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47
1. 제원
2. 개요
보잉에서 개발한 장거리용 대형 여객기며 장거리용 대형 여객기의 베스트 & 스테디 셀러로 국제선 여객기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이때문에 붙여진 별명은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y)이다. 서양에선 항공기, 배,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들을 여성형으로 지칭한다. 비행기가 개발되어 하늘을 처음 나는 초도비행을 처녀비행이라고 하기도 하며 동형의 함선 및 파생형 함선과 항공기들을 자매함 및 자매기라고 하는 것은 물론, 비행기가 착륙하는 걸 "There she comes"라 말한다. 하지만 확대해석하여 하늘의 왕은 '''A380''', 여왕은 보잉 747 이렇게 보기도 한다. 물론 하늘의 여왕이란 별명은 A380이 출시하기 한참 전에 붙은 별명이다. 오늘날 국제여객항공업을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면서 아울러 세계경제성장의 일익을 담당했던 그야말로 역사적인 항공기이다.
현재는 팬 아메리칸 항공[7] 에서 시작해서 대한항공[8] 까지 이어온 그 기나긴 역사를 마무리짓고 보잉 777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고 있다.[9]
세계 최초로 환태평양, 대서양 횡단, 세계일주 노선을 운항하고 본격적인 제트기 시절을 열었던 '''항공 산업의 전설인 팬 아메리칸 항공의 설립자''' 후안.T.트립의 '''모두의 항공기'''[10][11] 라는 정신의 마지막 단계로서 만들어진 여객기자 동시에 일본항공의 상장폐지와 팬암의 파산에 영향을 끼친 기종이기도.[12]
이외에 점보라는 별명도 종종 쓰였다. 다만 보잉은 이 점보라는 별명을 탐탁치 않게 여겼는데, 자칫 크다는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747은 느린 비행기라는 인상을 가질까 봐였다고[13] . 사실 747은 등장 당시 여객기 중에는 상당히 빠른 축에 속했다. 영문 위키페디아에 의하면 2010년 현재 스펙상의 순항속도는 747-400 기준 Mach 0.855로 에어버스와 보잉의 여객기 중 가장 빠른 것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최고속도는 A380의 Mach 0.96에 이어서 Mach 0.92로 2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지금도 747-8은 마하 0.91이라는 최고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여객기들 중에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다닌다. 단, 이들 순위는 콩코드기는 제외된 순위이다.
현재는 가장 거대한[14] 여객기 타이틀을 에어버스의 A380에게 넘겨주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백전노장으로서 대형 여객기 클래스를 대표하는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이에 있어서는 A380과 서로 간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A380도 최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한 대형 여객기이나, 747은 1969년에 처음 초도비행을 하여[15] 반세기에 가까운 기술 축적과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747과 A380은 각자 경쟁하는 위치이지만 둘 다 대형 장거리 여객기를 대표하는 쌍벽이자 아이콘임에는 변함이 없다[16] .
1969년 2월 9일, 초도비행에 성공하였고 1970년 취항했으며, 세계 최초의 양산형 광동체 여객기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현역이며 계속 개량형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술되었듯이 여객형은 결국 단종되었고, 수요가 나오고 있던 화물기도 2022년에 단종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하늘의 여왕은 1969년 초도 비행으로부터 53년의 기나긴 세월 끝에 2022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되었다.[17]
3. 개발사
747 전 시리즈의 설계 팀장이며 최신모델인 747-8 역시 이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한다. 1921년생으로 연세가 무려 2016년 기준으로 95세였으며 미국 현지시간으로 2016년 8월 30일 사망하였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보잉에서 747-8의 개발 감수를 하는 등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보잉의 디자인과 설계 고문으로서 활동했다고 하니, 가히 항공업계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이자 민항기 분야의 켈리 존슨#s-1이라고 불릴 만하다.
보잉 747의 시작은 1961년 더글러스사의 C-133 카고마스터와 록히드사의 C-141 스타리프터를 대체하고 더 큰 화물을 옮길 수송기를 만들 미 공군의 '''CX-HLS'''(Cargo Experimental, Heavy Logistic Support) 사업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록히드와 더글러스,제네럴 다이나믹스,마틴 같은 회사들이 참여하였고 당연히 B-52와 C-135 같은 걸출한 폭격기와 수송기를 만들었던 보잉도 '''모델750'''으로 참가 하였다.
미공군의 요구는 최소 800Km/h의 속도와 86톤 이상급의 대형 화물을 운송하는것이였다. 이에 대형 화물의 선적을 용의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선정된 3사의 제작사들 [18] 은 각종 방안을 생각해 내게 되는데, 더글러스는 기수 앞 부분이 조종석 부분과 함깨 통째로 열리는 구조를 채택했고, 록히드는 비행기의 상부부분을 척추가 튀어나오듯이 위로 약간 올려 1.5층 구조로 만들게 되었고, 이 1.5층 구조에 중간과 뒷부분은 승객실이나 화물실로 만들었고 앞 부분에 조종석을 설치하여 아래 기수에 위로 열리는 도어를 달아 선적에 용의하게 하였다. 한편 보잉은 조종석을 아에 2층으로 위로 올리게 하여 동체 전체를 화물실로 사용할수 있게 하였고 원할한 석적을 위해 기수부의 측면으로 열리는 도어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모델 750의 동체모습은 우리가 아는 747과 비슷한 2층 조종석에 뒤통수가 있는 형태가 되었다. 물론 군용수송기 특정상 선적을 용의하기 위해 랜딩기어가 짧다는것과 지상의 이물질을 방지하기 위해 주익이 고익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이러한 모델 750의 모습은 747의 시초라고 할수 있겠다.
이렇게 록히드사의 제안과 보잉사의 모델 750이 경쟁을 하게 되었다[19] . 록히드는 높이 제한이 있는 대신에 화물을 더 많이 실을수 있었고 보잉은 록히드보다 화물을 덜 실었지만 록히드의 1.5층 구조보다 더 높은 화물실을 가지고 있어 록히드사의 것 보단 화물 크기에 제한이 덜하다는 점이 있었다. 결국 CX-HLS사업에서는 록히드가 86톤의 수송 요구조건보다 훨신 높은 122톤의 화물 수송을 수송할수 있다는 점이 채택되어 록히드가 최종승리 하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에도 활약하는 록히드 C-5 갤럭시가 탄생하게 됐다.
