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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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5인조 보이그룹 H.O.T.의 멤버이며, '''리더''', 리드보컬, 리드댄서, 서브래퍼를 맡고 있다.
특히 H.O.T. 멤버들 중 예능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뛰어난 입담과 개인기를 보여주었다. 1990년대 아이돌은 작곡은 안 하고 립싱크만 한다는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작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싱어송라이터 아이돌과 예능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장우혁은 만약에 문희준이 없었으면 H.O.T.는 이곳에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후술하겠지만 H.O.T.가 2001년에 해체하고 솔로로 전향한 후 몇몇 발언들이 와전되며 전국적인 안티를 양산해냈다. 하지만 나중에 모든 오해가 풀렸고, 극성 안티들의 무논리 공격에도 의연한 대처를 한 것이 나중에 조명되면서 문보살로 불렸다.
군 복무 후에는 공백기간 덕에 안티도 줄었다. 이후 한동안 재치있는 입담과 타고난 끼로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결혼 발표를 전후한 논란으로 다시 안티가 양산되고 있는데 기존의 안티(백만 안티)들이 아닌, 백만 안티들에 맞서서 문희준을 쉴드치며 잔류했던 일부 코어팬들이 안티로 돌아서 데뷔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야 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이다.
하지만 그 일부 코어팬들이 아닌 문희준에 우호적인 일반인과 남은 코어팬 그리고 일부 라이트 팬들은 이 갈등에서 문희준의 편을 들고 있으나 대중들 사이에서는 불호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특히 대중들에게는 결혼 그 자체보다도 이후 여러 실언으로 인해 좋은 이미지를 잃은 편.
2. 생애
2.1. H.O.T. 활동
1997년 2월, MBC 예능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문희준의 고등학교 졸업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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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 1집 활동 시기에 스키장에서 공연할 때 방송 장면.
1978년 3월 14일 서울 출생으로 데뷔 전에는 송파구 일대에서 댄스로 이름을 날리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데뷔 전부터 팬클럽이 있을 정도였으며, 그때 별명이 송파구 노란바지[13]. 그 당시 송파, 강동 일대의 춤 잘추는 10대들을 물색하고 다니던 SM이 노란바지의 소문을 듣고 문희준의 학교까지 찾아와서 캐스팅할 정도였다. H.O.T.가 공중파 데뷔 직전에 문희준네 모교인 중산고등학교(서울)[14] 축제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 그 공연을 봤던 사람들은 전사의 후예를 들어보고 크게 난감해 했으나 다행히 캔디는 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룹 시절의 문희준 하면 파워 레이서춤, 진공관 춤이 떠오를 정도로 H.O.T.의 재주꾼 이미지가 강했고 별명이 그렘린에 나오는 기즈모일 정도로 둥글고 큰 눈의 귀여운 외모도 인기에 한몫했다. 허나 동그란 눈이 파워풀한 느낌을 너프시킨다고 생각하여 언제나 긴 머리카락으로 한 쪽 눈을 가렸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H.O.T. 해체 후 같은 그룹 멤버인 강타와 함께 솔로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솔로 활동 시절의 몇몇 가벼운 발언들이 안 좋게 와전되어서 온라인상에서 거의 전 국민적으로 질타받았다. 이른바 100만 안티설(이 역시 언론의 과장이다)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비난받았던 내용들은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모든 오해가 풀리면서 오히려 죄없이 당하기만 했음에도 이에 대한 의연한 대처를 통해 대인군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2.2. 안티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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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가 안티팬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고 심하게 비난받았는지 보여주는 댓글들. '''2019년 현재도 특종 뉴스가 아닌 이상 1000플을 넘기 힘든데, 스마트폰이 PDA폰이던 2004년 기사인데도 댓글이 30만 개가 넘어간다.'''[16] 당시 네티즌들에게 있어서 문희준에 대한 취급은 그야말로 '''저스틴 비버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17] 저 당시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전국민이 안티'''였다는 말이 돌 정도로 뭘 하던 후드러 까이기 바빴다. 그야말로 엄청난 안티를 가진 연예인이었고 한국 연예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였다. 2016년 현재도 '연예인 안티'로 운을 떼면 반드시 거론된다.
사실, 문희준이 안티가 급속도로 늘어난 이유는 베이비복스의 간미연을 악의적으로 괴롭힌 H.O.T. 극성팬들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들어있었다는 역풍도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에 과도한 비방이 더더욱 커졌다는 의견도 있다.
