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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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13일 전인 1985년 6월 10일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एयर इंडिया फ़्लाइट 182
Air India Flight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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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 6월 23일, 캐나다 몬트리올을 출발해 런던을 거쳐 인도 뉴델리로 가던 에어 인디아 182편 보잉 747-237B 항공기가 시크교 과격파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폭탄에 의해 아일랜드 남부 해안 상공에서 폭파되어 탑승자 329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
2020년의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추락 사고 이전까지 가장 많은 캐나다인 희생자를 낸 항공사고로 기록되었다.
2. 사고기 정보
기종: Boeing 747-237B
시리얼 넘버: 21473/330
초도 비행 일자: 1978년 6월 19일 (사고 당시 기령 7년)
총 비행 시간: 23,634 시간
총 이, 착륙 횟수: 7,525 회
엔진: Pratt & Whitney JT9D-7J 4기 (5th Pod자리[1] 에 JT9D[2] 1기 더 적재)
별명: '''카니스카 황제'''
3. 사건 개요
3.1. 배경
먼저 이 테러를 제대로 알려면 인도의 복잡한 종교 구도와 분쟁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시크교나 인도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인도의 다른 종교 집단처럼 시크교 사회는 분리에 따른 폭력과 고난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시크교 독립 국가인 칼리스탄을 원하는 독립 운동이 대두되었다.
이때 캐나다로 들어오는 시크교도 이민자가 급증했으며 이들 가운데서는 칼리스탄 독립운동과 관련된 테러조직인 바바르 칼사의 리더와 조직원이 된 남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탈윈드 싱 파마르[3] , 아자브 싱 바그리, 리퓨다만 싱 말릭 그리고 인더르지트 싱 르얏이었는데 이들은 처음부터 테러 조직을 구성하지는 않았다. [4]
그러나 1978년 인도 바이사크에서 열린 축제 때 종파 간 충돌이 일어나 시크교도 13명이 살해된 것을 계기로 바바르 칼사의 노선은 점차 테러 노선을 걷게 된다. 그 가운데 1981년 인도 펀자브 주 루디아나 시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는데 그 과정에서 파마르는 경찰관을 사살하고 도망치면서 결국 인도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캐나다로 건너오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인도에서는 1984년 인디라 간디 총리의 명으로 블루스타 작전이라 하여 시크교 독립운동의 본산이자 시크교 성지인 아칼탁트(황금 사원 안에 있는 건물) 공격이 개시되어 바바르 칼사의 힌두교 세력에 대한 증오심은 더더욱 불을 당기게 된다. 이때 파마르가 인더르지트 싱 르얏을 만나 폭탄 제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상 이 사건의 도화선이 된다. 거기에 같은 해 10월 31일에는 인디라 간디 총리가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피살당했다. 이에 힌두교도들이 시크교도들을 무차별로 2천여명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으나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아 시크교도들은 보복테러를 감행하게 된다.
3.2. 사건의 시작
파마르가 인더르지트 싱 르얏을 만나면서 이들의 계획은 구체성을 띄어갔다. 르얏이 확보한 폭발물로 던컨의 외딴 숲에서 폭발 테스트가 수시로 실시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일본 산요의 라디오인 FMT 611K 모델을 구매하여 여기에 폭발물을 저장하게 되었다.
6월 20일 이들은 항공권 구매에도 성공했다. 처음에는 밴쿠버발 토론토행 캐나다 퍼시픽 항공[5] 86편과 밴쿠버발 도쿄행 캐나다 퍼시픽 항공 3편이었고, 최종적으로는 도쿄발 방콕행 인도항공 301편과 몬트리올발 런던행 인도항공 182편도 예약되었다. 캐나다 퍼시픽 비행편의 수하물이 인터라인으로 에어 인디아 항공기에 실리게 될 것을 노린 것이다.[6]
이들의 계획은 최종 단계에서 저지될 찬스가 있었으나 불행히도 막지 못했다. 처음에 연결편인 캐나다 퍼시픽 항공 탑승수속에서 직원이 인도항공 181/182편의 예약 여부를 의심하여 체크인을 거부했으나 동행인을 데리고 오겠다며 화를 내자 직원은 어쩔 수 없이[7] 허가했고 체크인과 수하물 탁송에 성공하였다. 181/182편의 연결편인 캐나다 퍼시픽 60편은 폭발물이 실린 샘소나이트 슈트케이스만 실린 채 이륙하여 토론토로 운반되고, 토론토에서 인도항공 보안 직원이 폭발물 계수기로 해당 수하물을 검사했으나 그대로 통과하여 181편에 그대로 실린다.
몬트리올에서 182편으로 바뀌어 이륙하고 사건 당일 아일랜드의 섀넌(Shannon) 공항 관제소 레이더에 3편의 비행기가 떴는데 이들이 고도가 달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 나중에 2편만 뜨는 것을 보고 182편을 호출했으나 응답이 없어 긴급 사태임을 깨닫고 182편이 사라진 위치의 수색을 요청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 선적 화물선 로렌시안 포리스트호가 항해 도중 무수한 파편과 수많은 시신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하면서 결국 182편의 사고가 확인된다.
