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보병사단

 




'''제31보병사단'''
'''第三十一步兵師團'''
'''The 31st Infantry Division'''
[image]
'''湖南의 방패, 최남단 절대사수!'''
'''창설일'''
1955년 2월 1일
'''상징명칭'''
'''충장부대'''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image] 제2작전사령부
'''규모'''
사단
'''역할'''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지역 방위
'''사단장'''
[image] 소장 최순건(육사 48기)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1. 개요
2. 상세
3.1. 위치
3.2. 상세
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
5. 출신인물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2. 사단가
7. 사건사고
7.2. 장흥 해안초소 총기 사망사고
7.3. 여수 임포초소 생활관 신축 문제 갈등
7.4. 목포 육군 일병 실족사 사고
7.5. 31사단 육군 일병 사망사고
8. 여담

'''보병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보병사단(이하 "사단"이라 한다)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image]
舊 사단 마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보병사단이다. 사단 사령부는 광주광역시에 있으며,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을 방어하는 지역방위사단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최후방에 위치해 있는 부대.

2. 상세


1955년 강원도 화천에서 창설되었고, 창설 직후 현재 주둔지로 재배치되어 후방 향토 사단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과거 제1군관구사령부 예하부대였으나 1관구가 해체되며 제2야전군사령부로 예속되었다.
예하에는 1개 여단과 3개 연대가 있어서 각 지역을 방위하고 예비군 관리, 훈련도 담당하고 있다. 503여단은 광주 및 주변 지역(담양, 장성, 화순), 93연대는 전남 서남부(진도, 해남, 강진, 영암, 장흥, 완도), 95연대는 전남 동부권(순천, 여수, 광양, 고흥, 보성, 구례, 곡성), 96연대는 전남 서부, 북서부(목포, 나주, 무안, 함평, 영광)을 담당하고 있다.
부대별칭은 충장부대로 임진왜란 당시 지역의 의병장이었던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시호에서 따왔다.[1] 그래서인지 김덕령 장군을 명예 사단장으로 모시고 있다. 경례구호는 충성.[2]
1998년 여수시로 침투하려던 북한의 반잠수정을 격파하였고, 그것 때문에 좋은 소리를 많이 들은 건지 Again '98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실제 2010년도에는 31사단 관련 기관에 전화를 해 보면 맨 처음 들을 수 있는게 'Again '98 영광을 재현합시다' 였다. 반잠수정을 발견한 것에 대해 당시 TOD 보던 이등병이 컵라면 먹다가 발견했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는 평범하게 근무 중에 발견했다. 해당 발견자는 지금도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TOD병 후반기교육 때 이 사례를 들어주면서 근무 잘 서면 인생이 바뀐다고 가르친다.
2008년도에는 통합방위유공으로, 2009년도에는 국방임무수행유공으로 2년 연속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아 향토사단 치고는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2008년도에 전복 도둑을 간첩으로 오인해서 검거한 사례가 있다.[3] 고속으로 온 배[4]에서 잠수부가 잠수하는 게 감시기지 영상에 딱걸린것. 얼핏 보면 딱 간첩처럼 보인다.
2008년 3월부터 보충역 교육도 담당한다. 2012년부터 받지 않는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잘만 들어가고 있다. 남들도 폐지 못시키고 있는데 여기만 폐지할 명분이 없는 게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2013년 10월 1일, 무등산과 숫자 31을 형상화한 새 사단 마크로 교체되면서[5] 횃불모양 때문에 불꽃슛부대라는 말이 생겼다.
충장회관 식당 - 면회객들과 군인이 밥먹을수 있는곳. 주로 피자나 치킨같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패스트푸드와 고기류의 메뉴도 많지만 가격이 좀 센 편이다. 그래도 자판기는 싸다.
국방개혁으로 인해 2020년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3. 신병교육대




3.1. 위치


'''제31보병사단 신병교육대 (충장신병교육대)'''
'''第三十一步兵師團 新兵敎育隊'''
'''The 31st Infantry Division recruit training center'''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196

