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셀 페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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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sel Pacer'''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포드 모터 컴퍼니 산하의 과거 브랜드인 에드셀에서 1958년에 출시되어 한 해 동안 판매한 차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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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도어 하드탑 사양
일부 포드 차량 및 에드셀 레인저와 플랫폼을 공유했으며, 2,997mm짜리 휠베이스를 갖춘 에드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해 더 좁고 짧은 편이었다. 기본형 차량이었던 레인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편이었는데, 기본형에 탑재되는 장비부터 접이식 시트 등받이, 나일론 장식 천, 컬러 키가 적용된 고무 바닥 매트, 여분의 스테인리스 스틸 외장 및 내부 장식 및 윈도우 몰딩 등이 적용되었고 히터는 92달러[1] 와 95달러[2] 어치 라디오가 탑재되었으며, 이외에도 에어컨이 옵션[3] 으로 , 타코미터 역시 같은 사양으로 적용되었다.
차량의 등장 시기가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황금기었기에 링컨, 머큐리 및 포드에서 각각의 플랫폼을 따로 만들어 활용하였고 당시 에드셀 차량들은 주로 링컨 및 머큐리의 플랫폼을 활용하였다. 생산은 미국 뉴저지 주 에디슨 공장, 미시간 주 웨인 공장, 조지아 주 애틀랜타 공장,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 공장과 캐나다 온타리오 주 오크빌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파워트레인은 빌리저, 버뮤다, 라운드업 등 왜건 사양에 탑재된 303마력의 5.9L FE형 V8 엔진이 기본으로, 345마력의 6.7L MEL V8 엔진이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기본 사양으로 3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으나 여기에 칼럼 마운트 기어 셀렉터가 적용된 3단 자동변속기는 옵션으로 적용되었으며, 스티어링 휠 허브에 운전 상태를 조정하는 버튼을 배치했으나 이후 다량의 문제가 발생해서 1958년형 이후 자취를 감춘 '텔레터치' 자동변속기가 231달러[4]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1957년 브랜드 런칭과 함께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포드 모터 컴퍼니의 잘못된 전략으로 인해 마케팅 부분에서 큰 타격을 입었으며, 총 20,988대가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서 판매되었는데, 미국 시장 컨버터블이 1,876대, 4도어 세단 6,083대[5] , 하드탑 6,139대[6] , 4도어 하드탑 4,959대[7] 가 판매되었다. 가격대는 2,700달러[8] ~2,993달러[9] 로 다양한 가격대를 자랑하였다.
1958년형 에드셀 차량 중에서 가장 잘 팔렸음에도 그 해를 끝으로 단종되었다. 또한 윗급 차량인 에드셀 코세어 역시 '텔레터치' 변속기 등 문제로 인해 같은 연식을 끝으로 단종되었다. 그럼에도 차량의 이름은 후에 다른 회사에서 사용하였다. 이는 카이저-프레이저 사의 '헨리 J' 차량 이름에 붙었던 코세어도 마찬가지였다.[10]
'''Edsel Pacer'''
1. 개요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포드 모터 컴퍼니 산하의 과거 브랜드인 에드셀에서 1958년에 출시되어 한 해 동안 판매한 차량이었다.
2. 상세
2.1. 1세대(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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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도어 하드탑 사양
일부 포드 차량 및 에드셀 레인저와 플랫폼을 공유했으며, 2,997mm짜리 휠베이스를 갖춘 에드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해 더 좁고 짧은 편이었다. 기본형 차량이었던 레인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편이었는데, 기본형에 탑재되는 장비부터 접이식 시트 등받이, 나일론 장식 천, 컬러 키가 적용된 고무 바닥 매트, 여분의 스테인리스 스틸 외장 및 내부 장식 및 윈도우 몰딩 등이 적용되었고 히터는 92달러[1] 와 95달러[2] 어치 라디오가 탑재되었으며, 이외에도 에어컨이 옵션[3] 으로 , 타코미터 역시 같은 사양으로 적용되었다.
차량의 등장 시기가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황금기었기에 링컨, 머큐리 및 포드에서 각각의 플랫폼을 따로 만들어 활용하였고 당시 에드셀 차량들은 주로 링컨 및 머큐리의 플랫폼을 활용하였다. 생산은 미국 뉴저지 주 에디슨 공장, 미시간 주 웨인 공장, 조지아 주 애틀랜타 공장,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 공장과 캐나다 온타리오 주 오크빌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파워트레인은 빌리저, 버뮤다, 라운드업 등 왜건 사양에 탑재된 303마력의 5.9L FE형 V8 엔진이 기본으로, 345마력의 6.7L MEL V8 엔진이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기본 사양으로 3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으나 여기에 칼럼 마운트 기어 셀렉터가 적용된 3단 자동변속기는 옵션으로 적용되었으며, 스티어링 휠 허브에 운전 상태를 조정하는 버튼을 배치했으나 이후 다량의 문제가 발생해서 1958년형 이후 자취를 감춘 '텔레터치' 자동변속기가 231달러[4]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1957년 브랜드 런칭과 함께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포드 모터 컴퍼니의 잘못된 전략으로 인해 마케팅 부분에서 큰 타격을 입었으며, 총 20,988대가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서 판매되었는데, 미국 시장 컨버터블이 1,876대, 4도어 세단 6,083대[5] , 하드탑 6,139대[6] , 4도어 하드탑 4,959대[7] 가 판매되었다. 가격대는 2,700달러[8] ~2,993달러[9] 로 다양한 가격대를 자랑하였다.
1958년형 에드셀 차량 중에서 가장 잘 팔렸음에도 그 해를 끝으로 단종되었다. 또한 윗급 차량인 에드셀 코세어 역시 '텔레터치' 변속기 등 문제로 인해 같은 연식을 끝으로 단종되었다. 그럼에도 차량의 이름은 후에 다른 회사에서 사용하였다. 이는 카이저-프레이저 사의 '헨리 J' 차량 이름에 붙었던 코세어도 마찬가지였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