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히스토리 X

 


[image]
'''감독'''
토니 케이
'''출연'''
에드워드 노튼 , 에드워드 펄롱, 비벌리 단젤로
'''장르'''
드라마
'''러닝 타임'''
118분
'''개봉일시'''
미국 1998.10.30 한국 1999.04.17
'''국내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1. 개요
2. 스토리
3. 그 외


1. 개요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을 다룬 영화로 사람을 피부색으로 나누고 증오하는것이 얼마나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지를 그리고 있다.

2. 스토리



데릭 빈야드는 소방수였던 아버지가 화재 진압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후로 방황하던 중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D.O.C.에 몸을 담고 철저한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갱단의 리더가 된다. 원래 우등생이었던 데릭은 영민함과 카리스마로 당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낀 백인들과 동생 대니의 영웅이 된다. 갱단의 리더가 된 데릭은 사회에 불만을 지닌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데리고 유색인종이 운영하는 슈퍼마켓[1]을 습격하는등 일탈을 하던 중 데릭은 아버지의 차를 훔치려던 흑인 도둑 무리들을 잔혹하게 죽여[2] 감옥을 가고 대니는 자신의 우상인 형의 전철을 밟아간다.
3년 후 가석방된 데릭은 그의 복귀를 환영하는 네오 나치들의 파티에서 더이상 과거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기를 거부하며 그들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혼란스러워진 대니는 형에게 화를 내고 데릭은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수감 생활을 들려 준다.
그 내용은 수감생활중에 항상 흑인에게 공격받을까 불안해 했었지만 정작 같은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남성들에게 샤워실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것과 오히려 흑인들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던 것은 늘 같이 작업을 하던 흑인 수감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었다.이를 듣고 뭔가 깨달은 대니는 형과 함께 집에 있던 히틀러의 상징들을 정리하고 '아메리칸 히스토리 x'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마치게된다.[3][4]
하지만 안타깝게도 극중 초반에 화장실에서 백인 한 명을 구타하다 대니와 대치했던 흑인 갱단의 학생이 대니를 화장실에서 총으로 살해하고 총소리를 들은 데릭은 화장실로 달려가 죽은 동생의 시체를 끌어안고 절규를 하며 영화는 끝난다.

3. 그 외


무거운 주제였지만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2008년 엠파이어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위대한 영화 500선 중 311위에 올랐다. 지금도 로튼토마토에서 83%, IMDB에서 8.5의 리뷰점수를 유지하는 명작이다.
특히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하는 영화 초반의 인종차별주의자 데릭은 정말 화면을 뚫고 나올듯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문제는 연기를 너무 멋지고 간지나게 하는 바람에 나쁜맘 먹고 초반의 몇몇 장면만 편집한다면 골빈 놈들이 혹 넘어갈 네오 나치 프로파간다 영상으로 써먹어도 정말 손색이 없을 정도다(...). 사실상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힘도 시나리오보다는 노튼의 미칠듯한 연기력에 의존하는 면이 강하다.영화는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노튼의 연기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에드워드 노튼은 데릭 빈야드 역으로 1999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에드워드 펄롱의 이름을 알린 영화가 터미네이터 2라면 그가 진짜 배우라는걸 알린 영화는 바로 이 작품이다. 얼마 안 가 마약으로 망가져 지금은 B급 영화 전문 배우가 되어버렸지만..
중간에 백인 우월주의자가 노래 한곡을 고래고래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 노래의 정체는 남북전쟁 당시의 군가인 공화국 전투찬가를 백인 만세조의 가사로 바꾼 것이다. 공화국 전투찬가가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군가로 쓰였고, 이 곡 가사의 원작인 '존 브라운의 시체가 과격 노예해방주의자인 존 브라운의 죽음을 기리는 내용인 것을 볼 때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으로 추정.
순탄치 않은 제작과정을 거친 영화다. 촬영 중 출연배우들에 의해 각본이 계속 수정되기도 했고, 후반작업 중에는 편집권을 놓고 토니 케이 감독과 제작사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결국 에드워드 노튼과 제작자가 개입하면서 감독이 처음에 의도했던 작품과는 다른 영화가 되었다고.[5] 이로 인해 토니 케이 감독은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지 않았고,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가명을 사용한 감독은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밝힐 수 없다는 미국 감독 조합의 규정을 위반하는 통[6]에 그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토니 케이 감독은 나중에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미국 감독 조합과 제작사를 고소하기도 했다. 이후 오랜시간이 지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 대해 좋게 생각하며, 자신의 이름을 크레딧에서 빼지 않은 제작사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덧붙여 당시 자신의 행동은 이기적이었으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반성했다. #
이동진 영화당#
[1] 원래는 백인이 운영하던 곳을 한국인이 인수했다고 나온다.[2] 흑인 무리의 리더를 엎드리게 한 후 입을 벌려 보도블록의 끝부분을 물게 해서 그대로 발로 머리를 찍어내린다. 리더는 두개골이 으스러져 사망.[3] 영화 초반 히틀러를 찬양나의 투쟁이라는 레포트를 제출했다가 담당 선생이 다시 레포트를 써오라고 하자 형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레포트를 쓴 것.[4] 사실 데릭이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것은 단순히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소방수였던 아버지도 평상시에도 흑인들이 유색인종이라고 무조건적으로 해택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백인 우월주의자였던것이 드러난다.[5] 공교롭게도 토니 케이 감독의 첫 편집본은 극장판보다 짧았다.[6] 감독 본인이 자비를 들여서 영화 잡지, 버라이어티지에 이에 관한 광고(!)를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