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민 알리
1. 개요
Dato' Seri Mohamed Azmin bin Ali, 1964.8.25 ~
말레이시아의 정치인으로, 전 슬랑오르 주의 총리대신이자 현 인민정의당(PKR)의 부대표. 곰박 선거구의 국회의원이기도 하다.[1]
2. 생애
1964년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 당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 편입된 직후였기 때문에 그는 출생과 함께 말레이시아 국적을 취득했으며, 이듬해 싱가포르가 연방을 탈퇴하자 슬랑오르 주의 곰박으로 올라와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친은 영국령 시절 영국군으로 복무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경제수학과를 전공했고, 대학원 과정 때는 교육과를 전공했다. 이 때 샴시다 타하린을 만났는데, 후에 연인 관계로 발전해 결혼에 이르른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가 가르친 과목은 전문수학이었다. 이 때 그에게서 배운 학생 중 하나가 현재 나집 라작 총리의 총리실 차관인 라잘리 이브라힘이다. 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3. 정치 활동
1987년 마하티르 모하마드 당시 총리에 의해 영입되었으며, 마하티르가 영입한 인사 중 하나인 안와르 이브라힘의 비서로 등용되었다. 이를 통해 안와르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훗날 정치적인 동지로 발전했다.
사실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출발은 국민전선(BN)이었다. 마하티르가 애초에 BN 산하의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소속이었고, 안와르 또한 UMNO 소속이었으며, 아즈민 또한 자연스레 UMNO로 영입된 것. 이 때만해도 마하티르-안와르 일가의 실체가 딱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UMNO/BN 자체가 마하티르와 그 추종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으므로[2] 아즈민 또한 처음에는 철저한 UMNO였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안와르가 1993년 부총리로 임명되면서 마하티르의 유력 후계자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이렇게만 갔으면 아즈민은 UMNO의 대표적인 관료로서 호평을 받았을, 그야말로 '''위대한 정치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와르가 1998년 동성애 및 부패 혐의로 파면되면서 아즈민은 안와르를 파면한 마하티르에 대해 적개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안와르가 투옥되자 즉각 UMNO를 탈당했다. 이러한 결정은 UMNO 내에서도 수많은 반발을 불러 왔으며, 안와르의 부인인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을 중심으로 대규모 탈당 사태가 발생했다. 아즈민도 이의 일원이었고, 1999년 완 아지자와 더불어 국민정의당을 창당했다. 이 국민정의당이 지금은 인민정의당, 즉 PKR이 되었다.
국민정의당 창당 직후 곰박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되었으며, UMNO의 후보로 나간 푸아드 하산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후로도 현재까지 곰박 선거구의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며, 2010년 PKR의 부대표 경선에서 불출마한 당시 부대표 셰드 후신을 대신해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2014년 9월 22일, 할리드 이브라힘 당시 슬랑오르 총리대신이 사임하자, 아즈민은 이 자리를 이어받어 새 총리대신으로 선출되었으며, 다음 날부터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2018년 총선 이후 연방정부 내각에 입각함에 따라 아미루딘 샤리에게 주수상직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4. 비판
4.1. 총리대신으로서의 행보
'''슬랑오르 역사상 최악의 총리대신'''
현재 민주행동당(DAP)의 림관엥 풀라우피낭 총리대신과 더불어 희망동맹(PH) 소속의 총리대신이자 PKR 소속의 유일한 총리대신인데, 둘 다 무진장 욕을 먹고 있다. 물론 림관엥이 욕을 더 많이 먹기는 하지만, 아즈민 또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즈민이 취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일명 카장 무브(Kajang Move)라고 불리는 정치공작 사건으로, 그 주동자가 다름아닌 아즈민의 스승인 안와르였다. 이는 즉슨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할리드의 행보가 PKR의 비토를 받으면서, 당이 할리드를 떨어뜨리고자 정치공작을 벌인 것. 결국 할리드는 사퇴했고 아즈민은 이를 승계했다.[3]
하지만 아즈민이 총리대신에 오르면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주'''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던 슬랑오르의 위상은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슬랑오르가 아직도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주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일전에 비해 상황이 열악해졌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삽질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쿠알라룸푸르와 슬랑오르의 관문 역할을 하는 코타 다룰 에산에 무지막지한 돈을 낭비했는데, 본디 이는 1981년에 완공되어 일부 보수가 필요한 상태였다. 곧바로 아즈민은 보수에 착수했고, 이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원래 필요한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이다. 문제는 그 돈 중 단 일부만 이용해서 보수해도 크게 문제가 없는 상태였고, 나머지는 주민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큰 돈이었는데, 그걸 죄다 다리 하나에 무진장 투자한 것. 정작 민생은 신경쓰지도 않고 이런 데 사치를 부렸으니, 주민들에게 욕 먹어도 싸다.
