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공화국 제14대 총리
나렌드라 다모다르다스 모디
નરેંદ્ર દામોદરદાસ મોદી
नरेन्द्र दामोदरदास मोदी
Narendra Damodardas Modi
'''
'''출생'''
1950년 9월 17일 (73세)
인도 구자라트 주 반드나가르
'''국적'''
[image] 인도
'''학력'''
B N 고등학교 (졸업) (1963-1967년)
델리 대학교 (정치학 / B.A.)
구자라트 대학교 (정치학 / M.A.)
'''신체'''
170cm
'''종교'''
힌두교
'''정당'''

'''약력'''
구자라트 주 의회의장
인도 연방하원의원
인도 구자라트 주 총리
(2001년 - 2014년 5월)
'''현직'''
'''現 인도 제14대 총리'''
'''임기'''
2014년 5월 26일 ~ 2019년 5월 26일
2019년 5월 26일 ~
'''SNS'''

1. 개요
2. 생애 및 행적
2.1. 모디 내각 1기
2.1.1. 2019년 인도 총선
2.2. 모디 내각 2기
3.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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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의 정치인. 현재 인도의 총리2014년 5월 26일에 취임하였다.

2. 생애 및 행적


1950년 9월 17일생으로 봄베이 주(현 구자라트 주)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어렸을때부터 동네 버스터미널에서 아버지와 함께 차를 팔았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토론은 잘했다는 선생님들의 평이 있다.
8살 때부터 RSS(Rashtriya Swayamsevak Sangh)라는 우파 단체에 가입해 회원 활동을 시작했다. RSS가 현 인도의 집권당, BJP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디가 이 RSS → BJP 루트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닦았을거라는 사실에는 별로 이견이 없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구자라트 주에서 총리(Chief Minister)[1]를 수행하여 탁월한 경제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하지만,[2] 구자라트 주에서 일어났던 반이슬람주의 대규모 폭력사태에 연루되었던 적이 있는 등 극우 힌두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낸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2002년 구자라트 학살 사태[3]의 진짜 배후라고도 언급된다. 관련기사
바이샤 계급인 간치(상인)로, 식료품・잡화상인 집안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기차역에서 짜이를 팔았고 청년 시절에는 형제들과 함께 버스 터미널에서 노점상을 차렸으며, 20대 때에는 인디라 간디의 독재에 맞서 싸운 이력도 있다.
이후 1985년 인도 인민당에 입당해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전술했듯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구자라트 주의 총리로 최장기 재임하는 기록을 남겼고, 2014년 인도의 총리로 취임했다.

