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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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2020년 9월 21일 대장으로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2. 생애
1963년생,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 출신으로 김영옥 예비역 중령의 아들이자 김영 예비역 대령의 조카다. 1982년 서울 오산고등학교(72회)를 졸업하고 같은 해 육군사관학교(42기)[1] 에 입교하여, 1986년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현역 육군 장성 중 유일하게 실전경험이 3번이나 있는 장군으로 제3보병사단 13중대장 시절 1번("은하계곡 대침투작전"[2] ), 사단장 시절 2번(14년도 북한 고사총 도발과 15년도 북한군의 포격도발)이 되겠다.
대위 시절 '''을지무공훈장'''을 수훈했는데,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무장공비 4명을 차단 및 수색, 교전을 통해 전원 사살한 '''5.22 완전작전(위에 설명한 은하계곡 대침투작전)'''에서 전초13중대장으로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김승겸 대위의 을지무공훈장 수훈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6.25전쟁과 베트남전 이후 전시가 아닌 평시에 수여된 최초의 을지무공훈장이기 때문이다. 현역 군인 중 유일하게 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이다.(추가로 미 국방성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Legion Of Merit"도 수훈받음. 총 2개의 훈장 소유)
위관장교시절 1차 중대장은 특전사에서 특전중대장을, 2차중대장은 전방사단인 3사단 전초대대(=현, 수색대대)에서 전초중대장을 하였다. 이후 소령 진급을 1차에 한 후 제3보병사단 대대 작전장교와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훈육관, 중령 때 제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 동 사단 작전참모, 대령 때 제1보병사단 12연대장[3] 과 35사단 참모장[4] , 합참 합동작전과장[5] 을 지냈다.
이후 육사 42기의 선두주자로서, 대장까지 모든 계급으로의 진급을 1차에 했다. 준장 시절 21사단 부사단장, 6군단 참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을 지냈고,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28보병사단장과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6] 을 역임했다. 그러나 군복무 기간 중 조현천을 위시로 한 알자회 일당들에게 찍히는 바람에 거의 전역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는데, 이때 받은 보직이 한직인 2016년 국군의 날 행사단장이었다. # 과거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을 필두로 한 그의 육사 선배들이 알자회의 실체를 폭로할 때 동기들과 함께 알자회 퇴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영상을 보면 패기+살기 넘치는 특유의 인상이 아니라 착잡하기 그지없는 인상이다. 공교롭게도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을 역임할 당시 취임했던 임호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이 알자회 출신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구사일생으로 2017년 9월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중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제3군단장[7][8] 을 역임한 후 육군참모차장[9] 으로 보임되어 직무를 수행 중 2020년 9월 18일, 서욱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으로 취임과 동시에 전역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가 되었는데 3일 만인 9월 21일, 예상대로 1차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이틀 후인 9월 23일, 이.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하였다.[10]
그의 대장 진급 배경에는 넘사벽 아이템인 '''을지무공훈장''', 중위부터 중장까지의 진급을 모두 1차에 한 것, 중장급 인사들 가운데 비육사 출신 임관동기인 3사 21기[11] 나 학군 24기[12] 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었다는 요소들이 있다. 결국 육사 42기 내 선두주자인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과 경쟁하였는데, 본인과 함께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이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작전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육사 1기수 후배인 안준석 국방개혁비서관 역시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여 지상작전사령관에 취임하였다.
