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당)

 


<colbgcolor=#a48252><colcolor=#ece5b6> '''당 제19대 황제'''
'''昭宗 穆皇帝 | 소종 목황제'''
'''묘호'''
'''소종(昭宗) / 양종(襄宗)'''
'''시호'''
성목경문효황제(聖穆景文孝皇帝)
'''연호'''
문덕(文德, 888년 4월 ~ 888년 12월)
용기(龍紀, 889년)
대순(大順, 890년 ~ 891년)
경복(景福, 892년 ~ 893년)
건녕(乾寧, 894년 ~ 898년 8월)
광화(光化, 898년 8월 ~ 901년 3월)
천복(天復, 901년 4월 ~ 904년 윤4월)
천우(天祐, 904년 윤4월 ~ 907년 3월)
'''출생'''
867년 3월 31일
'''사망'''
904년 9월 22일 (37세)
'''재위'''
'''당의 황제'''
888년 4월 20일 ~ 904년 9월 22일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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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48252><colcolor=#ece5b6> ''''''
농서 이(李)씨
''''''
걸(傑) / 엽(曄) / 민(敏)
'''부모'''
부황 의종, 모후 공헌황후
'''황후'''
적선태후 하씨

1. 소개
2. 생애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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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당나라의 제19대 황제. 의종의 7남이자, 희종의 이복 동생이다. 원래 이름은 걸(傑)이었다가, 즉위 후 엽(曄)으로 개명했으나, 나중에 민(敏)으로 다시 개명했다.

2. 생애


당나라 말기의 황제가 다 그렇듯이 환관인 양복공이 옹립했다. 참고로 양복공이 환관 중에서도 악명이 높은 것을 보면 환관들이 보기에도 살기 위해서는 의종이나 희종 같은 병신들이 옹립되면 안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방훈의 난, 황소의 난을 거친 888년 무렵, 당나라는 각 지방 절도사들에 의해 사실상 분열된 상태였고, 환관 세력 역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 국정을 마음대로 처리하고 있었다. 892년 봉상 절도사 이무정과 싸웠으나 대패하여, 이무정이 도성 앞까지 밀려오자 재상 두양능 등을 처형하고 위국 부인 진씨를 하동 절도사 이극용에게 시집보냈다. 900년, 일부 환관들이 반란을 일으켜 소종을 퇴위시키고 그의 아들인 덕왕 이유를 황제로 옹립하였지만, 901년 반대파 환관 세력들이 일어나 덕왕 이유는 폐위되고, 다시 소종이 즉위하였다.
이후 이무정이 주전충에게 무너지자, 소종은 주전충에게 옹립되었다. 주전충은 강제로 장안에서 낙양으로 천도했는데 궁전을 불태우고 성을 파괴하니 옛날의 역적 동탁의 낙양 강제 천도에 버금갔다. 이 때 백성들이 '황제 폐하 만세!'라고 외치자 소종은 '''짐은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만세가 무슨 소용이랴?'''라고 말했다. 소종은 형 희종보다 능력이 뛰어났고, 제왕의 기상이 있어서[1] 주전충은 사람을 보내 소종을 시해하도록 했다. 소종은 궁전에서 자객을 피해 도망치다가 결국 시해되었다.
소종의 자식들 중 연장자 10명은 전부 죽었다. 905년에 장남인 덕왕(德王) 이유(李裕), 차남인 체왕(棣王) 이우(李祤), 3남인 건왕(虔王) 이계(李禊), 4남인 기왕(沂王) 이인(李禋), 10남인 경왕(瓊王) 이상(李祥) 등 9명이 주전충에게 죽었고, 애종으로 즉위한 9남인 이축은 주전충에게 선양 후 죽었다.

3. 둘러보기





[1] 발악하기는 했다. 정황상 당나라의 충신이었던 이극용의 도움을 받아서 환관을 억제하고, 환관 세력과 경쟁하면서, 주전충의 역심을 간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