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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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燕山君日記

1. 개요


조선 제10대 국왕인 연산군 이융(李㦕) 재위(1494년 ~ 1506년) 11년 10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총 63권 4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국보 제151호에 해당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과 국가기록원 소속된 역사기록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국사편찬위원회 연산군일기 전문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일기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남겨진 실록.[1] 연산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다른 왕과는 달리 일기수찬(日記修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광해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494년 12월 25일부터 폐위된 1506년 9월 2일까지의 역사를 다룬 실록으로, 연산군 사망 직후인 1506년(중종 1년) 11월에 편찬을 시작하여 1509년(중종 4년) 음력 9월 12일에 완성하였다.
주요 편찬자는 처음에는 김감(金勘)이었으나 편찬 시작 3개월만인 1507년(중종 2년) 음력 2월에 김감이 대신 암살사건으로 유배를 가면서 대제학 신용개로 교체되었다.[2] 그러나 음력 4월 정부에서 연산군 때 은총을 입은 자들이 일기를 편찬하면 직필이 어려울 것이라는 건의에 따라 또 다시 수찬관이 성희안, 신용개, 김전 등으로 교체되었다.
연산군일기는 중종반정으로 집권한 이들이 연산군의 비행을 과장하기 위해 사초의 내용을 윤색한 흔적이 보이며, 연산군의 폭정을 과장하기 위해 객관성이 결여된 서술을 많이 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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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년 9월 12일에 연산군일기 편찬이 모두 완료된 후 당시 기사관으로 참여했던 권벌(權橃)의 후손이 '''일기세초지도(日記洗草之圖)'''를 남겼다. 실록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책임자의 구성 변화와 자세한 편찬 과정, 그리고 편찬 완료 후 이루어진 세초 작업에 관한 내용까지 상세히 남겨놓은 것이다. 현재 권벌 종가의 다른 고문서 1,000여점과 함께 '''권벌 종가 고문서(權橃 宗家 古文書)'''란 이름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901호로 지정되어 있다.#, ##

3. 바깥고리



[1] 사실 처음은 아닌데, 단종실록도 편찬 당시에는 '''노산군일기'''였기 때문이다.[2] 김감은 연산군때 열렬히 아부하는 시를 지어 총애를 받은 어용 문인출신이다. 그러나 반정 즈음 재빠르게 줄을 바꿔 살아남았다. 설공찬전으로 유명한 채수의 사위이자, 밑에 나오는 후임자 김전과는 6촌 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