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로파(항공모함)

 


[image]
'''Europa'''
1. 제원 (개장완료시 예상)
2. 개요
3. 상세
4. 매체에서


1. 제원 (개장완료시 예상)


항공모함 에우로파
개장
1942.??.??
취소
194?.??.??
퇴역
1962.??.??
배수량
44,000톤(기준), 56,500톤(만재)
길이
291.5미터
너비
37.0미터
흘수
10.3미터
승조원
승무원 2,193명
항공 병력 ???명
무장
105 mm 고사포 12문
37 mm 고사포 20문
20 mm 고사포 28 ~ 36문
보일러
??? 보일러 ??기
터빈
블롬 & 포스 기어 증기터빈 4기, 스크류 4기
출력
100,000마력
최고속력
26.5노트
항속거리
19노트기준 12,000마일 (10,000 NMI)
함재기
42 ~ 96대

2. 개요


크릭스마리네의 개조 항공모함 설계안 '''에우로파(Europa)'''.
제2차 세계 대전 때 대형 여객선을 개장하려 했던 항공모함으로, 이 경우에는 Prinz Eugen이 프린츠 오이겐인 것처럼 독일어 발음을 따라 오이로파라고 부른다.

3. 상세


에우로파는 원래 여객선이었다. 1928년 8월 독일 함부르크 블롬&보스 조선소[1]에서 진수되어 1930년 3월 완공, 이후 대서양을 오가는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로 치면 대형 여객기와 마찬가지였다. 1930년 3월 20일부터 25일에 걸쳐 이루어진 첫 항해에서 4일 17시간 6분에 걸쳐 대서양을 횡단, 블루리본 타이틀을 갱신했다.[2] 이후 1939년 세계2차대전이 발발하자 물자보급 및 수송용으로 전환되어 독일 육군의 군수품을 나르는 역할을 담당했다.[3]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 후 꿈도 희망도 몽땅 사라진 상태로 전쟁준비를 하던 크릭스마리네는 수상함 전력, 특히 단 한 척도 없던 항공모함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라프 체펠린을 건조하기 시작했지만 당연히 한 척으로는 부족했고 1941년 비스마르크까지 영국 해군에게 레이드 당한 이후 수상전력이 크게 부족해진 크릭스마리네는 여객선이었던 에우로파를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기로 결정한다. 이때가 1942년 5월이다.[4]
하지만 처음부터 정규 항공모함으로 만들어지던 그라프 체펠린도 95% 완공된 이후 발트해 한 구석의 잉여(...)가 되었고, 태생이 여객선인지라 항공모함으로써 사용하기에는 안정성과 연비가 나쁘다는 이유로 1942년 11월 개장 중지가 결정됐다.[5] 전쟁 이후 미군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져 유럽 전선에 파병된 미군을 귀환시키는 용도로 잠깐 쓰였다가 2차대전 발발로 뉴욕에 계류된 상태에서 화재로 침몰한 노르망디[6]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프랑스에 건네졌고 프랑스에서는 리베르테라는 명칭으로 여객선으로서 사용되다가 1962년 스크랩됐다.

4. 매체에서


  • 네이비필드에 구현돼 있다...만 여기에는 또 영국이나 일본 같은 국가의 계획 항공모함도 구현되어 있으므로 거기서 거기(…). 여담으로 11인치 단장포 5문을 장착하고 전함놀이가 가능하다.
[image]


[1] 비스마르크도 이 조선소에서 제작됐다[2] 기존 기록은 브레멘이 가지고 있던 4일 17시간 42분. 에우로파의 기록은 1933년까지 유효했다.[3] 바다 사자 작전에 해상 기지로 사용할 계획도 세웠었다.[4] 이들과 더불어, 다른 여객선인 그나이제나우, 포츠담, 건조 중지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자이들리츠와 프랑스의 미완성 경순양함 드 그라스를 항공모함으로 개장할 예정이었고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도 재개하기로 하였다.[5] 그런데 개장 이후의 예상 제원을 보면 일본의 상선개조항모인 준요보다 더욱 우수하다. 만약 일본처럼 다수의 항공모함을 운용할 능력이 있는 나라에 의해 개장이 실행되어 운용이 이루어졌다면 활약할 여지가 충분했을 것이다.[6] 프랑스의 대서양 정기 여객선. 뉴욕에 도착한 상태에서 2차대전이 발발하여 귀항하지 못하고 뉴욕 항에 계류되었다. 이후 병력 수송선으로 활용하기 위한 개장에 착수했으나 개장 도중 화재가 발생해 전복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