참고로 처키 흉내가 합성 필수요소로 자리잡았을 당시의 상황은 인터넷 환경상 지금처럼 영상 합성은 거의 꿈도 못 꾸고 십중팔구는 그냥 이미지 합성이었다. 그나마 음원 합성과 플래시가 소수. 만약 그 당시의 상황이 지금의 환경과 같았더라면 아마도 문희준 안티 합성물은 지금의 심영 이상으로 대폭발했을 것이고 더더욱 심한 마음고생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 당시의 열악한 환경이 문희준에겐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었을지도. 물론 심영의 경우는 문희준처럼 '전국민이 안티'여서 합필요소가 된 게 아니라 야인시대가 종영한 지 약 4년만에 내가 고자라니가 발굴되고 컬트적 인기를 끌면서 합필요소가 된 지라 같은 케이스라고 보기는 어렵긴 하지만...
H.O.T. 해체 이후 솔로로 데뷔하면서 로커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발언들이 논란이 되며,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전무후무하다시피한 악플 논란이 벌어지게 된다. 이 당시 논란이 된 발언과 이에 관한 사실은 이하와 같다.
* "저를 연예인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전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18]
그가 한 말로 널리 퍼져있는 말 중 하나. 다만 출처가 불분명하기에 교차검증이 불가능하며, 안티들이 지어낸 말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 "레드 제플린이 누구예요?"
본인의 발언이 맞긴 하지만, 사실 진짜 레드 제플린을 알지 못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일요일 코너 "닥터 리에게 물어봐"에서 락박사 컨셉의 게스트 이윤석이 락음악과 밴드를 소개하게 하기 위해 했던 진행용 멘트였다. 이 멘트를 이윤석이 '레드 제플린은 말이죠~' 하는 식으로 소개하는 것이었는데[19] 전후의 내용만 제외해 악의적으로 퍼뜨린 것. 이후 문희준이 무릎팍 도사에서 자기가 이런 뉘앙스의 기사를 직접 보고서 내가 봐도 얄미워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나왔다고 언급한다.
* "하루에 오이 세 개 먹었어요. 락이 원래 배고픈 음악이잖아요."
간염 이후 식이조절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하던 도중 오이를 먹었던 것을, 인터뷰어가 "다이어트는 어떻게 했어요"라고 물어본 후 오이로 다이어트를 했다는 문희준의 대답을 듣곤 "그렇죠, 락이 원래 배고픈 음악이잖아요"라며 농담으로 이야기한 것을 몽땅 문희준이 이야기한 것처럼 짜깁기했다고 문희준이 무릎팍 도사 SNL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적극 해명한 바 있다. 문희준은 원래 오이를 좋아했는데 일종의 트라우마로 현재는 오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모친도 아예 이후에 반찬에 오이는 꺼내지도 않는다 언급.
* "김경호 씨, 함께 한국의 락을 이끌어 나갑시다."
라디오 라이브 코너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김경호에게 농담조로 건낸 말이었다. 현장 분위기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사실 다른 분야면 농담으로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음악이라면 이런 이야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게 맞다. 음악이란 경력있는 선배만 이끌어 나가는게 아니라 까마득한 후배들도 함께 이끌어 나가는 곳이고, 아이돌 출신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정도로 발끈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왜곡된 부심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다만 이건 입장의 차이라고 할수도 있는게 커리어가 사실상 전무한 신인이 기라성같은 선배한테 이런 말을 하면 그 의미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장르 막론하고 굉장히 거만하게 보일수는 있다.
> * "우리가 발라드를 이겼죠? 높은 키로 질러버리면 되니까요"
2002년도에 김종서와 문희준이 함께 활동하던 때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더블임팩트에서 록이 발라드보다 가요차트의 순위가 높았다고 말하며 선배인 김종서에게 했던 말이다.[20] 본인들은 괜찮았어도 일부 청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농담이라도 좀 더 순화시켜 이야기했으면 모를까.
> * 자신의 콘서트 라이브에서 "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더 한번 더 크게!", "진정 라이브가 무엇인지 진정 롹이 무엇인지 들려드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뭐라건, 어느 누가 손가락질을 하던 여러분들과 저만이 진정 락 매니아!"
라이브 실황 앨범 수록곡 Heejun With H.I.T. II에 실려 있는 발언으로, 해당 콘서트 명은 "Live Revolution"이었고 공연실황이 담긴 앨범명은 "Revolution"이다. 개인의 무대에서 자신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하는 립서비스류로 볼 것이냐, 공식석상에서 공공의 대중에게 한 말이냐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 있는 발언이다. 위 다른 사례에 비해 이 발언들은 실제로 본인이 했던 발언이고 기록까지 남아 아직도 음원 서비스가 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확인할 수 있고 당시에도 특히 논란이 많이 되었다. 위의 발언들에는 분명 문제시 될만한 발언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이 발언에 더해서 그 시기 MBC FM4U에서 진행하던 더블임팩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위해 사용했던 미사여구나 농담 등이 얽히고, 그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자료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그것들 모두가 문희준 본인의 생각을 담아 힘줘 이야기한 발언으로 퍼지게 된다.