이렇게 보잉은 C-5와 군 수송기 경쟁에서 떨어진 루저였지만 군 수송기 경쟁에서 떨어진 뒤 개발해 둔 기초 설계[20] 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미국 팬암 항공사의 당시 사장이었던 후안 트리프(Juan Trippe)가 자신의 친구이자 보잉사의 사장인 윌리엄 M. 앨런(William M. Allen)에게 1960년대에 항공여행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DC-8과 707보다 큰 여객기를 염두에 두고 있던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 해둔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747 프로젝트는 팬암은 회장 주안 테리 트립이 보잉 회장인 윌리엄 M. 알렌과 1965년 여름휴가를 알래스카행 낚시 휴가를 함께 보내며 미리 선약되었으며 이때 처음 B747이 언급된다. 이후 1966년 보잉의 50주년 선물로 팬암은 5.25억 달러치 당시 역사상 최대 단일 주문이었던 [21] 25대의 B747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때 팬암은 B747 최고 기술자였던 조'셔터에게 온갖 갑질은 다하게 되는데, 팬암은 항공계의 VVIP로서 B747의 기본 외형부터 사양까지 모두 결정하였다. 이렇기에 조'셔터와 잡음이 있어 월리엄에게 최고 기술자 교체를 요구한 적도 있다. 동체 설계를 2층 협동체냐 1층 광동체로 제작하냐가 문제 였는데 셔터는 비상시 안전 문제 때문에 광동체를 원했다.[22] 셔터는 팬암에게 광동체 설계를 밀어 붙이기 위해 자신보다 타협을 잘한다는 최고 내부 디자이너를 동체의 너비와 같은 길이의 실과 함께 팬암 본사에 보내어 허락을 받고 목업으로 확인 사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팬암은 화물기도 염두해둠에 따라 군용 수송기였던 모델 750처럼 기수부로 화물을 원할하게 선적할 수 있게 2층에 콕핏이 있는 기수부만 2층 설계를 바꾸게 하였고 이에 따라 여객용 버전 뒤쪽은 라운지로 설계가 바뀌게 되었다. 이후 항공 및 보잉 역사학자들이 이를 역사상 최대 단일 항공사가 한 항공기 설계에 관여한 사건이라 하였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잉 및 항공업계에 없을 일이라고 칭송하였다. [23]
상당히 거대한 기체라, 기존에 킹 카운티에 있던 보잉의 공장이 이 크기를 감당할 수 없어서 에버렛에 새로 공장을 지었을 정도였고 이러한 일 끝에 747은 보잉사에서 여객기로 개발에 착수 및 완료하여 팬암에게 첫 인도되기 시작했고 여객기 산업에 엄청난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생산된 보잉 747기들중 팬암으로 갔던 양산 초도 기체들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퇴역 후에 박물관으로 모셔져야 할 가장 가치있었던 양산 1호기와 초도상업운항기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한편 보잉사와 함깨 CX-HLS 사업에 모델 750의 엔진공급사로 참가했다가 떨어져 낙담하던 프랫 앤 휘트니도 747의 성공에 덩달아 엔진을 공급하게 되어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이 747의 엔진이 프랫 앤 휘트니 JT9D 엔진으로서 747뿐만아니라 767,DC-10,A300같은 민항기에도 쓰이게 되는 베스트셀러 엔진이 되었다.
4. 특징
4.1. 초대형 광동체 여객기의 대명사
에어버스의 A380이 나오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여객기의 타이틀을 '''37년'''간 지키고 있었다.[24] 간혹 이 '세계 최대의 여객기'라는 명제를 착각해서 '세계 최대의 비행기' 또는 '세계 최대의 제트기'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련/우크라이나 안토노프사의 An-225가 세계 최대의 비행기이자 수송기, 제트기이다. 날개의 폭만 따지면 하워드 휴즈가 제작했던 H-4 Spruce Goose라는 목재 프로펠러기가 조금 더 넓지만, 차마 이 비행기가 날았다고 말하기가 민망하다.[25] 자세한 크기의 비교는 An-225 문서 참조.
4.2. 최초의 2층 구조
제트 여객기 최초로 2층 구조[26] 를 기본 사양으로 출시하여, 머리에 '뒤통수'가 있어 보인다. 2층은 대개 조종실[27] 과 특실[28] 로 사용된다. 넉넉한 덩치 덕에 이코노미석 위주로 빡빡하게 채워넣었을 경우 5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울 수 있으며,[29][30] 민수 시장에서는 100톤이 넘는 거대한 적재량으로서 화물기의 제왕 자리에 올라 있다. A380-800F의 개발 취소는 747 화물기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조차 불가능케 한다.
4.3. 입과 같은 기수부 도어 (화물기 버전)
747이 2층 구조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747의 설계가 원래 대형 화물의 원활한 선적을 위한 군용수송기였던 만큼 C-5처럼 기수를 통째로 문짝으로 쓰기 위해서 조종실을 2층으로 높였기 때문이다. 물론 상기했듯 뒤통수가 생긴 점이 화물용으로도 대용량 적재에 효과를 거뒀고 여객용으로 쓸 때에도 의외의 효과를 거뒀다.[31] 뒤통수가 생긴 덕에 화물기 버전에선 기수부를 도어 형태로도 여닫을 수 있게 되었다.
747 화물기 버전(개조버전 제외)이나 C-5의 경우 기수부의 도어를 여는 모습이 사진으로도 적지 않게 남아있는데 마치 입을 벌리듯 열린다. 이는 화물을 실을 때 머리부분 도어가 열리는 A300-600ST 벨루가나, 허리가 열려버리는 보잉 377구피와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32] 이런 입벌리듯 열리는 도어는 대용량의 화물을 적재할 때 효과를 많이 거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항덕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걸 747이 입을 벌린다고 묘사한다.
일례로 에어프랑스는 1986년에 기수부 도어의 특징을 광고에 활용했다. 원본 게다가 자신들의 747화물기를 큰 새로 표현한 데다 "먹이를 주는 것"이라는 멘트로 광고했다. 부제목에서 "Our Big Birds can be fed even at night 우리의 큰 새는 밤에도 먹을 수 있습니다." 라고 쓰여있으며, 광고 오른쪽의 설명 본문에서도 "Ready to Feed your shipment to One of our big birds. 당신의 화물을 우리의 큰 새에게 먹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캐세이퍼시픽 항공도 캐세이퍼시픽 카고 홈페이지에 747이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사진을 걸어두고 있다.
이런 기수부 열리는 점에 있어서 기수부를 약간 열어 웃는 듯 보이는 것을 747의 미소라고 한다. 747 smile 이라고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심지어 1974년부터 루프트한자는 747의 웃음을 마케팅에 활용했다. 광고원본1광고원본2[33] 70년대에도 저런 발상이 있던 것으로 보아서 747의 미소는 꽤 유서깊은 소재였던 듯. 자칫하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장면을 절묘한 광고효과로 사용한 셈. 최근들어도 저런 사진이 루프트한자 엽서나 컵받침에 사용되고 있다.
