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시기'''
1998년 12월 17일
'''장소'''
대한민국 남해 전남 여수
'''교전국'''
[image] 대한민국
[image] 북한
'''병력'''
대한민국 육군 제31보병사단
대한민국 해군 PCC-782광명함 P-3 대잠초계기 슈퍼링스
대한민국 공군 KF-5 CN-235[1]
반잠수정
'''피해'''
없음
전사 6명
'''결과'''
[image] '''대한민국 해군의 승리'''

1. 개요


1998년 12월 17일 오후 11시 15분 전남 여수시 돌산읍 임포리 앞 임포초소에서 야간감시장비(TOD)를 이용해 바다를 응시하던 육군 31사단 김모(당시 나이 21) 이병은 소초로부터 2㎞ 떨어진 방죽포 해수욕장 부근에서 해안 쪽으로 접근하는 반잠수정을 발견했다. 경비정 2척이 출동해 추격에 나서자 이 반잠수정은 일본 측 EEZ를 목표로 도주했다.
다음날 새벽 우리 군의 경고사격과 정지명령에 기관총으로 대응하던 북한 반잠수정은 최초발견 6시간 35분 만인 18일 오전 6시 50분경 거제도 남서쪽 100Km 공해상에서 광명함의 76mm 함포와 40mm 함포 사격에 의해 격파되어 격침되었다.
침몰한 반잠수정 내외에서는 숨진 북한군 6명의 주검이 발견됐으며, 교전 과정에서 아군의 인명피해는 없었다.[2][3] 침몰한 반잠수정의 유류품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한 공작원의 노트가 발견되었다. 그 노트에선 종북 조직 "민족민주혁명당"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이 증거를 토대로 이석기, 김영환등의 조직원들을 적발해 기소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북한군이 이용한 반잠수정은 길이 12.5m, 폭 3m, 높이 1.4m에 6~8명이 탑승할 수 있었으며 수면 아래로 20m까지 잠수해 시속 7~80km로 이동할 수 있었고 반잠수 상태일 때는 물 위로 6~70cm만 드러나 해군에 들키지 않고 여수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이후 해군은 이 반잠수정과 동일한 스펙의 선박을 만들어 침투 식별 및 저지 훈련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노획한 반잠수정과 기관권총, 수류탄, 야전삽 같은 노획물 33점을 인근 율림리의 율림초등학교를 전시관으로 개조해 전시해두었다. 전시관은 여수시나 돌산읍에서 향일암으로 가는 길에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