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다바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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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찰루키아 왕조를 대체한 데칸 고원의 국가. 산스크리트어로 세우나(सेऊण, Seuna) 왕조라고도 불린다. 야다바는 세우나 스스로 고대 야다바족의 후손을 자처해서 야다바 왕조라는 별칭이 붙은 것이고, 사실 세우나가 원래의 국명이다.
2. 역사
1207년, 칼라추리 왕조의 멸망과 분할 점령 시에 데칸 동북부를 획득한다. 그 후 1212년 촐라 왕조의 쇠퇴, 1221년 고르 왕조의 멸망,1230년 세나 왕조의 멸망 등 인도 대륙의 판도는 요동쳤고 야다바 왕조는 델리 술탄 왕조를 견제하며 카타키야 왕조, 호이살라 왕국와 인도의 새로운 판도를 구축했다.
당시 야다바 왕조는 델리의 이슬람 세력에 맞설 수 있는 국가였으나 1270년, 카타키야 왕조와 동 강가의 협공으로 데칸 동부를 상실했고 1289년 동 강가는 카타키야에 통수를 날려 데칸 중동부를 점령한다. 1290년에는 벵골 서부와 갠지스 남안까지 진출한 동 강가는 칼링가 왕국 이후 오랜만에 오릿사 지방 기반의 강국으로 성장하여 야다바 왕조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이에 야다바 왕조는 남진하던 델리 술탄 왕조(킬지)와 동맹을 맺었고 1311년 남인도 원정군에게 정남가도를 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1312년 인도 중북부의 파라마라 왕조 멸망시에 델리 술탄 왕조와 그 영토를 분할 점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순망치한이 되었으니... 바로 다음해인 1313년, 델리 술탄 군대는 야다바의 북서부를 유린했고, 1314년에는 서부를 점령하며 마두라이까지 원정군을 보냈다. 1315년에는 서부 산간의 마지막 저항마저 일소되었고 1316년에는 중북부, 1317년에는 데칸의 중심부마저 함락되며 멸망했다. 길을 내어주며 자국의 존속을 요청해보기도 했고 저항도 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만 넓은 영토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며 많은 이슬람 군대를 묶어 놓아 남쪽의 호이살라와 판디야가 저항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 주었다는 점에서 남인도의 이슬람화 저지에 공헌하였다. (물론 두 왕국 다 결국은 1343년, 1330년에 멸망하지만 1345년 비자야나가르 왕국이 세워지고 이슬람 세력을 격파한다) 또한, 영토 동북쪽은 고드와나에 흡수되어 델리 술탄 왕조와의 최전선에 선 점도 의미가 있다.
여담으로 저항이 심하던 야다바에 파견했던 군대가 힘둔 승리 후 델리에 복귀하여 할지 왕조를 끝내고 1321년, 투글루크 왕조를 세워 남진이 잠깐 중지되기도 한다. 남진은 1322년에 재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