재미있는 특징이긴 하지만, 이런 게 조종사들이나 항공사 직원들에게는 거의 탐탁지 않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대형 화물을 운송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기수에 달린 문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부연하면, 기수의 도어를 사용할 경우 동체 뒷부분부터 화물이 적재되는데, 이때 조작에 착오가 있는 경우 무게중심이 흐뜨러지면서 항공기가 뒤로 기우뚱하는 사고도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수부 도어는 대용량 수송의 용도가 아니고서는 보통은 선호되지 않는 옵션이다.
Boeing Converted Freighter, 즉 민항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한 버전과 콤비기 등은 기수가 열리지 않는다.[34]
4.4. 고양력 플랩
747 개발 이전까지 민간 항공시장을 주름잡던 보잉 707, 더글라스 DC-8에 비하여 덩치가 두 배 이상 커졌기 때문에 당시 공항의 수용능력에 포함되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 덕에 보잉 727에서 잘 써먹은 3단 고양력 장치(플랩)를 적용하여 이/착륙 거리를 대폭 줄였다고 한다. 단, 보잉 747SP는 중량 경감을 위해 1단 고양력 장치(플랩)을 적용했다.
4.5. 조종석의 발전
-400형 이전의 모델(-300형까지)들을 '747 클래식'으로 분류, 아날로그 조종석이 특징이며 항공기관사를 포함한 3명의 운항승무원이 탑승한다.
그러다 -400형에 들어와서 환골탈태를 했다. 이때부터는 항공기관사 없이 기장/부기장 2인 승무로 운항이 가능해진다. 때문에 747-400은 항공기관사라는 직업을 사라지게 한 상징적인 기체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여러 장비도 최신 전자 장비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8형에 와서 최종진화를 한다. 가장 큰 특징은 기장석/부기장석 좌우에 장착된 디지털 차트 모니터.[36]
이외에도 보잉사 최초로 조종석에 INS를 기본 옵션[37] 으로 장착하고 출고되는 등 덩치뿐만 아니라 기술력 측면에서도 상당히 혁신적인 여객기이다.
5. 형식
- 일반형 : 보잉 747-100, 보잉 747-200, 보잉 747SP, 보잉 747-300, 보잉 747-400, 보잉 747-8
- 특수 사양 : 보잉 747/특수목적용
6. 현황
747은 1969년 첫 생산 이후 2016년 12월 지금까지 1,528대 생산된 보잉의 효자 기종으로서, 현재는 28대의 주문만 남아있다. 다만 4발기의 인기가 사그라지고 연료 효율을 중시하는 항공기의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 아메리칸 항공과 델타 항공 등의 미국 항공사들은 아예 747을 모두 처분[38] 하고 보잉 777로 대체하였다. 게다가 신형 보잉 747-8의 주문은 여객기 -8i와 화물기 -8F를 합쳐도 2005년 말부터 2010년까지 5년간 100대를 겨우 넘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로 인해 보잉에서도 수주 부진으로 인해 충분한 주문이 없을 경우 생산 중단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를 밝혔으며[39] '''결국 2017년 8월 1일 전 세계 최후의 여객형 747[40] 이 대한항공에 인도되며 여객기로서의 747은 48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단종되었다.'''[41]
747을 많이 보유하는 항공사에게 저주가 내려지는 듯하다. 팬암은 무리하게 747을 운용하다가 파산하였고[42] , 일본항공 또한 영국항공과 더불어 747 최대 운용 회사로 꼽혀 왔으나 2009년 파산, 법정절차, 상장폐지를 당하고 말았다. 대한항공 또한 보잉 747-400을 21대나 사용 중이었지만, 구형 747도 많이 대파시킨[43] 흑역사가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나마 747을 잃은 경우가 단 한 건으로, 2011년의 아시아나항공 991편 추락 사고밖에 없다.
사실 747을 많이 운용하면 마가 낀다는 건 항공사의 경영이 문제가 있어서다. 747 같은 4발 대형기는 효율적으로 굴릴 줄 알아야 하는데, 팬암이나 JAL 같은 경우 이상한 곳에 747을 넣는 등 뻘짓을 꾸준히 한 결과 망해버렸다[44] .
대한항공은 기존의 낡은 B747-400을 A380과 B777, B787로 대체한 후, 이들을 화물기로 개조(BCF)하거나 매각할 것으로 계획하였다. 이제 대한항공의 747 여객기를 영영 못 보나 했더니, 아시아 최초로 747-8i를 도입한다고 밝혔으며 현재 운용 중이다[45] .
2015년 대한항공이 퇴역한 B747-400 2대를 델타 항공에 매각했는데, 델타가 이들의 부품을 뜯어서 스페어로 쓰고 싶은 의도인 듯하다.
대한민국 국내선 비행기는 대부분 보잉 737 계열의 협동체이지만, 예외적으로 서울-제주 노선에는 간혹 광동체인 A330가 다니고 있고 한때 B747-400이 다녔었다. 그만큼 서울 - 제주 노선의 수요가 많다 못해 넘쳐 난다는 증거. 그 외 청주 - 제주 노선에 대한항공이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산된 듯.
이는 제주 노선의 수요뿐만 아니라 747-400의 노후화와 화물 운송량 급증의 영향도 있다[46] . 국제선에 굴리기에는 너무 낡았고[47] , 무엇보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수도권에서 제주로 가는 배가 사라져 버렸다. 청해진해운은 인천 - 제주 노선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는데, 제주도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과 일부 택배를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로 수송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세월호는 침몰, 오하마나호도 청해진해운이 망해서 팔려나갔기에 수많은 화물들이 인천항에서 보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747을 투입한 것.
2020년 7월 2일에 보잉이 보잉 747을 2022년에 단종시킬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48] 이러한 보도가 여객기만 의미하는지 화물기까지 의미하는지는 추측이 오갔으나, 2020년 7월 30일에 보잉이 보도 자료를 통해서 '''모든 보잉 747 생산을 2022년에 완료'''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화물 수송기를 포함한 보잉 747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
7. 사건사고
초도비행을 하고 상용화된 지 반세기가 넘은 비행기이고, 또한 대형기이다보니 대형 사고를 친 이력이 매우 많다. 당장 747이 연루된 200명 이상이 사망한 항공 사건사고[49] 만 세어 봐도 10건이나 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조종사 과실이나 외부 요인에 의한 사고이며, TWA 800편이나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50] 사고처럼 기체 설계 결함으로 발생한 사고도 있다.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생산되고 팔린 기체이기에 비행기가 당할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사고를 겪었다.[51]
일단 주요 사고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1970년 9월 6일, 팬암 93편 납치 사건. 보잉 747의 첫 상각사고이다. 사망자 없음.