게다가 문희준이 락에 도전한 2000년대 초반은 미묘한 시기였다. 한국 락의 침체가 오래됐으나,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홍대 앞 언더 락씬은 약진을 거듭하고 있었고 비슷한 시기 시작한 언더 힙합씬 역시 성장중이었다. 하지만 브라운관은 기성 연예기획사 소속의 연예인들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인터넷은 문화를 향유하기에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채널 수가 적었던 당시 미디어는 아이돌이 범람한데다 주로 나이 어린 학생들이었던 팬들의 광기 어린 추종은 확실히 사회적인 문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H.O.T.는 그런 아이돌의 대표격이었으니 이에 대한 반감이나 문제의식 또한 분명히, 제법 크게 존재하고 있었다. 많은 팬만큼 안티도 많아 국내 최초로 안티사이트가 개설되었다.> * "우리가 발라드를 이겼죠? 높은 키로 질러버리면 되니까요"
2002년도에 김종서와 문희준이 함께 활동하던 때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더블임팩트에서 록이 발라드보다 가요차트의 순위가 높았다고 말하며 선배인 김종서에게 했던 말이다.[20] 본인들은 괜찮았어도 일부 청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농담이라도 좀 더 순화시켜 이야기했으면 모를까.
> * 자신의 콘서트 라이브에서 "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더 한번 더 크게!", "진정 라이브가 무엇인지 진정 롹이 무엇인지 들려드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뭐라건, 어느 누가 손가락질을 하던 여러분들과 저만이 진정 락 매니아!"
라이브 실황 앨범 수록곡 Heejun With H.I.T. II에 실려 있는 발언으로, 해당 콘서트 명은 "Live Revolution"이었고 공연실황이 담긴 앨범명은 "Revolution"이다. 개인의 무대에서 자신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하는 립서비스류로 볼 것이냐, 공식석상에서 공공의 대중에게 한 말이냐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 있는 발언이다. 위 다른 사례에 비해 이 발언들은 실제로 본인이 했던 발언이고 기록까지 남아 아직도 음원 서비스가 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확인할 수 있고 당시에도 특히 논란이 많이 되었다. 위의 발언들에는 분명 문제시 될만한 발언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이 발언에 더해서 그 시기 MBC FM4U에서 진행하던 더블임팩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위해 사용했던 미사여구나 농담 등이 얽히고, 그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자료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그것들 모두가 문희준 본인의 생각을 담아 힘줘 이야기한 발언으로 퍼지게 된다.
H.O.T.는 후기로 접어들수록 일본의 비주얼락밴드를 연상케하는 비일상적인 소품이나 헤어스타일 등으로 대중성보다는 그들만의 세계로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대중은 문화상품 선택의 자유가 요즘보다 훨씬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21]그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반감이나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H.O.T.와 문희준에 대한 반감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jtL은 기존의 댄스그룹 노선을 지향했고, 강타는 메인보컬이었던 포지션의 연장인 발라드로 집중했는데, 문희준은 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H.O.T. 앨범에 수록된 그의 자작곡들에는 기타 사운드가 자주 사용되었고, 5집 콘서트에서는 아예 락 장르의 자작곡인 '페르시안 블랙홀'을 솔로무대로 선보여, 락에 대한 그의 관심과 음악적인 방향성이 어느정도 짐작가능한 부분이었으나, 이런 내막을 자세히 몰랐던 대중이 보기에 그의 장르 전환은 대단히 뜬금없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문희준은 통칭 1:100,000의 안티들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문희준에 대한 안티는 당시 일종의 사회현상에 가까울 정도로 광범위했으므로 단순히 장르 팬들의 반발이나 갈등, 혹은 소위 팬이 까를 만든다는 말처럼 문희준 팬들이 자초했다고 정도로만 해석하기에는 당시 문희준 안티에 동참했던 사람들 수가 너무나 많다. 남에게 욕먹는 것으로 유명해지려 했던 왕비호의 당초 목표가 바로 '제2의 문희준 선생이 되는 것'이었으니 말 다한 셈. 실제로 2009년 개그콘서트의 게스트로 등장해 달인과 봉숭아 학당의 왕비호 까임소재로 등장했다.
