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김영애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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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장미희
김영란
(1981)

황정아
김영애
(1982)


이경진
(1983)
김혜수
(1996)

김영애
(1997)


황신혜
(1998)
심은하
(1999)

김영애
(2000)


원미경
(2001)


김영애
金姈愛 | Kim Youngae

<colbgcolor=#878787> 출생
1951년 4월 21일
경상남도 부산시 영선동
(現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사망
2017년 4월 9일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체
160cm, 53kg, A형
학력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취미
볼링, 스키, 골프
특기
서예
종교
불교(법명: 문수월)개신교[1]
소속사
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2]
링크

1. 개요
2. 배우 활동
3. 출연작
3.1. 드라마/시트콤
3.2. 영화
4. 예능
5. 라디오
6. 뮤직비디오
7. 내레이션
8. 광고
9.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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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

2. 배우 활동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지인의 제안을 받고 눈에 띄는 미모 덕분이었다. 데뷔 직후부터 별다른 무명생활 없이 인기를 끌었다. 다만 데뷔 초에는 미모의 배우들이 흔히 겪는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3] 이장호 감독은 1974년 작 별들의 고향 감독을 맡으며 김영애를 여주인공으로 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드라마 연기자가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으므로 김영애는 출연하지 못했다.[4]
이렇게 잘 나가다가 1975년 유부남 음악가와 교제를 하다가 간통죄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후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이대로 연예계에서 사라지나 했으나, 당시 세상을 뒤흔든 초대형 스캔들 박동명 사건으로 많은 여자연예인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5] 또한 사건에 연루된 여러 연예인과는 달리, 상대가 재력가와는 거리가 먼 가난한 밴드마스터였기 때문에 '이 얼마나 순수한 사람이냐!' 며 오히려 김영애를 동정하는 여론이 생겼고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게 된다. 첫 번째 결혼은 이 유부남과 했는데, 1990년에 이혼했다. 그리고 1998년 심리치료사와 재혼을 했다.

사회적 물의(간통. 현재는 형법상 불법은 아니다.[6])로 한동안 쉬었다가 복귀한 1980년대 이후에는 주연보다 여러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연기력 또한 출중하기 때문에, 선역과 악역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중견 여배우 중 한 명이었다. 단아하고 깔끔한 동양적인 미모임에도 젊은 시절부터 시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오히려 사극에서 희빈, 왕후, 대비 등 높으신 분들, 특히 최종 보스나 흑막으로 나올 때면 그 포스가 어마어마하다. 냉혹한 재벌 회장부터 정이 깊은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까지 두루 어울리는 전천후 배우였다. 특히, 명성황후역만 3번을 맡아서 중년세대에게는 민비 전문배우로 각인이 되었고, 그 연기력도 출중해 김영애의 민비 연기는 이후 명성황후의 캐릭터를 구축한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오뚜기식품의 전속모델로 활동했다. 즉 김자옥 후임의 오뚜기 전속 모델이었던 것. 이 시기 연규진과 함께 오뚜기식품의 각종 광고에 나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황토팩 사업을 시작해서 크게 성공했으나, 이영돈 PD가 프로듀싱하는 KBS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 중금속 함유"라는 보도 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사업을 접었다. 이후 이혼[7]까지 하고 본인도 췌장암에 걸리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2007년 법원에서 유해성이 없다고 판결되어 누명을 벗었다. 다만 KBS 제작 팀은 허위 보도에 대해 "중금속이 있다는 보도내용은 허위지만,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8]고 판단된다며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사 소송에서 이영돈 측이 김영애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남동생만 셋이나 되는 집안의 장녀로 "늘 돈 때문에 동시에 여러 작품에 겹치기 출연을 해야 했다"며 "돈 걱정없이 연기를 하고 싶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황토팩 사업 실패로 인해 심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은 김영애는 결국 2012년에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던 그녀는 과거에 SBS좋은 아침》에 출연하여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촬영 당시 췌장암 투병 사실을 숨긴 채 촬영에 임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드라마 촬영 중 암 투병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 "쓰러질 때까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연기자의 자세이다." 라고 말했다. 《해를 품은 달》 촬영이 끝난 후에야 9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image]
유작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의 모습 (2017년)[9]
2015년 8월 《부탁해요, 엄마》에서 주인공 임산옥 역으로 캐스팅이 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였고, 그녀의 빈 자리는 동갑내기 배우 고두심이 채웠다. 1년 후 비슷한 시기에 복귀하여 2016년 8월 27일부터 2017년 2월 26일까지 54부작으로 방송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주연 최곡지 역을 맡아 연기하던 도중에 췌장암이 재발했다. 그녀는 드라마 시작 두 달만에 병원에 입원해야 했으며,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을 위해 병원에서 외출증까지 끊어가며 6개월간 약속한 50부 출연을 해내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인기에 힘입어 연장 방영이 결정된 후, 병세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드라마 종영 직전 연장 분량인 4회 분량은 출연하지 못하였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제작진은 마지막회에 그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자막을 내보낼 계획을 세웠지만, 그녀는 연기자로서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제작진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스스로 영정사진과 수의로 입을 고운 한복을 고르고, 장례절차 등을 모두 정해두었으며, 배우 인생을 돌아보는 마지막 인터뷰를 연합뉴스와 가지는 등 스스로 신변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2017년 2월 초 인터뷰에서 "이제 다 정리를 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췌장암 투병으로 촬영에 임하는 투혼을 보이던 김영애는 결국 2017년 4월 9일 오전 10시 58분 경 나빠질 대로 나빠진 췌장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도 66세 생일이 정확히 12일 앞이었다.[10]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4월 11일 유해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안장되었다.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과 영화 《판도라》는 그녀의 유작이 됐다. 다음은 고인이 요청하여 진행한 마지막 인터뷰이다.
2017년 5월 3일에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이때는 당사자가 사망한 지 오래라서 아들이 대신 상장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31일 2017 KBS 연기대상에서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2018년 1월 14일 MBC 사람이 좋다에서 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당시 중금속 보도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나중에는 약도 안 들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

