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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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약성경 서신서의 한 권.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야고보의 편지/야고보서/야고보의 서간 등으로 불리며, 약칭은 '야고' 혹은 '약'.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
2. 저자
야고보서의 저자는 자신을 '주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야고보서 1장 1절)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야고보(제임스: James)라는 이름의 사람이 무려 6명이나 등장한다. 12사도 중에만도 2명의 야고보가 있다. 그 중 하나인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대 야고보)는 44년에 이미 순교했기 때문에 이 서신서를 썼을 확률은 낮다.
정교회와 개신교에서는 이 편지를 예수의 형제 야고보(정교회 축일은 10월 23일, 12월 26일)가 썼다고 본다. 보수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이유로는 소 야고보는 성경의 서신서를 쓸 만큼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소 야고보와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동일인(축일은 5월 3일)으로 보고 이 편지를 '소 야고보(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썼다고 본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마스 복음서와 관점을 같이 하는 내용들이 많아, 토마스 교파의 인물이 쓴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있다.
2.1. 차명 서신설
현대 성서비평학자들 다수는 다음 근거를 들어 야고보서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서신이 아닌 사도 시대 이후 서신으로 보고 있다.
- 1. 이 책은 팔레스타인 상용어가 아니라 매우 세련된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다
- 2.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에 대한 언급만 해도 단 두 번밖에 찾아볼 수 없다(1:1 ; 2:1)
- 3. 병든 자들을 위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5:14)는 언급을 보면 이 편지의 시대적 배경이 교회에 장로 제도가 자리 잡은 후대임을 알 수 있다.
- 4. 이 서신이 무라토리 정경 목록(180년 전후)이나 2세기에 주로 활동한 어떠한 교부의 글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심지어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조차 4세기 초반에 쓴 글에서 야고보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1]
- 5. 다음 구절과 같이 바울 서신의 내용을 반박하고 있는 구절이 보이는 것을 미루어 바울 서신 집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 경우 62년에 죽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저작이 될수 없다.[2]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야고보서 2:24)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로마서 4:1~3, 갈라디아서 3:6~9)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본 대로 그의 믿음에 행함이 따랐기 때문에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야고보서 2:21~22)
2.2. 전통적 저작설
주의 형제 야고보의 친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다음의 근거를 들어 차명설을 반박하고 있다.
- 1.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그리스어가 통용되고 있었으며, 세련된 수사는 필경사 혹은 편집자의 영향일 수 있다.
- 2.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예수께서 말씀하신 전승의 흔적이 나타난다.
- 3. 병든 자들을 위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5:14)는 언급은 유대 기독교의 특징일 수 있으며, 오히려 감독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해당 서신이 부제-장로-감독의 삼중직이 확립되기 이전의 서신임을 암시한다.
- 4. 해당 서신이 이후 인용되지 않은 것은 유대 기독교가 예루살렘 함락 이후 쇠락했기 때문일 수 있다.
- 5. 할례 등 유대인의 율법에 대해서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서신의 맥락과 달리 야고보서에서 행함의 중요성은 주로 자선에 관련하여 언급된다.
3. 내용
- 그리스도인의 시련(야고보서 1장 1~18절)
고난의 참된 의미
고난의 원인
- 믿음과 행함(야고보서 1장 19절~5장 6절)
행함과 믿음의 관계
혀를 삼갈 것
- 믿음의 승리(야고보서 5장 7~20절)
믿음으로 간구할 것
타락한 형제를 구할 것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행동이 있소.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줄 테니 당신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시오."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야고보서 2장 17-20절, 공동번역성서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그 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서 2장 2-4절. 공동번역성서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가 바울로의 신학, 특히 이신칭의와 어긋난다고 본 것인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경멸하였고 심지어 정경에서 빼려고까지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그러지 않았다. 현대 개신교에서는 바울의 서신은 사람이 의롭다고 칭하는 원인을, 야고보서는 그렇게 해서 의롭다고 칭한 사람이 그 결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때문에 두 서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본다.# 어차피 개신교의 큰 구원의 틀은 칭의-'''성화'''-영화로, 칭의 이후의 성화를 필수적으로 언급하므로 본서의 행함구절을 문제 삼지 않는다.잘 들으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챘습니다. 그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또 추수한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야고보서 5장 4절. 공동번역성서
4. 병자성사
5장 14절은 병자성사의 성경적 근거이기도 하다. 개신교에선 예수의 직접 만든 성례가 아니므로, 성사로 보지 않는다[3] .
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15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