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십자 훈장
1. 개요
✠-유니코드
Eisernes Kreuz(아이저네스 크로이츠). 독일군의 훈장 중 가장 잘 알려진 훈장으로 말그대로 철십자가 모양의 훈장이다. 2차대전 전후 나치당으로 인한 정치적 이유 때문에 사라진 독일의 훈장.[1] 다만 문양으로서는 오늘날의 독일 연방군에서도 모양만 약간 바꿔서 쓰이고 있다.
최고 전훈 훈장이라면 보통 별 모양에 금으로 번쩍이게 만들기 마련인데, 철십장 훈장은 별 모양은커녕 극도로 투박한, 이름 그대로 '''강철'''로 만든 십자에 검은색이 박혀 있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활약을 요구하는 극악한 수훈 조건과[2][3][4] , 무심하고 투박한 검은 철덩어리의 절제된 분위기가 절묘하게 결합된 것 때문인지, 역시 넘사벽급의 활약을 요구하는 다른 유명한 최고 전훈 훈장을 제치고, 훈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훈장일 정도.
추가적으로, 나치 독일 시기에는 동방부대 출신자 등의 비 유럽권 병사들에게는 철십자 훈장을 수여하지 않았으며, 대신 동방부대용 훈장을 따로 제정하여 수여하였다.
2. 기원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훈장이 만들어진건 아래 역사 항목에서 나오듯 프로이센 시절이지만, 원래 기원은 튜튼 기사단의 상징인 흰 바탕에 검은 십자가에서 출발한다. 튜튼 기사단은 1190년 아크레 공성전에서 탄생했으니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십자군이 최초 기원이다. 1205년 당시 교황인 인노첸시오 3세가 흰 바탕에 검은 십자가를 튜튼 기사단의 상징으로 수여한 이후 순수 종교단체로 변한 지금까지도 검은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
튜튼 기사단은 유럽에서 마지막까지 이교도로 남아있던 동프로이센과 리투아니아 지역을 점령하여 독일 기사단국을 세우게 된다. 그러다 16세기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몰락하여, 동프로이센 쪽의 튜튼 기사단 집단은 가톨릭과의 관계를 끊고 기사단국을 세속국가로 만들어 프로이센 공국이 되어 폴란드 왕국의 봉신이 되었다. 기사단 자체는 쇠퇴하여 존재감이 없다가 최종적으로는 나폴레옹에 의해서 해체된다. 그리고 프로이센이 17세기 폴란드에서 독립하고, 19세기 독일을 통일하여 독일 제국을 만들게 되니 원래 모체이던 튜튼 기사단의 검은 십자가를 상징으로 쓰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다만 프로이센의 상징은 검은 독수리이고, 검은 십자가는 군기(軍旗) 및 군대와 전쟁의 상징으로만 쓰였다.
아무튼 수백년간 독일인들의 이미지로는 '흰바탕에 검은 십자가=튜튼 기사단이네 → 기사단=무력집단=군대 → 검은 십자가=군대상징이네'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검은 십자가가 군대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상위 등급의 철십자 훈장에 기사십자(Ritterkreuz)라는 명칭이 붙는 것도 튜튼 기사단이 기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튜튼기사단은 크로스 파테(cross pattée, 독일어:Tatzenkreuz)라고 불리는 바깥으로 갈 수록 넓어지고 안으로 갈 수록 좁아지는 십자가 문양도 상징으로 널리 사용했는데, 프로이센 시절에도 군대의 상징으로 검은 십자가를 사용했으며 나치 독일 시절 독일 국방군의 군기에도 검은 십자가가 사용되었고, 현대 독일 연방군의 상징도 검은 십자가이다. 이 문양을 훈장으로 만든것이 바로 철십자 훈장.
3. 역사
1813년 프로이센 해방 전쟁 때 처음으로 제정되었으며 이후 잠시 사라졌다가 보불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때 다시 제정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도 훈장으로서 자국 및 소수의 동맹국 군인에게 수여되었다. 아주 드물게 민간인에게 수여된 경우도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2급, 1급 철십자장과 대 십자 철십자 훈장의 3등급으로 분류되었지만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중단되었던 철십자 훈장 수여 제도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아돌프 히틀러로, 1939년 9월 1일 2차대전 발발일에 제국법령 IS. 1573 호인 철십자 훈장 재수여 규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명령에 의해 새로운 등급이 추가되면서 2차대전 당시 철십자 훈장은 크게 철십자 훈장, 기사철십자 훈장, 대철십자 훈장의 세 개로 구분되었다. 기사철십자 훈장은 기존 프로이센의 훈장이었던 푸르 라 메리트를 교체하기 위한 등급이었는데, 이 훈장은 장교에게만 수여되던 훈장이었으므로 1차 대전 때 하사 계급까지 진급했던 히틀러가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탓도 있다. 또한 히틀러는 비전투요원의 훈장으로 전장공로훈장(워 메리트 훈장)을 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한 이유중 하나는 1차 대전 직후 폐지된 푸르 르 메리트 무공훈장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기사 철십자장을 추가해서 8등급으로 세분화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패전으로 인해 전체 철십자훈장이 2차 대전 이후 폐지된다.