이는 '''기존의 락씬이 가진 불안정한 입지가 문희준이 가진 표면적인 화려함과 대비되며 생겨난 결과'''였다. 결정적으로 그가 연말 가요제에서 수상까지 하게 되면서 그간 락이라는 장르에 투신하며 그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이 응당 받아야할 음악적 성과를 받지 못했다는 박탈감까지 불러 일으키며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다. 물론 문희준의 음악적 역량은 H.O.T. 활동 중 자작곡을 앨범에 수록하는 등 어느 정도 무르익어 있었고, 본래부터 타고난 미성에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반이 잡혀있었다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 출신 록커에게 가해지는 잣대는 기존 록 팬층에게는 반감과 함께 도저히 만족시키는 선에 다다르지 못했다. [22] 당시 록은 메인스트림에서 (원래 벗어나 있긴 했지만) 완전히 밀려나 있었다. 당시 록에 대한 대다수 대중들의 인식은 처참해서 "머리 길고 희한한 복장 한 놈들이 헤드뱅잉하면서 돼지 멱따는 소리 지르는 음악" 수준으로, 음악 자체가 아닌 그 외향에 치중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록을 해온 뮤지션들을 제치고 아이돌 댄스그룹 출신인 문희준이 시상식에서 락 부문 상을 수상하고 문희준이 졸지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로커가 되어버리니 기존 락 매니아들의 분노가 촉발된 것이다.
물론 록은 자유로우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이 되어야 하는 것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장르를 떠나 음악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그 인지도 때문에라도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며, 이들의 행동은 장르를 통틀어 큰 영향을 준다. 보통 이 정도 인지도를 가진 뮤지션들은 대단한 음악적 성과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때문에 호불호를 떠나서 뮤지션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시 문희준은 당시 '''어떠한 (록) 음악적 성과도 없이 이러한 영향력을 갖는 위치에 있었고, 이게 문제가 되었다.''' 문희준은 당시 대한민국의 어떤 로커보다도 유명하고 팬이 많았기 때문이다. 즉, 이제 갓 록을 시작한 문희준이 '''대한민국 록의 얼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정말 순수하게 록에 도전하면서 말실수도 하고, 노래 때문에 평범하게 욕 먹기도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기엔 너무나 팬층이 거대했고, 대한민국 록씬은 너무나 인기가 없었다. 적어도 대한민국 록씬에 당시 문희준보다도 인기가 많은 가수가 있어, 문희준을 "팬만 많은 애송이" 취급할 수 있었다면 그 정도로까지 록계에서 증오받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는 록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이너 장르까지 인기가수를 배출하기 힘든 작은 음악시장과, 오래 전부터 멜로디 위주의 음악에 편향되게 흘러온 대중음악계 등 여러 문제가 복합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일단 처음에는 아이돌 출신이 락을 한다는 냉소와 비웃음에 그치는 정도였다. 다만 문희준의 팬들은 이를 굉장히 불쾌해 하였고, 이로 인해 팬과 안티의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하였다. 점점 심화되다 보니 이윽고 언젠가부터 인터넷상의 대세가 될 정도였다. 흔히 말하는 밈이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2003년 경 한 문희준 팬이 빡친 나머지 인터넷에 '문희준 그만 까라'는 내용을 직접 녹음해서 올렸고, 그에 대해 보이스웨어 프로그램[23]을 이용한 반박이 올라왔을 정도. 이후 오인용의 플래시 “연예인 지옥”에서 군대가서 제일 까이는 연예인의 1탄으로서 문희준이 선정되었다. 문희준이 군대에 가 선임들에게 온갖 육두문자로 까이고 구타를 당하는 내용의 플래시 만화였다.[24] 또 김구라가 시사대담에서 한 원색적인 발언들이[25]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윽고 사이트를 마비시킬 정도의 악플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눈을 오린 문희준의 사진과 면도칼이 부쳐지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심한 악플을 단 사람들의 신상이 기사상에 공개되었는데,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다수 끼어있어 당시의 상황이 록의 안녕과 발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기 힘듬이 드러났다. '''남들이 까니까 까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이다.'''[26][27]
당시 분위기가 어찌나 달아올랐던지 유력지에서도 이를 다루게 된다. 조선일보의 한 인터뷰에서는 "락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어요"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하였었는데 이는 왜곡보도다. 만약 락 자격증이 있다면 따고 싶지 않느냐고 조선일보 기자가 먼저 유도질문을 한 것. 기자의 낚시임을 직감한 문희준은 피해가려고 했으나 기자는 화까지 내면서 문희준을 도발했다. 그리고 결국 문희준이 지쳐서 대충 '네' 한 것을 그대로 메인 타이틀로 삼은 것이다. 문희준은 제대 이후 무릎팍 도사, SNL코리아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밝혔다. 이 또한 성지가 되어 네이버 뉴스의 기사에 댓글이 무려 '''30만 개'''가 달렸다. 당시에는 딱히 60초 제한 같은 건 없어서 한 사람이 여러 개씩 쓸 수 있었다. 이는 네이버 댓글 최고 기록으로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등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지원요청하며 도배를 해댄 결과였다. 이후 이 기사가 네이버 역대 최다 댓글 1위라는 기사가 실리자 다시 한번 극딜. 얼마나 댓글이 심했느냐면 글을 등록하고 새로고침을 누르고 나면 자신의 댓글이 이미 다음 페이지로 밀려날 정도였다. 특히 30만번째 리플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서로 30만번째를 달성하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댓글이 올라 왔다. 이후로도 꾸준히 성지순례가 이어져 댓글이 달렸지만, 이후 네이버 리플 시스템이 변경되며 현재는 볼 수 없는 상태. 여하튼 당시 문희준에 대한 조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그리고 기사를 쓴 기자는 11년 뒤...
