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1. 餘數
남은 수.
2. 餘水
남은 물. 댐에서 물이 넘치려 할 때 이를 빼내는 관을 여수로라고 한다.
3. 旅帥
조선시대 군대조직인 여(旅)의 지휘관이다. 조선 전기 군사편성의 원칙은 세조 때 편찬된 오위진법(五衛陣法)에 바탕을 둔 것이다. 즉, 이는 졸(卒)―오(伍)―대(隊)―여(旅)의 하위조직 위에 통(統)―부(部)―위(衛)의 상위조직을 구성하여 5위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가장 말단의 단위조직인 오는 5명의 졸병(卒兵)으로 이루어지고, 다시 1대는 5오로, 5대가 모여 1여를 이루었다. 따라서, 1여는 125명의 졸병으로 구성되었다. 이 125명의 지휘관이 여수다.
종8품이었으며, 주로 정병(기병, 보병)에서 승진했다.
4. 女宿
제사를 주관하는 별자리.
5. 呂嬃
초한전쟁 시기 여태후의 여동생이자 번쾌의 아내. 전한 제2대 황제 혜제의 이모이다.
20대 내지 30대쯤 되었을 때도 여후가 '어린아이'라고 평할 만큼 어리광이 심한 성격이었던 듯 하며, 친가족을 끔찍하게 아꼈던 여후의 성격 덕에 유방이 죽은 후로 꽤나 천방지축처럼 살았다. 여수는 남편 번쾌와 금슬이 매우 좋았는데, 진평이 어쩌다보니 번쾌를 잡아 가두었던 일로 원한을 가져서[1] 여후에게 달라붙어서 끈질기게 진평을 모함했다. 이때문에 진평은 심신으로 매우 고생을 했고, 한참 후에야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무려 조참이 죽은 6년 후가 되어서야'''. 이 와중에도 여후는 여수를 엄히 꾸짖기보단 웃으면서 '어린애 장난'으로 넘겼는데, 가족이 엮이면 영 원칙이 없던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이런 성격과는 달리 상황을 읽는 눈은 또 가족 중에서는 총명했던지 진평과 주발이 여록의 친구인 역기를 조종해서 그를 낚아 군권을 빼앗으려고 할때 여수가 나서서 '''"너 때문에 우리들이 다 죽게 생겼구나! 우리가 군사를 잃으면 어디에 발을 붙인단 말이냐!'''"고 꾸짖어서 하마터면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뻔 했다. 결국 여씨 일족은 남김없이 참수되었는데 여수는 유독 구타당해서 죽었다고 언급된다. 진평이 개인적으로 화풀이를 한 듯.
6. 麗水
대한민국의 지명 외에도 중국 저장성의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도시이며 한국의 지명인 여수와 같은 한자를 쓴다. 다만 중국에서 쓰는 여수는 간체자인 丽水(Lìshuǐ 리수이)로 표기하기 때문에 한국 여수를 중국 간체자로 바꾸거나 중국 리수이를 한국 정체자로 바꾸지 않으면 같은 한자인지 모른다. 이름이 같아서인지 여수 엑스포가 중국에서 열렸던 것으로 생각한 중국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중국 도시중 잘 알려진 도시 청도와 칭다오의 몬더그린과는달리 한자 병음 성조 모두 같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연관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이는 성남시 여수동마저 지명의 모태(천자문의 "금생여수 옥출곤강")는 같다고 한다.
6.1. 전라남도 여수시
사람 인 모양으로 생겼다. 인구는 약 30만명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남쪽에 위치한 반도도시.
6.2.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법정동이며, 행정동상으로는 도촌동에 속한다. 성남시청이 있다.
7. 呂水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
8. 여우의 방언
여우를 뜻하는 중세 국어 '''여ㅿㆍ'''에서 나온 방언 중 하나이다.
[1] 실제로는 진평은 본래 그 자리에서 죽었을 번쾌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