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모토 다케아키

 

1. 개요
2. 생애
3. 대중 매체
4. 주요 경력

榎本武揚
1836~1908
[image]

1. 개요


에조 공화국을 세운 인물. 대정봉환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자 막부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에조 공화국을 세운다. 애매하지만 '''일본 역사상 유일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2. 생애


막신(에도 막부의 가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흑선내항 이후 해안 방어의 중요성이 높아져서,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19살때 에조(홋카이도) 해안가를 일주했다.
186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오란다(네덜란드)에서 5년간 포술, 항해술 등을 배웠다. 유학 생활 중 국제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귀국하니, 일본의 정세는 급변해 있었다. 대정봉환으로 에도 막부는 무너졌고, 무진전쟁이 시작됐다. 네덜란드에서 발주한 최신식 군함 카이요우마루로 사츠마 해군과 싸웠다.
그러나 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오사카 성에서 신하와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치자 크게 실망했다.
1868년 11월 4일, 에노모토가 하코다테를 점령한 뒤에 영국과 프랑스의 공사를 태운 군함들이 하코다테를 방문했다. 이들은 에노모토와 회견을 가진 뒤,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은 각서를 보내왔다. “일본 국내 문제에 우리는 중립을 지킨다, 교전 단체로서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상의 정권(Authorities De Facto)’으로는 인정한다.”라는 것이었다. 이 ‘사실상의 정권’이란 말은 이후 에조 공화국을 논할때 두고두고 떡밥이 되었다.
에노모토는 투표에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투표권이 없었고 그를 따른 군인들만 투표권이 있었다.
에조 공화국초대 대통령이 된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이후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이 생명처럼 보관하고 있던 국제법 책인 만국공법이 소실될 것을 우려하여 메이지 정부의 토벌군사령관인 구로다 기요타카에게 이 책을 보내 소중히 간직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로다는 이 책을 보고 에노모토를 국가에 필요한 인재라고 여겨 그를 설득하여 항복시키고, 이후 에노모토 사형을 주장하는 타 중신들과 대립하며 심지어 삭발까지 해가면서 에노모토 구명 운동에 투신한다. 결국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4년간의 투옥 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었으며 이후 구로다의 요청으로 홋카이도 개척사로서 정치에 복귀하게 된다. 이후 구로다는 막부 가신들의 대부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1]
그 후 메이지 덴노 밑에서 각종 대신직과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자작 작위까지 받았다. 1908년에 사망했다.

3. 대중 매체


[image]

4. 주요 경력


'''에조 공화국의 역대 지도자(대통령)'''
공화국 수립

'''1대 에노모토 다케아키'''

공화국 멸망
'''일본의 역대 체신대신'''
(신설)

'''에노모토 다케아키'''

고토 쇼지로
'''일본의 역대 문부대신'''
(겸임)오야마 이와오

'''에노모토 다케아키'''

요시카와 아키마사
'''일본의 역대 농상무대신'''
구로다 기요타카
고토 쇼지로

'''에노모토 다케아키'''

이노우에 가오루
오쿠마 시게노부(겸임)


[1] 이런 인연 때문인지 훗날 구로다가 정치적, 인격적 비난을 받고 정계로부터 외면당한 끝에 쓸쓸히 병사했을 때 자신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장례를 수행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