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페도클레스

 


'''Ἐμπεδοκλῆς''' (B.C 490?∼430?)
1. 출생 및 행적
2. 사상
3. 창작물에서의 엠페도클레스


1. 출생 및 행적


기원전 470년경 그리스 시칠리아섬 남서부의 도시 아크라가스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1] 그는 철학, 정치, 의학, 시에 능통했으며, 철학자로서 주장한 4원소설이 유명하다. 순전한 철학자로서의 삶 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삶도 유명한데, 그는 민주주의 편에 서서 활동하다가 정치 문제로 고향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정확하지 않다. 예언자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마차에서 떨어진 후 뼈가 부러져 앓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장 유명한 일설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에트나 산 분화구에 몸을 던져 초자연적으로 사라졌다는 전설을 만드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발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엠페도클레스가 '미쳐서 스스로 신이라 여긴 나머지 화산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용암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엠페도클레스는 "매우 용감한 지구물리학자"였을 것이며 "생명을 무릅쓴 관측 중에 일어난 실족사였을 것"이라 말한다.[2]

2. 사상


엠페도클레스는 사상의 독창성도 독창성이지만, 선행한 학설들에서 취합하는 경향도 많이 발견된다. 상술했듯 시칠리아의 아크라가스가 여러 학파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절충주의자라 불리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의 윤회설과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주장한 우주 생성과 소멸의 주기설, 오르페우스교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사상은 그가 남긴 두 시문, 불완전하게나마 전해지는 것에 근거가 있다. 그런데 그는 재미있게도 두 가지 글에서 상당히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에 관하여”에서는 엠페도클레스 역시 다른 자연철학자들처럼 합리적인 사고력과 관찰력을 보여 준다. 반면, 정화의례들에서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자기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는 패기를 뽐낸다. 이렇게 두 시에서 엿보이는 인격의 간극이 상당한 편이다.

고대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생각했고,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이 공기라고 생각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엘레아 학파에서는 흙을 원소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물, 불, 공기, 흙이 동등한 위치에서 만물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는데 이 이론을 4원소설이라고 하며, 이 이론은 그가 생존했던 기원전 400년대부터 수 세기가 지난 18세기에 들어서야 폐기가 되었다.
다만 알아두어야 할 것이 뭐냐면, 현대인들은 현대과학적인 관점에서 탈레스나 아낙시메네스 엠페도클레스 등의 이론을 생각하기 때문에 물 불 흙 공기 등이 마치 원소인 것처럼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인의 일원론은 물이 원자로서 모든 사물 속에 있다 이런 게 아니라, 물이 사물의 근원적인 이치거나 근원적인 출발점이다 뭐 이런 얘기가 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중시도 말하자면 끊임없이 불태우고 변화하고 소멸시키고 피어나는 뭐 이런 불의 특성을 좋아했던 게 아닐까 생각되는 바가 있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에서도 중요한 포인트는 그가 엘레아 학파의 존재에 관한 학설을 받아들인 부분에 있다. 엘레아 학파는 없다고 한다면 아예 없는 것이고 아예 없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있는 것이 완전한 없는 것이 된다거나,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생긴다거나 하는 등의[3] 변화나 운동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를 받아들이지만 변용을 꾀한다. 있음과 없음의 속성은 대체로 인정하지만, 있음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사물의 변화와 운동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게 바로 4원소이다. 엠페도클레스가 4원소를 처음으로 주창했는가 하는 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4원소설이 뚜렷하게 조리가 있음은 두루 인정된다.
그의 4원소설에서 중요하게 주장되는 바는, 엘레아 학파의 논설을 따라 존재하는 것의 추가적인 생성이나 소멸이나 운동 등은 없으나, 단지 결합과 분리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상은 따로 있고, 원인이 바로 사랑과 불화라는 원리다. 세계의 발전 과정에서는 돌아가며 이 두 힘이 우세함을 가지고, 개별 존재들이 생성하고 소멸한다. 사람이나 동식물들도 이 4원소의 분리 결합에 좌우된다. 이 분리결합은 히포크라테스가 얘기하는 것처럼 화학적인, 화합물적인 그런 게 아니라 벽돌처럼 쌓이고 놓이는 이미지로 얘기했던 듯하다.
또한 진화론과도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하등 유기체가 생겨난 다음 고등 유기체가 생겨났으며, 식물과 동물, 인간의 순서로 탄생했으며, 최초의 존재는 양성이었으나 후일 분리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것은 사랑과 불화가 지배하는 시대의 순환에 따라 돌고 도는 것이며, 사랑의 시대에는 모든 것은 손도 발도 없고 생식기나 뭐 그런 것도 없이 동글동글하게 한 덩어리로 뭉쳐 있다고 한다.
인식과 관련해서는 외부 세계의 모든 요소는 인간 안에 비슷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인식된다고 생각했다.[4] 무슨 말이냐면 모든 물체가 뭔가를 계속 쏘아내고 있는데, 인간이 이를 인식하는 것은 그 미세한 물질이 인간의 적합한 통로를 통과하면서 인식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뭐 예를 들어본다면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주로 삼각형 느낌의 미세한 것들이 방출되는 것이고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것들이 사각형 모양으로 방출된다면, 인간의 시각적 인식기관은 삼각형 모양의 통로이기 때문에 삼각형인 가시광선은 통과하지만 사각형인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것들은 모서리가 걸려서 통과하지 못한다. 대강 이런 식으로 인식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칼 세이건코스모스에 따르면 피펫 비슷한 도구로 대기압의 존재를 최초로 관찰했다고 한다.
정화의례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상당히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모습이라 별 의미는 없다. 철학자나 신비주의자, 사상가를 높이는 말이라거나, 사랑과 불화에 의한 순환주의적 역사관을 보여주며 옛날은 좋았으나 지금은 불화의 시대이다 뭐 이런 얘기들이다. 다만 인간이 저지른 죄에 의해 높은 위격에서 천한 지상으로 추방되었다거나, 의견(δόξα)을 불행과 연결지어 낮추고 지혜를 행복과 연결지어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거나 이런 부분은 흥미롭다.

3. 창작물에서의 엠페도클레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에서 등장한다. 약간은 신들린 듯한 인상을 주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수 유적 중 한 곳을 여는 퀘스트와 연관이 있다. 퀘스트 마지막에 이수 유적으로 미스티오스와 함께 입장하게 되는데, 창조주를 경배하다가 스포일러에게 데드신도 없이 한 방에 끔살을 당한다. 단, 실제 역사에서 엠페도클레스는 오디세이의 시작시점인 BC 431년에서 고작 1년 뒤에 사망하기 때문에, 동명이인으로 보인다.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이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이라는 미완성 희곡을 썼으며 스트로브-위예가 영화화했다. 물론 스트라웁과 위예 특성상 상당히 실험적인 편.

[1] 전통적으로 데메테르를 숭배하던 지역이고 이탈리아에 유행하던 피타고라스 학파 및 오르페우스 비교 등 여러 비교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고 한다.[2]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특별판)』, 제356면, 사이언스북스, 2019[3] 죽음과 탄생도 포함.[4] 괴테의 "만약 눈이 태양과 비슷하지 않다면 태양을 결코 볼 수 없을지니..."라는 구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