3. 출연작


다양한 연기가 가능하고 그 스펙트럼도 매우 넓다. 한 없이 여리고 착한 어머니의 모습부터 냉정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여인의 모습도 무리없이 소화한다.
2000년 SBS 드라마 <파도>에서의 열연으로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출연한 KBS <황진이> 에서의 연기는 본인이 가장 아끼는 역할로 손꼽았을 정도의 명연기였다. (죽음을 앞두고 추는 마지막 춤사위가 백미) 2009년 영화 <애자>에선 죽음을 앞둔 시한부 연기를 선보여 대종상영화제 첫 조연상을 수상했다. 2011~2012년 MBC에서의 두 작품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로열 패밀리>의 공순호와 <해를 품은 달>의 대비 윤씨 역할이었다. 강렬한 악역으로 극을 압도하는 절정의 열연을 선보였다. 이후 2014년엔 영화 <변호인>에서의 연기로 대종상에서의 두 번째 조연상, 청룡에서의 첫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KBS와 법적 공방을 벌였기 때문인지 <황진이> 이후로 2015년까지 KBS에 출연하지 않았다. 2015년 KBS 주말극인 부탁해요, 엄마에 임산옥 역으로 캐스팅되며 복귀하는 듯 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하차해서 그 역할은 고두심이 대신 맡았고, 그녀의 마지막 출연작인 2016년 주말극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최곡지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뒤늦게 복귀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본인의 커리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건강 문제 때문에 억지로 외출증을 끊어 가면서 촬영했고,[11] 추가 촬영분인 마지막 4회분은 끝내 고사했다. 또한 드라마 촬영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하차할 때 제작진에게 자신의 을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입단속을 시켰다고 한다. 이후론 영정 사진과 한복, 장례 절차 등등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 뒤 2017년 4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

3.1. 드라마/시트콤


  • 1971년 수사반장 - 게스트
  • 1973년 민비 - 민비 역
  • 1974년 강남가족 - 둘째딸 영희 역
  • 1978년 행복을 팝니다
  • 1978년 청춘의 덫 - 노영주 역
1999년 리메이크작에서는 유호정이 맡은 배역.
특별출연. 태수 아역시절 출연. 태수 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기차역에서 들어오는 열차에 몸을 던지며 최후를 맞는다.
당시 '달려라 울엄마'를 끝으로 연기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으나, 이 작품의 연출자였던 김석윤 PD와의 인연으로 그의 차기 연출작에 특별출연 하였다. 지현우가 맡은 지PD의 엄마 역.
특별출연.
유작.