언어적 조롱도 조롱이지만 문희준 합성도 커다란 유행으로 떠올랐다. 당시 인터넷 이용자들은 문희준을 욕하진 않더라도 몇 번쯤은 문희준의 어록이나 뷁 등의 유행어, 사진 합성을 보며 낄낄거리곤 했다. 이 합성 중 대표적인 사례가 '무뇌충'인데, 문희준이 락커가 되기 전 H.O.T.로 활동 중, 한창 개인기 열풍이 불고 있던 당시에 서세원쇼에 나가서 처키(공포 영화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인형 살인마)의 흉내를 냈었는데 이 때 운 나쁘게 캡처된 이상한 표정이 합성의 재료로 널리 퍼져 '무뇌충'이란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이 되기도 하였다.(한때 디시인사이드의 필수요소) 당시 댓글들을 시간 순으로 보면 '문희준'-'무늬준'-'무늬중'-'무뇌중'-'무뇌충'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이 무뇌충이라는 단어가 넷상에서 크게 유행한 나머지 그 사용이 넷 상에서만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가히 인터넷 유행어가 현실에서도 쓰이게 된 용례의 효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2002년 국립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에 수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욕설과 악플을 견뎌내고 홀연히 군에 입대한 일을 계기로(아래의 '대인군자의 탄생' 문단을 참조 바람) 안티들이 많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이 단어의 쓰임도 줄어들었으며, 단순히 까는 용도로는 이미 '무개념'이나 '잉여' 같은 단어가 비슷한 위치를 대신하고 있는 지금은 사실상 사장된 단어.
'''무뇌충'''이라는 비속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하다하다 방송에서도 문희준의 논란을 가지고 개그 소재를 쓰기도 했다. 범인(?)은 당시 코미디 하우스에 출연 중이던 MBC 공채 13기[28] 개그맨 조해욱. 출연진이 여러 연예인과 유명인사를 성대모사하며 토론을 한다는 컨셉의 코너 '''10분 토론'''에서 조해욱도 한창 까이던 시절의 문희준을 패러디하며 자신을 롹커나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조해욱 본인도 문희준 조롱 개그를 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얘기가 있다면 조해욱은 문희준 패러디를 제외하면 떠본 적이 없는 개그맨이며 인터넷 뉴스에서 이 사람을 소개할 일이 있으면 문희준을 따라한 개그맨이라고 소개한다. 애초에 네이버에 조해욱을 검색하면 뜨는 프로필 사진이 문희준을 따라한 사진이다.
2013년 2월 12일에 방영된 달빛프린스에 출연해서 당시의 상황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며, '''사실은 아직도 정신적인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단계임을 밝혔다.''' 그 당시 갑작스럽게 다른 멤버들과 떨어지게 되고 H.O.T.가 해체된 상황에서, 리더인 자신이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힘을 내고 오버를 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겐 자만으로 비쳤던 것 같다며, 자신에게도 잘못은 있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제대 이후부터 당시 일에 대해선 그저 장난스럽게만 이야기해오던 것과 달리, 이날 방송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아직도 혼자 있을 때는 가끔씩 정신적으로 불안해진다."라고 밝혔다.[29][30]
당시 문희준은 록씬과 그 팬덤에 밉보일 만한 포지션이었으며, 오해가 될 만한 언행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메이저에서 아이돌로 활동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록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에게 무분별한 마녀사냥이 이어질 이유 또한 없었다. 시키는 음악만 하는 아이돌에서 자기의 음악세계를 형성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이들이 존재하는 한 그의 도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만, 그조차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는 결과적으로 공식석상에서 아예 록과 얽히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제가 사실은 불안한...그 심리상태예요, 계속.