또한 2017년에는 당 주도로 옥토버페스트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의 주도자가 바로 아즈민이었다. 본디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하려고 했지만, 쿠알라룸푸르는 정부 산하의 연방직할시장이 일하는 곳으로, 당연히 UMNO일 수밖에 없는 연방직할시장이 거절하자, 이를 슬랑오르에서 대신 개최하려고 했다. 헌데 퇴짜맞은 이유는 바로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이며,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을 신봉하는 말레이인이기 때문. 슬랑오르 또한 인구의 대부분이 말레이인이고 무슬림이다. 그런데 아즈민은 이러한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옥토버페스트를 '''강행'''하겠다고 선포하면서, 또 무진장 욕을 먹었다.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40%가 비말레이인 및 비무슬림이라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다소 온건한 편이기 때문에, 이런 축제가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냐, 비무슬림에게만 열면 되지 않겠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이슬람에 저해되는 행위를, 그것도 '''주정부''' 주도로 개최하는 것은 말레이시아 법률상 엄연한 '''불법'''이다. 게다가 해당 축제를 정 하고 싶다면 말레이인·무슬림은 참여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해야 하는데, 당장 주도자인 아즈민 본인부터가 말레이인이고 무슬림이라 결국 빼도 박도 못 하는 모순이다. 거기다가 PKR 자체가 말레이인이 만든 정당이면서, 대놓고 말레이인과 무슬림을 적대하는 행각을 펼치고 있으며, 이슬람법 위반 사범들을 종교법으로 처벌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설상 말레이인·무슬림을 해당 행사에서 철저히 금지시킨다고 해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것은 뻔한 덤. 말하는데 말레이시아는 엄연한 '''이슬람 국가'''이며, 주민 대부분이 반대한다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즈민은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으며, 결국 중앙정부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던 나머지 아예 금지령을 떨어뜨렸다. 아무리 말레이시아가 주 정부의 자치를 강조하는 연방제라지만 이런 문제 앞에서는 중앙정부의 개입이 가능하기에 있었던 일.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비말레이인과 비무슬림을 존중하지 않는 차별행위"라고 떠들면서 대대적으로 까였다. 여기에 협조한 DAP 등 PH 소속 정당 자체들도 된통 까였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다'''"라며 대놓고 헌법을 '''부정'''하는 발언까지 내뱉으며 각계의 어그로를 끌고 있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사실은, 그저 법적인 문제가 걸리지 못할 뿐, PKR 자체가 '''이적단체'''로 찍혀도 할 말이 없는 내란집단이라는 점이다.[4]
4.2. 슬랑오르 FA의 의장
'''슬랑오르 FA의 최악의 의장'''
2010년대 중반 전후로 슬랑오르 FA의 의장을 지냈는데, 현재 슬랑오르 FA 최악의 흑역사로 남아 있다.
