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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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Epistula Iacobi
'''영어'''
Epistle of James
'''한자(한국어)'''
'''가톨릭''': 야고보書
'''개신교''': 야고보書
'''중국어'''
'''간체자''': 雅各伯书
'''정체자''': 雅各伯書
'''일본어'''
ヤコブの手紙
<color=#ffffff> '''기본 정보'''
'''저자'''
야고보
'''기록 연대'''
A.D. 50~150년경
'''분량'''
5장
'''수신자'''
디아스포라 유대인
1. 개요
2. 저자
2.1. 차명 서신설
2.2. 전통적 저작설
3. 내용
4. 병자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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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

신약성경 서신서의 한 권.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야고보의 편지/야고보서/야고보의 서간 등으로 불리며, 약칭은 '야고' 혹은 '약'.

2. 저자


야고보서의 저자는 자신을 '주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야고보서 1장 1절)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야고보(제임스: James)라는 이름의 사람이 무려 6명이나 등장한다. 12사도 중에만도 2명의 야고보가 있다. 그 중 하나인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대 야고보)는 44년에 이미 순교했기 때문에 이 서신서를 썼을 확률은 낮다.
정교회개신교에서는 이 편지를 예수의 형제 야고보(정교회 축일은 10월 23일, 12월 26일)가 썼다고 본다. 보수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이유로는 소 야고보는 성경의 서신서를 쓸 만큼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소 야고보와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동일인(축일은 5월 3일)으로 보고 이 편지를 '소 야고보(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썼다고 본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마스 복음서와 관점을 같이 하는 내용들이 많아, 토마스 교파의 인물이 쓴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있다.

2.1. 차명 서신설


현대 성서비평학자들 다수는 다음 근거를 들어 야고보서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서신이 아닌 사도 시대 이후 서신으로 보고 있다.
  • 1. 이 책은 팔레스타인 상용어가 아니라 매우 세련된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다
  • 2.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에 대한 언급만 해도 단 두 번밖에 찾아볼 수 없다(1:1 ; 2:1)
  • 3. 병든 자들을 위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5:14)는 언급을 보면 이 편지의 시대적 배경이 교회에 장로 제도가 자리 잡은 후대임을 알 수 있다.
  • 4. 이 서신이 무라토리 정경 목록(180년 전후)이나 2세기에 주로 활동한 어떠한 교부의 글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심지어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조차 4세기 초반에 쓴 글에서 야고보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1]
  • 5. 다음 구절과 같이 바울 서신의 내용을 반박하고 있는 구절이 보이는 것을 미루어 바울 서신 집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 경우 62년에 죽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저작이 될수 없다.[2]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야고보서 2:24)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로마서 4:1~3, 갈라디아서 3:6~9)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본 대로 그의 믿음에 행함이 따랐기 때문에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야고보서 2:21~22)


2.2. 전통적 저작설


주의 형제 야고보의 친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다음의 근거를 들어 차명설을 반박하고 있다.
  • 1.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그리스어가 통용되고 있었으며, 세련된 수사는 필경사 혹은 편집자의 영향일 수 있다.
  • 2.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예수께서 말씀하신 전승의 흔적이 나타난다.
  • 3. 병든 자들을 위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5:14)는 언급은 유대 기독교의 특징일 수 있으며, 오히려 감독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해당 서신이 부제-장로-감독의 삼중직이 확립되기 이전의 서신임을 암시한다.
  • 4. 해당 서신이 이후 인용되지 않은 것은 유대 기독교가 예루살렘 함락 이후 쇠락했기 때문일 수 있다.
  • 5. 할례 등 유대인의 율법에 대해서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서신의 맥락과 달리 야고보서에서 행함의 중요성은 주로 자선에 관련하여 언급된다.

3. 내용


  • 그리스도인의 시련(야고보서 1장 1~18절)
열두 지파에게 문안
고난의 참된 의미
고난의 원인
  • 믿음과 행함(야고보서 1장 19절~5장 6절)
차별과 편벽 금지
행함과 믿음의 관계
혀를 삼갈 것
  • 믿음의 승리(야고보서 5장 7~20절)
소망 중에 인내할 것
믿음으로 간구할 것
타락한 형제를 구할 것
신자들이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신앙의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경고하는 부분이 인상적.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나에게는 행동이 있소.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줄 테니 당신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시오."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이여,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야고보서 2장 17-20절, 공동번역성서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그 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서 2장 2-4절. 공동번역성서

잘 들으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챘습니다. 그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또 추수한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야고보서 5장 4절. 공동번역성서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가 바울로의 신학, 특히 이신칭의와 어긋난다고 본 것인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경멸하였고 심지어 정경에서 빼려고까지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그러지 않았다. 현대 개신교에서는 바울의 서신은 사람이 의롭다고 칭하는 원인을, 야고보서는 그렇게 해서 의롭다고 칭한 사람이 그 결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때문에 두 서신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본다.# 어차피 개신교의 큰 구원의 틀은 칭의-'''성화'''-영화로, 칭의 이후의 성화를 필수적으로 언급하므로 본서의 행함구절을 문제 삼지 않는다.

4. 병자성사


5장 14절은 병자성사의 성경적 근거이기도 하다. 개신교에선 예수의 직접 만든 성례가 아니므로, 성사로 보지 않는다[3].

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15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가톨릭 성경)

[1]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9418[2] 김득중, 초대 기독교와 복음서, KMC, 2016[3] 하지만 개신교에서도 성사는 아닐지언정 치유기도 등을 말하고 행하기에 관계가 없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