2.1. 모디 내각 1기


총리 취임 이후 초기엔 인도 경제를 순항시키고 있다는 평도 받았다.[4] 주총리 재임 당시 구자라트 주의 제조업을 육성해 구자라트 주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처럼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통해 인도의 제조업을 육성 중이며 외국 투자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데 2017년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619억 6천만 달러2013년의 280억 달러에 비해 2배 이상 늘었으며, 제조업 생산액 역시 2017년 기준으로 모디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인 2013년 대비 40% 가까이 성장했다.
다만 이에 대해선 반론도 국내외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특히 임기 초 반짝 했던 회복기가 사그라들고 2019년 인도에 닥친 경기 침체 현상과 더불어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 정책이 제대로 된 조치가 마련되지 않고 실행되어서 경제적 발전이 둔화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여파[5] 또한 심각해졌다. 또한, 인도 중앙은행이 1991년 경제위기 이후 저축해둔 자산을 급격히 매각하여 포퓰리즘 정책에 남발하고 인도의 경제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과 모디정부가 인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6] 또한 2019년 이후 불어닥친 경기 침체 상황에도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공급 관련 정책에만 주력하고 당장의 경기 침체를 해결할 수요 관련 정책을 수분기 동안 펴지 않고 방치했다는 점에도 어느정도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5.8%로 6.5%인 중국보다도 떨어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라는 타이틀도 잃었으며 위에서 자랑한 제조업 생산액 증가도 2010년대 후반 들어선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2020년 미국의 유명 투자가 짐 로저스는 본인 저서에서 모디 총리가 자신의 치적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데만 치중했지 실속은 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했는데, 모디 총리가 내세우는 치적 중 하나인 인도 공중화장실을 깨끗하게 했다는건 좋은 일이나 그게 도대체 인도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인도의 문제는 자국 산업을 키운다는 구실 아래 지나친 폐쇄주의로 외국인들이 투자할 공간을 스스로 닫아버리고 성장의 기회를 잃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일당독재 중인 저 중국보다 더 폐쇄적인 투자 정책을 펴고 있는 나라라고 디스할 정도.
주변국과의 갈등 관계도 계속 증폭되고 있는데, 중국파키스탄과 관계가 좋지 않다. 모디 총리의 직설적인 발언과 과감성이 해당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을 테러지원 국가라고 비난했고 파키스탄 남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발루치족의 분리주의 운동을 지지하고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파키스탄이 반발하고 있다.# 다만 모디는 인도의 다른 주변 이웃국가들인 부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는 외교적으로 나쁘진 않게 지내고 있다.
이외 인도와 우방 중 하나인 미국과 군사 협력을 시작하며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다른 반중 성향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미국 외에도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국을 식민지배했던 영국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인도의 골칫거리인 낙살라이트 반군과 카슈미르 무장단체들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 반드시 멸망시키겠다며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토벌 작전을 지시했다.
집권 1기차 지지율은 순항해서 퓨 리서치 센터의 2016년 조사에서는 지지율 81%를 기록했는데, 심지어 야당인 국민회의 지지자 사이에서도 6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지지율이 더 올라 퓨 리서치 센터의 2017년 조사에서는 지지율 88%를 기록했으며, 국민회의 지지자 사이에서도 6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다만 2018년 들어서는 경제 성장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불만이 쌓여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45년 만에 최고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에 대한 청년층, 작물 가격 폭락으로 인한 농민층의 불만이 크다. 친(親)농업 정책 도입을 요구하며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12월 선거에선 29개 주 중에서 마디아프라데시, 라자스탄, 텔랑가나, 미조람, 차티스가르 등 5곳에서 패배했는데, 모두 '인도 중·북부 힌두 벨트'의 핵심으로 인도 인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또, 거품경제가 우려되는 와중에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사실상 쫓겨나게 만들었다.#
2019년 2월, 인도에서 성역으로 대우받고 있는 하천인 갠지스 강의 심각한 오염을 참다 못해서 그동안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서 받은 기념품 1,800여 점을 모조리 경매에 올린 후 그 수익으로 갠지스 강을 정화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 2월 18일에, 인도에서 이슬람교도 등 소수종교집단이 종교적 이유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되고 있지만 가해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26일에 있었던 '인도 공군의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공습 사태' 를 총선을 앞두고 현재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에 대한 국면전환 카드용으로 쓰고 있다.

2.1.1. 2019년 인도 총선


2019년 5월 23일 총선 개표 결과는 모디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외신이나 여론조사 기관들도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예상을 깬 압승 결과가 나왔다. 총 '''303석'''으로 과반을 훌쩍 넘겼고, 기존 의석은 물론 저번 선거치의 결과를 상회하였다. 여권인 NDA는 총 353석을 차지하였다. 오디샤, 아삼, 카르나타카, 서벵골 등 기존 인도 인민당 입장에서 험지였던 북동부, 남부에서 대약진을 하였다. 39개의 의석이 걸린 타밀나두 주의 지역 패권 정당 AIDMK와 연정을 한 후폭풍으로 AIDMK가 1석으로 몰락하지만 않았더라면 개헌 발의 가능 의석인 357석을 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다만 인도는 여러 정당이 난립하는 구도라 득표율 자체는 압도적인 수준까진 아니다.

2.2. 모디 내각 2기


무슬림 등 동북부 소수 집단 탄압으로 논란이 된 '불법 이민자 색출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때문에 동북부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3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4.5%)이 전년 동기(7.0%)보다 대폭 하강하며 근래 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2019년 12월 12일 인도 시민권 법안이 개정되었다. 개정안은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이 되어 2015년 이전에 인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슬림은 제외되었다.[7]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시위는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인도 정부는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추가로 경찰병력과 무인드론을 투입하여 감시를 계속하는 한편, 무슬림 거주지역의 인터넷 접속까지 차단하여 시위를 막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0년 1월 10일 개정된 인도 시민권 법안이 발효되면서 모디 총리 인형을 태우는 등 인도 정부에 대한 무슬림들의 시위가 더욱 격화되고 있다. 특히 모디 총리가 방문한 콜카타 지역에서는 3만명의 무슬림 시위대가 모디 총리를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으며, 점점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 인도의 인구 중 약 '''14%(2억 명)'''나 되는 무슬림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모디 총리는 이미 인도 시민권을 받은 무슬림들의 이익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발효된 법안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과의 갈등 중에 국경 인근 연설로 팽창주의를 중단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2020년 11월. 파키스탄,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 다시 커지자 팽창주의를 비판했다.#
8월 5일, 2019년 11월 대법원의 판결대로 1992년 12월 힌두 극단주의자들이 벌인 유혈사태 과정에서 파괴된 북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아요디아시 소재의 바브리 모스크(بابری مسجد, Babri Masjid)[8] 터에 건립되는 힌두교 비슈누의 7째 화신인 라마가 탄생한 성지 사원 착공식에 참석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모디 내각은 보수 힌두민족주의(Hindu nationalism) 노선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인도 정부는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자국령 카슈미르 대부분에 통행금지령을 발동했다. #1 #2
9월에 국가가 관리하던 농산물 유통과 가격 책정을 시장에 대부분 개방하는 법안을 통과하여 농민들이 크게 반발한 상태이다.# 12월에도 농민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2021년 1월 12일. 인도 대법원이 '농업개혁법' 시행을 잠정 보류하고, 정부와 농민 대표단의 협상을 주선할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하라고 명령했다.# 보류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시위는 이어진다.# 그러자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농민 집결 지역의 모바일 인터넷망도 차단했다.