학군출신 최초로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 남영신 대장(학군 23기)이 서욱 국방부장관과 임관년도가 같은데다, 원인철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공사 32기, 육사 40기 상당)은 서 장관보다 1년 선배이므로 1년 정도 임기 후에 예편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이렇게 될 경우 남영신 대장의 후임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하거나 원인철 대장의 후임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할 가능성이 높으며 만약 2022년까지 임기를 유지한다면 정권 교체 후 차기 정권에서 합동참모의장으로 내정되고 육군참모총장은 육사 43기의 안준석 대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 김승겸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이 될 경우 2013년의 권오성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34기) 이후 오래간만에 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의 육군참모총장이 나오는 셈이며,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할 경우에는 2011년의 정승조 전 합동참모의장(육사 32기) 이후로 오래간만에 육사 출신이자 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의 합동참모의장이 배출되는 셈이다.[13]
2.1. 역임 보직
-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전중대장(대위)
- 제3보병사단 전초대대 전초중대장
- 제3보병사단 대대 작전과장(소령)
- 육군사관학교 훈육관
- 제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중령)
- 제2보병사단 작전참모
- 제1보병사단 12연대장(대령) 2008.12 ~ 2010.7
- 제35보병사단 참모장 2010.7 ~ 2010.12
-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합동작전과장 2010.12 ~ 2013.1
- 제21보병사단 부사단장(준장) 2013.1 ~ 2013.4
- 제6군단 참모장 2013.4 ~ 2014.4
-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 2014.4 ~ 2014.9
- 제28보병사단장(소장) 2014.9 ~ 2016.5
- 제68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2016.5 ~ 2016.11
-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2016.11 ~ 2017.9
- 제3군단장(중장) 2017.9 ~ 2019.5
- 육군참모차장 2019.5 ~ 2020.9
-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대장) 2020.9.23 ~ 현재
2.2.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20년 9월 21일 1차에 대장으로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14]
2020년 9월 23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3. 일화
3.1. 대대장
제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 시절 부임과 동시에 부대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행보관, 주임원사와 호형호제하던 전임 대대장과 다르게 무능한 간부를 경멸하고 병사들 보는 앞에서 연병장에서 하사, 중사들 완전무장 포복시키고 대강대강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했다. 미숙하다고 이등병을 배려, 짬된다고 상사/소령을 밥대접? 그런 거 없다. 뻘작업을 전부 없애고 훈련에 매진하는 부대로 탈바꿈시켰으며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즉각조치사격을 실시하였는데 사로 내에서 빵야빵야가 아니라 사로 위에 선 채로 분대장 명령에 따라 3점사로 3탄창을 발사하였고 K3사수는 링크탄 한 탄통을 자동사격하였다.
또한, 부식창고를 개방하여 그동안 병사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암암리에 빼돌려지던 부식, 보급품을 한꺼번에 불출하기도 했다. 당시 실제로 사단 교탄 소모량이 가장 많은 부대가 31연대 2대대였으며, 주기적으로 망실/정비를 요하는 개인화기/공용화기는 정비대로 입고하는 그야말로 FM에 수렴하는 부대였다. 짜증내는 정비대 아저씨가 전화로 화기주인 바꿔달라는 전화는 덤...
이런 타이트한 전투훈련 위주의 부대관리가 순기능을 낳기도 했는데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똥군기가 부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내일 오전에 사격하고 오후에 축구하고 야간에 전반야, 후반야 하고 그 다음 날 중대 전술훈련하고 그다음 날 주특기 훈련... 똥군기가 시전될 정신적, 육체적 풍요로움이 있을 수가 없으며 이등병 사물함에 던져지던 건빵은 꼭 챙겨야하는 필수템이 되었다 . 훈련에서 견뎌내야 하기에 주말에 구보를 하고 체력단련을 자발적으로 하는 게 그 당시 2대대였던 것.
당시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도 나왔던 노도 유격장을 가기 위해선 네 발로 기어야 하는 고바위의 대공기지를 넘어야 했는데, 5중대부터 중화기 8중대까지 밀고 끌면서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단시간 주파에 성공했다. 여러모로 후임 28사단장인 윤의철(육사 43기)과 상반되는 지휘관. 윤의철이 밑도 끝도 없는 체력단련만을 강조한다면 김승겸은 중대장 시절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죽이고 나와 내 동료들이 살아남는 법을 강조했다. 게다가 당시 소수 있었던 특전사 출신 전역대기 부사관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부사관들이 특수전 노하우를 전파해주는 등 분위기가 매우 진지했었다.
뱀발로, 신병이 전입을 오면 고참들이 "너 군생활 꼬였다"라고 으름장을 주기도 했는데, 그 주체가 다름아닌 대대장이었다. 이유가 걸작인데, 나중에 별 달 사람이라고. 우스갯 소리였겠지만 저때 김승겸 장군은 중령이었던 걸 생각하면 흠좀무. 주특기 훈련 중 초과달성을 하면 그 소대, 분대는 그날 자유일과를 주었다. 하지만 훈련을 나가야 하기에 자유시간은 곧 정비시간.
이와 같은 일화도 있다.
그리고 대대장 임기 종료와 동시에 제2보병사단 작전참모로 영전하였다.대대장 취임 시 교육계의 다급한 한마디. "야 이제부터 뻘작업 없다. 무조건 훈련만 한다. x된 줄 알어"
1. 대대 사열대 플랜카드가 원래 "가족 같은 병영" 인가 그랬는데 "싸움터에서 이기는 영웅이 되자"로 바꿈.