- 1973년 7월 20일, 일본항공 404편 납치 사건. 탑승자 중 납치범 1명 사망. 144명 생존(납치범 4명 포함).
- 1974년 11월 20일, 루프트한자 540편 추락 사고, 탑승자 157명 중 59명 사망, 98명 생존. 보잉 747기의 첫 사망사고.
- 1975년 6월 12일, 에어 프랑스 193편 화재 사고, 탑승자 394명 전원 생존.
- 1976년 5월 9일, 이란 공중급유기 추락사고, 탑승자 17명 전원 사망. 착륙을 위해 공항에 접근하다 번개를 맞았는데, 연료 탱크가 폭발해 왼쪽 날개가 떨어져 나가 그대로 추락했다.
- 1977년 3월 26일, 테네리페 참사. 양기 모두 보잉 747기였으며, 두 기체 탑승자 644명 중 KLM기에서는 탑승자 248명이 모두 사망하고,[52] 팬암기에서는 396명 중 335명이 사망하고 61명만이 생존했다. 총 583명이 사망해 세계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 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1978년 1월 1일, 에어 인디아 855편 추락 사고. 탑승자 213명 전원 사망.
-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탑승자 226명 중 15명이 사망하고, 지상요원도 1명 사망하였다. 211명 생존.
- 1982년 6월 24일, 영국항공 9편 사건, 탑승자 263명 전원 생존.
- 1983년 8월 4일, 팬암 73편 활주로 이탈 사고, 탑승자 243명 전원 생존. [53]
-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 1983년 11월 27일, 아비앙카 항공 011편 추락사고, 탑승자 192명 중 181명 사망, 11명 생존
- 1985년 2월 19일, 중화항공 006편 사고, 탑승자 278명 전원 생존.
- 1985년 6월 23일,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탑승자 329명 전원 사망.
- 1985년 8월 12일,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탑승자 524명 중 520명 사망, 4명 생존. 역대 단일 항공기 최다 사상자 발생 사고
- 1985년 12월 2일, 에어 프랑스 91편 활주로 이탈 사고, 탑승자 273명 전원 생존.
- 1986년 9월 5일, 팬암 73편 납치 사건, 탑승자 379명 중 21명 사망, 358명 생존.
- 1986년 11월 17일, 일본항공 1628편 사고, 탑승자 전원 생존.[54]
- 1987년 11월 28일,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 추락 사고. 탑승자 159명 전원 사망.[55]
- 1988년 12월 21일, 팬암 103편 폭파 사건. 탑승자 259명이 전원 사망하고, 지상에서도 11명이 사망해 총 270명이 사망했다.
- 1989년 2월 19일, 플라잉 타이거 라인 66편 추락사고. 탑승자 4명 전원 사망.
- 1989년 2월 24일,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화물칸 도어 탈락 사고. 탑승자 355명 중 9명 사망[56] , 346명 생존.
- 1989년 12월 15일, KLM 867편 사고.[57] 탑승자 245명 전원 생존.
- 1990년 8월 1일, 영국항공 149편 피랍 사건[58] , 탑승자 1명 사망, 384명 생존.
- 1991년 12월 29일, 중화항공카고 358편 추락 사고, 탑승자 5명 전원 사망.
- 1992년 10월 4일, 엘알 이스라엘 항공 1862편 추락사고. 탑승자 4명 전원 사망, 아파트에서 43명 사망. 총 47명 사망.[59]
- 1993년 11월 4일, 중화항공 605편 활주로 이탈 사고. 탑승자 296명 전원 생존.
- 1994년 12월 11일, 필리핀 항공 434편 테러 사건. 탑승자 1명 사망, 291명 생존.
- 1996년 7월 16일, TWA 800편 추락 사고. 탑승자 230명 전원 사망.[60]
- 1996년 11월 12일, 뉴델리 상공 공중충돌 사건. 탑승자 349명 전원 사망.[61]
- 1997년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62] 탑승자 254명 중 228명 사망, 26명 생존.
- 1998년 8월 5일. 대한항공 8702편 활주로 이탈 사고. 탑승자 395명 전원 생존.[63]
- 1999년 7월 23일, 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 탑승자 517명 중 1명 사망, 516명 생존(납치범 포함.)
- 1999년 12월 22일,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64] . 탑승자 4명 전원 사망.
- 2000년 10월 31일, 싱가포르항공 006편 사고. 탑승자 179명 중 83명 사망, 96명 생존.
- 2001년 1월 31일, 스루가만 상공 니어미스 사고. 양 기체 탑승자 677명 전원 생존.[65]
- 2001년 8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3830편 배수로 좌초사고. 탑승자 6명 전원 생존. [66]
- 2002년 5월 25일, 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사고. 탑승자 225명 전원 사망.
- 2004년 10월 14일, MK 항공 1602편 추락사고, 탑승자 7명 전원 사망.[67]
- 2008년 5월 25일, 칼리타 에어 207편 활주로 이탈 사고, 탑승자 5명 전원 생존. [68]
- 2008년 7월 7일, 센츄리온 카고 164편 추락 사고, 탑승자 8명 전원 생존, 지상에서 2명 사망. [69]
- 2010년 9월 3일, UPS 항공 006편 추락 사고, 탑승자 2명 전원 사망.[71]
- 2011년 7월 28일, 아시아나항공 991편 화물기 추락 사고, 탑승자 2명 전원 사망.[72]
- 2013년 4월 29일, 내셔널 항공 102편 추락 사고, 탑승자 7명 전원 사망.[73]
- 2017년 1월 16일, 터키항공 6491편 추락 사고, 탑승자 4명 전원 사망, 지상에서 35명 사망, 총 39명 사망.
- 2018년 11월 7일, 스카이리스 카고 4854편 활주로 이탈 사고,[75] 탑승객 4명 전원 생존
8. 초도/양산기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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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에서 최초로 제작하여 시험 비행을 할 용도의 기체였던 초도 1호기 N7470은 다행히도 보잉 필드 옆의 Museum of Flight에서 잘 보존되고 있다.
첫 번째 사진처럼 원래는 때가 타서 많이 더러웠 (...)지만 2014년 여름 재도색하여 두 번째 사진처럼 깔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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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1970년 즈음하여 공중급유기로 개조된 전적이 있다.[76][77] 1975년경 일반형으로 다시 개조되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 근처에 사는 사람이 퇴역한 보잉 747을 뜯어고쳐 호텔 하나를 건설했다. 이름은 점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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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0년대에는 라스베가스 맥카렌 국제공항 한복판에 버려져 있기도 하는 등[78] ,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행히 지금은 정태보존되어 편히 쉬고는 있다지만, 이래저래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셈.