3. 이야깃거리


  • 악력매우 좋다. 아예 각국 지도자와의 악수를 모아놓는 짤도 있으며, 윌리엄 왕세손의 경우 손이 빨갛게 됐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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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항저우에서 열린 G20 회담 당시 있었던 테레사 메이 총리와의 악수는 평범한 수준의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나오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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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모디 총리가 2017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서로 만났으며, 이 둘이 서로 악력 배틀을 하면 누가 이길까 하고 전세계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했지만,[10] 실제로는 악수를 하지 않고 서로 포옹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 2020년 2월 25일에는 인도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뉴델리 하이데라바드 하우스에서 모디 총리와 악수를 했다.
  • 요가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한다. 수준급의 실력자이다. 원래 인도에서 요가는 남자가 하는 수련법이였다. 다만 모디 총리가 한국 기준 70의 나이에도 정정한 것은 집안 내력도 있는 듯 하다. 모디의 모친은 1920년 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11] 아직도 생존해 있고, 모디의 부친 역시 1915년 경 출생하여 1989년 사망해 74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한국 기준에서는 74살까지 살은게 대단한 건가 싶지만, 인도는 1980년대 후반[12]에는 아예 평균 수명이 50대였고, 현재도 평균 수명이 60대 후반에 그치고 있다. 굉장히 장수한 셈.
  • SNS 팔로워 수가 굉장히 많다. 2019년 2월 기준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팔로워수가 4500만이 넘고 후발주자인 인스타그램도 1800만명이 넘는다.
  • 방한했을때 김무성이 모디 총리를 오래 기다렸지만 못 만나고 그냥 돌아온 적이 있었다 #
  • 한국 정상들과도 외교적 교류를 제법 하는 편인데, 2010년대 중반 방한했을 땐 한국어 트윗을 날려 나름 화제가 되기도 했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날엔 한국어로 취임 축하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연락 후 한국어 트윗을 몇 차례 올리기도 했다. 2017년 7월 8일에 독일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2021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인 24일에 맞추어 22일 청와대로 꽃다발을 선물했다. #
  • 한국, 일본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는 모디 총리가 쭉 시행해 왔던 동방정책(Act East)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고, 해당 국가들의 경제적-군사적 협력을 얻어내고자 하는 외교 정책이다. 한국, 일본 입장에서는 인도 시장을 개척하고 인도에 투자함으로써 경제 면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군사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인도와 협력하며 다방면에서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모디와 인도 인민당의 집권 이후 급격한 힌두교 극단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 # 특히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종교간 폭력 사태가 심각해지자 모디 총리도 이를 비난하며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들을 지지층으로 두고 있는 모디 총리의 성향상 실질적으로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며, 아예 관련된 현 상황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모디의 소속 정당인 BJP가 힌두 극단주의 단체인 RSS를 대변하는 정책에 몰두하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일지도.. 인도의 야당과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언론에서는 가끔씩 등장하는 힌두극단주의자 비판에 대해서도 일종의 립서비스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 지하철을 자주 애용하는 듯 한데, 일반적인 이동의 경우 시민들이 탄 칸에 같이 타는 경우가 많다. 높은 지지율에 총리가 탄 칸은 약식 간담회장으로 바뀌기도 한다고. 국빈 방문중인 정상이 있으면 지하철 타고 이동하자고 권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인도공장에 방문할 때 모디 총리와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SNS도 자주 활용하고 있다.# 참고로 삼성공장 준공식때 문재인도 같이 탑승했다.
  • 모디 총리의 지지율이 한창 높을 당시 모디를 신으로 모시는 힌두교 사원이 건립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본인부터 이 일에 대해 크게 언짢아했고, 결국 철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타밀나두에서 모디 총리를 신으로 숭배하는 힌두교 사원이 다시 세워졌다.(...)#