3.2. 상세


지방 향토사단인 만큼 31사단에도 4대 중대로 구성된 신병교육대가 있다. 현역과 함께 상근예비역을 훈련시킨다. 과거 광주, 전남 지역 보충역(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등)들을 훈련시키기도 하지만 2021년 기준 보충역 중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


  • 본부근무대
  • 기동대대
  • 의무근무대
  • 보충중대
  • 통신대대
  • 군사경찰대
  • 신병교육대대[6]
  • 포병대대
  • 방공중대
  • 공병대대
  • 동원지원단

4.2. 제93보병여단 횃불


전남 서남부 진도, 완도, 강진, 장흥, 해남, 영암
  • 여단본부
  • 제1대대
  • 제2대대
  • 제3대대
  • 제4대대
  • 제5대대 왕인


4.3. 제95보병여단 이순신


전남 동부권 순천, 광양, 여수, 고흥, 보성, 구례, 곡성
  • 여단본부
  • 제1대대 돌풍
  • 제2대대 보성
  • 제3대대 구례 칠의사
  • 제4대대 광양
  • 제5대대 조달진


4.4. 제96보병여단 사자


전남 서부, 북서부 목포, 나주, 무안, 함평, 영광
  • 여단본부
  • 제1대대
  • 제2대대
  • 제3대대
  • 제4대대 나주


4.5. 제503보병여단 비호


광주광역시, 담양, 장성, 화순 담당
  • 여단본부
  • 제1대대
  • 제2대대
  • 제3대대
  • 제4대대
  • 제5대대
  • 제6대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31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사단장

29대
''' 백군기 '''
예) 대장
육사 29기
육군특수전사령관제3야전군사령관국회의원
용인시
...
...
...
...
33대
모종화
예) 중장
육사 36기
제1군단장
병무청장
34대
고성균
예) 소장
육사 38기
육군사관학교장

35대
박병기
예) 소장
육사 40기
사단장

36대
권혁신
예) 소장
학군 23기
육군학생군사학교장

37대
권삼
소장
육사 43기
육군동원전력사령관

38대
소영민
중장
학사 11기
육군특수전사령관

39대
최순건
소장
육사 48기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병


  • 로건 - UDT에 입대하기 전 상근예비역으로 한 번 만기전역을 했었고, 그의 연고지를 미루어 봤을 때 본 사단 소속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배성우 - 배우. 광주 모 부대에서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현역 복무를 했다고 한다. 이종범이 방위 생활을 할 때 같이 잘 놀았다고.
  • 뷰티풀너드 최제우 - 유튜버
  • 서건창 - 야구선수
  • 이종범 - 야구선수[7]
  • 이재석 - 인터넷 방송인.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 한민관 - 코미디언.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6. 기타



