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화(배우)
1. 개요
대한민국의 여배우.
2. 소개
1970년 MBC 공채 2기로 입사하였다. 박원숙, 김자옥, 한혜숙 등이 동기. 1972년에 윤여정과 함께 김수현작가의 초히트작 새엄마에 출연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이듬해 MBC 드라마 춘향전 공모전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어[1][2] 활약을 보여줬다. 이후 김수현 작품 안녕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화계에 진출하여 1974년 정소영[3] 감독 흑녀에서 흥행을 끌며 영화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1세대 트로이카의 은퇴와 드라마의 부상, 유신정권의 문화통제 정책으로 그 성장동력을 급속하게 잃고 있었다. 1세대 트로이카를 계승하고자 하는 수많은 여배우 지망생들이 영화계에 진출하고자 했으나 대부분은 트로이카의 아성을 넘지 못한 상황에서 양정화는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몇 안되는 여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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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도에는 경향신문에서 최고의 스타로 뽑힐 만큼 엄청난 저력을 보여 줬다. 이제 한두 작품만 더 성공한다면 그녀에게 여배우 정상 등극은 시간문제였다.[4]
3. 박동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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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대의 엽색 스캔들인 박동명 사건에 연루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어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효자문에서 강제하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박동명은 재벌 2세로 여배우와 여대생을 농락하는 희세의 카사노바였는데 중앙일보에서 양정화와 박동명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보여줬다. 이후 양정화도 박동명의 애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억울한 양정화는 해당 신문사에 1억 5천만원의 고소를 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중앙일보의 음모였다. 잠시 이 때의 연예계를 말하자면, 하나의 방송사와 연예인과 계약을 하면 그 연예인은 자신이 계약한 방송사에만 출연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양정화는 MBC 출신으로, MBC와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이었다. 이런 유망주를 눈여겨본 TBC는 양정화와 전속계약을 맺으려 했으나 양정화는 MBC에 남으려 했고 TBC는 양정화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리하여 TBC와 같은 계열사인 중앙일보는 양정화가 박동명과 등산을 간 사진을 유포해 버린 것이었는데, 실제로 진짜 양정화가 박동명과 단둘이 등산을 간 것이 아니었다. 그 사진은 양정화가 신인 시절 단체 등산을 갔을 때 박동명도 우연히 끼이게 되었고[5] , 이 때 찍은 사진을 잘 조작하여 마치 박동명과 양정화가 데이트를 한 듯한 장면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양정화는 이에 분개하여 고소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무죄 판결을 받아 내었고, 오히려 여론은 그녀에게 동정적으로 변했다. 승소 후 그녀에게 다시 여러 출연 제의가 들어왔으며 MBC의 끈질긴 설득에 3년 만에 <113 수사본부>에 얼굴을 비추는 등 활동을 재개할 준비를 하였다. 1978년, <당신>의 후속극에 출연하려고 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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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그녀는 결국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며 은퇴한다.[6]
4. 은퇴의 여파
그녀의 은퇴는 나비효과를 일으켜 장미희, 정윤희를 그녀의 뒤를 잇는 스타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승소 이후 그녀에게 들어온 영화작 중의 하나가 바로 겨울여자였다. 겨울여자는 원작의 파격적인 내용[7] 으로 인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은퇴 과정에서 이를 거절했고, 당시 TBC 출신의 신인 여배우 장미희가 맡았다. 겨울여자는 당시 서울의 단성사에서만 5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큰 대박을 터뜨리며, 장미희도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 승승장구하게 된다.
또한 양정화는 은퇴 이전에 해태제과의 전속 모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은퇴로 당시 무명이었던 정윤희에게 그 자리가 돌아가게 되었고, CF를 발판으로 정윤희는 대중에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 그 후 정윤희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승승장구하며 2세대 트로이카의 꽃으로 김지미의 뒤를 잇는 미녀 여배우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후, 2019년 MBN 모던 패밀리에서 40여년 만에 근황을 알렸다. # 결혼도 하고, 두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는데 여전히 미인이시다. 이 당시 나이가 칠순에 다다랐음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미인인 셈.
은퇴 계기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결혼할 사람이 있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사실 박동명 사건이 터졌을 때, 양정화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1976년 이후 은퇴 선언을 번복하여 복귀를 선언하고, 1978년 일일연속극 촬영을 앞둔 상태에서 은퇴를 한 것을 보면, 연예계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용히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은퇴를 선택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5. 출연작품
5.1. 영화
5.2. 드라마
- 1973년 KBS 세종대왕 - 소헌왕후 역
[1] 이 때 양정화와 대결을 벌인 여배우가 고두심이었다고 고두심 본인이 주장하였다. 양정화가 본인보다 더 예쁘고 한복이 잘 어울려 뽑혔고 양정화와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합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선발방식은 우편엽서를 통한 투표방식이었고 여기서 양정화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즉 고두심은 거짓말을 친 셈. 당시 MBC에서는 양정화가 제일 유명했고 그다음은 김자옥이 유명했다. 당시 MBC에서 잘나가던 김영애, 이효춘도 김자옥과 출연을 하면 서브 주연으로 밀려날 정도였는데 이런 김자옥보다도 유명한게 당시의 양정화였다. 이에 비해 고두심은 당시에도 깨끗한 외모에 괜찮은 연기력을 지니긴 하였으나 화려한 미인이 각광받던 시대라 빛을 보지는 못한 상태였다. 당연히 양정화와는 라이벌 비슷한 관계도 아니었다.이런 식으로 양정화와 자기를 동급으로 놓는 발언은 사실 본인의 과거를 미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2] 사실 이렇게 중견배우가 과거에 잘나갔다는 식으로 자기를 미화하는 경우가 많으니 옛날에 어땠다는 식으로 자기를 자랑하는 중견배우들의 발언은 다소 가려 들을 필요가 있다.[3] 1968년을 뜨겁게 달군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유명한 감독이다.[4] 위의 사진을 보면 배우 목록이 ㅎㄷㄷ하다. 윤정희, 김지미 등의 여배우는 물론이고 신성일, 신영균 등 당대 배우가 다 모여 있다.[5] 당연히 둘은 일면식도 없는 상태였다.[6] 이이제이로 유명한 이동형의 저서에서도 언급되었다.[7] 자신 때문에 죽은 남자 때문에 명문 여자대학교의 재학생이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자로 변한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