최초 상용운항 기체인 팬암의 N736PA (cn 19643/11, Clipper Victor → Clipper Young American → Clipper Victor) 기체는 1970년 1월 22일 뉴욕-런던 간의 대서양 노선에 첫 투입된다. 뉴욕에서 런던까지 원래 첫 상업운항을 하려던 기체는 당시 닉슨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께서 이름까지 부여하신 N735PA (cn 19642/10 Clipper Young American → Clipper Victor → Clipper Spark of the Ocean)이 이륙전 활주로에서 초기 JT9D-3A[79] 의 고질적인 엔진 파이핑 문제가 발견되어 이륙하지 못하고 되돌아온다. 그래서 팬암은 보잉과 팬암의 이미지를 위해 N736PA를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이름과 테일넘버를 모두 N735PA의 것으로 변경해 상업운항을 한다.[80][81] 참 운없게도 그해 8월에 쿠바에 납치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82] 그래도 그 이후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잘 날아다니다가 여객 항공 역사상 최악의 참사의 주인공이 되어 항공기로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 끔찍한 참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박물관으로 모셔져야 했을 정말 역사적인 기체였던 이 N736PA도 잿더미가 되어 버렸기에 두고두고 잊힐 수 없는 항공기 참사로 기록된다.
747 2번째 기체인 N747PA(cn 19639/2, Clipper Juan T. Trippe)는 팬암으로 인도된 후 1993년 퇴역하여 남양주 호평동의 춘천 방면 경춘국도(46번 국도의 일부)[84][85] 옆에서 카페로 개조되어 운영되었다.[86][87] 카페 이외에도 냉면집[88] 등 다양한 업종으로 변경운영 되었으나 전부 망하고 관리를 전혀 안 한 상태로 곳곳에 때가 져 있는 처참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었다.이곳에 가면 그 당시 모습을 볼 수 있다. 항덕들이 이 기체를 항공박물관에서 인수해 달라는 청원을 여기저기에 보냈으나, 기체 자체의 인수&개수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다들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었고 제주 항공우주박물관이 긍정적으로 고려만 하고 있었지만...
국가에서 인수해서 제주 항공박물관이나 과천 국립과학관 등에 전시했다면 이런 초라한 꼴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비싼 인수 비용같은 여러 요인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긴하다. 그랬을지라도 이런 의미깊은 기체를 박물관에 잘 개수하고 보존했으면 이 기체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관람객들도 많았을 것이고 홍보효과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무관심한 태도가 후세에 좋은 유물로 남을 뻔한 기체를 날려먹은 셈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 완전히 고철로 팔린 것은 아니고, 기체 하단부가 대부분 녹이 심해 고철로 분해되고 특징적인 일부분만 짜깁기하여 기수부 외관만 그럴싸하게 복원한 채로 교회 건물로 사용되어왔다. 그리고 2017년 현재는 새로운 건물이 신축되어 '뷰티플랜드 항공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가 2018년초에 카카오 골프라는 골프연습장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고철로 팔려나가 짜집기된 상태인데다 정말 작은 규모이긴 해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는 하고, 대한항공과 유사한 하늘색 도색을 새로 한 채 녹슬어가는 신세는 면했다. 주소는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석실로 185-31 그러나 2020년 더이상 보존이 불가하여 스크랩됐다.
14번째 기체인 N738PA(cn 19645/14)는 인명사고는 아니었지만 1983년 상술된 팬암 73편 오버런 사고로 심각한 손상을 입어 폐기되었고 15번째 기체인 N739PA(cn 19646/15, Cilpper Maid of seas)는 잘 날아다니던 도중, 리비아의 보복성 테러로 인해 발생한 팬암 103편 폭파 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사고로 인해 팬암이 파산하였다.
그 외에도 다른 바리에이션 초도기들의 운명. 747-400 다음으로 기념비적인 모델인 보잉 747-200 프로토타입의 경우에는 1999년 스크랩 처리되었다.
월드레코드를 두 개나 갖고있던 보잉 747SP의 프로토타입(N533PA)[89] 도 유나이티드 항공이 1998년 스크랩 처리했었고, 보잉 747-300 프로토타입도 2001년 스크랩. 다만 747-300의 경우 굴리던 스위스에어가 망해서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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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100 프로토타입과 마찬가지로, 보잉 747-400 프로토타입은 델타 항공의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전시 이전 노스웨스트 항공이 운행하던 시절 추락 위기의 사고를 겪은 적도 있다. 사실상 747-400이 747중 가장 흥행한 형식이며 마지막 전성기를 누린 기종이었는데 이런 의미 있는 기체를 잃을 수 있던 상황이었다.
보잉 747-8i 프로토타입은 쿠웨이트정부 소속 전용기로 인도되었다.
보잉 747-8F 프로토타입(LX-VCA)은 카고룩스에 인도되어 열심히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화물 운송에 전념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도 종종 온다.
747 여객 최후기는 대한항공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2020년 3월 7일에 호놀룰루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운행한 후에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하여 주기장에서 쉬고 있다.
