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스 전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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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Battle of Arras
프랑스어: La bataille d'Arras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 북부의 아라스(Arras) 일대에서 벌어진 전차전. [1] 프랑스 전역에서 영국군독일 국방군이 벌인 거의 유일한 전차전이지만, 정작 공격당한 부대는 독일 기갑부대에서도 전차가 별로 없는 후방지원부대였으므로 전차전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벨기에의 숲을 통과해 온 독일군의 기습으로 인해 벨기에-프랑스 방면의 영프 연합군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대부분의 부대가 패닉 상태에 빠져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원정군 직할 제1전차여단[2]은 임무 특성상 거의 전투를 치르지 않아 온전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잔존한 프랑스군샤르 B1 bis를 주축으로 하는 전차부대와 협동으로 아라스에서 독일군에게 역공을 계획했다. 프랑스군의 전차들이 사전에 약속한 작전시간까지 전개되지 않자 영국군은 예하 2개 전차연대[3] 단독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시골 마을인 아라스에서 독일군의 보급부대를 급습, 이를 유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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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대전차포로는 마틸다 보병전차에 흠집도 낼 수 없었다. 결국 88mm 대공포를 부랴부랴 끌어와서 이 전차를 파괴할 수 있었다. 훗날 독일군은 독소전에서 이와 비슷한 KV 쇼크를 겪게 된다. 어쨌든 제1전차여단은 88mm 대공포와 기타 포병이 집중된 방어선에 돌격하다가 전차의 1/3을 잃고 패퇴했으며, 이어서 뒤늦게 날아온 총 300회에 달하는 슈투카 급강하폭격기의 맹폭을 몇 시간 동안 계속 당한 끝에 최종적으로는 전 차량의 2/3을 상실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어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러한 반격은 당시 쾌속으로 진격하던 에르빈 롬멜의 7기갑사단에게 큰 공포심과 쇼크를 주었다. 보급선이 끊기고 적진에 고립된 전차부대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롬멜은 그 충격에서 금세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때의 위기감이 상급부대로 전파되면서 결국 영국군 및 프랑스군의 전면 반격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지나친 성공에 뒤늦게 긴장하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에게 갑작스러운 역전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으며, 훗날 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을 섬멸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당시 독일 국방군 육군의 전력이 영프 연합군보다 열세였기도 했다.

[1] 아라스 지역은 1차 대전 당시에 아라스 전투라고도 불리는 제 2차 솜전투가 벌어진 지역이기도 한데, 한 전장에서1차대전 참전용사들의 자식뻘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가히 한 지역내에서 2세대에 걸친 2번의 대학살극이 벌어진 셈이다. [2] 영국군에는 2가지의 전차여단이 존재했는데, 하나는 기갑사단 직할 전차여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야전군 직할 기갑여단이었다. 야전군 직할 전차여단은 보병전차, 사단 직할 전차여단은 순항전차를 중심으로 하는 차이점이 있었다.[3] 영국군의 연대는 사실 대대급 부대이다. 이는 각 연대 예하에 다수의 대대를 두고 이 대대들을 모조리 쪼개서 몇 개의 대대를 모아 1개 여단을 만들어 전투에 투입하는 영국군의 전통적인 부대편성 방식 때문에 생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