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Ἀριστοφάνης(그리스어)
Aristophanes(영어)
B.C. 448 ~ B.C. 380
1. 개요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로 흔히 희극을 처음으로 쓴 극작가로 알려져있지만, 고대 그리스 희극 작가 중에 제일 중요한 인물이지 희극 그 자체를 만들어낸 사람은 아니다.[1]
2. 작품
그 어떤 것이라도 대놓고 풍자했던 극작가로 소재 등을 보면 현대의 사우스 파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못 까는 것이 없다. 또한 여러모로 공격적일 수도 있는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어 한 작품에서는 배우가 관객에게 "정치인들이 너네를 유린하는 것처럼 나도 너희를 유린해보자"하며 관객들에게 후장을 내주라고 외치는 장면도 있다.[2] 심지어 소크라테스도 비꼼의 대상이 되었다. (작품 <구름>). 성적인 면에도 막나가서 <새>에서는 이리스에게 '''한번만 더 짜증나는 소리를 하면 네 다리를 벌리고 놀래켜줄테다!!!'''라고 주인공이 말한다(...) 거기다가 헤라클레스가 먹보 바보로 나오는등 상당히 유쾌하다.
특히 페리클레스 사후 새로운 권력자로 대두되던 클레온을 증오했는데[3] , 클레온이 필로스에서 대승을 이룬 뒤에도 "기병"에서 클레온을 대차게 까댔다. 여기서 클레온에 해당되는 캐릭터는 아리스토파네스가 맡아서 연기했다는 루머가 있는데, 하도 심하게 까대는지라 그 역을 맡은 배우가 해를 입을까봐 그랬을거라 카더라. 당시 클레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했는데[4] , 하필 이 "기병"이 희극대회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여하간 크레온을 하도 까대는지라 <말벌들>에선 캐릭터중 하나가 "이번엔 클레온 까는 내용 아님"이라고 할 정도. 근데 작중 두 인물 이름의 뜻을 풀이하면 反'''클레온'''과 親'''클레온'''이다. 그리고 親클레온 쪽이 좀 똘끼있게 나오는걸 보면(...) 여담으로 둘은 부자지간인데 친클레온 파인 아버지가 배심원으로 나가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피고인들에게 유죄 선고를 하는 걸 너무 즐겨서 반클레온 파인 아들이 아버지를 못 나가게 하느라 골치를 썩는다는 내용.
그외 여러가지 풍자가 많고, 현대인의 시각으로 봐도 유쾌한 이야기가 많은데, 예로 <리시스트라테(Lysistrata)>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지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여인들이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신전에 틀어박혀 남자들로 하여금 전쟁을 그만하라고 시위를 하는 황당하고 유쾌한 상황이 연출된다. 리시스트라타는 결국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서로를 도운 역사를 상기시키며 평화를 되찾는것으로 극은 끝을 맺는다.
그외에 <기병>(영어명은 The Knight)라는 연극에서는 데모스테네스라는 이름의 노예가(이름은 당시 아테네의 장군 데모스테네스에서 따왔다) 고기장수에게 "정치가 교육받은 자와 정직한 자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말하며 정치인이 되기를 권하는 대사가 있다. 정치판이 현시창인 건 그때도 마찬가지였던 듯.
그밖의 명대사로는 <평화>의 2막에서 "노예"가 하는 '''신들에게도 창녀촌이 있다고요? 이런 위선자들 같으니라고! 이제부터 신들에 관심을 끊겠어요.'''
소피스트들(정확히는 소크라테스)을 풍자한 작품 <구름>에서의 명대사로는, 공부하라고 사숙에 보내놨더니 논변술을 배워서 돌아온 자식놈이 '''"아버지, 저에게 사랑으로 교육을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해 주신 모든 교육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아버지 曰'''"당연히 그렇단다"''' 아들 曰'''"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절 때리신 것도 다 사랑하셔서 그러셨던 거지요?"''' 아버지 曰'''"당연히 그렇단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를 후려패고 아버지가 놀라서 아들에게 영문을 묻자 아들 曰, '''"저도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때리는 겁니다."'''. 아버지 독백, '''"말로는 못 당하니 내 이놈의 소피스트 사숙을 불태워버려야지!!"'''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풍자한 것을 보면 당시 일반적인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를 보는 눈이 그리 곱지 못했다는 것을 알수 있고, 이런 분위기가 소크라테스의 사형 판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에우리피데스와 소크라테스 두 사람 모두를 "타락한 지성"의 예로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비록 악평이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덕분에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고, 소크라테스 본인도 사형 재판정에서 자신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에 나오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분들도 많을 거라는 발언을 했다.
에우리피데스 또한 자주 까대서 역시 <개구리>에서 캐릭터가 "이번엔 에우리피데스도 안 깜"이라고 얘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위의 <말벌들>처럼 막판엔 아이스킬로스와 비교하면서 결과적으론 깐다. <개구리>에선 작중 디오니소스가 지상에 휼륭한 시인들의 씨가 마르자, 저승으로 내려가서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중 더 훌륭한 시인을 지상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이에 아이스킬로스는 에우리피데스와 설전을 벌이며 자신의 작품들이 더 대단하다고 주장하는데, 결국엔 아이스킬로스가 승리한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에 이은 No.2 자리를 자신이 인정했기에 빠졌다. 대신 아이스킬로스가 자신이 돌아올때까지 저승의 No.1 시인 자리를 맡겨둔다고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 역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머리 둘과 팔 넷, 다리 넷이 달린 생명체였다. 두 머리가 달린 인간은 매우 강하고 완전한 생물이었고, 끝내는 신들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하게 되었다. 그들의 오만함에 노한 제우스 신은 벼락을 내리쳐 인간을 반쪽으로 가르었고, 아폴론 신은 그들의 상처를 꿰매 배꼽으로 엮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두 팔과 두 다리가 달린 반쪽짜리 생명체로 전락했으며, 다시 완전해지기 위해서 에로스를 추구하게 되었다. 플라톤 대화편의 특성상 정말로 아리스토파네스 본인이 그런 연설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이 안드로규노스 신화는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1] 이미 기원전 480년경부터 고대 그리스의 희극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희'''극'''이 아니라 희'''곡''', 즉 연극 형태가 아닌 운문 형태의 작품까지 따지면 수사리온(Susarion, Σουσαρίω)이라는 인물을 시초로 보는데 이 인물의 생몰년도가 대략 '''기원전 6세기경'''으로 추정된다.[2] 보통 그리스 연극에서는 연극 속의 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것은 일부 하위 장르에서만 사용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 규칙을 깬 것.[3] 정치적 사상으로도 대립되었지만, 클레온이 아리스토파네스의 "바빌로니아인들"을 신성모독이라며 고발한뒤론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를 격렬하게 증오했다[4] 클레온은 죽기전까지 3년간 아테네의 정치권의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