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켐퍼

 



[image]
'''이름'''
Edmund Emil Kemper III
'''국적'''
미국
'''출생지'''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
'''신장'''
206cm
'''체중'''
113kg
'''IQ'''
145[1][2]
'''체포'''
1973년 6월 24일
'''범죄'''
살인
'''범행기간'''
1964년 - 1973년
'''상세범행'''
2명의 조부모 살해(미성년자 시절)
8명의 연쇄살인과 시간(친모 포함)
'''처벌'''
종신형
'''사상자'''
10명

그냥 어떤 느낌일지 알고 싶었어요.[3]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애를 보면, 한 편으론 난 그녀와 대화하고 데이트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막대에 꽂혀 있는 그녀의 머리통은 어떤 모습일까?" [4]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조부모 살인
2.3. 아타스카데로 수용 생활
2.4. 출소 이후
2.5. 연쇄 살인
2.6. 체포 후
3. 대중매체


1. 개요


미국연쇄살인범으로, 1970년대 초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 지역에서 활동하며 여섯 명의 젊은 여성들을 살해 후 시간했다. 주로 근처 대학의 여학생들을 죽였으므로, 흔히 여대생 도살자(Co-ed Butcher)로도 불린다. 또한 그와 안면이 없었던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그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그리고 친어머니 또한 그에게 살해당했다. 켐퍼는 거대한 신장과 높은 지능지수[5] 로 인해 유명해졌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948년 12월 18일,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드먼드 에밀 켐퍼 3세.
켐퍼의 부모는 사이가 매우 나빴으며 늘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결국 그들은 그가 아홉 살이었을 때 이혼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아버지를 좋아했던 켐퍼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어했으나, 결국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누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켐퍼는 어렸을 때부터 이웃집의 고양이를 학대하거나 동생의 인형을 칼로 난도질하거나 찢어놓는 등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반복했다. 9살에는 결국 고양이를 칼로 난자해 죽인 뒤, 그 사체를 마당에 묻어두었다가 나중에 머리만을 잘라 옷장 안에 숨겨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하기도 했다. 또한 동생과 가스실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시늉을 하거나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집행당하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는 평생 자기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부모의 큰 키를 물려받은 켐퍼는 15세에 이미 193cm에 달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이어진 그의 폭력적이고 기이한 행동 탓에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한지 1년 뒤에 켐퍼의 침실을 지하로 옮기고 그가 가족들이 자는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버리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켐퍼가 그의 누나나 여동생에게 해를 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켐퍼의 어머니인 클라넬은 문제가 많은 막장부모였는데 알콜중독자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켐퍼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아들을 강제로 지하실로 옮기며 감금하는 학대를 저질렀다. 켐퍼에 주장에 의하면, 그녀는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깎아내리고 비난하거나 비웃었다. 켐퍼가 아버지를 매우 닮은 탓인지 전남편과 비교하며 그의 지나치게 큰 키를 조롱했다. 또한 그의 외모를 비하하며 어떤 여자도 그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켐퍼는 어머니와 늘 언쟁을 벌였고, 이런 심한 말싸움은 먼 훗날 켐퍼가 어머니를 살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프로파일러들은 켐퍼의 최종 목표가 처음부터 그의 어머니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6]
어린 시절 켐퍼는 영특했으나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켐퍼는 자존감이 낮았고, 사교성이 떨어져 학교에서 겉돌았으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눈에 띄게 큰 키에도 불구하고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괴롭힘을 당했으며, 가정에서도 어머니의 학대에 시달렸다. 나중에는 이로 인해 켐퍼가 갈수록 동물 학대 등의 반사회적인 성향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전술했듯 또래들이 하는 일반적인 놀이 대신에, 동생과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흉내를 내거나 전기 의자로 처형하는 '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문제는 그의 반사회적 성향이 이에 그치지 않고 동생이 갖고 있는 인형들의 머리와 팔다리를 모두 잘라놓거나, 이웃의 반려묘를 칼로 찔러 죽인 뒤 토막낸 사체를 옷장 속에 숨겨두는 데까지 악화된 것이다. 또한 남자아이들이 켐퍼가 좋아하는 학교 선생에게 키스해 보라고 놀려대곤 했는데, 나중에 누나에게 자신이 그녀에게 키스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통해 그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나쁜 가정사와 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인성이 막장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이성에 대해 비정상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주 극도로 폭력적인 몽상에 빠져 있었으나 상담교사를 비롯한 선생들은 그가 조부모를 살해할 때까지 그러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2.2. 조부모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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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의 에드먼드 켐퍼.
1962년에, 켐퍼는 어머니와의 갈등이 커졌고 나중에는 더는 어머니와 살고 싶지 않아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집을 나와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이미 재혼하여 아이까지 두고 있었고, 갑자기 찾아온 그를 껄끄러워했다. 켐퍼의 아버지는 어머니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으나 어머니의 거부로 결국 켐퍼를 받아들여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63년 그의 아버지는 조부모의 집에 켐퍼를 맡긴 채 떠나버리고는 두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으며, 이내 켐퍼는 조부모의 집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조부모의 집에서 살게 된 켐퍼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분노에 차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켐퍼는 조부모가 자주 잔소리를 하고 간섭한터라 조부모와도 크게 갈등했는데, 할아버지가 노망 난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에게 잔소리를 많이하는 할머니를 증오했다. 앞서 이미 형성되어 있던 여성에 대한 비정상적인 인식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인해 할아버지보다 자신한테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에게 그 분노를 쏟아낸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켐퍼는 조부모가 키우던 개를 밟아 죽이고, 매일 라이플로 새나 토끼 같은 소동물을 쏴죽이기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조부모와의 불화가 커졌고 그럴때마다 할머니는 켐퍼의 행동을 혼내는 한편, 켐퍼를 두려워하여 가방 속에 권총을 소지하고 다녔다. 그는 경찰에게 할머니가 곧 은행 털거라는 농담을 하면서도 할머니가 마치 어머니처럼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964년 8월 27일, 여느때처럼 사냥을 하려고 총을 챙기며 나가려는 켐퍼는 새를 쏘지 말라는 할머니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가볍고 짧은 말다툼이었으나, 할머니가 등을 돌려 멀리 걸어가자 켐퍼는 뒤에서 그녀를 총으로 쏘고 부엌칼로 세번 찔러 살해했다. 잠시 뒤 장을 보러 외출했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자,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를 총으로 살해하고 시체를 차고에 숨겼다. 조부모를 살해한 직후, 켐퍼는 겁에 질린 채 어머니에게 전화했고 어머니는 그에게 자수를 권했고 캠퍼는 경찰에 범행을 자백하며 자수했다.