9. 둘러보기
10. 참고 링크
[1] 현재 이 기체는 보잉 필드 옆의 Museum of Flight에서 쉬고있다.[2] 보잉 777이 747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747은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777의 본래의 임무였던 소규모 장거리 여객수송은 보잉 787 드림라이너이 맡게 되었다.[3] 다수의 세계항덕들은 다른 B747들은 몰라도 HL7644만큼은 박물관에 모셔져야할 역사적인 귀한 유물이라며 후에 이 기체가 퇴역한 뒤에도 귀한 대접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대한항공이 이 기체를 퇴역시키거나 스크랩하는것에 극도로 예민하고 항상 예의주시 하고 있으며 은퇴하는 그날까지 안전하게 운항하길 소망하고있다. 실제로도 인류의 항공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종의 마지막 기체임을 생각하면 박물관에 모셔져야할 물건인 건 암묵적인 사실이다. 만약에 이 항공기를 대한항공에서 계속 관리한다면 정석비행장에 잠들어있는 대선배 '''HL7463''' 옆에 모셔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대한항공의 첫 747과 마지막 747이 같이 모셔지는 것이다'''. 설령 대한항공이 이 기체를 포기한다 해도 NASA박물관이나 보잉필드 옆 박물관에 잠들어있는 '''B747 초도기''' 옆이나 다른 항공우주 박물관에 귀하디 귀한 유물로 잠들 것이다. 아니면 국립항공박물관 인근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쪽에 항공기를 둘 만한 장소가 없다...[근황] 2020년 3월 6일,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착륙한 이후로는 코로나19로 운항이 힘들어지자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서 쉬고 있다. 가끔 정비를 위해 엔진 시동을 켠 뒤 유도로만 돌아다닌다.[4] 1클래스 단일 표준 배열 시[5] 최대 탑재 시[6] 747SR 한정[7] N736PA, B747-100[8] HL7644, B747-8i[9] A340의 경우 보잉에서 내놓은 777이라는 확실한 적수에게 졌다면, 747은 딱히 경쟁 항공기에 의한 손실보다는 대형 4발기를 멀리하는 21세기 항공시장이 죽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술의 발달과도 관련이 있는데 더욱 강력한 추력과 안전성을 높인 여객기용 엔진을 개발하는 회사들의 노력으로 인해 쌍발 엔진 민간여객기라고 해도 더 이상 위험하지도 않고 중대형 크기의 여객기용 엔진으로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 많은 승객을 탑승하고서도 먼거리를 커버할 수 있다는 장점과 적은 연료이면서도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으로 인해 747의 수요가 낮아지게 된 것이다.[10] Everybody's Aircraft[11] 그리고 이는 사실로 이어졌다. 세계여행, 이민, 해외출장등 해외로 나간 사람치고 747 타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고 할 정도로 독보적이면서 만인의 항공기로 발전한 기체가 747이었다.[12] 팬암이 망한 진짜 이유는 747 자체가 아니라 쓸데없는 노선에도 747을 투입해서이다. 이는 일본항공 역시 마찬가지여서 아예 국내선 전용 단거리 747 모델까지 특별 주문해서 쓸 정도로 747빠였다.[13] 다만 '점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득을 본 것도 사실인데 더 많은 승객을 수용할 수 있어서 관광업을 국가의 기간 사업으로 육성하는 국가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노동인력의 왕래에도 상당한 이점이 있었기에 경제발전에 이바지 한 것도 있고 이에 아울러 크지만 또 귀여운 외모로 인해 '점보'라는 별명이 새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한다.[14] 가장 큰 "항공기"는 An-225이다. 계획된 기종까지 포함시 수호이 KR-860가 있다.[15] A380은 2005년.[16] 다만 아이콘으로서의 가치와 상징성은 747이 더 높다. 취역된지 상당히 오래되었고 대중성 역시 높으며 인류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항공기라는 점 때문에 평가가 높다.[17] 물론 생산을 기준으로 본 것이지 실제 747이 모두 퇴역하여 하늘에 날아다니는 747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18] 마틴과 제네럴 다이나믹스는 항공기의 목업이나 컨셉트아트 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아마 대형 수송기 제작 경험이 없어서 조기 탈락되었다고 추정된다.[19] 더글러스사의 제안은 다른 기체에 비해 작았고 무엇보다 조종석이 아에 분리되는 구조라 조종계통을 분리하고 다시 결합되는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구조였다.[20] 모델 750 같은 경우 화물실을 실기크기의 목업을 만들정도로 어느정도 설계가 완성된 편이였다.[21] 에미레이트 항공이 보잉 777X을 주문하며 이 기록을 깨버린다[22] 그런데 나중에 탈출 문제가 없어 콴타스를 시작으로 이곳도 창문수를 3개에서 10개로 늘려 비지니스석을 보통 배치하게 됐다.[23] 에미레이트 항공이 VVIP지만 이 수준으로 777X에 관여하지는 않는다.[24] 거기다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 있는 747의 조립공장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부피가 큰 건물이다. 물론 747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보잉사의 협동체 기종을 제외한 광동체 기종은 주로 여기서 나온다.[25] 당시에는 유압이 아니라 와이어를 사용하였는데, 기체가 워낙 거대해서 반응시간이 너무 느렸기 때문에 기체를 조종하지 않고 물 위에서 거의 점프만 하였다[26] 이전에도 복층 구조의 항공기는 많이 있었다. 제트기만 한정하더라도 록히드 L-1011이 복층 구조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27] 2층에 조종실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1층 기수 부분의 좌석은 조종실보다도 더 앞쪽에 위치하여 파일럿보다 더 앞쪽에 앉아가는 기분을 낼 수 있고 기수가 좁아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좌석의 배열 방향에 따라 창문을 통해 비스듬하게 전방을 내다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엔진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대개 상당히 조용하고 쾌적하다.[28] 보잉 747-100의 경우 초기 제작분은 2층 어퍼덱의 측면 창문이 3개로 되어 있었고 어퍼덱은 기내 라운지로 사용되었다.(보잉 747-200에도 옵션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이 공간에도 승객을 태우자는 발상을 해낸 항공사들의 요구로 후기형부터는 순정 상태에도 어퍼덱 창문 수가 10개로 늘어났으며 기존 제작분도 보잉에서 후기형처럼 튜닝해 줬다. 747-100에서도 등장했던 SUD(Stretched Upper Deck)형식은 본래 옵션이었으나 747-300부터 기본이 되었고, 747-8i에서 더 길어졌다. 다만 화물기는 쭉 사골... [29] 실제로는 1등석, 비지니스석 등의 배치와 이코노미석에서도 승객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고 공항돌연사 증후군 예방 등의 차원에서 좌석간격을 조금 여유있게 배치하는 관계로 실제로는 300~350명가량을 정원으로 운용하는 항공사들이 대다수이다. 