"1시간을 딱 봤을때, 한 50분은 원래 성격이에요.
"그런데, 10분은...남, 그러니까 주위에 내 사람들이 사라지고 혼자 남는 시간 있잖아요?
"검은 구름처럼...이렇게 누르는 느낌이 있어요."
"...
"아직도."
정작 문희준이 힘들어한 그 시기 루머로 얽혔던 김종서와 김경호는 사적으로 문희준과 친해졌으며[31], 신해철은 본인이 언급된 루머가 퍼진 후 그가 진행하던 고스트네이션에 문희준을 게스트로 초청한 후 대중의 편협한 태도를 질책하며 그의 음악활동을 응원했었다. 문희준은 고인이 된 신해철의 1주기 불후의 명곡2에서 당시 뒷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너 죄졌냐? 왜 집 안에만 박혀있냐?"며 신해철이 술자리로 불러냈었고, 그 자리에서 "너 나 존경하냐? (문희준이 그렇다고 답하자) 너 음악 잘해. 니가 존경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했으니까 움츠러 들지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그를 응원했다고 한다.[32] 근데 이마저도 '''하다하다 신해철까지 팔아먹냐고''' 까였으니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말 할 것도 없을 듯.
2.3. 대인군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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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여론이 극에 달했을 때, 인터넷에 나돌던 군 면제 연예인 리스트 중에 문희준이 어깨 탈골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카더라 통신 때문에 같이 끼어 있었다.[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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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병사 시절의 문희준
그러던 2005년 11월 홀연히 대한민국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하여 육군 운전병으로 복무하다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에 지원하고 최종합격하여 복무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같은 내무반에 지내던 이가 문희준이라는 사실을 안 같은 내무반의 사람들이 너무 괴롭힌 덕에 간부들과의 상담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옮긴 거다. 당시 문희준이 보직 변경 직전에 이들의 괴롭힘으로 너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 입원했던 적이 있는데 퇴원하고 짐을 챙기러 왔더니 다시는 안 올 놈이란 말같지 않은 핑계로 그의 개인 물품을 내무반 사람들이 모조리 훔쳐갔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문희준은 반납 요구를 했으나 그들은 무시하고 모르쇠하며 끝내 돌려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는 보직 변경과 동시에 자신의 물품을 모두 새로 다 사야 했다고 한다. 아마 이러한 일들이 없었다면 H.O.T.의 다른 멤버들인 이재원이나 강타처럼 조용히 일반병으로서 군생활을 하다 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때 마침, 연예인 병역 비리 사건이 터져 아무 편법 없이 현역으로 들어간, 그것도 연예병사가 아닌 일반 병사를 스스로 택해서 입대한 문희준이 유독 각별하게 보였고, 문희준이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뒤 그의 안티는 거의 소멸했다. 원래 안티 양산의 원인이었던 무개념 팬들도 군 복무 기간 동안 대거 떨어져 나간 상태였으니 안티가 생길 일이 없었던 것. 당시 뉴스의 댓글 최다 추천글들을 보면 그간 욕해서 너무 미안하다, 반성한다. 앞으로 문희준 욕하지 마라 이런 글들이다.
사실 애초에 '무뇌충 까기'라는 것 자체가 형식상으로는 유행을 빙자한 악플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군 입대로 인해 명분이 사라지고 공백기가 생겨 유행이 지난 시점에서 그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문희준 본인이 무슨 범죄를 저질러서 안티가 생긴 것도 아니고 자세히 말하자면 '''사실상 H.O.T.의 리더였던 문희준이 H.O.T.의 안티들을 그대로 떠안은 것'''이기 때문에 문희준이 모범적인 행동을 하자 안티는 그대로 깡그리 증발했다. 공백기가 생겨 유행이 지난 시점이더라도 계속 주야장천 탄탄함이 극에 달하는 안티를 보유한 인물도 있다. 결국 문희준과 스티브 유, 이 두 사람을 비교함으로써 '''스스로의 처신에 따라 안티를 불릴 수도, 없앨 수도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오히려 소속사가 고발한 안티들을 고소 취하[35]하고 수많은 욕설과 악플을 끝까지 견뎌낸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그에게 '문보살', '문부처'의 칭호를 내렸으며 대인군자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이미지가 180도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문희준 까면 사살'이라는 여론까지 나오게 되었다. 과거에 문희준을 향한 욕설들은 생각해봤을 때 그가 소송이라도 했다면 여지없이 큰 벌금을 물릴 수 있을 정도였음에도 소송 한 건 없이 넘어갔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가장 큰 안티집합체였던 디시에서는 문희준의 대인군자적 용모에 스스로 짤을 만들어 바쳤으며, 공식적으로 디시는 문희준 안티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문희준 본인은 문보살이라는 단어를 옛날에 안티였던 사람들이 비꼬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절친노트 파일럿 방송에서 사과의 의미로 본인이 착용중이던 염주목걸이를 문희준에게 걸어 주며 김구라가 "보살같다. 