2.3. 아타스카데로 수용 생활


체포된 켐퍼는 캘리포니아 소년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몇 가지 검사가 시행되었고, 그의 IQ가 145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재판에서 할머니를 왜 죽였냐는 물음에 단순히 할머니를 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고 답했다. 판사는 켐퍼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를 아타스카데로 주립병원[7]에 수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아타스카데로에서의 경험은 켐퍼를 갱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반사회적 성향과 폭력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아타스카데로에 수감되어 있었던 수많은 강간범들이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학적인 성적 환상을 키웠고 그들의 범행수법과 사후대처를 전수[8]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아타스카데로의 의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이는 켐퍼가 영리했고 겉으로는 모범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의사들과 병원 직원들이 켐퍼를 신뢰했고, 그가 정신병 감별 진단 기구들을 볼 수 있게 내버려 두었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에게 다른 죄수들의 진단을 감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머리가 비상했던 켐퍼는 총 28가지의 진단 기구를 모두 외워 의사를 속여넘겼으며 정신병이 치료되었다는 소견을 받고 정신병원에서 나오게 된다.

2.4. 출소 이후


켐퍼는 1969년 12월 18일, 자신의 21번째 생일날에 가석방되어 세상에 나왔다. 이때 전과는 말소되었으나 문제는 그에게 살 집이 없었던 것이다. 선택이라고는 켐퍼가 싫어하는 어머니와 사는것인데 아타스카데로의 의사들은 그가 어머니와 또다시 함께 있게 된다면 양쪽 모두에게 독이 될 뿐이라며, 켐퍼에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캠퍼는 집을 구할 돈이 없다보니 본인도 싫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결국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로 어머니와 약속하며 함께 살게 되었다.
출소 이후 켐퍼는 경찰 보조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너무 큰 키와 체중(206cm, 113kg)때문에 거부되었다. 하지만 많은 경찰관을 만나 경찰관들과 친하게 지냈다. 어머니 클라넬은 3번째 이혼 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사무보조 자리를 얻었는데, 이때 켐퍼도 그 대학의 커뮤니티 칼리지에 잠깐동안 참여했다. 켐퍼는 여기서 교통과 일자리를 얻어서 성실히 일하고 다녀 이때까지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던 중 맞은편 트럭에 의한 교통사고를 당해 왼팔을 다치고 만다. 1970년대 당싯돈으로 15,000달러라는 꽤 큰 보상금을[9] 받았지만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게다가 집에 머물던 켐퍼는 어머니의 알콜중독과 폭언으로[10] 인한 불화가 심했고 술에 취해 돌아온 어머니의 폭언을 듣고는 분노가 폭발해 자신이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살인을 저지르고자 범행을 계획한다.