6.1. 근무환경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에 기후는 꽤 좋다. 최전방에 있는 철원에 비하면 겨울에는 거의 지상낙원 수준이라고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남해안의 몇몇 지역은 겨울에도 비가 오는 곳이 많아서 눈이 왜 깨끗한 쓰레기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도 쓸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봐도 된다. 물론 같은 전남권이어도 서해안 대설지역[8]같은 폭설 지대에 배치되면 헬게이트가 열린다.
서해 남부와 남해의 서부를 담당하고 있는데, 지도만 봐도 한반도에서 가장 해안선이 복잡한 지역이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각종 격오지가 많은 부대다. 각 해안 대대당 2~6개 정도의 격오지(해안 소초와 TOD, 레이더 기지)가 존재한다. 혹시 여기로 떨어진다면 격오지로 안 떨어지기를 빌자. 사람이 너무 없고 잘 채워주지도 않아서 누구 하나 휴가나 전역이라도 하면 하루 12시간 근무인 2교대는 기본, 취사병도 근무를 새운다. 인력난의 헬게이트를 볼수 있다. 특히 보급계는 무조건 겸직이다. 그렇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닌 게 어지간한 훈련에서는 빠질 수 있다. 물론 밥먹듯이 하는 해안침투 FTX는 얄짤없이 참가고 지휘관 재량으로 유격을 주둔지 인원과 교대로 갔다오는 전례도 있어서 그냥 운에 달려있다.
그나마 일부 지역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간첩이 침투했던 여수 쪽으로 배치되면... 몇몇 격오지는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서 지하수를 쓰는데, 해안에 위치하다보니 가끔 소금물이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창고에 생수가 있긴 하지만 먹는 물만 해결될 뿐 씻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다만 사단 직할대와 503여단 일부 대대가 위치한 광주광역시로 자대배치를 받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남대학교가 버스로 10분 거리인 등 부대 주변의 환경이 매우 좋은 편이다. 그래서 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조교 모집을 할 때 밀고 있는 캐치프레이즈가 '''외출/외박때 즐기는 광역시 라이프(...)'''이다.
당연하겠지만 사단 본부나 연대본부가 아닌 예하 대대로 빠지게 되면 침대가 있는 신형막사는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좋고 7조를 허공에 날린 병영생활관 현대화 사업의 혜택을 거의 못보다시피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냥 배치받는 곳이 사단 본부도 아니고 여단, 연대 본부도 아니라면 생활관에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배치받기를 빌어야 한다. 생활관에 에어컨이 없는 부대도 많아서 여름이면 에어컨이 있는 식당에 매트 깔고 자는 부대도 여럿있고 인터넷 통신망도 같이 노후화됐는지 뻑하면 인터넷이 나가서 짧으면 몇분 길면 한달이 넘도록 못쓰는 상황도 자주 일어나고 운동이나 체력단련 이외의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없는 부대도 많으니 배치돌릴 때 기도할 일이 많은 부대이다.
현재는 근해 경계, 감시는 육군이 완전히 빠지고 해군들이 담당하면서 3함대 참수리급 고속정들이 해상에서 해안 경계를 서고 있는 관계로 근무를 설 때 큰 부담은 안 느껴도 된다.
내세울 게 몇 없는 후방 향토사단인지라 여수 간첩침투를 격퇴한 임포작전을 완전작전이라고 다소 과하게 포장해서 홍보한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반면교사로 삼을 게 많은 작전으로 평가받는다. 근해로 들어오는 적 반잠수정을 최초 포착했을 당시 소초장과 대대 당직사령이 긴가민가 하면서 밍기적거리다가 미확인 물체가 다시 원해로 나가는 것을 보고 확신을 얻고 그제서야 다시 제대로 보고가 되긴했지만 그때는 이미 육군이 손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지라 공군과 해군의 합동작전으로 결국 해군 함정 광명함이 함포 발사로 격침시켰다.[9]
현재 섬의 경우 제9해병여단이 새로 창설되어 도서 정찰이나 매복은 해병대가 하기때분에 이 부대의 해안이 힘든 건 이제 과거의 이야기다. 해안에 설치되었던 철책도 지침에 따라 대부분 철거했고 현재는 철책없이 매복진지만 남아있다. 해안선 침투 상황에는 제9해병여단 신속대응부대와 육군 대대에서 운용하는 5분대기조, 소초에서 운용하는 해안기동타격대 인원들이 함께 초기 대응하게 된다.[10] 다만 배치된 해병대의 인원이 한정되있다보니 훈련을 받을 때 가까운 섬의 경우는 종종 육군과 경찰이 같이 들어가서 군경합동훈련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 경찰 쪽에서는 군인들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부사관, 장교들은 경찰들과 은근히 기싸움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안을 제외한 나머지 도서지역의 경계에 대한 실질적인 부담은 많이 줄었지만 서울과 계룡, 대구에 앉아있는 높으신 분들과 부대 지휘관들은 격오지 인원들의 부담을 덜어 줄 마음이 단 1도 없는게 문제다. 그리고 이것들이 해결되지않는 한 작전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다른 후방에 비해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이지 전방 사단들의 GOP 근무에 비하면 거의 땡보수준이고 보상은 꽤나 많이 따라오는 편이다. 다른 사단들도 비슷하겠지만 14년도 군번부터는 해안소초나 레이더 기지 등 격오지에 투입되면 최전방수호병들과 같은 수준인 1개월에 3일씩 보상휴가가 쌓이면서 사고만 치지 않으면 휴가 70일정도는 숨만 쉬고 있어도 나갈 수 있고 대부분의 해안대대에는 토요일에 정오까지 일과시간으로 되어있어 이에 따른 보상휴가가 기본적으로 12일이 더 주어지는 등 어지간한 전방 GOP부대들이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휴가를 자주, 길게 나올 수 있고 돈도 어찌됐건 소초나 레이더 기지에 투입된다면 격오지이기 때문에 격오지 수당이 따로 지급된다. 2만원 남짓이지만 어찌됐건 보통 병사들에 비해 돈도 조금 많이 받고 휴가도 많이 받는 나름대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겨진 꿀이 많은 부대이다.