그래서 2013년 현재도 공식적으로는 철십자 훈장은 훈장이 아니며, 받았다고 해서 국가유공자로 대접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 독일에서 철십자 훈장을 인정했다는 이야기가 돌긴 하는데, 실제로 독일에서 인정한 것은 단지 해당 시절 나치 독일에 해당인이 공훈을 세워서 철십자 훈장이라는 양철 조각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가 전부다. 1957년 독일 연방군은 비(非)나치화 정책의 일환으로 여태까지 수여된 나치 시절 철십자 훈장을 전부 하켄크로이츠가 없는 버전으로 교환해 주었지만,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지급한 것이 아니라, 기존 훈장을 가지고 오면 일대일로 교환한 것이라서 지금도 나치 시대 철십자 훈장이 다수 남아 있다.[5][6] 때문에 전후 재창설된 독일연방군에 재입대한 구 독일 국방군 출신들 중 제2차 세계 대전 훈장 수훈자들은 약장 형태로 이것들을 정복에 패용했다. 하지만 친위대 근속근무장 같이 나치의 조직과 관련이 있거나 오스트리아, 주데텐란트, 메멜란트 합병을 기념하는 기장 등 나치 독일의 확장을 의미하는 훈장은 금지했다.
이후 독일 연방군이 코소보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다시 실전을 겪게 되자 '''전훈 관련 훈장이 사실상 전무한''' 독일 연방군 내외에서 다시 철십자 훈장을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한창 벌어졌었다. 이는 독일 연방군도 군대인 이상 훈장이 존재하지만, 딱히 실전에서 세운 공에 대하여 수여하는 훈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8년 독일 국방부가 이미 존재하던 독일 연방군 명예장(Ehrenzeichen der Bundeswehr)에 새로이 독일 연방군 용맹 명예장(Ehrenkreuz der Bundeswehr für Tapferkeit)을 추가하였으므로 공식적인 부활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해졌다. 해당 훈장은 십자 형태이긴 하나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 훈장 체계 내부에서 부가적 형태로 추가된 것이며, '''의도적으로 과거 철십자 훈장과는 다르게 디자인'''하였으므로 철십자 훈장의 부활이나 후예라고 보긴 어렵다.
4. 특징
전세계 독일군 밀덕, 소위 "독빠"들의 소망하는 최고의 아이템 중의 하나이며, 일반인이 보기에도 꽤나 정갈하면서 멋진 모습이고, 나치 독일이 사용하던 훈장중 하켄크로이츠가 가장 눈에 잘 안 보이도록 만들어졌기에 밀덕이 아닌 콜렉터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과거의 진품들은 밀덕의 손과 손을 거쳐가며 종류와 메이커에 따라 20만원 ~ 3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수요도 있지만 생산량에 비해 굉장히 비싼데 이건 수요도 있지만 컬렉터와 딜러들이 일부러 거품을 만들어 독일 진품들은 유독 다른나라 물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 거래된 철십자장은 전문가들의 진품 증명서와 함께 딸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이 증명서도 믿을 수 없는게 이걸로 사기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독일제 정밀 복각품은 전문가들도 사기당하는 수준이다. 그 이유는 인기가 많아서 레플리카가 많이 제작되었을 뿐더러[7] , 전쟁 말기에 이르면 받지 않았는데 어딘가에서 습득한 경우나, 전쟁터에서 현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그냥 사기 진작의 목적으로 수여증 같은 정식 수여 절차 없이 그냥 철십자 훈장을 뿌려 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십자 훈장만 있다면 이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철십자 훈장이나 다른 훈장을 구매할때는 해외 전문포럼에 앞뒤사진을 찍어올리자 사기당하면 정말 그 자리에서 수십만원이 날아간다.