일본 내수용으로 사용되는 747SR 및 747-400D 등의 계열은 실제로 전 좌석 이코노미에 정원이 500명 이상이었다. 그리고 524명 중 520명이 사망한 단일 항공기 최대 인명사고를 낸 일본 항공 123편 추락 사고 당시의 기종이 747-100SR이었다.[30] 단 실제 오해가 있는 것과 달리 747을 싱글 클래스로 운영하는 항공사는 없다. 일본 국내선의 경우 JAL과 ANA 모두 20여 석의 상위급을 묶어 560~570석 정도로 운영되었다. (B777-300 또한 한때 550석까지 운영되다 현재는 510석 수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빡빡하게 운영하는 곳은 프랑스의 저가항공사 Corsair로 582석이다. (J24/Y558) [31] 물론 여객용은 기수부 도어 자체가 없다. 대신 기수부에 조종석 대신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 클래스를 집어넣을 수 있다. 추후에는 2층의 공간을 넓혀서 거기다가 좌석을 넣을 수 있게 했는데, 주로 비즈니스석을 박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본래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가 있어야 하는 곳에 이코노미 클래스를 넣어서 좌석 수를 늘릴수 있다. 근데 대한항공은 이코노미를 박으라고 한 그곳에 비즈니스석을 박았다.(...)[32] 다만 747 중에서도 벨루가 같은 대형화물 적재용인 Dreamlifter는 구피처럼 허리가 열린다.[또는] "골치아픈 화물도 우리에겐 문제 없어요."정도다. 직역하면 "큰 화물 문제는 우리를 웃게 합니다."이다.[33] 아이러니하게도 이 광고에 사용된 D-ABYE는 최초의 B747-200F로, 이후 대한항공에 인도돼서 등록번호 HL7441로 다니다가 2000년대 초에 페낭 착륙 도중 플랩이 날아가버리는 사고를 겪는다.[34] 이들과 원판이 화물기인 이들은 어퍼덱으로 알 수 있다. F 모델은 어퍼덱이 짧고 창문도 3개가 일렬로 가까이 붙어있지만, 콤비나 여객기 개조판은 어퍼덱이 길고 창문이 많다.[35] 정확히는 747-400ER(ERF가 아닌 콴타스에서 운용했었던 400ER 여객기)형의 콕핏. 기존 747-400형과 차이점은 디스플레이가 CRT에서 LCD로 교체되었다. 디스플레이가 바뀌면서 인터페이스도 약간 변경되었다. 현재는 모두 퇴역한 상태[36] -400형 모델까지만 하더라도 무겁고 두꺼운 전 세계의 공항 차트 책자를 콕핏에 비치해뒀다. 차트 모니터가 장착되면서 무거운 책자 볼 일이 사라졌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앱으로도 볼 수 있다. 조정석 옆 창문에 달려있는 태블릿PC가 그것이다.)[37] 747 이전까지의 제트 여객기들은 주로 'VOR'이라 부르는 지상 무선표지 유도 항법을 이용했었다. 이것은 항법상 지상 무선표지국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장거리 노선, 특히 대양 횡단 노선에서는 상당한 애로사항으로 작용했다.[38] 단, 델타 항공은 노스웨스트 항공의 인수로 747을 다시 얻었는데 이들은 퇴역하지 않고 태평양 횡단 항로에서 운용되고 있다가 2017년에 A350이 들어오면서 퇴역할 예정. 그리고, 유나이티드 항공은 여전히 747이 현역으로 다니고 있는데, A350-1000을 들여온다는 계획이 있지만 이것이 747을 대체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인천 - 샌프란시스코를 다니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B747-400는 1991년식이다. 다만 현재 Flightradar24를 보면 SFO-ICN간 유나이티드 항공은 787-9로 변경된 듯.[39] #관련기사 [40] HL7644 [41] 이유는 항공 여행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대도시 간의 이동보다 특정 지역 간의 이동이 매우 높아졌고 이런 지역은 747 같은 대형 기종이 감당할 수 없는 데다 환승 없이 직항으로 가는 루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엔진 개발기술이 발전을 이뤄 보잉 777같이 강력한 엔진을 가진 덕분에 손쉽게 장거리를 날아가는 고효율 쌍발 여객기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 역시 큰 이유다. 게다가 777도 -300형이 출시되며 길이도 길어지고, 일부 항공사들은(전일본공수의 경우 국내선 항공기 한정으로 3-4-3배열 적용) 기존의 3-3-3 또는 2-5-2 이코노미석 배열을 3-4-3배열으로 개조하면서 777로도 대량 수송이 가능해졌기에 굳이 747을 살 이유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정도이다.[42] 당장 팬암의 회장이었던 주안 페리 트립이 747의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었다.[43] 1980년 015편, 1983년 007편, 1997년 801편, 1998년 8702편, 1999년 8509편 도합 5대로, 전세계에서 사고로 아작나거나 폐기처분된 전체 747의 10%에 육박한다. 자세한 사항은 대한항공/사건사고 항목 참조.[44] 다만 일본항공의 경우 국내선에 747을 넣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는 선택이었다. 수요만 있다면 중소형 여객기 여러 대를 투입하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일본항공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망해버린 경제가 195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부흥함에 따라 1970년대 국내선 항공 수요가 폭증하였고, 이에 747SR이라는 국내선 대량 수송 전용 모델까지 만들어가면서 국내선 수요를 충족시켜야 했으며, 747을 국내선 운용에 집중시킨 결과 세계 최초 747 태평양 횡단 노선 개척이라는 타이틀을 당시만 해도 훨씬 못살았던 대한민국의 대한항공에게 넘겨주기에 이른다. 일본항공의 진짜 잘못은 '''운용 방만이 일조한 최악의 사고'''이며 실제로 이 사고 이후로 일본항공은 이미지가 크게 추락한다. 물론 팬암은 삽질한 게 맞다(...)[45] 다만 기체인도는 또다른 수주사인 중국국제항공이 제일 먼저 인도받았다. 묘하게도 747 매니아인 일본항공과 전일본공수는 주문을 안했다는점도 특이사항이다.[46] 747-400은 현재 노령화된 기체여서 미국 국적항공사들은 2014년부터 2019년 까지 순차적으로 퇴역시키고 있으며 여타 국적항공사들 역시 A380, A350이나 보잉 777과 같은 기종으로 전환하고 있는 실정이다.[47] 1989년 첫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초도 도입분의 기령이 28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거의 환갑을 지나가고 있는 셈.[48] 일단 보잉은 747의 후임으로 777X를 대체할 계획이며 화물기는 동체의 크기를 감안하면 747의 수요가 아직까지는 큰 편이기 때문에 화물기 생산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777 화물기 버전을 기획한다면 바뀔 가능성도 있다. 다만 추력이나 적재능력 자체는 비슷해도 747F는 조종석이 2층에 있어 전방 카고도어를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큰 개선을 거쳐 747의 형태를 유지할 수도 있다. 777은 단층 구조상 747F 같은 거대한 카고도어를 달기 어렵기 때문. 이 카고도어가 실용성이 낮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근데 성공한 여객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것과는 다르게 777 화물기는 좀 창렬이어서 오히려 747 화물기가 더 가성비가 좋긴 하다. 