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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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나라의 제20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2. 생애
2.1. 즉위 이전
당소종의 9남으로 원래 이름은 이조인데 황태자로 책봉된 후 이축으로 개명했다. 생모는 적선황후(積善皇后) 하씨(?~905)이다.[4] 건녕 4년(897) 이조는 휘왕으로 책봉되었으며 천복 3년(903)에는 개부의동삼사, 제도병마원수 등의 고위관직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당시 그는 6세에 불과한 어린아이였으므로 직함뿐인 자리였다.
당소종이 유계술을 필두로 한 환관들이 정변으로 구금되었는데 당시 장남은 덕왕 이유였다. 환관들이 소종을 대신하여 이유를 황제로 추대한 일이 있었지만, 천복 원년(901) 재상 최윤과 금군의 장수 손덕소가 연합하여 환관들을 제압했다. 그 후 당소종은 복위했으며 이유는 다시 덕왕으로 강등되었다. 어쨋든 황위찬탈의 누명을 쓴 덕왕 이유는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2.2. 황제로서의 삶
주전충은 대역죄인 이유를 꼭두각시 황제로 옹립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이유의 친동생이자 당소종의 아홉째 아들인 이축을 옹립했다. 이 때문에 이축은 주전충의 허수아비 황제였고, 904년에 아버지 소종의 뒤를 이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 새 황제가 등극하면 반드시 연호를 새로 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결정권도 없는 꼭두각시 황제였기 때문에 연호도 정하지 못하고 아버지 당소중 이엽의 시대의 연호, 천우를 그대로 사용했다.
천우 2년(905) 11월 당애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거행하려고 했다. 제천의식은 연례 행사였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허수아비 황제였더라도 당연히 친히 집전하는 국가의 대사였다. 관례에 익숙한 조정대신들도 당애제에게 당나라의 번영을 의해 성대하게 거행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주전충은 아직도 당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신하들이 있음을 알고 분노했고, 즉시 행사준비를 중단시켰다. 재상 유찬(?~906)은 주전충이 딴 마음을 품고 있음을 직감했고, 주전충에게 천하를 얻으려면 당나라 조정대신들을 몰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우 2년 유찬은 주전충에게 배구 등 조정 중신 30명의 명단을 바쳤다. 그들은 대부분 충신들이었으며 유찬과 사이가 나빴다. 조정대신들과 사이가 나쁜 책사 이진(?~923)도 찬동했다. 주전충은 살해명단에 오른 30명을 백마역(지금의 하남성 활현)으로 끌고 와서 살해하게 했다. 중국역사에서는 이 참사를 백마역의 화 라고 부른다. 주전충은 이 참변 이후에 당왕조를 없애고 자신의 왕조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2.3. 당나라의 멸망과 죽음
결국 907년에 당애제는 주전충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선양을 했고, 제음국왕(濟陰國王)으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908년 2월에 독살당하면서 1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주전충은 그를 애황제(哀皇帝)로 추존했고, 왕의 예로 제음현 정도향에 장사지냈다.
3. 사후 추존
애제는 호가 두 개인데, 그 이유는 후량(後梁)의 태조(太祖) 주전충(朱全忠)이 올린 시호가 애황제(哀皇帝)이고, 후당(後唐)의 명종(明宗) 이사원(李嗣源)이 올린 묘호가 경종(景宗)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황제 중에 선대의 묘호로 경종(敬宗)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사원이 중간에 추존 과정을 중단해서 그런지, 후량에서 받은 시호인 애(哀)를 따서 묘호를 애종(哀宗)이라 불리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
그리고 후당에서 받은 시호는 소선광렬효황제(昭宣光烈孝皇帝). 줄여서 열황제(烈皇帝) 또는 소선제(昭宣帝).
4. 둘러보기
[1] 통칭 애종(哀宗)[2] 실제 사용되지 않음.[3] 부황 소종의 연호를 그대로 습용[4] 적선황후 하씨는 이엽이 수왕이었을 때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이엽은 용모가 수려하고 지혜로운 하씨를 총애했다. 하씨는 이엽의 장남 이유(?~904)와 9남 이조를 낳았다. 이엽이 황제로 즉위한 후 숙비로 책봉되었다. 건녕 연간 당소종이 화주로 몽진했을때 그녀를 황후로 책봉했다. 적선황후는 당소종이 시해되고 아들 휘왕 이조가 즉위한 후에는 황태후로 추대되어 적선궁(積善宮)에서 거주했다. 그래서 그녀를 적선황후라고 부른다. 하씨는 천우 2년(905)에 주전충이 황위를 찬탈했을 때 피살되었고, 주전충은 그녀를 서인으로 격하시켰다. 이후 후당의 이사원은 하씨에게 선목황후(宣穆皇后)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