또한 모든 훈장수집에는 사전정보와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구매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밀덕들이 군복 코스프레를 하면서 걸치는 철십자장은 모조품이 대부분이며, 진품이 있더라도 "전투에 여러 번 참여하기만 하면 주는" 2급, 1급 철십자장이 대부분(그래도 20만원은 넘는다)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훈장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기사 철십자장" 이상이라고 보면 되며, 이런 훈장이 정말로 전쟁 영웅에게 주는 훈장이다. 기사 철십자장 서훈자는 최전선의 병사부터 참모장교, 집단군 사령관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넓고 공적도 다양하지만, 빌헬름 카이텔과 같은 정치 군인이 받은 경우도 존재한다.
5. 종류
철십자장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훈장 등급마다 필요한 공훈 정도가 다르며, 이에 따라 수여갯수가 다르기에 값어치도 각각 다르다.
5.1. 일반 철십자장
5.1.1. 1813년형 철십자장 (나폴레옹 전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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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3월 10일 제정.
5.1.2. 1870년형 철십자장 (보불 전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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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1914년형 철십자장 (제1차 세계대전)
2급과 1급이 존재했고 2급을 먼저 받아야 1급 수훈 가능.
5.1.4. 1939년형 철십자장 (제2차 세계대전)
5.1.4.1. 2급 1939년형 철십자장
가장 하급의 철십자장. 전투에 일정 회수 이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면 준다. 사실상 나중에는 표창장 수준으로 남발하는 훈장이 된다. 그래도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니라서 이 훈장이 있으면 적어도 베테랑 군인 대접을 받긴 한다.
수여할 때는 로먼 칼라 군복일 경우는 두 번째, 오픈 칼라 군복일 경우는 첫 번째 단추를 풀고 리본을 집어넣은 다음 단추를 다시 채우는 식으로 패용한다. 수여식이 끝나면 리본만 해당 단추 구멍을 통과하도록 안쪽에서 박아 패용한다. 큰 행사시에는 다른 훈장들처럼 가슴에 메달째로 달 수 있다.
5.1.4.2. 1급 1939년형 철십자장
2급 철십자장과 같이 전투에 일정 회수 이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면 준다. 보통 2급 철십자장을 받은 다음에 추가적인 공훈을 세우면 1급 철십자장을 수여한다. 밀덕들이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훈장이며 1급, 2급 합쳐 7-80만명의 사람들이 받았다.
다만 그렇다고 가치를 낮게 봐서는 안 된다. 전쟁 후반 히틀러가 훈장을 남발하기 전에는 '''병, 부사관에게 지급되는 훈장은 여기까지가 전부'''였고 독일군의 서훈 심사는 타국 군대보다 훨씬 엄격했다.[8] 히틀러조차도 1차 대전 중 자신이 받은 1급 철십자장을 평생 소중히 달고 다녔을 정도이다.
게다가 1급 철십자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는 사병에게 수여되는 일이 매우 적었던 훈장이다. 히틀러가 만든 기사 철십자장과 거의 맞먹을 수준을 자랑하며, 문자 그대로 가문의 영광 수준. 오스트리아 시민권자만 아니었으면 장교로 올라갈 수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히틀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근데 히틀러의 훈장을 추천한 장교가 '''유대인 장교'''인 후고 구트만 육군 보병대위였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히틀러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총통이 된 뒤 유대인을 탄압하면서도 구트만과 가족들을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게 해 주었다.[9]
사제품인 포제 훈장(천에다 수 놓아, 군복에 박음질하는 훈장)도 있는데, 전차나 장갑차, 항공기 승무원이나 잠수함 승조원 등 좁은 공간에서 움직여야 해서 철제 훈장이 걸리적거리는 이들이 애용했다. 독일군 규정상 자기가 받은 제식 훈장은 언제나 달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이런 편법이 등장한 것이다.
5.2. 푸르 르 메리트
Pour Le Merite.