수요가 줄지 않는 진짜 이유일지도.[49] 폭탄테러 등 포함[50] 보잉이 사고발생 1년 전 리콜명령을 내렸는데 유나이티드 항공이 수리를 하지 않았다.[51] 아래 써있는 목록을 간추리면 납치, 폭탄테러, 엔진 정지, 오버런, 지상충돌, 공중충돌, 폭발적인 감압, 유압상실, 공중분해, 격추, 공중폭발, 화재, 번개, 니어미스, 실속, 조종석의 상하관계 때문에 사고가 난적이 있다. 없는 유형이 없다. 거기에다가 TWA 800편 추락 사고,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는 정비 불량, 싱가포르 항공 006편 사고의 경우 악천후도 원인중 하나이다. 항공사고의 원인중 보잉 747이 안 겪어본걸 꼽자면 착빙 빼곤 없다.[52] 사실은 테네리페 공항에 남은 자진 낙오자 1명이 더 있었다. [53] 카라치 진나 국제공항에 착륙 중 4번 엔진의 역추진 문제로 속도를 줄이지 못해 결국 오버런하였다. 아래의 납치 사건과는 노선만 같을 뿐 관련없다.[54] 탑승 인원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 3명 이상이다.[55] 비행 중 화물 화재 발생 후 공중분해.[56] 기체의 화물칸 문이 뜯겨 나가면서 기압차 때문에 주변에 있었던 승객들이 같이 빨려 나갔다. 실종된 9명 모두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인정사망 처리되었다.[57] 사고 원인은 영국항공 9편 사건과 같다.[58] 당시 기체는 쿠웨이트에 중간 기착을 했는데, 그날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공격하여 사건이 발생하였다.[59] 지상 사망자 수는 자료에 따라 43명 또는 39명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공식 사고 조사보고서의 사망자 집계 결과를 따른다.[60] 기체 노후화로 인한 연료탱크 폭발 후 공중분해[61] 카자흐스탄 항공 IL-76이 지시된 고도를 유지하지 않고 계속 하강하다가 사우디 아라비아 항공 747기하고 공중충돌[62] 이때부터 대한항공은 보잉 747을 3년 동안 1년 간격으로 날려먹는다. 날려먹은 기종도 다양하다. 괌 추락 때는 747-300B, 8702편 활주로 이탈 때는 747-400, 8509편 추락 사고 때는 747-200F. 참 이렇게 골고루 날려먹기도 쉽지가 않은데... 참고로 8702편은 역사상 두 번째로 폐기처분된 747-400이다.[63] 747-400의 두 번째 동체 손실 사고. 여담으로 첫 번째로 날려먹은 747-400은 중화항공 605편, 세 번째로 날려먹은 747-400은 싱가포르항공 006편.[64] 날려먹은 747로는 5번째, 연속으로는 3번째다.[65] 연루된 두 기체 중 한 대가 747이었다.[66] 격납고에서 출발 게이트로 이동중, 2, 3번 엔진을 끄고, 1, 4번 엔진만 사용하여 지상 이동중이었으나, 해당 항공기의 제동시스템은 2, 3번 엔진의 동력에 의해 작동되는 유압시스템으로 작동했으므로,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제어를 잃고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 배수로 안으로 좌초되어 노즈부분이 크게 파손되었다.[67] 사고기는 화물기로, 이륙중량을 잘못 계산해 일어났다. 여담으로 사고기의 조종실 음성기록장치는 화재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비행기록장치로만 조사를 해 어려움을 겪었다.[68] 브뤼셀 국제공항에서 이륙하던 중 버드 스트라이크를 당해 3번 엔진이 고장나 불꽃을 내뿜었고 이를 확인한 조종사들은 이륙을 중단했지만 결국 활주로에서 300m를 벗어나며 동체가 삼등분으로 부서졌다.[69] 사고 기체는 칼리타 에어가 센츄리온 카고에게 리스해준 비행기였으며 보고타 엘도라도 국제공항에서 이륙 중 1, 4번 엔진이 고장나 불시착했고 이 과정에서 엔진 한 개가 집에 충돌해 2명이 사망했다.[70] 뭄바이 차트라파티 시바지 국제공항에서 이륙 대기 중 엔진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결국 747-400 여객형의 4번째 손실이 되고 말았다.[71] 화물로 실은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불이 나 조종불능 상태에서 추락했다.[72] 1년 전 일어난 UPS 006편 사고의 연장선이다. 991편도 화물칸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적재하고 있었고 거기에서 화재가 발생해 조종불능 상태에서 추락했다. 또한 24년 전 발생한 남아공 항공 295편과도 조금 닮은 점이 있다. 바로 화재가 후방에서 발생했고, 화재 발생 후 공중분해되어 바다에 추락했다는 것...[73] 화물 담당자가 군용 험비를 적재하는데 고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났다. 험비가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륙을 하려고 기수를 들자 험비가 그대로 뒤로 쏠려 벌크헤드와 블랙박스를 파손시키고 바로 뒤의 수평미익 안정판 THS의 스크류잭을 부러뜨리고 유압계를 부수고... 거기에다 화물이 뒤로 쏠렸기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기수가 거의 90도로 들린 채 1000피트 정도까지 상승했다가 그대로 실속한 뒤 통제불능 상태로추락했다. 실제 사고 동영상[74] O.R. 탐보 국제공항에서 택싱 중 잘못된 유도로 인해 오른쪽 날개가 건물에 충돌하였고 사고 2달 후인 2014년 2월에 폐기되었다.[75] 핼리팩스 스탠필드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동체가 부러지고 2, 3번 엔진이 떨어져 나가는 등 큰 손상을 입었다. 이후 사고기는 현장에서 중장비로 해체되었다.[76] 이는 KC-135를 대체하기 위한 ATCA 사업 때문이다. 이 사업으로 인해 나온 게 KC-10 익스텐더이다. 유튜브 등지를 찾아보면 ATCA 테스트 당시 보잉 747의 개조와 급유를 기록한 필름이 영상으로 변환돼서 업로드되어 있다.[77] 번외편으로 이란 공군이 KC-747을 도입했는데 그 당시 실험기체가 이거였다.[78] 1985년경까지는 여기 있었던 듯하다. 추후 회수.[79] JT9D-3A는 7A형이 출시된 이후로 모두 7A형으로 개조된다[80] BBC의 The Plane Changed the World (2/3) - Jumbo Jet (2014)에서 보면 당시 팬암의 헤드 정비사가 이야기 하였고 이미 첫 상업운항이 끝난 후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81] 당시 미국의 플래그쉽 캐리어였던 팬암과 제트여객기의 최강자였던 보잉의 이미지를 위해 FAA가 허가한 듯하다. [82] 이 시점에 원래이름으로 돌아오고 N735PA를 롤로 엔진문제로 인해 L1011의 도입을 못하던 이스턴항공에 임차를 보내버린다.[83] 10초쯤에 어퍼덱에 라인넘버인 2가 적혀있다.[84] 경춘선 평내호평역 근처였다.[85] 이 경춘국도는 경춘고속도로 개통 이전에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86] 원래 퇴역 후 항공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였는데, 한국인이 이 비행기체를 사가겠다는 말에 심히 고민하다가 결국 넘겨줬다고 한 실화가 있다.[87] 이 외에도 한국 내에는 비행기 레스토랑이 여러 곳 있었지만, 대구광역시의 수성못 빼고는 전부철거되었다. 정부에서 지원했었다면 항공박물관에 전시될 수도 있었는데, 여러모로 안습이다.[88] 당시 주력 메뉴는 점보747 냉면이었다.[89] 1976년 팬암의 B747SP도입 이후 이루어진 이벤트형 세계일주 항공편의 최단시간기록, 팬암 창사 50주년을 기념한 남/북극 모두 운항한 첫 상업항공기/항공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