나무가 '진정으로 행복했는가?'에 대한 고찰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을 대할 때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1] 이는 인간을 인간(타인) 그 자체를 위해서 행동하라는 것이며 어떠한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의 과정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것이다.[2] 작품으로 돌아오면, 나무는 아이가 위에 올라타거나 그네를 타는 등의 행위를 하면서 아이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다소 비가역적인 절차다. 타인을 목적으로 대우하여 어떤 감정의 교류를 맺는 순간, 인간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3] 그렇기에 나무는 아이를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 자신과 놀아주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후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수단'으로 대우하여 벌목한다. 그럼에도 나무는 아이가 자신을 기억하고 찾아와주었기에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행복은 나무가 그 자체로 행복했던 것일까? 결국 나무에겐 그루터기 밖에 남지 않았고, 줄 수 있는 것은 남지 않았다.[4] 인간을 쓸모 있는 무언가로 대우한다면 이처럼 타인은 설령 남을 돕는 것에 행복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만을 위한 도움과 행복은 끝이 존재하는 행복이 된다.[5] 더이상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아이를 생각하며 나무는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무는 아이를 목적으로 대우하여 관계를 맺었기에 아이를 잊을 수 없는데, 찾아오지 않는 아이를 생각하머 불안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이상 찾아오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찾아와서는 자신을 쓸모있는 재화로 생각했다면, '''그럼에도 기쁘니까''' 계속 찾아오게 하기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었을 것이다. 이는 곧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6] 아이를 만날 수 있었기에 행복했지만[7], 진정으로 행복했던 게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고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부모님이 됐든 친구가 됐든 당신을 인간 그 자체로서 사랑해준다면 상대방을 ATM이나 수단 따위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당신에겐 모르겠지만 상대방에겐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3. 기타


마찬가지로 아낌없이 주는 존재인 부모님을 이 동화의 나무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안 좋은 의미로는 별 저항 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호구를 지칭할 때 쓰기도 한다. 본래 동화의 뜻을 생각하면 매우 심각한 왜곡이지만...
노인이 죽은 이후 그 시체가 거름이 되는걸 나무가 노리고 다 준거라는 해석도 있다. 황폐한 땅에서 나무가 너무 커서 몸집을 작게 한 후 거름을 바랐다는 식. [8]
레딧의 한 능력자는 '아낌없이 주는 PC'라는 물건을 만든 적이 있다.
전학생은 외계인나왔다.
곽백수의 만화 트라우마 108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이 동화를 패러디했으며, 소년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더러 보증 좀 서 달라고 하니까 나무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 유머스럽지만 보증의 무서움을 잘 알려주는 내용.
아수라장에도 게임만화로 등재되었다. 만화의 지문은 원작 그대로이면서 그림과 대사는 과실을 뜯어가고 나뭇가지를 썰어가고 나무는 '아이고 썰렁해라 다시는 오지 마라' 하는 패러디물이다. 이후 도시에서 '소년'이 돌아온 컷이 걸작.

지문: 나무는 반가웠습니다.

나무: (핏대를 세우며) "오지마! 꺼져!"

그리고 소년은 나무를 일격으로 썰어서 벌채했고, "마무리."라면서 그루터기를 폭파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마지막 컷의 지문은 원작과 같이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가오갤에 스타로드가 그루트가 계속 ''아이엠 그루트''라고 하자 ''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무슨일이 일어난거야?''라고 한다.
심영 버전으로 각색한 ''''앙기모띠 주는 나무''''가 올라왔다. 이것도 주지도 않았는데 김두한에게 억지로 빼앗긴다...
이 동화의 이름을 따온 한국의 2인조 밴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었다. 유명곡으로는 1집의 타이틀곡 '유년시절의 기행'과 2집 타이틀곡인 '나만의 회상'이 있다.
솔로 락커로 전향한 문희준의 2002년 발표곡. 앤디 윌리엄스의 명곡 A Time For Us(로미오와 줄리엣 ost)을 락 스럽게 샘플링해 불렀다. 제목은 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지는 모르겠고, 락 스러운 샤우팅 파트에서 A Time For Us!를 열창.
원문에서 나무가 She라고 지칭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작가가 플레이보이지에서 일하면서 여자들과 자고 다녔다는 사실과 엮어 여혐 작품이라고 간주하고 있다[9] #1#2

[1] 작품 속 나무는 물론 무정물이지만 의인화 되어 있으므로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볼 여지가 존재한다.[2] 예컨대 '저 사람을 도우면 나는 극락에 갈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등의 다소간 위선적인 행동을 말한다. 기독교의 예수처럼 그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서 돕는 등의 행동이 바로 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이 둘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3] 마치 어린왕자 속 여우가 금빛 보리밭을 보면 어린왕자의 금빛 머리칼이 생각나도록 각인됐듯 말이다. 이처럼 사람에겐 관계를 맺은 순간부터 비가역적인 변화가 나타난다.[4] 몸을 줄여가면서 돕는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5] 작품에서는 나무가 아이 그 자체를 위해 헌신한 것처럼 말이다.[6] 인간관계 속에서 과격하게 말하자면 토사구팽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7] 작품에 서술되어 있으므로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수동적인 행복에 불과하다.[8] 일단 실제로 유럽에서 인간의 뼈를 비료로 사용한 적은 있다.[9] 물론 이건 영미권 문화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는 무식한 소리이다. 영미권에서는 대부분의 무정명사(자동차, 집 등)을 여성형으로 지칭하며, 이 작품에서 나무가 의인화돼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무정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여성형으로 지칭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