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도미니카 공화국 관계
1. 개요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관계에 대한 문서.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이스파니올라 섬에 위치해 있지만, 양국은 언어, 문화, 민족 등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서부가 지옥이라면 동부는 천국으로 보일 정도로 차이가 크다.
같은 섬을 공유하고, 개발도상국 축에 속하는 이웃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조차 아이티를 우습게 본다. 도미니카 공화국이 부유한 나라는 절대 아니지만[1] 그래도 옆의 아이티보다는 경제력과 생활 수준이 몇 배는 높기 때문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이티와 아이티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미국이 아래 이웃나라 멕시코를 우습게 아는 정도보다 몇 배로 그 강도가 더 심하다고 보면 된다. "프랑스 식민지 부국 + 인구 7배의 최초의 독립국 vs 소 치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세계 최악의 헬게이트 vs 그럭저럭 살만한 개도국"이 되어버렸으니... [2]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20세기 후반에 있었다. 70년대, 80년대 독재정권하의 부실한 산림 관리 정책으로 그나마 있던 산림마저 모두 베어버려 암반이 노출될 정도로 심각한 토양 유실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아이티의 식량생산은 급감하여 1991년부터 2002년 사이엔 무려 30% 이상이 감소했다. 이러다보니 기후가 바로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강수량이 적으며, 더욱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는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과 달리 숲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기본적인 땔감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원래 이스파니올라 섬은 타이노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스페인이 이스파니올라 섬을 정복한 이후, 타이노인들은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전염병이 퍼지고 탄압받으면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타이노인들은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500~800만 인구가 수십년만에 2만 6천여 명만 남은 상태로 전락했으며, 1535년에 혼혈 외에는 거의 전멸한 상태가 되었다.
이스파니올라 섬은 스페인의 지배하에선 산토도밍고라고 불렸다. 이후, 프랑스가 1697년부로 이스파니올라 섬 서쪽을 차지하면서 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되었다. 프랑스는 아이티 지역을 생도맹그로 불렀다. 또한,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차이도 생겨났다.[3]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던 생도맹그는 당시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당시 비옥하던 생도맹그에서 생산되는 설탕과 담배가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 노예들에게는 대가가 돌아가지 못했으며, 프랑스의 지배하에서 억압을 많이 받았다.
2.2. 19세기
18세기말에 생도맹그에선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스페인령 지역에서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8세기말에 들어서자 아이티 지역은 흑인 노예, 농장주, 프랑스군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아이티 지역의 격렬한 내전끝에 아이티는 독립했다. 19세기초에 도미니카 공화국 지역에서도 스페인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나중에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에서 독립했다.
1900년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오류로 인하여 아이티의 영토를 침범하여 국경선을 표시한 지도우표가 발행됐다. 아이티에서는 우표를 당장 수정하라고 요구했으나 당연히 무시. 결국 아이티에서 전쟁을 선포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우표를 새로 만들겠다고 협상하면 끝날 것을 선전포고를 받아들여 전쟁을 무려 '''29년간 ''' 질질 끌었다. 전쟁 중에 아이티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토를 침범하여 국경선을 그은 우표를 발행했다. 이 무익한 전쟁을 끝낸 이는 다름아닌 미국. 미국이 왜 이런 일로 싸우냐며 제대로 된 우표를 새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여 29년간의 전쟁이 끝났다. 그냥 우표 핑계대고 싸운 꼴.
아이티는 19세기에 잠시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했다. 하지만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억압하고 탄압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도 아이티로부터 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이후에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에서 독립했다.[4]
2.3. 현대
현대에 들어서면서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경제적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에 비해 10배 정도 부유하지만, 아이티는 아메리카 대륙에선 최빈국으로 남아 있다.[5] 도미니카 공화국내에도 아이티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도미니카 공화국내에서 차별을 많이 받고 있고 학대까지 받고 있을 정도이다.[6]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도 안 주고 배째라하는 기업도 많이 있고, 아예 아이티의 흑인 남자들은 죽도록 착취 폭행당하고 여자들은 성폭행 당해 혼혈아를 임신 출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도 미국인들이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싫어하듯 아이티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티가 거의 다 흑인인 것과 다르게 도미니카 공화국 인구 상당수가 물라토라서 차별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국경선에서도 도미니카 공화국이 상전 나라인 양 군다. 더욱이 도미니카 공화국은 공교육이 어느 정도 돌아가는 나라인 반면 아이티는 현재도 문맹률이 높고 컴퓨터 관련 활용 능력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차별 대우를 부채질한다.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아이티나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한 나라이다 보니 도미니카 공화국이 아이티인들을 어떤 방법으로 부려먹어도 다른 나라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도 있고.[7]
한 술 더떠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와 그 후임자들의 산림 녹화 산업으로 숲과 자연 환경이 잘 보전된 것과 대조적으로 아이티의 자연 환경은 장 클로드 뒤발리에 시절 산림 파괴로 초토화된 상황이다. 위성 사진을 보면 국경을 기점으로 색상이 완전 달라지는 수준이다. 결과는 아이티 농업 생산량 22% 감소 크리...
언어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있어서 아이티는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가 공용어이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종교에선 아이티 지역에서는 천주교와 부두교를 동시에 믿는 인구 비율이 80~90%에 달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은 천주교를 그대로 믿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 주변국과 경제교류를 위해 스페인어를 주요 외국어로 지정해서 배우고 있다.
물론 대놓고 적대관계만 있는건 아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때엔 도미니카가 처음으로 아이티에 지원을 하러간적이 있었다. 물론 이것도 도미니카가 단순히 국가 차원의 동정심때문에 한게 아니라 대지진으로 인해 난민이 된 아이티인들이 대규모로 자국에 난민으로 유입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국내 케이블 방송에서 현지 취재 중 도미니카 국경 경찰들이 거들먹거리면서 아이티 사람들을 조사하는데 외국 취재진들이 보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욕하는 장면이 촬영된 적이 있었다. 그나마 아이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외국기자들이 보니까 구타는 안 하고 이 선에서 멈추는 것이라고 한다.'''
3. 관련 문서
[1] 2016년 IMF 통계기준 1인당 GDP는 7074달러. 대한민국의 1/4 수준이며 아이티는 830달러다. 참고로 북한도 1000달러 미만이다![2] 이 점에서 국경을 맞대고 생활 수준이 몇십배 차이 나는 한반도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국 전쟁 종료 직후 북한의 생활 수준이 근소하게 앞섰지만 현재에는 대한민국의 생활 수준이 북한의 수준을 압도적으로 앞질렀다는 점도 비슷하다.[3] 동시에 아이티인과 도미니카인들의 차이도 커지게 되었다.[4] 역사적인 이유로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은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5]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것외에도 1825년에 샤를 10세가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1947년까지 배상금을 갚아야 했을 정도로 아이티는 프랑스와의 관계가 매우 안 좋은 정도이다.[6] 참고로 아이티인들은 캐나다와 미국으로도 이민을 많이 떠났으며 캐나다 퀘벡하고 미국의 루이지애나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7] 다만 도미니카 공화국은 야구를 잘해서 많이 알려진거지 아이티는 알려지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