4. 조사
사건이 일어난 아일랜드 남부 해역에서 잔해와 시신들이 수거되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검시한 결과 항공기가 공중에서 분해되었음은 금방 판명되었다. 이제 항공기가 왜 공중에서 분해되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비행기록장치 회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사건의 실마리는 금방 찾을 듯 했다.
하지만 비행기록 장치의 음성 기록과 비행기록을 분석한 결과 오히려 사건의 실마리는 더 복잡하게 되었다. 만약 항공기에 이상이 있었다면 음성 기록장치에 녹음된 비행 승무원들의 대화에서도 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인데 음성 기록장치의 내용은 오히려 그냥 비행 승무원들의 일상적인 대화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는 즉 항공기에 어떤 강력한 폭발에 의한 감압이 발생했고 이는 비행 승무원들조차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급속하게 상황이 진행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게 가능한 것은 2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화물칸 도어 이탈로 인한 급격한 감압, 그리고 또 하나는 누군가가 고의로 설치한 폭탄인데 이 중 후자를 뒷받침하는 의혹이 캐나다에서 제기된다.
182편 승객 중 타지 않았던 승객[8] 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이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닌 범죄사건이며 타지 않았던 승객이 관련되었다는 내용이었으며 캐나다 경찰을 통해 제기되었다. 이는 즉 누군가가 수하물만 182편에 탁송하고 정작 본인은 탑승하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조사가 진행될수록 이러한 수법으로 누군가가 182편에 고의로 폭발물을 반입했다는 의혹은 점점 힘을 싣게된다. 나리타 공항 수하물 폭파사건도 처음에는 인도항공과는 무관한 사건이었으나 도쿄로 폭탄을 운반하는데 이용되었던 캐나다퍼시픽항공의 경우도 누군가가 타지 않았던 것이 밝혀지면서 점차 무관한 사건이 아님이 드러나게 된다.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파편들을 분석하면서 처음으로 폭탄이 터졌을 때의 흔적을 확인하고 결국에는 폭탄이 실린 수하물의 위치까지도 밝혀냈으며 폭발물을 위장하는데 역할을 한 해당 튜너의 판매 경로도 추적하면서 처음으로 르얏이 폭발물 관련 혐의로 체포되는 등 테러 용의자들이 캐나다에서 체포된다.
5. 사건의 여파와 교훈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수하물 검색 강화와 동시에 수하물과 해당 수하물의 승객이 모두 탑승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그 전에도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 시도가 몇번 있었기에 검색 절차가 있긴 했지만 수하물로 위장한 위험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례가 없었기에 항공 보안에서 제대로 허를 찔린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얼마간은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결국 팬암 103편 폭파 사건이라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규정이 강화되었다.
팬암 103편 폭파 사건 항목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종종 이륙 지연이 일어나는 이유인 비행기에 타지 못한 승객의 수하물을 다시 빼는 절차도 이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인도 측은 이걸 빌미로 시크교를 비난했다가 시크교 과격파가 테러집단이라는건 부정 못 하지만 시크교도들이 무더기로 학살당한걸 외면한 인도 정부도 잘난 거 없다는 비판을 같이 듣어야 했다. 다만 저 시절은 민간 항공기 테러에 대해 '''그나마''' 관대했던 1980년대였기 때문이고 9.11 테러 이후인 21세기에 테러를 했다면 시크교가 독박을 썼을 것이다.[9]
[1] 미작동 수송용 엔진 외부 장착 위치, 2번엔진과 동체 사이에 위치[2] 에어캐나다의 B747이 엔진 고장을 일으키자 긴급공수 단기리스로 빌려준 후 반환 과정에 있었음[3] 그는 1992년에 인도에 구금되던 중에 의문사했다.[4] 전부 ‘싱’이라는 성을 쓰는데 이건 남성 시크교도들의 공통사항이다.[5] 1987년 퍼시픽 웨스턴 항공과 합병해 캐나디안 항공이 되었으며, 이후 2001년에 에어 캐나다와 합병하였다.[6] 도쿄로 운반되어 방콕행 에어 인디아 301편에 연결될 예정이었던 또 다른 폭발물은 나리타 공항에서 운반 도중 폭발하여 수하물 운반원 2명이 사망하였다. 이것이 나리타 공항 수하물 폭발 사건(成田空港手荷物爆発事件)이다.[7] 당시 탑승 수속하려던 승객들이 약 30명 가량 밀렸다고 한다.[8] 물론 이름은 가명이었으며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9] 참고로 테러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외면받고 몰락한 집단이 스리랑카 타밀족. 다만 타밀족은 공항 습격이나 비행기 폭발(그나마 여객기 폭발은 없었다) 말고도 은행 폭발에서 다른 비무장 타종교인까지 마구잡이 학살하면서 테러 말고도 다른 점으로도 까일거리를 엄청 만들었고 이슬람이나 기독교인 피해자들이 분노해 불교가 다수인 싱할라족이랑 손잡고 타밀족을 보복살해하고 2009년 스리랑카 내전 말기 스리랑카 정부군의 타밀족 반군 지역 무력 토벌에 찬성하는 일도 벌어졌다. 시크교도들은 이 테러 이후 다른 테러를 자제하기라도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