6.2. 사단가


'''호남의 넓은 평야 바라보면서'''

'''새벽이슬 헤쳐가며 발걸음도 가볍게'''

'''조국을 지키려고 무술닦는 곳'''

'''무적의 용사들아 힘차게 나가자'''

'''약진하는 충장부대 무쇠같이 뭉쳤다'''

'''아아 호남의 방패 삼십일사단'''

'''-31사단가'''


7. 사건사고




7.1. 5.18 민주화운동


흑역사로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적이 있다. 단, 당시 사단장이던 정웅 소장(1980년 예편)은 강경진압에 부정적이었다. 전남북계엄분소장 및 전투교육사령부(현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이었던 윤흥정 중장[11]의 출동명령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이후 정웅 소장은 예편 당한 후에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광주 북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당시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부대와의 오인 교전으로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당연하겠지만 518유족단체에게는 이 부대에 대한 인식이 썩 곱지는 않다.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진압에 투입되었던 제20기계화보병사단도 마찬가지. 전두환 대통령이 사단장을 역임했던 제1보병사단과 마찬가지로 영 좋은 소리 못 듣는 부대. 그나마 특전사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인데 앞에 언급한 정웅 소장과의 인터뷰 기사[12] 에 따르면 향토사단에게는 심지어 '''빵이나 음료수를 가져다주었다'''고 할 정도. 31사단 병력은 공수부대보다는 온건한 대응을 폈다는 증언도 있고, 향토사단이란 특성상 지역민들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게 이유인 듯 하다. 이것과는 별개로 정웅 소장은 광주에서 영웅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신군부에서 내린 강경진압을 무시하여 예편 당했었고 이후 김대중에게 광주의 진상을 폭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을 때는 90%가 넘는 지지율을 받았다. 이는 지휘관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아무리 상급자의 명령이라도 그것이 부당하면 그것을 무마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양심과 강단이 있느냐, 없느냐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민간인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항쟁 3일째인 5월 20일, 이날은 시민들이 시내버스와 택시로 차량시위대를 조직하여 계엄군의 만행에 정면으로 맞선 날이었다. 이 과정에서 광주역과 광주시청 사이에서 작전 수행한 3공수여단을 31사단이 지원했고 그 결과 이들에게 4명이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23일 해남에서 총격 사망자 2명[13] 포함해서, 31사단의 유혈진압으로 총 6명이 사망했다고 5월단체는 밝혔다.("광주 향토사단이 5.18 진압중 시민 사살")
게다가 2019년 공개된 군 문서들에 따르면, 5.18 당시 31사단에는 '''화염방사기 지원대'''가 존재했고, 실제로 화염방사기를 30대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화염방사기 30대 사용’ 등 5.18 문서 2300여건 공개) 22일에는 31사단장 정웅 소장이 무장헬기 조종사들에게 '''"로켓포를 쏴서라도 때려라"'''고 강경진압 지시를 내린 사실이 드러났다.('로켓포 쏴서라도 때려라' 전두환 재판에 등장한 군 헬기 기록)
이런 것들이 밝혀지면서 31사단이 시위대를 향한 특전사에 비해 학살진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손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31사단에 의한 사망자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7.2. 장흥 해안초소 총기 사망사고


2013년 7월 25일 오후 5시 55분께 육군 해안초소에서 31사단 소속 김 모 일병이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김 모 일병 관물대에서는 '군 생활이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가 발견됐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소속 군부대에서 선임들의 욕설과 폭언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김 모 일병은 통신 특기로, 업무에 관련한 암기가 요구되었는데 선임병들의 폭언과 과도한 암기 강요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7.3. 여수 임포초소 생활관 신축 문제 갈등


