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clearfix]
1. 개요
인도의 정치인. 제10대 총리를 지냈다.
2. 상세
1924년 크리스마스 당일, 영국령 인도제국 괄리오르 주[4] 에서 출생하였다.
1942년 극우단체였던 RSS에 입당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당시 민족 독립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51년 RSS가 해산되고 새롭게 우익정당 BJS가 형성되었을때 참여하였으며[5] 비서관과 보좌관으로 활동하였다.
1977년 인도 총선 당시 BJS를 필두로 여러 야당들이 연정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맡기도하였다.
하원의원 시절부터 인도의 경제개혁에 앞장을 선 인물이며 사후에도 좋은 평가를 받은 인물로 정치인들에겐 흔한 구설수 하나 안 나온 위인이다. 인도인들은 "나쁜당에서 나온 좋은인물"이라 평가한다.
3. 주요 경력
1996년 인도 역사상 첫 민족주의 정당 출신 총리로 선출되었지만 의회 확보에 실패하면서 집권 1기는 짧게 끝났고 2년후인 1998년 인도 인민당이 중심이 된 정당연합체가 연방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총리로 재지명되었으며 인디라 간디 총리 이후 28년만에 처음으로 재당선에 성공하였으며 소냐 간디(인디라 간디의 아들 라지브 간디 전 수상의 미망인. 즉, 인디라 간디의 며느리) 의원이 이끌던 인도 국민 회의는 지난 50년 중 최악의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수상 취임 직후인 1998년 5월 핵실험을 실시해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몇주일 후 파키스탄도 뒤를 이어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양국의 갈등은 고조되었다.
이듬해인 1999년 5월에는 파키스탄군이 영토 분쟁 지대인 카슈미르의 카르길에 침투, 전쟁이 발생했다. 이 카길 전쟁은 양국이 핵실험을 한지 1년만에 터졌다는 점에서 핵전쟁의 위험성까지 제기되었다. 2달만인 7월 인도군이 침범한 파키스탄군을 축출해냈고, 전쟁은 인도의 승리로 끝났다. 덕분에 바즈파이의 정치적 입지도 높아졌다.
4. 기타
- 아탈리는 인도인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 입양한 자녀는 있지만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