1차 대전부터 독일의 군대에 있었던 군인, 특히 장군이나 제독 등 고급 장교가 된 사람은 '''푸르 르 메리트 (Pour Le Merite)'''라고 하는 프로이센 왕국의 훈장을 착용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에이스로 유명한 헤르만 괴링, 해군의 빌헬름 마르샬 상급대장, 육군의 에르빈 롬멜 원수,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의 아버지 카리우스 등. 2차대전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도 이 훈장을 받았다[10] .해당 훈장은 원래는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가 창설한 무공 훈장이다. 프랑스 빠돌이던 프리드리히답게 훈장 명칭도 프랑스어. 원래는 각 연방 국가마다 고유의 무공 훈장이 있었지만,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 과정에서 발휘한 영향력 때문에 독일 제국의 공통된 무공 훈장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철십자 훈장 중 2급과 1급은 푸르 르 메리트의 서훈 기준이 워낙 엄격해서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훈장의 서훈 기준에는 못 미치는 장교 및 사병들에게 서훈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 르 메리트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영국군과 러시아군 장교들에게 서훈이 남발되기도 했다는 흑역사가 있다. '''블루 맥스니 블루 메리츠니 하는 별칭은 이 훈장의 몰타 십자가가 청색이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정식 명칭이 아니다.'''
따라서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의 경우에는 나치 독일에서도 기사 철십자장과 동등한 전훈을 세웠다고 인정하고, 대접도 똑같이 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2차 대전을 다룬 각종 픽션등에서는 기사 철십자장을 부하에게 수여해 주고 싶은데 훈장의 준비가 안 되었다던지,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푸르 르 메리트를 착용한 상관이 부하에게 푸르 르 메리트를 줌으로서 기사 철십자장을 수여하는 것을 대신했다는 스토리가 종종 나온다. 물론 서류상으론 그 훈장을 받은 게 아닌 상징적인 행위일 뿐이다.
푸르 르 메리트도 독일제국의 붕괴와 함께 더 이상 공식적인 독일의 훈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1840년대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학자와 예술가들을 서훈할 목적으로 추가제정한 푸르 르 메리트 문화 예술 훈장은 지금도 가끔씩 서훈된다. 이 훈장은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 훈장처럼 나이 좀 먹은 원로들에게 남발되는 경향이 전혀 없다. 서훈자 중에는 카미유 생상스, 오토 클렘퍼러, 카를로스 클라이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등의 음악가, 미스 반 데어 로에 등의 건축가, 칼 포퍼, 카를 야스퍼스, 에른스트 곰브리치 등의 인문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막스 플랑크,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의 과학자, 헤르만 헤세, 움베르토 에코 등의 작가까지 죄다 자기 분야에 한 획을 그은 굇수들이 가득하다.
5.3. 기사십자 철십자장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11]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추가된 훈장, 추가의 이유는 2급과 1급은 사실상 표창장같이 남발하는 역으로 격하되었으며, 대 십자 철십자 훈장은 특성상 전공 하나만 따져서 여러 명에게 수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실질적인 전공 훈장으로 봐야 된다.
이 훈장부터 전훈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필요했는데, 루프트바페의 경우에는 대전 초반 20대 격추, 그 이후에는 동부전선에서는 100기 격추, 서부전선에서는 40기 격추를 달성하면 수여한다. 이 훈장부터 '''흑색, 백색, 적색의 색상을 가진 리본'''이 달리므로 영화에서 흔히 나오듯이 '''목걸이'''처럼 군복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으며, 육군 기본 피복들처럼 규정상 목 바로 아래까지 상의 단추를 채워야 하는 군복 착용자의 경우 그냥 기본 규정대로 단추를 대 채우고 패용하거나 목 아래 단추 하나를 풀고 셔츠가 보이도록 입은 뒤 패용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특례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 훈장을 받으면 고향이나 원하는 곳에서 3-4주간의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7,318명에게 수여했는데, 많이 수여된 것 같지만, 전쟁 기간 중 독일군은 천만 단위의 병력을 굴렸음을 생각하면 되려 상당히 적게 수여된 것이다. 거기에 백엽, 검, 금강석 등 상위로 갈수록 수훈자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
독일 국방군의 첫 수훈자는 에리히 레더 해군 원수였는데, 크릭스마리네의 최선임자였을 뿐 아니라 국방군 전체에서 한 자릿수 안에 드는 원로였기 때문에, 아울러 육군을 견제하려던 히틀러 총통의 의지 등이 감안되어 그가 1호 수훈자가 되었다. 물론 같은 날 여러 명의 국방군 장성들이 함께 받았고, 수훈 번호 1호가 레더 제독이었을 뿐이다.
SS에서는 '''사병'''이었던 프리츠 크리스텐이 1941년 10월에 최초로 받았다.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기본 베이스로, 훈장 등급이 올라감에 따라 백엽, 검, 금강석 등 장식물이 추가된다.