여수 시민위 "국방부, 향일암 충돌 사과하라"
간첩선 잡은 여수 임포소초, 생활관 신축 갈등 1년만에 봉합
여수 임포소초 생활관 신축 ‘상처 남기고 마무리’
2014년 12월 기존 노후된 시설을 대체하기 위해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 지구 근처에 초소의 생활관을 신축 공사를 개시했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이 자연환경 훼손 문제 등을 제기하며 군과 충돌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마찰이 장기화되고 공사가 지연되자 국민권익위원회와 지자체가 중재를 나섰고, 논의 결과 도출된 기존 부지에 증축 및 개축, 완공 후 거북머리 원상 복구, 거북머리 인근 부지 공원 조성 후 관광객 공개 등의 중재안을 양측에서 겨우 수용하면서 1년만에 마무리되었다.

7.4. 목포 육군 일병 실족사 사고


2015년 1월 16일 31사단 소속 모 일병이 해안경계 근무를 하던 도중 실족하여 사고 발생 7일만인 23일에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당초에는 무장탈영에 초점을 두고 국지 도발급으로 격상되면서 피아식별띠 평시 착용에 근처 지역에는 검문소도 치면서 탐색을 하였으나 실탄이 아닌 공포탄을 챙기고 군장을 한 상태였던 점과 주변지역 CCTV들을 아무리 뒤져도 그림자 하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실족사로 인한 실종에 무게가 실려 수색을 하였고 그에 따라 발견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탈영에 초점을 두면서 실종 가능성을 초반에 염두해두지 않은 군 당국의 미숙한 대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사고 당시 같이 근무를 서고 있었던 선임의 거짓진술에 휘둘렸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더더욱 까이고 있다.
후속 기사에서 계속 "일병"으로 나오는 걸로 보아 순직 처리 및 1계급 추서는 되지 않은 모양이다. 기사

7.5. 31사단 육군 일병 사망사고


전남 한 군부대에서 병사가 숨진 채 발견돼 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2018년 9월 16일 육군 제31보병사단에 따르면 전날 오전 전남 한 육군 부대 내 생활관 인근에서 A(20) 일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불침번을 서던 A 일병이 근무교대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부대원들이 수색에 나서 A 일병을 발견했다.
군은 가혹 행위 여부 등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기사