문보살"이라고 하자 같은 이유로 화냈다. 당시 방송에 대해서는 문희준 본인이 여지껏 했던 방송 중에서 가장 독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절친노트가 정규편성이 된 이후 이지혜&서지영 편에서도 한 번 더 문보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멀쩡하네? 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져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는 점 때문에 문보살이라는 별명을 부담스러워 했으나, 지금은 좋은 의미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편이다.[36]
또 다른 이야기로는 어떠한 사건과 맞물려 문보살로 알려진 계기가 있다. 바로 2007년 고소영 악플러 고소 사건이다. 당시에는 연예인들은 이미지 때문에 고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악플도 애정이 있어서 하는 거라는 생각없는 사람도 많았던 때였다. 아마 네티즌 마인드가 미성숙한 나머지[37] 문희준이 희생양으로 그런 악플에 시달린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문희준은 동네북 혹은 인터넷 상의 공공재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당시 안티들의 대부분은 문희준을 진심으로 싫어해서 안티가 된게 아니라 다른사람도 유행처럼 까니까 따라 깐 경우가 대다수다. 상술되었듯 네티즌이 제대로 된 이성이 있었고 루머나 왜곡된 소문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평가하려는 자세와 악플의 위험성을 알았다면 애초에 문희준에 대한 악플사태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의 연예인의 악플러 고소는 전례없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연예계에서는 최초였다. 이런 사건이 있자 새로 떠올랐던 인물이 수 년간 욕을 먹고 있던 문희준이였다.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악플받고 고소한 고소영을 보더라도 악플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하고 상처를 남길지 알 수 있는데, 수 년동안 악플에 시달리고서도 고소한번 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걷는 문희준은 이 사건에 언급되며 비교될 수 밖에 없었고. 문희준 그 자체의 인물을 재평가 받는 사건이었다. 고소영 악플러 고소 사건 이후에도 생각없이 연예인을 까는 일은 여전하지만 나름 큰 파장을 줬던 일인 만큼 생각없이 문희준을 까오던 문까들도 자신을 돌아보며 수 년동안 고행같은 안티를 견뎌온 문희준에게 부처님과 같다 하여 문보살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 모든 일이 문희준 본인이 군대에 (거의 전역을 앞두고)있었을때 일어난 일이라 군대로 덕을 돌리고 있는 것 같지만, 애초에 군 복무하던 당시에도 인터넷에는 문희준 합성 자료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던 터라 단순히 군대만 가지고 까방권을 얻게 된 것은 아니다.
코너 자체는 얼마 가지 못했으나 DC와 Y-STAR과 계약돼서 방송에 타는 디시인사이드 쇼의 MC를 맡기도 했다!
실제로 2007년 내한한 린킨 파크에게 전달한 싸인CD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건이 생기기도 했지만#[38] 이전과 달리 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애초에 이와 관련한 내용들이 사실상 카더라 수준이기도 했고, 제대 이후 그의 이미지가 이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방부 근지단에서 근무한 병사가 그를 평가하기를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하다 실수도 자주하는 대한민국 군대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법한 평범한 병사"라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군생활도 특별히 문제 일으키거나 하지 않고 매우 무난하게 해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구라도 문희준 안티가 범람할 때 문희준을 엄청 깠었다. 김구라의 흑역사인 한국을 조진 백명의 개새끼들 노래에선 문희준의 눈깔을 파버리겠다는 가사도 있었다. 하지만 문희준이 2008년 7월~9월 SBS와 MBC TV 프로그램들에 출연하여 김구라에 대해 그간 심경을 밝혔는데 김구라가 쩔쩔 매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사 링크 둘이 공동으로 SBS 절친노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김구라는 타 프로그램에서 문희준의 이름을 자주 거론하곤 한다. 미운정 잘 들었나 보다. 그리고 이제는 곧잘 김구라의 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김구라의 과거행적을 들춰서 쩔쩔매게 하는 기믹도 곧잘 사용한다.[39][40]그리고 OBS에서 김구라와 같이 프로그램 MC로 활동하였었다.
제대 이후로도 여러가지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미지가 좋게 유지되는 걸 보면 어떤 의미로는 군대 까임방지권의 효과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산 증인.