5.3.1.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기사십자 철십자장에 백금또는 은 재질의 백엽[12][13] 이 추가된 형태.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받은 사람들이 추가적인 큰 공훈을 기록할 때 수여한다. 독일 공군의 기준은 대전 초반 40기 격추, 그 이후에는 동부전선에서는 150기 격추, 서부전선에서는 60기 격추를 달성하면 수여한다. 882명에게 수여. 외국인 중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 원수와 루마니아의 페트레 두미트레스쿠[14] , 코르넬리우 테오도리니, 미하이 라스커르 장군이 수상하였다.
이 훈장부터는 가급적 히틀러가 직접 참석해서 대상자에게 수여식을 거행하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오토 카리우스가 경험한 것과 같이 하인리히 힘러등 나치 최고위급 인사가 수여식을 거행한다. 따라서 수여 대상자는 보통 독일 본토로 귀국해서 수여식에 직접 참석해야 하며, 조종사들의 경우 자신의 기체를 직접 본토로 몰고 오는 것이 관례였다. 어차피 대부분의 기사 철십자장 이상 훈장 수훈자는 훈장에 동반되는 부상격인 몇 개월 짜리 장기 휴가 때문에 돌아 오긴 해야 했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히틀러가 현지를 방문해서 대상자에게 수여한 적도 있다.
5.3.2.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의 백엽에 X자로 교차된 검이 추가된 형태다. 미하엘 비트만처럼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받은 사람이 더 큰 공훈을 세울 때 수여한다. 이 훈장부터는 일반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에 요구되는 적기 몇 대 격추나 전차 몇 대 격파같이 확실한 기준이 필요한 것 외에도 고급 장성들과 정치가들의 협의가 필요하다. 독일 공군에서는 대전 초반에는 70기 격추, 그 이후에는 동부전선에는 200기 격추, 서부전선에서는 100기 격추를 달성하면 수여대상이 된다. 160명에게 수여. 이 중에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유일한 외국인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상자로, 전사 직후 특례를 인정받아 전 단계의 훈장들을 받지 않았음에도 수여되었다.
수집가의 입장에서는 일반인이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한계선이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이다. 사실 이 훈장도 그냥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다. [15] 이 단계 이후의 훈장은 사실상 입수가 불가능한데, 일단 수여자가 적을 뿐더러 훈장 자체가 귀금속과 보석을 사용해서 고가품이기 때문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래서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뛰어넘는 (진품) 철십자상을 수집한 밀덕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5.3.3. 금강석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의 백엽에 금강석을 여러 개 박고 검에도 금강석을 추가한 물건. 이 훈장부터는 객관적인 공적만 있다고 수여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받은 사람중 국가에 매우 특별한 공훈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사람에게 심사 과정을 거쳐서 수여한다. 상당히 주관적인 수여 기준이지만 잘 운영한다면 나름대로 엄정한 수여 기준을 확립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훈장을 주는 곳이 나치 독일... 당연하게도 이 등급부터는 [16] , 히틀러의 확실한 수여 의지가 없으면 수여가 불가능하다. 27명(공군 11명, 육군 12명, 해군 2명, 무장친위대 2명)에게 수여. 근데 바로 위의 황금백엽검금강석 기사십자 철십자장이 생존 장병인 한스 울리히 루델 한 명만 받았다지만 원래는 전사자 중 수훈이 큰 자에게 수여하기로 되어 있었고, 대 철십자장은 순수하게 정치적인 목적이었던 만큼, 이 둘은 정치적인 목적이 너무 큰 지라, 이 백엽검금강석 기사십자 철십자장이 사실상 최고 무공훈장이었다.
5.3.4. 황금금강석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백엽검금강석 기사십자 철십자장의 백엽과 검을 황금 재질로 바꾼 물건. 독일 공군 초유의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 공군 대령만이 이 상을 받았다. 원래 전사자 중 12명을 선별해서 수여하기 위해 제정된 훈장이었다고 하는데 정작 생존 장병인 루델 혼자만이 받았다.
5.4. 대십자 철십자장
Großkreuz des Eisernen Kreuzes.
일반 철십자장과 마찬가지로 4개 연식이 존재하며, 기사십자의 백엽 같은 업그레이드 개념으로 별모양 후광이 추가된 대십자 철십자 성장이 있다.
대십자 철십자장 수훈자는 역사상 20명 존재하며, 대십자 철십자 성장은 단 2명 존재한다.
5.4.1. 1813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나폴레옹 전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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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훈자 목록:
- 게브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이후 대십자 철십자 성장으로 승격
-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뷜로프 남작
- 스웨덴 왕세자 칼 요한
- 보기슬라프 프리드리히 에마누엘 폰 타우엔친
- 루트비히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
1813년형 대십자 철십자 성장. 일명 블뤼허 성장.
