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
'''실제 영상이 포함되어 있다.'''
1. 개요
2014년 10월 10일 오후 4시경, 대북전단을 담은 기구를 향해 북한이 먼저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방면으로 14.5㎜ 고사총을 발사하였으며 총성은 합수리의 군부대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총탄은 군부대 주둔지와 중면 면사무소에 낙탄했다. 아군에서는 이에 대해 경고방송 후 K6 중기관총으로 40여발을 북GP를 향해 대응사격을 하고, 이어 북한이 우리 측 군 초소를 향해 개인화기로 응사하였고 아군 역시 K2 소총 9발로 북GP에 재응사를 가했다고 알려졌다.[1]
2010년 북한의 DMZ에서의 총격전 이후로 처음으로 있는 육상에서의 무력 충돌이다. 이에 연천군 일대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으나 몇시간 뒤 해제되었다.
2. 상세
북한은 이전부터 대북전단, 소위 삐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여왔다. 특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북한 수뇌부 3명이 전격 남한을 방문했을 때도 이를 언급했을 정도다. 북한군과 조선중앙방송 등에서는 삐라를 살포할 경우, 격파사격, 조준사격 등 위협적인 단어를 써가면서 남측에 경고했다. 그리고 결국 말 뿐이던 북한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해 남한 내부에서도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실제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정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규정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통일부 관료가 제지하는 선 정도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제지 하지는 않았지만 단체의 자유의지가 타인들에게 더 큰 피해를 가져다 준다면 당연히 법적으로 제재의 대상이 된다. 대북전단 살포의 경우는 이 사건 수준은 아니라도 살포지점 인근 거주민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가져다 주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은 '''대북전단 규제가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살포지점을 향한 포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북측 초소에서 상공에 떠오른 대북전단을 담은 풍선을 향해 사격을 가했는데 대공사격에도 쓰는 14.5mm 중기관총이었기에 탄환 몇발이 남측으로 떨어졌다. 북측에서는 휴전선을 넘기 전에 풍선을 터트리려는 의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남측으로 사격이 가해진 셈이고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짓이었다.
애초에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은 파주시에서 이루어진 대북전단 살포였다. 하지만 연천에서도 이와 비슷한 행사가 있었다. 참고로 이 행사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모든 게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건 아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날 오후 1시 50분 경, 탈북자이자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인 이민복 일행이 연천 야산에서 풍선 23개에 전단 132만 장을 달아 살포했다고 한다.
오후 3시 55분 경, 이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북한군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후 남한군에서도 응사하였고, 몇차례의 대응사격이 오고 갔다. 2차 사격전은 GP간에서 일어났다. 다행인 것은, 이로 인한 남북의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천군 주민 60여 명은 대피했다.
북한군 포병들이 갱도진지들을 개방하자 한국군 K-9 자주포들이 포문을 올리고 추가 도발에 대비했으며 F-15K 두 대가 GBU-39 JDAM을 각각 20발씩 장착한채로 비상대기했다.
3. 언론의 보도
언론 보도 초반부에는, '''포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사격으로 정정되었다.
4. 비판
다음의 내용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지만, 사실 이는 논쟁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 것이므로 주의.
4.1. 원점 타격의 문제
사건이 처음 나고 나서 왜 원점 타격을 안 했는가에 대한 주장들이 나왔는데, 이는 고사총 진지에 대한 몰지각에서 발생한 문제. 북한은 저고도 항공기, 즉 헬기 공격에 대비해서 휴전선 인근에 상당히 많은 수의 단거리 대공화기 진지를 배치했고 그 수가 한둘도 아니기 때문에 이걸 원점 파악하고 타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대공사격이고 영공 침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아리까리한 것이 사실. 정전협정 위반을 주장하려 할 경우 상당히 껄끄러운 것이 이 때문인데, 남측이 날린 풍선이 북 영공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결국 북한이 사격을 할 빌미를 제공하는 경우가 되며, 이는 북방한계선등 북이 어기고 있는 영토조례에 대한 문제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저런 단거리 대공진지들의 경우는 대부분 항공기로 색적하여 격파하는 것이 일반적. 만일 그 기준을 적용하자면, 결국 저 당시에 항공기가 안 떠 있으면 결국 원점 타격에 대한 문제는 애초에 망했어요~ 일수밖엔 없다.
