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간 빼먹기
- 범죄적 요건은 살인죄, 사체등손괴·유기·은닉·영득죄, 약취, 유인 및 인신매매의 죄 참고.
1. 개요
한센병 환자들이 문둥병에 특효약이라는 어린아이 간을 먹기 위해 보리밭이나 수풀, 골목 등에 숨어있다가 혼자 다니는 어린애들을 납치하고 다닌다는 괴소문이다. 80~9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이야기이자 실제 사건이다.
2. 연혁
2.1. 조선
근데 사실 이 도시전설은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다. 전설 수준이 아니라 실제 사례가 있었으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어 실록에 실릴 정도였다. 실록 상의 기록을 보면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다만 시작이 한센병(나병, 천포창)이 아닌 성병으로서, 아래 기록된 음창은 악성 매독이다.
다음은 당시 실록의 기록이다.
이때에 경중에는 사람을 죽여 그 쓸개를 취하는 자가 자못 많았는데 혹 잡혀서 죄를 받은 자도 있었다. 이때 사서(士庶)들이 주색(酒色)을 좋아하다가 음창(淫瘡)에 걸린 자가 많았다. 한 의관이 이르기를 '사람의 쓸개를 가져 치료하면 그 병이 즉시 낫는다' 하므로 많은 재물로 사람을 사서 사람을 죽이고 그 쓸개를 취하곤 하였다.[1]
이보다 앞서 경중의 동활인서(東活人署)·보제원(普濟院)·홍제원(弘濟院) 및 종루(鐘樓) 등처에 걸인들이 많이 모여 떨어진 옷을 입고 바가지를 들고 가두에 걸식하는 자가 누누이 있었는데 4∼5년 이래 노중(路中)에 한 명의 걸인도 없었다. 이는 대개 쓸개를 취하는 자에게 죄다 살해되어서이니 걸인들을 살해하기는 매우 쉬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 없어지자 다시 평민에게 손을 뻗쳤기 때문에 여염 사이에 아이를 잃은 자가 자못 많았다.- 명종 32권, 21년(1566 병인 / 명 가정(嘉靖) 45년) 2월 29일(신묘) 첫째 기사.
길거리에 걸인이 단 한명도 없을 만큼 전부 몰살되고 산에는 배가 갈린채 나무에 묶인 시체들이 널려 있어 법까지 제정했다는 묘사를 보면 당시 이런 살인이 극에 달했고 공포도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배를 갈라 사람을 죽인 자를 체포하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공사로 만들게 하라" 하였는데 이는 경연관의 아룀에 의한 것이다. 이때 경외의 사람들이 인육(人肉)과 사람의 간담(肝膽)을 창질(瘡疾)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흉악한 무리들이 소아(小兒)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유괴함은 물론이고 비록 장성한 남녀라도 혼자 길을 가는 경우에는 겁략하여 모두 배를 가르고 쓸개를 꺼내었는데 이는 그 쓸개를 팔면 많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무에 묶여 배를 갈리운 자가 산골짝에 잇달아 있으므로 나무꾼들이 나무를 하러 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법을 만들어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게 한 것이다.
- 선조 10권, 9년(1576 병자 / 명 만력(萬曆) 4년) 6월 26일(정해) 첫째 기사
한편으로는 정작 한센병 환자들은 아무 짓도 안 하는데 한센병 환자의 가족들이 이 이야기를 믿고 진짜로 어린아이를 납치, 살해한 사례도 있다. 실로 도시전설이 사람 잡았다고 볼 수 있겠다.