2.5. 연쇄 살인


범행을 결심한 캠퍼가 차를 몰고 산타크루스의 산악지대로 향한 1972년 9월부터 그의 엽기적인 살인이 시작되었다.
그는 총과 칼을 준비해서 5명의 대학생과 1명의 중학생을 납치해 죽였다.[11] 그는 피해자들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토막낸 뒤 항문성교하기도 하고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머리카락과 피부, 치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 집으로 돌아온 캠퍼의 살인행각 마지막 피해자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 사라였다. 그는 망치와 칼을 들고 어머니의 침실을 찾아가 자고 있던 어머니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고 칼로 목을 그어 살해했다. 그리고 그 시체를 강간하고 머리를 자르고 입에 쓰레기들을 가득 채워넣었다. 켐퍼는 그동안 자신이 증오하던 어머니의 잘린 머리에 다트를 던지며 즐거워하고, 성대를 떼어 믹서기에 갈고, 머리가 없는 시체를 시간하는 등 끔찍하고 잔인한 행위를 이어갔다. 켐퍼는 어머니의 사체를 디스포저에 쑤셔넣은 후 통째로 갈아버리려 했지만 기계가 잘 작동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친구 사라까지 불러내서 살해했다.
끔찍한 살인들이 발생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경찰은 켐퍼를 의심하지 못했다. 사실 이는 켐퍼가 당시 일반적인 살인사건에서 용의자보다 계획적이고 철저하게 시체들을 처리하며 단서를 남기지 않았기에 수사를 난항에 빠뜨렸으며, 아예 용의선상에 올라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다리다 못한 켐퍼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던 것이다.'''(...)

2.6. 체포 후


처음 전화신고에서 경찰은 그저 그가 장난치는 걸로 생각해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에 켐퍼는 참을성 있게 과거 경찰관 일을 알아보던 중 친해진 산타크루즈 경찰서 경관의 개인번호로 전화해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며 어떤 방식으로 여자들을 죽이고 시간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때문에 놀란 경찰에서 자수한 캠퍼를 정식으로 체포하게 되었고 수사를 하면서 그의 범행에 경악한다.
법정에 선 캠퍼는 자신의 범죄행각을 모두 진술하였다. 이때 판사가 켐퍼에게 어떤 처벌을 받고 싶냐고 물어보자 캠퍼는 사형을 요구하며 '고문해서 죽여달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캠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2021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 주립 교도소에서 여전히 복역중이다.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교도소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으며 교도소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도 켐퍼는 교도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수인터라 1979년, 1991년, 2002년, 2007년, 2012년, 2017년에 가석방 될 기회를 얻었지만 본인이 모두 거절했다.[12]

3. 대중매체


미드 마인드헌터 시즌 1의 2화에 등장한다. 계속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주인공 일행이 연쇄 살인범의 심리를 연구하기 위한 주요 범죄자로 나와 꾸준히 언급된다.
[1] 15세. 캘리포니아 법정에서 측정. SD-15기준[2] 전세계 상위 0.15%였다.[3] 왜 친할머니를 죽였느냐는 물음에 대한 켐퍼(당시 15세)의 답변.[4] 아메리칸 사이코(영화)에서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이 이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에드 게인이 한 말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에드먼드 켐퍼가 한 말이다.[5] 인터넷 간이 테스트가 아니라 법원의 임상심리사와 진행한 웩슬러 지능검사에서 145를 기록한 것은 연쇄살인마라는 이슈를 떼어놓고 봐도 높은 지능이다. 조던 피터슨이 발표한 IQ와 직업연관성에 따르면 변호사, 회계사 등의 내로라하는 전문직이 IQ 116~130과 연관이 있으며 140이 넘는 사람은 최상위 분류에 속해 물리학자수학자, 철학자 등 지적능력을 통해 특정 분야를 개척하는 직종과 연관되어 있다.[6] "켐퍼가 끔찍한 살인 행각을 저지른 것은 한없이 증오하는 어머니에게 보복하려는 예행 연습에 지나지 않았다." -존 더글러스, <마인드 헌터> 중에서.[7]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병원. 정신이상 판정을 받은 범죄자들을 수용한다.[8] 예를 들자면 "여자를 강간했다면 훗날 경찰에게 신고하지 못하게 아예 죽여버리는 것이 안전하다." 실제로 잡범에 불과했던 초범이 수용소 등에서 다른 범죄자들에게 이것저것 배워 진짜 흉악범으로 변모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마약이나 도박 등 치료가 필요한 초범들마저 걸리지 않는 비법(...) 등을 사사하고 아예 중독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전문가들이 죄질에 따라 수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이 이것 때문.[9] 현재의 가치로 9만 달러에 달하는 거금이다.[10] 캠퍼가 집에 있는것과 전과를 들추어냈다. 이때문에 캠퍼는 어머니를 살해한 것을 경찰이 추궁했을때 "수십년 동안 나한테 불평을 늘어놓고 고함을 지르고 명령을 해댔으니 그렇게 당해도 싸죠"라고 답변했다.[11] 아이코 쿠(Aiko Koo)라는 한국계 소녀가 살해되었다.[12] 여기서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너 나갈래? 라고 선택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가석방 심사 대상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심사과정에서 탈락할 게 뻔하다고 본인이 심사 받기를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