거기다 인터뷰 내용 중에서 '다 옛날 얘기일뿐,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여 대인군자적인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
2010년 11월 30일, 강심장에 출연, 1998년 콘서트 도중에 무대에서 떨어져서 6개월 동안 하반신 마비 상태로 지냈으며 재활하였던 것이 밝혀졌다. 당시 언론에는 단순한 허리 디스크(!!!)였다고 했지만 당시 진료결과는 하반신 마비 판정이였다고. 조금만 잘못되었으면 지금의 강원래처럼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진단을 받았음에도 병역 의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돌아왔기에 네티즌들은 더욱더 칭송하고 있다. 2013년 1월 22일자에 방송된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입소 후 훈련소 내부에서 한 재검에서 귀가조치를 받게 되자, 도저히 다시 나갈수가 없어서 위험할 수 있는 천식만 남기고 나머지 진단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그래서 비만 훈련병들이 주로 모여있는 소대에 배치돼 같이 훈련을 받다 이후 일반소대로 합류하였다고 한다. 입대전 민간인 신분으로 병무청에서 한 징병검사가 아니라, 입소 후 귀가조치 여부를 가리는 재검에서 일어난 상황이므로 문희준 본인 의지로 진단 결과를 거부하고 병역을 지속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
SNL코리아에서 본인의 힘들었던 시절을 개그소재로 승화시키기까지 했다.
2.4. 문희준의 음악
그의 음악은 세간에는 현악과 락을 접목시켰다고 문희준 본인이 주장하는 "전설"이 가장 유명하나 사실 가장 널리 퍼진 곡은 '''I(아이)'''라고 할 수 있다. '저기저기 외기러기', '왜 날 break![41]'(왜 날 뷁) 등의 주옥같은 명 가사를 남기며 뷁을 전국민의 유행어로 만든 역사적인 곡이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래의 제목을 모른다. 문희준도 뷁의 유행에 대해 알고 있으며,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유세윤이 "뷁"을 외치는 등의 공격을 하자 "많은 분들이 '''삐뚤어지게''' 좋아하시더라고요"라고 담담히 받아치기도.
안티를 향한 분노가 담긴 '''G선상의 아리아'''도 잘 알려진 편. 곡 제목과는 달리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의 명곡 'G선상의 아리아'와는 관계가 없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바이올린의 G선만으로 연주되는 곡이라 하여 'G선상의 아리아'라고 불리지만, 문희준이 부른 문제의 그 곡에서는 G가 Game을 의미한다고. 즉, 인터넷에서의 인신공격을 게임처럼 즐기는 잘못된 문화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악플러들에 대한 문희준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악플을 열심히 달던 누리꾼이 결국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모니터 속에 갇혀버린다는 내용이니…
그리고 어 타임 포 어스를 샘플링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유명한데 여기서 팔을 아래로 꺾고 흐느적거리는 나무춤과 "그리워요 ~그리워요~"가 나온다. 그외에 1집 히든 트랙 '''단춧구멍 인생'''도 숨겨진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문희준의 음악은 락보다는 SMP에 가까운 편. H.O.T. 시절에 4집 싱글곡인 '투지'나 5집의 리드싱글인 'Outside Castle', 그리고 솔로 1집의 타이틀곡 'Alone' 등을 작곡했던 걸 보면, SMP계열의 댄스뮤직이나 발라드를 만드는 솜씨는 수준급이다.[42], 하지만 정작 문희준 본인이 자신이 '''잘하는''' 장르를 버리고 '''좋아하는''' 락이라는 장르를 택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표절 의혹도 표절 의혹이거니와 표절을 떼고 봐도 곡 자체가 락으로서 내세우기에는 무리인 부분이 있었다. 군 제대 이후에도 2008년 스페셜앨범과 2009년 미니앨범에서 락 장르로 활동하긴 했지만 이 시기부터 자신의 음악을 '락'이 아닌 '밴드음악'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다.[43] 그나마도 후술하게 될 2013년에 발매한 두번째 미니앨범에서는 그 밴드음악 조차도 하지않고 댄스음악으로 컴백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잘못 까인 경향이 크지만 수많은 까임 속에서 본인도 락커의 길을 우선은 접어둔 듯.[44]
문희준의 특징은 단순히 노래를 하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본인 명의로 작사나 작곡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곡이란 것이 문제.[45] 그에 대해서 표절 의혹을 여러번 들었다(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본인은 무릎팍도사에서도 다른 것에는 다 해명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락덕후들에겐 여전히 까이고 있는 상태. 실제로 I(아이)의 경우는 콘(Korn)의 리프가 여과없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무대 매너는 마릴린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