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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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Czech'''
(1932년 10월 12일 ~ 2011년 6월 13일)
나치독일에서 활동했던 히틀러 유겐트 대원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어린 영웅'''으로 불렸다.
참고
그는 1932년 10월 12일에 슐레지엔의 골데나우(Goldenau)[2] 에서 태어났다.
사실, 이때까지 그는 그저 평범한 독일인 소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과 독소전쟁 말기이자 종전 직전인 1945년에 그의 인생에서 큰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바그라티온 작전과 비스와-오데르 대공세로 독일군은 사실상 붕괴되어 패퇴하고 있었고 소련군은 베를린을 향해 거침없이 진군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살던 마을도 전장으로 변하였다. 이때, 12살이었던 그는 소련군의 수류탄 공격으로 독일군인들이 부상을 입은 것을 목격하고는 그의 농장에 있는 수레로 이틀에 걸쳐서 각각 8명과 4명, 총 12명의 독일군인들을 구출하였다.[3] 이후 독일군 장성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서 그의 행동을 칭찬하며 베를린으로 동행하자고 하였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전시중인 현 상황에서 무슨 일을 당할까 걱정되어 반대를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반대를 하지 않았고 결국 이를 수락하며 군용기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당시 그가 베를린에 도착했던 1945년 4월 20일은 히틀러의 56번째 생일이었고 각지역에서 활약한 19명의 유겐트 대원들의 훈장수여 및 선전영화 촬영이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 도착하고 나서 훈장수상을 위해 모인 유겐트 대원들을 만난후 샤워와 식사후에 훈장수여식과 선전영화 촬영이 열리기로 되어있던 총통관저 집무실 정원에서 나열하였고 그는 12명의 독일군인들을 구한 공로로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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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사진과 영상(1분 57초부터). 히틀러가 그와 악수를 하고 그의 왼쪽 뺨을 살짝 꼬집는 장면이 유명하다.[4] [5]
이후 그는 총통관저에서 다른 유겐트 대원들과 함께 히틀러와 저녁을 하였고 다음날에는 다른 유겐트 대원들로부터 판처파우스트 작동법을 배운 후 전선으로 보내졌고 종전 당시에 폐에 총상을 입었다.
1947년까지 2년간 체코의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그의 아버지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때문에 국민돌격대로 징집이 되었고 종전 3개월 후에 목에 총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후에 그는 당시의 선전영화로 인해서, 이제는 폴란드 영토가 된 그의 고향에 주둔한 소련군과 현지 경찰에 수배가 되었다가 몇차례의 조사 이후에 풀려났다.[6] 아무튼, 이후에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하여 탄광에서 일을 하며 결혼을 하였고 1964년에 서독으로 가족과 함께 망명하여 막노동으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에 그는 10명의 아들과 20명의 손자를 가진 할아버지가 되었고 2011년 6월 13일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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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운폴에도 조연급으로 등장한다. 배우는 도네반 구니아(Donevan Gunia). 일종의 전쟁터에서의 어린이의 시점이자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내용은 각색이 되었다. 동부전선에서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는 히틀러 유겐트로 활동하는 아들을 집으로 대려오길 원하고, 그런 모습을 SS들은 탐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자기 자신도 아버지가 겁쟁이 같은 모습만 보이며 자신을 다그치는 것에 대해서 철없이 화를 낸다.[7] 히틀러에게 칭찬과 훈장을 받으며 의기양양하여 자신 전선에서 전차를 격파하려고 하나 고참병의 간섭을 불편해한다. 그러나 전투중에 결국 자신의 멘토이자 동료인 그 고참병이 결국 전사하고 동시에 동료들라고 할 수 있는 고참병들이 전쟁을 통하여 죽어나가는걸 보고 전쟁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나중에는 포대에서 함께 있었던 여자 유겐트인 잉게를 데리러 왔다가 자살해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보게 되고 본인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간다.[8] 약간의 PTSD의 일종으로 잠시 앓아눕지만 부모님 곁에서 금방 회복하고 자기와 같은 경험을 줄이고자 외출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그라이프 코만도가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집에 가는데 어머니는 총에 맞아 죽었고, 아버지는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게 된다. 나중에 주인공이자 관찰자였던 융게가 소련군의 포위망을 탈출할때 함께해주는 역할을 하여 그녀와 함께하게 된다.
'''Alfred Czech'''
(1932년 10월 12일 ~ 2011년 6월 13일)
'''"나는 단지 작은 소년이었을 뿐이다."'''[1]
1. 개요
나치독일에서 활동했던 히틀러 유겐트 대원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어린 영웅'''으로 불렸다.
참고
2. 생애
그는 1932년 10월 12일에 슐레지엔의 골데나우(Goldenau)[2] 에서 태어났다.