본디 슬랑오르 FA는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머르데카 스타디움을 주경기장으로 사용했으나, 슬랑오르의 축구팀이 1974년부로 떨어져 나간 쿠알라룸푸르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에 대해 논란이 되자 1994년 주도인 샤알람에 샤알람 스타디움을 새로 건립했고 이 곳을 주경기장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즈민이 주경기장을 [슬라양 스타디움으로 이전하겠다고 선포했는데, 소속 단원들과 축구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뿌리치고 이전을 '''강행'''했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당연히 다수의 반대를 뿌리치고 독단적으로 강행했으니 발생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샤알람과 슬라양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특히 아즈민은 샤알람은 주도라면서 막대한 돈을 낭비하면서까지 사치를 부리면서 겉이라도 고급스러운 도시로 만들었으나, 슬라양은 대놓고 방치했다. 실제로 슬라양은 샤알람과는 도저히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낡은 건물들이 이리저리 판치고 있는 곳이고, 스타디움 또한 슬라양이 훨씬 더 낙후되고 부실하다. 이러한 곳으로, 그것도 강제이전을 시도했으니 욕을 먹을 수밖에.
결국 단원 내부의 분노가 제대로 폭발했고, 아즈민은 이 압력 속에 의장직을 사퇴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후임 의장인 수바한 카말이 "주경기장을 아예 쿠알라룸푸르 스타디움으로 이전하겠다"고 선포하면서,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4.3. 허위사실 유포
2004년 당시 안와르의 재판 과정에서 아즈민이 안와르의 변호인으로 일했는데, 이 때 안와르 측을 대변한다 치고 빼도 박도 못 하는 '''허위사실'''을 증거라고 꺼낸 것. 어쩌면은 이 때부터 아즈민의 실체가 밝혀졌다고 봐도 무관하다.
결국 허위사실 유포죄로 피선거권이 박탈되었으며, 그 해에 열린 총선에는 도전하지 못하고 국회의원직을 강제로 그만 두어야만 했다. 이후 2008년에 복귀했다.
4.4. 섹스 스캔들
2019년 6월 12일 한 게이 포르노 영상이 인터넷상에 퍼졌는데, 여기에 출연한 두 남성 중 하나가 아즈민이라는 설이 제기되었고, 다음날 하지크 압둘 아지즈가 본인이 영상에 출연한 또 다른 사람이며, 본인이 아즈민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밝혔다. 이에 아즈민은 부정하면서 하지크를 상대로 고소했으며 하지크는 얼마 후 PKR에서 출당되었지만, 일각에서는 정준영이나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의 케이스처럼 처음에는 부정하다가도 결국 사실로 밝혀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일단 아무 것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치 활동은커녕 사회 생활에도 큰 지장이 올 수 있다.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매장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인데, 동성애, 간통이 금기되는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라면 안 봐도 비디오다.
일부에서는 이 스캔들로 인해 PKR이 아즈민을 출당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게 현실화되면 아즈민이 민중운동당에 합류한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
[1] 국회의원이 어떻게 총리대신(=도/주지사)을 겸임하냐면, 말레이시아는 한국과는 달리 내각제라 국회의원이 곧 지역의 대표이기 때문이다.[2] 비슷한 시기 툰쿠 압둘 라만 등 당 원로를 위시로 한 구주류와 마하티르를 위시로 한 신주류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 UMNO가 위헌정당 크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물론 마하티르는 신 UMNO를 창당해 위기를 넘겼고, 반대파들은 46년 정신당을 꾸렸다.[3] 당시 안와르는 할리드를 "돈이나 뜯어먹는 돼지"라고 비난했으나, 실제로 할리드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분노한 할리드는 얼마 후 PKR을 탈당했고 2017년 그의 본고향인 UMNO로 복당했다.[4] 안와르의 딸이자 PKR의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누룰 이자 안와르 또한 한때 술루족 공주를 만나 내란을 시도했다가 걸려서 욕을 먹은 전적이 있다. 참고로 술루족은 사바 주의 주적이고, 말레이시아 전체에 있어서도 가만 놔둘 수 없는 주적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