5.4.2. 1870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보불전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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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훈자 목록:
- 작센 국왕 알베르트
- 아우구스트 카를 폰 괴벤
- 에트빈 폰 만토이펠 남작
- 헬무트 카를 베른하르트 폰 몰트케
- 프로이센 왕자 프리드리히 카를[20]
-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 아우구스트 폰 베르더 백작
- 카이저 빌헬름 1세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21]
5.4.3. 1914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제1차 세계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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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훈자 목록:
- 카이저 빌헬름 2세
- 파울 폰 힌덴부르크: 이후 대십자 철십자 성장으로 승격
- 에리히 루덴도르프
- 바이에른 공자 레오폴트
-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1914년형 대십자 철십자 성장. 일명 힌덴부르크 성장.
5.4.4. 1939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제2차 세계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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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훈자는 헤르만 괴링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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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형 대십자 철십자 성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승리로 끝나면 히틀러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 두었으나 독일이 패망하면서 수여되지 못하고 미군의 노획품이 되었다.
6. 기타
이런 물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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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시기의 군용 회중시계로 보인다. 장교용 포상품이었을 것이다.
7. 여담
- 적어도 다큐멘터리나 밀리터리 영화가 아닌 이상 여러 매체에서 2차 세계대전 독일 군인 캐릭터나 독일 군인 모티프의 캐릭터가 등장할 때 하켄크로이츠 대신 써먹는다.
- 영화 스탈린그라드(1993)에서는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주인공 부대에 공수지원으로 철십자 훈장이 가득 담긴 통과 쇼카콜라 초콜릿이 가득 든 통이 떨어지자 철십자 훈장이 든 통은 내팽개치고 초콜릿을 까먹으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직후 이 영화의 악역인 육군 헌병 장교 할러 대위총격으로 전우 한 명을 잃는다. 그런데 그 할러 대위는 다른 장교들과 함께 보급품을 빼돌려 건물 지하실에 식량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었다. 소련 여군 성노리개는 덤.
- 블랙 라군에서 레비와 로크가 가라앉은 유보트를 털 때 챙겨가던 물건이기도 하며, 군복 미소녀나 밀리터리 의인화, 나치를 모티브로 한 미연시나 애니에서 히로인들이 걸치고 나오는 주요 아이템이다. 하켄크로이츠처럼 노골적으로 나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은유적으로(어디까지나 하켄크로이츠보다는) 표현하는 물건이라 하켄크로이츠에 민감한 서양에서는 하켄크로이츠가 삭제되는 대신 나치 독일의 상징물로 나오기도 한다. 이 점은 게임이나 영상 매체뿐이 아닌, 독일 국방군 관련 프라모델들도 마찬가지인듯. 그리고 구 서독과 현 독일 연방군의 국적 마크가 이 철십자 훈장에서 따온 철십자 마크다.
- 심슨 가족의 에이브 심슨은 미군 부대를 괴멸시킨 공으로[22] 나치로 부터 저 철십자를 부여 받았다. 또한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인물을 창 던지기로 암살하여 히틀러와 한끼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 헌데 이 할배 미군이다... 다만 창던지기로 암살자를 죽인 때는 2차대전 당시 미군소속이 아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미국측 국가대표로 참가했을 때이다.
- 2차대전 종전이 가까워질 때, 독일인들의 동프로이센에서의 대탈주 (한니발 작전) 당시 이 훈장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필라우항(현재는 러시아의 발티스크)에서 독일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상선과 잠수함까지 닥닥 긁어모아 동프러시아의 독일인을 서쪽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수행할 당시, '에버하르트 쇠퍼'대령은 마지막으로 동프러시아에 남아있는 현장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접촉한 피난민은 갓난아기였는데, 대이동 당시 아마도 부모와 헤어져버린 아기였고, 간호원이 그 아기를 데려와 젖을 물리고 있었다. 간호원은 자기가 맡아서 이동시키겠다며, 다만 현재 상황의 설명과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적은 문서를 작성해줄 것을 요구했고, 쇠퍼 대령은 그대로 해주었다. 간호원과 젖먹이를 포함한 수십명의 민간인이 서쪽으로 가는 배에 탑승하는 것을 직접 확인한 뒤, 이후 모든 철수작전이 사실상 종료되고 나서, 이제 소련군에 의한 죽음 혹은 죽음보다 더한 상황만을 기다리는 대령에게 한 무리의 남자들이 접근한다. 그들은 피난민들과 군인들의 식사를 담당하기도 하고, 현장의 정리나 허드렛일이 임무였는데, 동프로이센 지역에서 징집된 세상물정 모르는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대령에게,
> "대령님, 우리들은 여기서 몇 주 동안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 철십자 훈장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을까요?"
