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 비행장

 




'''알뜨르비행장'''
'''Altteureu Airfield'''


'''공항코드'''
ICAO
'''RKGI'''
IATA/K-Site
'''K-40'''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활주로'''
활주로

유도로

1. 개요
2.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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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당시 전라남도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일대에 위치한 옛 비행장. 현지 지명을 따서 모슬포비행장이라고도 불린다. 알뜨르라는 단어는 '아랫쪽'을 뜻하는 제주어 '알'과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 '드르'가 합쳐진 말이다. 즉, 제주도 아랫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1]


2. 연혁


1933년 일본 해군에 의해 임시활주로 형식으로 최초 조성됐으며 당시 규모는 60,242평이었고 활주로는 1400m x 70m 였다.
1937년 14만7258평을 추가 매입 하여 확장.[2] 1차 완공 당시 규모가 약 20만 평에 이를 정도로 넓어졌다.
1937년 상하이 전투(제2차 상하이 사변) 당시 일본해군의 95식 육상공격기(G2H1) 6대와 96식 육상공격기(G3M) 6대가 폭격거점으로 사용했다.[3] 즉 중일전쟁 당시 중국으로 향하던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덕분에 알뜨르 비행장이 중국이 국가적으로 가장 치를 떠는 '''난징 대학살의 배후거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45년부터 일본 해군 901 항공대가 전진기지로 사용했다.[4]
1944년 11월 19일 일본 해군 931 항공대[5] 파견대도 오로쿠비행장(현 나하 공항)에서 이동, 1945년 4월 10일까지 동중국해 대잠작전 거점으로 사용했다. 당시 운영기는 역시 '''97식 함상공격기'''(...).
일본 해군 제주도분견대가 1944년 5월 15일~1945년 2월 10일 주둔했다가 김해비행장으로 이동, 부산해군항공대로 재편되기도 한다.
확장을 거듭해서 해방 시점엔 약 80만평에 달했으나 땅만 넓다 뿐이지 전쟁 말기의 모자란 자원과 지역 주민 강제 동원이란 비효율적 방식으로 공사[6]한데다 나중엔 그 모자라는 자재나 인력도 결전기지 공사에 쓰다보니 완공도 못한 채 패망하게 된다.
한편 대부분 일본측 자료라 100% 확신하긴 어렵지만 가미카제 기지로 쓰이기 위한 결전기지 공사를 비행장 내부 및 주변에 하긴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가미카제 '''"비행기"'''가 아니라 가미카제 '''"선박"''' 기지로 쓰였다. 진짜 가미카제 비행사 육성 기지는 김해공항같은 육지공항이었다고. 대신 만약 결전작전이 진행되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면 거점기지로 쓰였을 가능성은 높다.
해방 후 미군이 시설을 인수받은 뒤 다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엔 대한민국 국군이 사용하게 됐고, 한때는 육군제1훈련소(강병대)로 운영되기도 했다.[7][8] 이를 현재는 국방부가 예비시설로서 확보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땅이 농지화되는 등 규모가 축소되고 길이 약 1200m, 폭 250~260m의 착륙대와 주기장 등 일부 시설 잔해, 그리고 유명한 이십여개의 콘크리트 격납고가 현재 남아있다. 격납고들은 한때 농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창고처럼 사용되었고 지금은 대개 그 안이 비어 있다. 그중 하나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조형물로 철근으로 제작한 제로 전투기의 모형이 들어가 있다.

[1] 제주에는 '드르'라고 표현된 곳이 이 곳 외에도 두 군데 더 있다. 하나는 '우물이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의 정뜨르이고 또 하나는 '길고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의 진드르. 벌판 한가운데에 우물(井) 하나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정뜨르 지역에는 제주국제공항이 지어졌고 들판이 길게 형성됐다는 진드르 지역(조천읍 신촌리)에는 왕복 4차선 도로(일주동로)가 뚫려 있다. 과거 일본군은 정뜨르 비행장을 서부비행장, 진드르 비행장을 동부비행장, 알뜨르 비행장을 남부비행장으로 활용했다고 한다.[2] 일본 해군 공문에선 매입이라 표현하고 있으나 고작 100일만에 약 15만평의 거대한 땅을 매입하는건 강제적 수탈이 아니고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3] 일본측 자료라 축소됐을 가능성은 높다. 한편 일본측 주장으론 나가사키 오무라비행장(현 나가사키 공항 중 해상자위대 주둔지 쪽)을 출발한 폭격기들이 나가사키까지 돌아갈 연료가 없으니까 알뜨르 비행장에 착륙하는 식으로 회항기지로 사용했다고 하며 악천후로 몇 대 추락했다고 징징거린다(...)[4] 901 항공대의 사령부는 45년 5월 15일부터 진해에 주둔.[5] 함대 컬렉션에 97식 함상공격기 유닛으로 나오는 그 931 항공대 맞다(...)[6] 덤으로 지하갱도 공사까지 진행됐다.[7] 현재도 인근에 제1훈련소 시절부터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사격장이 있다.[8] 지금도 강병대 교회가 남아서 인근 해병부대와 공군부대 장병들의 종교활동을 당담하고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마을 입구에는 과거 강병대의 정문이었던 문기둥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