8. 여담


일본 밀덕후라 알려진 모 블로거가 한국군 코스프레하고 나왔을때 사용한 전투복에 달린 사단 마크가 바로 31사단 마크이다. # 충장부대의 부대명 어원이 임진왜란에서 일본에 맞서 싸웠던 의병장 김덕령 장군인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 미묘한 센스 (...). 원칙 상 군복을 비롯해 사단 마크 역시 모두 해외 유출 금지임으로 군복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가짜가 아닌 이상 범죄다.
제31보병사단에서 이등병 한 명이 자살하였다. 부대내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로 추정되는데 부대측은 가슴의 멍을 보고 '밀쳐서 생겼을 수도 있다' 식의 드립을 쳐서 욕을 자초하고 있다.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때문인지 2층부터 안전철창(과연 화재 발생시에도 안전할지는 의문이지만)이 설치되어 있다.
2013년 9월에는 상근예비역이 야산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제주도는 이 사단의 직접적인 관할 지역이 아니지만 제주 출신 징집병들은 이 사단 신교대로 훈련소를 배정받는 경우가 있었다. 요즘은 운빨이긴 하지만 그런 도서지역 출신 병들은 그동네에 눌러 앉아서 근무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으나 제9해병여단 창설로 제주도 및 전남 남해안에 정식 해병대 전투부대가 배치되면서 도서지역 출신들은 상근예비역이 되면 100% 대한민국 해병대로 가게 된다.
일부 향토사단 사령부가 시가지의 확장으로 인해 이전했거나 이전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31사단은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다른 군부대에 비해 이전 요구에 대한 목소리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일단 31사단 사령부 주변에 주택가가 있지만 사단 자체가 산기슭에 있어 개발요구에 대한 마찰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광주 인근 지역에서 훈련중의 폭음이 문제가 되어 민원이 꾸준히 늘어온 관계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다수 후보들이 31사단의 위치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근데 선거 공약이 그렇지 사단 안에 신축건물 지어대는 거 보면 이전의 가능성은 딱히 없어보인다. 애시당초 선거할때만 잠깐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그냥 선거전 용으로만 쓰이는 듯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광주시장들은 국방부와 부대 이전 협의를 한다는 언플만 해대지만 이걸 언플이라고 치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전을 추진하는 단체에게 군부대 토지의 소유권을 이전하기 위해서는 현재 군부대가 위치한 부동산(토지+건물)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의 군부대 시설(토지+건물+시설)를 받아야 국방부에서도 부대 이전 허가가 떨어지는데 그 근처에는 옮길 곳이 마땅치 않다.[14]
시가지가 바로 근처에 있고[15], 부대의 경계 바로 옆이 삼각산의 등산로이기도 하다. 덕분에 악천후시 등산로에서 벗어나 부대 철책 주변을 헤메는 등산객들이 간혹 보인다. (인솔해서 사단 정문으로 데려가는건 발견자 몫) 또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4시에 삼각산을 등반하여 야호를 외치는 일명 야호아저씨가 있었다.
이 사단의 종교시설 중 교회(삼일교회)와 성당(충장교회), (호국관음사)이 전부 군부대 외부에 있어서 종교활동을 하러 간다면 그 근처에 가족이 살고있는 훈련병이 있다면 가족들이나 여자친구들이 자주 와서 얼굴보고간다. 물론 대화는 금지이다. 참고로 31사단 법당인 호국관음사는 31사단이랑 거리가 조금 되는 편이다. 그래서 이 곳으로 이동할 때는 도보가 아닌 인원을 나눠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훈련병이 아니라 현역때 이 근처를 오게된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이 법당 바로 옆이 31사단 유격훈련장(...)이다.[16] 물론 훈련병 마지막 주차에 야간행군때도 이곳이 대휴식 장소라서 그리 달갑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삼일교회나 호국관음사같은 경우에는 외부인들 즉 민간인들에게도 개방되어있는 곳이다보니 네이버 지도 위성으로 봐도 가려놓지 않았고 호국관음사같은 경우에는 검색은 안되지만 로드뷰로 봤을 때 옆에 있는 유격장은 다 가려놨는데 호국관음사 간판만 모자이크가 되어있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이 부대로 신병교육 또는 면회 등을 이유로 가야하는데 가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네비게이션에 광주 삼일교회라고 검색하면 31사단 본부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나로호 발사대가 31사단 지역에 있어 나로호 발사때마다 경계임무를 담당한 부대다. 그리고 사단 10대 자랑이라는 구호를 만들었는데 이 나로호 발사 경계작전이 들어가있다.
