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롤 가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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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인 Misty를 연주하는 모습. 벨기에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녹화한 영상이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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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롤 가너
ERROLL GARNER
'''
'''분야'''
'''음악'''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6363 Hollywood Blvd.'''
풀네임은 에롤 루이 가너(Erroll Louis Garner), 미국재즈 피아니스트.
1921.6.15~1977.1.2
1. 생애
2. 음악 성향
3. 여담


1. 생애


피츠버그에서 태어났고, 음악을 즐기던 부모의 영향으로 형 린튼과 함께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다만 악보 읽는 법과 음악 이론 교습을 병행하며 정석적으로 피아노를 배운 린튼과 달리 순전히 음반으로 들어본 곡들을 암기해서 연주하는 식으로 연주법을 익혔다. 부모는 린튼처럼 배웠으면 해서 레슨 선생을 데려오기도 했지만, 에롤은 자기가 하던 대로 화음과 가락을 즉석에서 마구 풀어내 연주하는 식으로 연주했기 때문에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이렇게 다소 야매스럽게(...) 연주법을 익히기는 했지만, 절대음감의 소유자에 기본적인 기교도 상당히 좋았고 기억력도 비상해서 일곱 살 때 피츠버그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캔디 키즈라는 그룹의 피아니스트로 참가해 공식 데뷰할 수 있었다. 열한 살 무렵에는 유람선의 선상 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색소포니스트 르로이 브라운과 듀엣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에롤은 형 린튼의 이름값에 다소 가린 채였기 때문에, 1944년에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뉴욕으로 옮겨갔다. 뉴욕에서는 베이시스트 슬램 스튜어트 등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비밥 뮤지션들과도 활동했지만, 비밥 자체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연주 실력은 출중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밴드들에서 사이드맨으로 활동했고, 1947년에는 찰리 파커와 함께 음반을 녹음하는 등 음반 취입도 시작했다.
사이드맨이 아닌 리더와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 무렵이었는데, 1954년에 비행기 여행 중 떠오른 가락을 그대로 기억해 작곡한 발라드 넘버인 Misty가 이듬해 자신의 재즈 트리오 앨범 Contrasts에 포함되어 발매되자 대박을 쳤다. 이 곡은 이후 조니 버크가 가사를 붙인 노래로도 애창되었고, 재즈 스탠더드로 인정받아 리얼 북에도 올라갔다.
1955년 9월 19일에는 캘리포니아의 카멜바이더시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베이시스트 에디 칼훈, 드러머 덴질 베스트와 트리오로 공연했는데, 이 공연은 가너의 매니저 마사 글레이저가 녹음하기는 했지만 녹음 상태가 영 좋지 않은 탓에 음반은 못낼거야 아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테이프로 재즈 애호가 윌 손버리가 사적인 음반을 만든 것이 콜럼비아 레코드의 재즈 부서 담당 조지 어배키언의 손에 들어갔고, 어배키언은 들어본 뒤 '녹음은 별로지만 분명히 음반화할 가치가 있다' 고 판단해 바로 출반되었다. 이 앨범이 Concert by the Sea였고, 곧 가너의 최대 히트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이후에도 주로 트리오 등 소편성 그룹을 이끌며 인기를 끌었고, 1964년에는 BBC의 재즈 프로그램 Jazz 625에 출연하기도 했다. 1977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피츠버그의 홈우드 묘지에 안장되었다.

2. 음악 성향


생애 항목에도 언급했지만 평생 악보를 읽거나 쓸 수 없기는 했지만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대신 곡을 만들 때 녹음기를 늘 지참하고 다녔고, 녹음한 뒤 다른 편곡자나 동료 음악인들이 채보해 연주한 것을 검토하는 식으로 악보를 만들었다. Misty의 경우에도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번뜩 떠오른 악상을 잊어먹지 않기 위해 가는 내내 흥얼거리다가 착륙 후 바로 호텔로 가서 로비 피아노로 연주한 것을 녹음해 완성한 것이라는 에피소드도 있다.
재즈 외에 클래식 음반도 상당히 많이 들었고, 또 들어본 곡은 바로 피아노로 연주하며 연습했기 때문에 당대 재즈 피아니스트들 중 기교적으로는 상당히 숙련된 아티스트로 통했다. 또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왼손의 빠른 연주에도 능해서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처럼 화려하게 연주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생전에 선배 패츠 월러아트 테이텀에 비견될 만한 아티스트로 손꼽히기도 했다. 다만 손이 한 옥타브를 겨우 짚을 정도로 작았고, 키도 158㎝에 불과한 단신이었기 때문에 피아노 의자에 전화번호부를 더 올려놓고 앉아서 연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익히다시피 했기 때문에 연주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기로 유명했는데, 왼손은 정확히 정박을 짚지만 오른손의 가락은 다소 늦게 도입하는 식의 연주로 유명했다. 이런 연주는 듣기에 상당히 불균형하고 불안해 보였지만, 이렇게 긴장을 준 뒤에 바로 제 속도와 박자로 복귀하면서 절묘하게 완급 조절이 이루어지는 특유의 스윙 스타일을 완성했다. 아예 가너의 이런 연주 스타일을 빗댄 'Behind the Beat' 라는 용어까지 있을 정도다.
연주 중에 상당히 행복한 듯한 표정으로 짓는 미소로도 유명했고, 간혹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연주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가장 행복감 넘친 연주를 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다만 연주 기교와 음악적 역량에 비하면 재즈 사조에 특별한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유들유들하고 상업적이었다던가 '칵테일 피아니스트' 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비판하는 이들도 가너 특유의 다채로운 음색 연출이나 출중한 연주력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주로 솔로나 트리오~쿼텟 등 소그룹 연주에 능했고, 곡에 따라 라틴 타악기를 연주하는 퍼커셔니스트를 별도로 기용해 당시 유행하던 라틴 재즈를 연주하기도 했다. 음반사들 중에는 스트링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 빅 밴드 등의 대규모 합주와 협연하는 식의 앨범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가너는 이런 대규모 연주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 명반으로 손꼽히는 가너의 앨범들도 대다수가 솔로 혹은 트리오 연주 음반들이다.

3. 여담


  • 특유의 화려하고 독특한 연주 스타일 덕에 후배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다소 모방하기 힘든 아티스트였지만, 엘리스 라킨스와 아마드 자말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가너의 연주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버클리 음대에서 김동률과 동문 수학했던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히로미도 어릴 적부터 가너와 오스카 피터슨의 연주를 카피하며 연습했다고 밝혔다.
  • 악보를 못읽은 대신 기억력은 상당히 좋았는데, 미국을 방문해 공연한 소련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의 연주회를 보러 간 뒤 돌아와 길렐스가 연주한 곡들을 다시 연주하고 싶다면서 피아노에 앉아 그 날 공연된 곡들의 거의 전부를 그대로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