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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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3]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벤더는 어린 시절 알레마니아 08 뒤셀도르프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배웠고 1927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 이적했다.
1928-29 시즌에는 서부 독일 챔피언십에서 3위, 독일 축구 챔피언십 1라운드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2년 후인 1931년에는 서부 독일 축구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었고 벤더 역시 야네스, 알브레흐트 등 팀 동료들과 함께 축구팬들에 이름을 알렸다.
결국 1933년, 베르크-마르크 지역 리그 우승팀 포르투나는 샬케 04를 3대0으로 꺾고 독일 챔피언이 되었다. 벤더 역시 센터 하프백으로 제 몫을 충분히 해낸 시합이었다. 그 이후 포르투나는 가울리가[4] 니더라인에서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뉘른베르크, 샬케 등에 막혀 전국 대회 우승컵을 차지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벤더는 1944년까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 소속되어 있었고 1950년에는 키싱언 05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유스 시절을 보낸 알레마니아 뒤셀도르프에서 감독 생활을 하기도 했다.
1.1.2. 국가대표
벤더는 1933년 10월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다. 상대는 벨기에였으며 8대1로 대승을 거두었다.
벤더는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하였으며 4강전과 3,4위전에서 활약하였다. 그의 마지막 A매치는 1935년 6월의 스웨덴전이었으며, 무릎 부상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빠졌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끈질기고 강한 플레이로 수비진의 중심을 잡던 선수였다.
3. 뒷이야기
- 1933년 1월 8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VfL 벤라트 연합팀은 헝가리의 강호 페렌츠바로시 TC를 7대2로 꺾기도 했다.
4. 수상
4.1. 클럽
- 독일 축구 챔피언십 우승 1회: 1933(포르투나 뒤셀도르프)
- 독일 축구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36(포르투나 뒤셀도르프)
- DFB 포칼 준우승 1회: 1937(포르투나 뒤셀도르프)
- 독일 서부 리그 우승 1회: 1931(포르투나 뒤셀도르프)
- 가울리가 니더라인 우승 5회: 1935-36, 1936-37, 1937-38, 1938-39, 1939-40(포르투나 뒤셀도르프)
4.2. 국가대표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나치 독일 시대의 최상위 지역리그. 여기에서 우승하면 독일 축구 챔피언십에 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