쇠퍼 대령은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제 휴지조각만도 못한 철십자 훈장을 깡통에서[23] 한움큼 집어들고 오더니 10여 명 남짓한 농부들에게 엄숙히 훈장을 달아주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그럼, 자네들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지. 받을 수 있고 말고..."
쇠퍼 대령은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제 휴지조각만도 못한 철십자 훈장을 깡통에서[23] 한움큼 집어들고 오더니 10여 명 남짓한 농부들에게 엄숙히 훈장을 달아주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그럼, 자네들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지. 받을 수 있고 말고..."
- 다른 독일군 훈장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공식수훈품 (PKZ)과 사제품(LDO)로 나뉜다. 공식수훈품은 1번만 수훈되며 대게 가족들에게 보내지거나 정복에만 착용된다. 사제품은 수훈자가 PX에서 군복에 착용하기 위해서 파는 소모품이다. 당연히 사제품보다 공식수훈품이 가치가 높지만 훈장 판매 업자들의 광고지원비로 운영되는 포럼 특징상 쉬쉬하는 분위기이고 초보에게 이 사실은 잘알려주지 않는다. 가장 구별하기 쉬운 방법은 훈장메이커 번호 앞에 L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고 1942년 이전의 마킹이 없는 훈장은 포럼의 데이터 베이스를 통하여 대조 해보는 방법 밖에 없다. 당연히 번호가 붙은 훈장이 더 비싸다. 당연한 애기이지만 회중시계나 악세서리로 나오는 철십자 훈장과 포제로 되어있는 훈장, 이차대전당시 수훈된 일차대전 훈장은 전부 사제품이다.
8. 같이보기
[1] 물론 독일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던 훈장이기에 제국주의 시절 자체와의 단절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어쨌던 1차 대전 종결 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도 잘만 썼으므로 직접적인 원인은 나치가 맞다.[2] 단, 이쪽은 전공을 초인적으로 쌓아도 받을 수 있지만, 명예 훈장의 경우엔 거의 '''저승 구경을 하고 와야''' 받을 수 있다. 철십자장의 경우 다른 최고 훈장들과 달리 희생보다는 전공 자체에 집중된 느낌이다. 다만, 요구하는 전공의 분량이 넘사벽...[3] 참고로 명예 훈장은 미군 역사를 통틀어 총 3400여번만 수여되었으며, 그나마도 남북전쟁 때 남발해서 저 정도다. 기사 철십자장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저거의 2배에 가까운 7361번 수여된 걸 생각하면...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집단군'''을 굴렸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미군 역시 독일군 못지않게 세계 대전 동안 엄청난 병력을 굴렸었다. 독일군은 대전 동안 철십자 훈장을 남발했기에 독일군 내에서 제대로 된 무공훈장 역할은 '기사 철십자 훈장'부터이다.[4] 수훈자 수를 기준으로 타국의 무공훈장과 1대1 비교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애초에 각국의 최고무공훈장이래도 각 훈장별로 수여 기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1대1 비교는 부적절하다.[5] 예를 들어 오토 카리우스 옹도 이렇게 하켄크로이츠가 새겨진 철십자 훈장을 그대로 소장한다. 전장에서 생고생하며 받은 훈장을 '''고작'''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훈장의 의미가 전혀 다른 새 걸로 교체받으라고 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JG54 출신의 에이스인 후고 브로흐의 경우 이와 관련해 국내 서명 수집가와의 서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갈고리 십자가 상징물은 변경되었습니다. (갈고리 십자가를 떡갈나무 잎으로.) 그것은 이른바 ‘도덕군자인 척하는 사람들’의 산물입니다." 출처:http://blog.naver.com/fnvmxmqkvp/220369285196 [6] 본 문서에 설명된 '1대1 교환'은 불분명한 정보로, 기존 훈장과 하켄크로이츠가 없는 새 버전을 함께 갖고있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7] 전쟁이 끝난 뒤, 훈장을 제작하던 많은 회사나 장인들이 생계를 위해 훈장 만들던 틀을 그대로 사용해 점령군이나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여럿 찍어내 팔았다. 