사실, 이때까지 그는 그저 평범한 독일인 소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과 독소전쟁 말기이자 종전 직전인 1945년에 그의 인생에서 큰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바그라티온 작전과 비스와-오데르 대공세로 독일군은 사실상 붕괴되어 패퇴하고 있었고 소련군은 베를린을 향해 거침없이 진군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가 살던 마을도 전장으로 변하였다. 이때, 12살이었던 그는 소련군의 수류탄 공격으로 독일군인들이 부상을 입은 것을 목격하고는 그의 농장에 있는 수레로 이틀에 걸쳐서 각각 8명과 4명, 총 12명의 독일군인들을 구출하였다.[3] 이후 독일군 장성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서 그의 행동을 칭찬하며 베를린으로 동행하자고 하였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전시중인 현 상황에서 무슨 일을 당할까 걱정되어 반대를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반대를 하지 않았고 결국 이를 수락하며 군용기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당시 그가 베를린에 도착했던 1945년 4월 20일은 히틀러의 56번째 생일이었고 각지역에서 활약한 19명의 유겐트 대원들의 훈장수여 및 선전영화 촬영이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 도착하고 나서 훈장수상을 위해 모인 유겐트 대원들을 만난후 샤워와 식사후에 훈장수여식과 선전영화 촬영이 열리기로 되어있던 총통관저 집무실 정원에서 나열하였고 그는 12명의 독일군인들을 구한 공로로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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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사진과 영상(1분 57초부터). 히틀러가 그와 악수를 하고 그의 왼쪽 뺨을 살짝 꼬집는 장면이 유명하다.[4] [5]
이후 그는 총통관저에서 다른 유겐트 대원들과 함께 히틀러와 저녁을 하였고 다음날에는 다른 유겐트 대원들로부터 판처파우스트 작동법을 배운 후 전선으로 보내졌고 종전 당시에 폐에 총상을 입었다.
1947년까지 2년간 체코의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그의 아버지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때문에 국민돌격대로 징집이 되었고 종전 3개월 후에 목에 총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후에 그는 당시의 선전영화로 인해서, 이제는 폴란드 영토가 된 그의 고향에 주둔한 소련군과 현지 경찰에 수배가 되었다가 몇차례의 조사 이후에 풀려났다.[6] 아무튼, 이후에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하여 탄광에서 일을 하며 결혼을 하였고 1964년에 서독으로 가족과 함께 망명하여 막노동으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에 그는 10명의 아들과 20명의 손자를 가진 할아버지가 되었고 2011년 6월 13일에 사망하였다.
3. 대중매체
[image]
영화 다운폴에도 조연급으로 등장한다. 배우는 도네반 구니아(Donevan Gunia). 일종의 전쟁터에서의 어린이의 시점이자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내용은 각색이 되었다. 동부전선에서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는 히틀러 유겐트로 활동하는 아들을 집으로 대려오길 원하고, 그런 모습을 SS들은 탐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자기 자신도 아버지가 겁쟁이 같은 모습만 보이며 자신을 다그치는 것에 대해서 철없이 화를 낸다.[7] 히틀러에게 칭찬과 훈장을 받으며 의기양양하여 자신 전선에서 전차를 격파하려고 하나 고참병의 간섭을 불편해한다. 그러나 전투중에 결국 자신의 멘토이자 동료인 그 고참병이 결국 전사하고 동시에 동료들라고 할 수 있는 고참병들이 전쟁을 통하여 죽어나가는걸 보고 전쟁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나중에는 포대에서 함께 있었던 여자 유겐트인 잉게를 데리러 왔다가 자살해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보게 되고 본인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간다.[8] 약간의 PTSD의 일종으로 잠시 앓아눕지만 부모님 곁에서 금방 회복하고 자기와 같은 경험을 줄이고자 외출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그라이프 코만도가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집에 가는데 어머니는 총에 맞아 죽었고, 아버지는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게 된다. 나중에 주인공이자 관찰자였던 융게가 소련군의 포위망을 탈출할때 함께해주는 역할을 하여 그녀와 함께하게 된다.
[1] 1995년 4월 26일, 기자인 토니 패터슨(Tony Paterson)과의 인터뷰 마지막에 한 말 중 한구절.[2] 현재는 폴란드의 영토에 있으며 Gołuchów로 불리고 있다.[3] 인터뷰에서 그는 그때 부상병들이 소련군이었거나 폴란드군이었더라도 구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4] 단 몰락에서의 이 장면은 알프레트 체히가 아니라 페터 크란츠라는 소년이 나온다. 판처파우스트로 적 전차 2대를 격파한 전공으로 나왔으며, 처음에는 유겐트 대원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하던 아버지 빌헬름 크란츠와 갈등이 생겼으나, 그가 속해있던 포대 대원들이 도망가거나 자결을 하자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아버지와 화해를 한다. 하지만 페터가 아이들과 함께 국민돌격대에 징집되었다가 도망가는 노인들을 돕고 집으로 돌아갈때 헌병들에게 아버지가 죽었고, 이후 베를린을 빠져 나가는 트라우들 융에와 함께한다.[5] 하단 영상은 영화 원본이 아니라 패러디다. [6] 소련 군인들은 그의 농장으로 와서는 훈장수여식 당시의 사진을 찾아서는 그의 여동생에게 먹으라고 했다고 하였다.[7] 주변에 잉게라는 여자애만 해도 철저한 광신도이며 88mm를 운영하는 히틀러 유겐트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입장도 소름끼칠정도이다.[8] 아버지가 계단에서 그를 기다리면서 처음 그렇게 고함치던 모습과 다르게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장면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