국방부의 발표 역시 원점 식별이 불가능하여 대응 매뉴얼대로 소초로 사격을 가했다고 하며, 때문에 소초들간의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라고 하며, 따라서 원점 타격 비판 문제는 이 경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4.2. 살포 시간의 문제
다음으로 많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살포 시간의 문제이다. 사실 그 "삐라" 라는건 애초에 항공전이 시작되면서부터 공중 살포가 일반화 된 것이 사실은 사실인데, 특징은 거의 밤에 살포했다는 것이다. 즉, 야간살포가 더 효과적일수 밖에 없고, 북한군의 열악한 야시장비를 생각해 보면 결국 대공포격이 불가능했을수 밖에 없다는 점.
이 문제 때문에 대북단체들에 대한 비판도 꽤 있었고, 결국 정치적인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 역시 존재하고 있다. 즉, 삐라의 살포 효과를 고려한다면 결국 저런 행사 차원이 아니고, 야간에 위치를 분산하여 날려 보내는 쪽이 살포 효과가 더 양호하다는 의견. 결론적으로 대북단체의 정치적 욕심에 의거한 보여주기 차원의 행사 강행이 연천 군민에게 대민피해를 야기했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이것이 대북심리전의 일환으로 고려되는 경우라면 적절치 못한 전략이었다는 점은 비판을 피할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4.3. 북한의 반응
사실 대공 사격에 대해서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견을 들어서 삐라가 효과가 지대하다는 공헌론이 주장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심리전 효과라는 것은 한계가 있고, 이 경우는 부수적으로 사용되는 전술이다. 독일 통일의 경우는 서독에 대한 동경 보다는 동독 자체가 경제난에 휩싸이면서 격발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이 있으나, 거의 연달아 일어난 북방한계선 침범시 과거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교전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 등으로 보아서 북한 영토정책의 변경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분석 역시 존재한다. 즉, 과거 김정일 치하와는 다르게 북방한계선의 해상영토 문제는 심각하게 끌고 가지 않지만, 반대로 육로에 대한 것과 영공에 관련된 부분은 대응이 다른 것으로 보아서 정책상 변화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이외에도 무인기에 대한 과민반응에 의거한 것이라는 점도 한 가설로 제기되는데, 사실 요즘은 무인기가 점점 소형화 되고 지능화 되고 있으며, 기구 정찰 등도 가능하기 때문에 북측에서 반대로 저고도로 공중정찰을 할수 있는 수단에 대해 강경대응하는 아젠다를 구성했다는 분석도 있다. 더군다나 과거 무인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더 환기되는 경우.[2]
이후로도 북한은 서부전선에서 계속 분계선을 남하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10월 19일에는 파주에서 경고 사격을 하는 한국 쪽 GP를 향해 사격을 했고 한국 측에서도 이에 대응 사격을 하면서 10분 간 총격전을 벌이는 등[3] 긴장관계를 고조시키고 있다.
심리전이나 무인기 문제는 그렇다 쳐도, 결과만 보면 싸구려 헬륨풍선에다 아까운 고사포탄을 난사했으니 경제적으로는 피해가 컸다.
[1] 당시 대응했던 제28보병사단은 1년 뒤 서부전선 포격 사건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두 번의 실전 경험을 모두 획득한 사단장은 김승겸 소장(육사 42기)으로, 2020년 현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대장)을 맡고 있다.[2] 사실은 이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미국역시 모형 비행기를 통한 스파이캠의 우려 때문에 워싱턴 상공이나 인근 상공에서 무인 비행기를 날리는 것을 금지할 것을 검토한 웃기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소형 경량화된 디바이스에 의한 폐해.[3] 다행히도 한국군에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