2.2. 현대
더불어 그저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의 일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근, 현대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바 있다. 1933년에도 대구에서 이귀술이라는 나병환자가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어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또한 자세한 병명이나 지역, 연도를 적지 않았지만, 30년 넘게 경찰 국과수에 몸 담은 최상규가 쓴 '범죄의 추억'이라는 책자에서도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 대하여 쓴 바 있다. 1980년대 시골에서 10대 초반 여자아이가 행방불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시체는 간 및 여러 부위가 도려져 없어진 채였기에 사람들은 소문으로 나돌던 그런 사건이라 하여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결국 마을에 살던 30대 불치병 환자가 그런 소문을 믿고 벌인 사건임이 드러났다고.[2]
더불어 해외에서도 한센병이 아닌 다른 질병, 불치병 특효약이라고 어린아이를 잡아먹은 실화가 있다. 태국에서도 1950년대에 이런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는데, 당시 태국 군경은 애꿎은 소수 원주민들이 저지른 짓[3] 이라고 여겨 마을로 가서 들쑤셨다가 결국 한참 뒤에야 신고로 잡을 수 있었다. 다만 이마저도 당시 법원에서 한 진술과 범행이 발생한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검거된 범인은 정신병원에 갇혔다가 죽었는데 시체를 박제하여 지금도 태국 방콕에 있는 시리랏(Siriraj)종합병원 부속 의학&법의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4] 이후 2020년에 이 시체는 60년만에 화장 처리되게 된다. 관련 기사
동남 방언 중에서 무언가 행동이나 결정 전 굉장히 주저하는 모습을 보일 때 "문디(한센병자) 아(아이) 잡아먹듯"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또 북한에서는 한센병은 아니지만 박명식이라는 자가 간경화를 치료하기 위해 점쟁이가 사람의 간 특히 젊은 사람의 간을 먹으면 된다고 하자 무려 10여명 이상의 청소년과 20대 여성을 신포일대에서 납치하여 장기를 적출한 사건이 있다. 박명식 항목 참조.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은건 아니지만 유영철의 경우 간을 믹서에 갈아마셨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3. 효과?
하지만 치료는 커녕 몸을 망치는 지름길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간을 먹고 한센병이 나았다는 사례가 나온 적이 없으며, 먹이사슬 최상위 입장인 인간의 체내에는 각종 기생충이나 세균, 중금속 같은 각종 유해물질이 많이 축척되어 있다. 당연히 간도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섭취자와 음식이 같은 종이면 감염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4. 창작물에서
간을 빼먹는다는 얘기는 구미호의 이야기와도 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서정주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문둥이>가 여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소설 동의보감에도 작중 인물인 김민세(삼적대사)가 한센병 환자에게 아들 길상이를 잃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허준에서는 이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처음 보면 상당히 무섭지만, 다시 보면 슬픈 이야기라는 느낌도 든다.
이우혁이 쓴 단편 '손가락'에서도 등장한다. 미래가 촉망되던 엘리트 의사에게 한센병이 발병하여 처음엔 내 병은 내가 알아서 고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치료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아이에게 손을 대고 만 의사의 아내 시점에서 쓴 단편이다. 끔찍한 소재지만 읽다 보면 꽤나 슬퍼진다. 하지만 배경이 현대임에도 한센병이 불치병으로 나오는 것은 의학적 오류. 지금은 항생제 맞고 먹고 하면 몇 년 안에 완치되는 허접한 병이다(...).
[1] 소설 임꺽정(林巪正)에서는 음창(성병) 걸린 부유층 자제들이 서민의 아이들을 잡아다 죽여 장기를 취해 약으로 쓰고 버린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간이 아니라 쓸개로 정확하게 기술하였다.[2] 해당 책자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일대에서 1985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현장검증 당일에 사건 현장이었던 둔내면 현천리와 우천면 하궁리 일부 지역을 비롯한 반경 12km 일대에 10여분간 돌풍과 폭우가 쏟아져 마을 8곳을 초토화시켰는데, 집 100여 채를 파괴하고 경운기를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었으나 희한하게도 마을 중심부를 비껴가면서 인명피해는 전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이 돌풍을 두고 죽은 소녀의 원혼이 가져온 재앙이라고 믿었다 하며,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던 것은 죽은 소녀가 평소 온순하고 착했기 때문에 사람을 해치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이야기는 1997년 SBS 토요미스테리 극장에서도 다루어졌다.[3] 동남아 많은 나라들이 소수 부족을 차별해왔기에 한센병 환자와 같은 편견이 많았다.[4] 여긴 기이하고 다양한 인체표본이 대량 전시되어 있어서인지 관광지로 매우 유명하다. 이 범인 이름은 Si Quey라는 남자인데 이 박물관에 시체표본이 되어 국제적으로 유명한 전시물이 되었다. 이름으로 검색하면 다수의 이미지를 볼 수 있으나 방부처리로 검게 변한 시체표본 자체가 으시시한 데다가 낡은 박물관에 관리도 엉성하게 되어 있어 더욱 섬뜩하다. 여러 모로 꽤 공포스러우니 검색 전 주의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