  • 인권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8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여러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관련기사. 빌게이츠 재단에서도 상을 수여했는데 이 때 인권단체들이 비난을 하였다.#
  • 인도인 시크교도 및 타밀나두 주의 타밀족들과도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다. 그러나 북인도 지역의 힌두교도 사이에서는 카스트를 초월하여 전폭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 2020년 3월까지는 프로필에 있는 사진처럼 수염을 성글게 기르는 편이었는데, 3월 이후 들어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산타처럼 수염을 기른 상태이다. 인도 내에서도 갑자기 수염을 기르는 이유로 의견이 분분했는데, 가장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인도 내 유행으로 이발사와 접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염을 기른 것이라는 게 가장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1] 인도에서 주의 명목상 대표는 대통령이 임명한 Governor(주지사)이지만, 의회에서 선출한 Chief Minister(주총리 혹은 수석장관)가 실질적으로 주의 행정을 이끈다. 인도가 연방 차원에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 차원에서도 의원내각제가 작동한다. 이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는 모디가 수행한 직책을 부르는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주 총리, 수석장관, 주지사로 혼용하는 상태이다.[2] 2018년 기준으로 구자라트 주의 전체 GDP는 인구가 3배 이상 많은 우타르프라데시 주보다 더 크며, 2017년 구자라트 주의 경제성장률은 인도 평균의 2배를 넘은 13%를 기록했다.[3] 인도위키[4] 아이러니한건 모디 이전 만모한 싱 총리 시절에도 인도 경제는 고속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 다만 집권 후반기 성장률이 정체되는 현상이 왔고 이를 잘 이용한 모디와 인민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5] 2016년 화폐개혁 당시에는 수시로 깊은 시골에서는 화폐교환을 못해서 돈을 쓰지 못해 '''굶어 죽은''' 사례도 기사화 되었었다. 낙후된 대부분의 시골지역에는 화폐를 교환해줄 수 있는 은행들이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6] 모디와 모디의 당 BJP는 이미 인도 중앙은행의 총재를 두 번이나 갈아치운 전적이 있다. 모디 취임 당시의 인도중앙은행 총재는 '''2005년에 세계 최초로 대침체를 예견'''한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시카고 대학교 교수였다. 하지만 모디는 라잔 교수가 전임 만모한 싱 내각에서 총재로 임명된 데다가 그 이전에 만모한 싱 총리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이력이 껄끄러웠는지, 라잔 교수가 총재직에 더 있기를 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연장해 주지 않았다. 대신 모디는 당시 인도중앙은행 부총재였던 우르지트 파텔을 후임 총재로 임명했는데, 이 사람은 통화정책에서 모디 내각과 마찰을 빚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총재직을 내던졌다'''.[7] 관련기사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무슬림을 지지하는 입장은 기사에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한 인도 정부측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는 모두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이다. 무슬림국가에서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인도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슬람교에는 다양한 종파가 있고 기타 복잡한 사안이 여러 개 걸려있으며 인도와 국경을 맞닿은 다른 나라 미얀마에서는 당시 무슬림 로힝야 난민들이 생기던 시점이었으니 판단은 알아서.[8] 바브리 / 바바리(بابری, बाबरी)는 무굴제국의 초대 군주 자히르 알딘 무함마드 바부르(ظهیرالدین محمد بابر, Ẓahīr al-Dīn Muḥammad Bābur)를 의미한다. 바부르는 차가타이(티무르)인들을 통솔하던 카불의 군주로, 1523년 델리의 로디 왕조 술탄에게 반기를 든 재지수장의 요청을 명분으로 차가타이 군대를 파병하여 1526년 파니팟에서 술탄 이브라힘 로디(ابراهیم لودی, Ibrāhīm Lōdī)의 군대에게 대승을 거두고 이듬해 칸와(Khanwa)에서 라즈부트 수장들을 격파하여 북인도를 정복하고 아요디아에 자신의 이름을 건 모스크를 건립한 것이다.[9] 이 때문에 자기 힘을 과시하려고 남에게 통증을 주는 것 같다며 무례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몇몇 있다.[10] 도널드 트럼프와 나렌드라 모디는 전세계 정상들 중에서 가장 악력이 강력하기로 유명하다.[11] 워낙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던 시절이다보니 이 시기의 인도인들은 출생년월일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당장 한국에서도 60년대 이전 출생자들중엔 주민등록상 출생년도가 잘못 기재되어 있는 일이 많았다.[12] 이 시기는 한국의 평균 수명도 21세기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1989년 시점에 이미 평균 수명이 71살(남성 67세, 여성 75세)에 달했던 반면 인도는 1989년에도 평균 수명이 겨우 57세(남녀 모두 57세)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