3.2. 영화


  • 1972년 섬개구리 만세 - 여교사 김선희 역 (주연) - 감독 정진우
  • 1975년 비녀 - 박근형, 제작 정진우
  • 1977년 설국 - 박근형
  • 1978년 비련의 홍살문
  • 1978년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 - 강주희, 남궁원, 윤일봉
  • 1979년 로맨스 그레이 - 최불암, 사미자, 감독 문여송
  • 1979년 돌의 초상 ㅡ 이낙훈, 한진희
  • 1979년 누가 이 아픔을 - 박근형
  • 1979년 깃발 없는 기수 - 하명중, 송재호, 감독 임권택
  • 1981년 빙점 81 - 남궁원, 감독 고영남
  •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 - 안성기 유지인, 임예진
  • 1981년 미워도 다시 한 번 81 - 남우 윤일봉
  • 1981년 반금련 - 이화시, 신성일
  • 1981년 깊은 밤 갑자기 - 윤일봉, 이기선, 감독 고영남
  • 1981년 겨울로 가는 마차 - 이영하, 김진규
  • 1982년 하와의 행방 - 신성일
  • 1982년 불바람 - 임동진, 안소영
  • 1982년 내일은 야구왕
  • 1983년 아내 - 한진희, 유지인
  • 1984년 장대를 잡은 여자
  • 1985년 장사의 꿈 - 임성민, 금보라
  • 1986년 비내리는 영동교
  • 1986년 겨울나그네 - 강석우, 이미숙
  • 1986년 이브의 건넌방 - 임동진, 나영희
  • 1987년 연산일기 - 유인촌, 김진아, 감독 임권택
  • 1987년 위기의 여자 - 신성일, 윤정희
  • 1988년 미리 마리 우리 두리 - 감독 고영남
  • 2003년 영어완전정복 - 영주 어머니 역
  • 2009년 애자 - 최영희 역
  • 2012년 내가 살인범이다 - 한지수 역
  • 2013년 변호인 - 최순애 역
  • 2014년 카트 - 순례여사 역
  • 2014년 현기증(한국 영화) - 순임 역
  • 2014년 우리는 형제입니다 - 승자 역
  • 2015년 허삼관 - 계화 엄마 역
  • 2016년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 DH그룹 회장 사모 역
  • 2016년 인천상륙작전 - 나정님 역
  • 2016년 판도라 - 석 여사 역
그녀의 영화 데뷔는 감독 겸 제작자 정진우에 의해 이뤄졌다. 정진우 감독은 우진필름이란 이름의 메이저 영화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영화계 거물이었으며 80년대 초 정윤희 주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연출했다.
고영남 감독과 김영애의 인연은 한국영화계의 호러걸작 깊은 밤 갑자기로 이어졌다. 이후 김영애가 주연에서 조연으로 위치가 바뀌었을 때 고영남 감독의 작품 미리 마리 우리 두리에 특별출연한다. 깊은 밤 갑자기는 지금까지도 그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한국 공포물의 명작으로 검색엔진에서 찾으면 최근까지도 계속 후기가 나오는데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다. 2010년대 기준으로 봐도 주요부위의 노출만 없다 뿐이지 후방주의를 해야 할 정도로 에로한 장면들이 있고 굉장히 충격적인 공포영화 줄거리이다. 정신착란 현상 또는 망상 증세를 보이는 여주인 역할을 김영애가 맡았는데 연기력이 볼수록 실감나서 걸작 반열에 올리는데 이분의 공헌이 매우 컸다. 아니, 그보다 김영애의 열연이 없었다면 고만고만한 저예산 영화가 되어버리고 걸작으로 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항목 상단에서 두 번째 젊은 김영애가 눈을 부릅뜬 모습이 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명장면이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전두환 신 군부 장권의 3S 정책으로 인해 한국영화계에 에로영화 바람이 불었고, 그에 따라 정윤희, 원미경, 이미숙, 이기선, 이보희, 나영희, 안소영, 선우일란 등 섹시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이 여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70년대 문예영화로 전성기를 맞았던 김영애 또는 하이틴 영화로 인기를 누렸던 임예진, 강주희 등의 여배우들은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길소뜸(1985)의 이상아처럼 반강제적으로 노출연기를 하는 경우라든지 강수연, 조용원처럼 이른 나이에 서둘러 성인 연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12][13]
1980년대 초중반부터는 조연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드라마 활동의 비중이 점차 높아진다. 1974년에 방영된 김수현 극본 MBC 드라마 수선화에 출연했으며 1978년 방영된 MBC 드라마 청춘의 덫에도 출연했으나 김수현 작가 극본 청춘의 덫은 시대 분위기상 드라마가 제대로 완결되지 못했고 청춘의 덫은 이후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뒤 심은하, 이종원, 전광렬 주연의 SBS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다. 1983년에 김영애가 출연했던 영화 아내는 이후 KBS 2TV에서 유동근, 김희애, 엄정화 주연의 52부작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82년에 방영되었던 KBS 1TV 드라마 풍운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았으며 1990년에 방영되었던 KBS2 드라마 버전 빙점에서 영화에 이어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4. 예능