당연히 생산 시기 차이로 진품이 아니지만, 제작방식과 재료, 제조한 곳이 동일하기 때문에 레플리카치고는 정품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최고급인 물건이다.[8] 얼마나 엄격했냐면 루프트바페의 경우 해당 조종사가 실제로 10기의 적기를 격추했다고 쳤을 때, 본인의 보고뿐만 아니라, 같이 출격했던 다른 조종사들의 확실한 목격과 증언과 함께 추가로 몇 가지 기준이 더 적용되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격추 숫자는 잘하면 실제 격추 수의 3분의 2, 심하면 절반으로 뚝 깎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독일군의 슈퍼에이스들의 실제 격추수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격추 수의 최대 2배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의견이 상당수 제기된다.[9] 이 사람도 그렇고 히틀러 가족의 주치의였던 블로흐 박사도 그렇고 히틀러는 '좋은 유대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인정했다. 다만 몇몇 빼고 나머진 다 죽어 마땅하다는 중2병에서 못 벗어나서 그렇지....[10] 3번째 수훈자라고 한다[11] "십자(Kreuz)"가 두 번 들어간다.[12] 유럽 참나무에 해당하는 오크 나무의 잎(Oak leaves)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백엽(栢葉; 측백나무잎)으로 표기한다. 다만 일본에서는 떡갈나무에 측백 백(柏), 떡갈나무 곡(槲)의 한자를 둘 다 통용되고 있다.#백엽 표기문제에 관한 토론 한국식 한자 용례상의 경우 유럽참나무(오크나무)에 해당하는 한자는 졸참나무 유(楢)이다. [13] 한국에서는 해당 철십자 훈장에 '''백엽'''이라는 표현이 가장 우세하게 사용되고 있고 '''곡엽'''이라는 표현 또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한자 용례에 따라 '''유엽'''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다는 주장이 제기 되기도하지만 통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따라서 유엽의 경우는 본 문서의 등재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14] 1882.02.18~1950.07.15 제1차 세계대전을 참전한 이후로 독소전 개전으로 루마니아 제3군을 이끌었다. 종전후 루마니아 공산 정부 하의 전범 재판을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됨[15] 기사십자 철십자장만 하더라도 수훈자가 7천여명에 불과해 그 가격에 수백만원 선이라 수집가가 상당히 드문데, 그 이상은…[16] 공군 에이스 하인츠 뵈어가 괴링의 병신짓을 항의 하자 괘씸죄를 적용해서 다이아몬드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못받았다.[17] 최초 수여자[18] 크릭스마리네 2위의 유보트 에이스로, 무사히 종전을 맞이...하였으나 종전 직후, 만취상태로 관사로 복귀하던 길에 초병의 수하에 불응, 사살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게 무슨...[19] 전부 U보트 에이스들이다.[20] 빌헬름 1세의 동생인 카를 프리드리히 왕자의 아들. 여담이지만 빅토리아 여왕의 이들 코넛 공작 아서(1850-1942)의 장인어른이다[21] 빌헬름 1세의 외조카로 프리드리히 3세와 프리드리히 카를의 사촌이다. 동시에 프리드리히 3세와 카를의 외할머니 마리아와 프란츠의 할머니 엘레나는 파벨 1세의 딸이다. 여담이지만 엘레나는 딸을 낳은 후 산욕열로 죽었다고 한다.[22] 정확히는 지뢰 탐지병으로서 이 쪽에 지뢰가 있으니 딴길로 가라고 탱크에게 수신호를 했는데 그 쪽이 절벽, 그래서 뒤 따라오던 트럭에게 다른 방향으로 수신호를 줬는데 그 쪽에는 지뢰가 심어져있었다.[23] 위에서 서술하였듯 2급, 1급 철십자 훈장은 전공이 조금이라도 있는 병사들에게 사기진작을 위해 무분별하게 뿌려댄 훈장이라, 고급스런 목함 케이스 따위는 없었고, 여러 사이즈의 깡통에 적게는 20개 많게는 100개 넘게까지도 대충대충 포장되어 인력, 말, 트럭, 공수낙하 등등의 방법을 통해 전선으로 보내졌다.[24] 수훈 자격이나 명예가 기사철십자장 미만의 하급에 해당하는 1, 2급 철십자 훈장과 유사하다. 꼭 전공이 있어야만 받는것은 아니고 전투에 일정 회수 이상 용맹하게 참여하기만 하면 받는 상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