제39보병사단, 제53보병사단, 2함대, 3함대,진해기지사령부,제1해병사단과 함께 유병언 체포작전에 투입된 부대이기도 하고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는 예하 부대들이 매일같이 전병력 일제 해안수색을 나가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부대라서, 5.18을 다룬 창작물에서는 육군특수전사령부 병력 다음으로 잘 나온다.
90년 대 초반에 2군 예하의 부대는 현역보다 방위병(출퇴근하는 단기 사병)들이 더 많이 복무하고 있었다 31사단 신병교육대는 현역 신병들을 훈련시키기도 했지만, 많은 기수들이 방위병(단기 사병)을 훈련시키고 사단내의 예하 부대에 배치하는 역활을 했었다. 87년 이전까지 단기사병의 훈련 빛 부대 배치는 사단 부관부(현 인사참모부 인사행정병과)에서 배치하는 역활을 하고 있었지만, 부사관들과 훈련병이 모두 동일 지역에 생활하다보니 알게모르게 부정의 소지가 있었다. 87년도에 사단 관리참모부 전산실(당시 편제)에서는 단기 사병 배치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31사단에서 시범 적용을 한후 당시 2군내의 전 부대에 배포한 기록이 있다. 당시 프러그램 개발은 장교들의 역활이었고 사병들은 자료 입력을 하도록 되어있었으나, 80년대 중반에 전상 장교들 중 전산을 전공한 장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31사 전산실에 배치된 전산병 중에 대학원에서 전산을 전공하고 공기업 연구소 및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늦게 입대한 사병이 2명 있어서 그 둘이 주도적으로 개발을 성공 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공로로 전산실장은 표창을 받고, 2명의 사병은 포상휴가를 받았지만, 전역 전날까지 프로그램 A/S를 하는 격무(?)를 하다가 전역 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1] 광주광역시 동구의 번화가인 충장로의 이름 또한 여기서 유래했다.[2] 이전에는 오랫동안 "단결" 이었다.[3] 당시 신문 기사 사실 완도쪽이 아니라 해남쪽에 더 가까웠다. 덕분에 상황은 양쪽에 다 떨어졌지만.[4] 보통 그런 배들은 마개조를 통해서 쌍발 엔진을 쓰기때문에 정말 빠르다.[5] 1)31 숫자를 횃불로 형상화 + 광주의 상징색, 2)호남의 방패를 의미하는 방패모양과 무등산의 세 봉우리를 의미하는 상단 + 전남의 상징색, 3)백의민족이라는 의미의 흰 테두리, 광활한 해안을 상징하는 파란색이라고 한다.[6] 해당문서 참조.[7] 방위병[8] 목포,무안, 영광,함평 등[9] 그래도 최초 목격자 즉 포착은 여수 임포소초에서 TOD 감시근무를 서고있던 김태완 당시 이병이었고 해군의 레이더기지는 보고가 된 후에 비상이 걸린 후 여수에서 원해로 나가는 배를 찾은 거라 포상과 국가유공자 등의 혜택은 전부 최초 목격자인 당시 김태완 이병과 사수였던 모 병장이 받았다.[10] 다만 서술했다시피 지역 자체가 넓고 해안선도 길고 해병대 신속대응부대는 제한적으로 배치되있다보니 해병대 근처로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적들이 해안선 침투에 성공했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될 부대는 아마 31사단 예하의 소초에서 운용하는 해안기동타격대나 해안 매복지에 매복하고 있는 분대 등 어찌됐건 31사단 예하 장병일 것이다.[11] 다만 이 사람도 군의 강경진압을 반대하다 '''작전 중에''' 소준열 소장으로 교체당한다.[12] 해당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략) 이와 관련하여 광주 사태를 목격했다는 박 모씨(38)는 『광주 사태 때 광주 시민들이 정 장군의 향토 사단 병력에는 빵, 음료수 등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공수부대는 얼룩무늬 군복을 , 향토 사단은 초록빛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향토 사단 병력은 시민들을 과잉진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 향토 사단마저 발포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라고 말했다. (후략)[13] 이 해남에서의 사망자 수 2명도 축소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실제 해남 사망자는 4~7명으로 추정된다. ("해남군부대서 시신 봤다"...청문회 증언 막아, 5.18 당시 해남 우슬재와 상등리에서 일어난 집단총격)[14] 군 부대를 지을 땅이 없는게 아니라 오치동에 위치한 사단 본부의 토지 가격과 건물 가격을 맞춰주면서 인근 장성이나 화순, 담양 혹은 광주 외곽 인근으로 옮기기에는 그 가치의 차이가 매우 크다보니 군 부대의 규모가 매우매우 커져야하는데 이게 이전 대상이 되는 지자체에는 달갑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고 애당초 광주 외곽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광주시청이 아닌 전남도청과 타 지자체 시청의 관할이다보니 연계가 잘 될래야 잘 될수가 없는데다가 광주 외곽을 준다고 해도 언제 이전한 군부대 근처에 주택단지가 들어설지 모르기때문에 아직까지도 실현이 되지 않고 있다.[15] 걸어서 5분 거리에 주변 PC방, 대중 교통 몇 분 타면 전남대.... 휴가나 외박, 외출 나올 때는 주위에 피시방도 있고 택시타고 곧바로 버스터미널 갈 수 있어서 좋은데 평상시에 일과 뛰면서 밖의 광경을 보면 정신건강에 많이 안 좋다는(...) 단점이 있다.[16] 옆 도로에서 레펠 강하 훈련용 탑이 다 보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