5. 라디오


  • 1992년 KBS 《안녕하세요 황인용 김영애입니다》 DJ

6. 뮤직비디오


  • 2000년 왁스 - 엄마의 일기

7. 내레이션


  • 2012년 MBC 《MBC 스페셜》

8. 광고


  • 1978년 안국산업 파라법랑 (with 현석)
  • 1982년 마미손 마미손 고무장갑
  • 1985년 수협 수협예금
  • 1986년 공익광고협의회
  • 1986년 애경산업 뉴크린엎
  • 1986년 ~ 1993년 오뚜기
  • 2000년 동국제약 인사돌

9. 수상 내역


  • 1971년 제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우리읍내》
  •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민비》
  • 1982년 제1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야상곡》
  • 1987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 당시에는 KBS 탤런트 연기대상이었다. '사랑의 시작'이라는 작품으로 받았다.
  • 1989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일출》
  • 1996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사랑할때까지》,《컬러》
  • 1997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형제의 강》
  • 1999년 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파도》
  • 2000년 제27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파도》
  • 2000년 제3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파도》
  • 2000년 SBS 연기대상 빅스타상 《여자만세》
  • 2009년 제46회 대종상 여우조연상 《애자》
  • 2010년 제7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조연배우상 《애자》
  • 2011년 MBC 드라마대상 특별상 《로열패밀리》
  • 2014년 제11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여자조연배우상 《변호인》
  • 2014년 제23회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 《변호인》
  • 2014년 제51회 대종상 여우조연상《변호인》
  • 2014년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변호인》
  • 2015년 제8회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공로상
  • 2017년 제53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 2017년 제44회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 2017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3등급)
  • 2017년 제54회 대종상 특별상
  • 2017년 KBS 연기대상 특별공로상

[1] 불교계 언론인 법보신문기사도 난 적이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개종하였다. 유작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50회 출연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드라마 50회가 끝날때까지만 살아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하며, 발인식도 김영애가 다니던 교회 관계자들 참석하에 기독교식 예배로 진행됐다. #[2] 생전 마지막 소속사.[3] 모 방송사의 토크쇼 출연 당시 말하기를 ‘김영애 아동극 한다’ 며 정말 신랄하게 비판했다고.[4] 여기에 응모한 여배우 중 하나가 정윤희. 그러나 결국 안인숙이 무료로 출연하다는 전제하에 여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5] 조금 과장하자면 TV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 절반이 사라졌다.[6] 국가가 처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개인사 영역이기 때문에 형법상 간통죄가 폐지됐다. 물론 바람피는 건 여전히 빼도박도 못 하는 이혼사유라서 형사법원 대신 가정법원에서 멘탈과 재산을 탈탈 털리는 건 그대로이니 간통죄 없어졌다고 맘껏 바람 피워도 된다는 착각은 말자.[7]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남편으로, 당시 남편이 회사를 운영한 사장이었다.[8] 정당행위.[9] 건강이 악화된 이후의 모습으로, 건강했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다.[10] 김영애의 부고 소식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이영돈이 결국 김영애를 죽였다며 이영돈을 대차게 비판했으며, 이영돈이 김영애의 빈소에 와서 사과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자세한 건 이영돈 문서를 참조. 물론 끝끝내 빈소에 오지 않았다. 게다가 그로부터 2년 늦게 지나서야 사과했다는데, 이게 진정성이 의심되기도 한다.[11] 이 때문에 의료진들이 계속 만류했었다고 한다.[12] 물론 김영애도 에로성 성인 영화에 꽤 나왔다. 당시 성인 대상 로맨스/멜로 영화라면 스토리 흐름에 관계 없이 무조건 벗거나 남녀가 한 침대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와야 했다.[13] 당시에는 아청법이나 다른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홀랑 벗기고 정사 연기를 시켜도 제작자나 감독이 잡혀갈 일이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당시 법으로도 잡아 넣을 수 있었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넘어가곤 했다. 일단 정부 시책이 3S였기 때문에, 정부 시책에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뭘 해도 되던 어두운 시절의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