2. 우천 시 병사들 우의 금지. 무조건 판초우의 착용.
3. 우천 시 훈련 없음 이런 거 없음 무조건 훈련.
4. 수송부에서 육공 끌어다 놓고 소대 단위 전술적 탑승 훈련 밥먹 듯.
5. 수요일 오전은 무조건 사격. 영점, 축소 그런 거 없음. 사로에 북한군 타겟 세워놓고 전부 사로위 서서쏴 자세로 분대장 구령에 맞춰 점사로 땡김. K3는 탄통 끼워놓고 풀로 땡기게 함.
6. 비가 심하게 오거나 혹서기에는 내무실에서 mopp수트 입는 연습과 탄창에 클립탄 장전하는 훈련함.
7. 주에 거의 1회 정도 준비태세 훈련, 시간 오버되면 다시 내무실 다 정리하고 옷다벗고 누워있다가 다시 시작. 그걸 리미트 안 걸릴 때까지 반복.
8. 안면위장할 때 안면만 위장하고 그런 거 없음, 손등, 팔 얼굴 이마 귀 목 밖에 드러나는 모든 살갖은 우드랜드 무늬로 위장함.
9. 무조건 주당 전반야 후반야 실시.
10. 2주에 한 번씩, 훈련 앞두고는 주당 1번씩 20~30키로 급속행군 실시. 눈와도 예외 없음. 아이젠 차고 함.
11. 탄창 갈아 끼울 때 무조건 소총 권총손잡이 잡은 상태에서 검지 손가락으로 멈치 눌러야지. 뭐 엄지로 누르고 하면 당장 발길질.
12. 대대 축제할 때 화끈하게 못 논다고 회식하던 중에 전부 취소시켜 버리고 그냥 하루종일 오침.[15]
13. 훈련 때 파견나온 62브라보 포병대 관측장교가 도대체 이런 훈련이 어딧냐고 고함을 지르다 대대장에게 걸림. 결과는 뭐...
14. 간부들 전부 사격시키고 자격미달자는 연병장에서 해질때까지 피알아이를 시킴.
15. 이등병이라고 봐주고 병장 밥대접해주고 이런 거 없음. 걸리면 무조건 죽음.
16. 누가 한번 국방부에 찔렀었는데 당당한 자세로 무사통과
17. 한번 누가 잘못한 일이 있어 전 대대원 사열대 앞에서 유격훈련.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본인[16]
열사병 걸려 게거품 물음.18. 병장 때 잘못걸려 자갈밭에서 포복하고 휴가 다 짬당함 (본인)
19. 전역날 나에게 "야 xxx이 너 내가 밉냐?" 라고 물음. 그래서 전역인데 될 대로 되라라는 식으로 "네 밉습니다!" 하니까 웃으면서 레토나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고 "미안하다. 잘 살고 밖에서 나 만나도 때리지 말고 아는 척이나 해줘라" 라고 함.
20. 이상하게 이름 석자가 기억에 남아 도대체 지워지질 않음. (그건 그 당시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 일 것)
21. 육사 훈육감 때 퇴학시킨 2학년이 하사로 바로 옆 수색대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는 사실.
22. 전 대대원의 체력의 엄청난 향상. k4는 k4메고 산타고 902고지를 작업도구 메고 그냥 쉬엄쉬엄 걸어 올라감.
23. 본인은 포반이었는데 실사격은 섭섭치 않게 하고 압권인 게 야간사격 때 들러리로 나가 k3 사격하는데 조명탄 띄워줌. 군생활 하면서 박격포 사격 백린연막 빼고는 다 쏴봄. 지금 당장 쏴보래도 제원만 있으면 쏠 수 있음. 지금 생각해도 조명탄 터질 때 기관총으로 예광탄 연사는 진짜 장관이었음.
#추가.
7-1. 주 1회 매주 준비태세 훈련은 사실 좀 과장이고, 3주에 한 번 정도로 기억함.
8-1. 혹서기에 팔에 위장하기 싫으면 간단한 차선책이 있었는데, 아예 소매를 내리면 됨. (추가ㅡ초반에는 무조건 팔 위장. 후반기에 갈수록 팔에 위장하거나 팔을 내리거나는 개인자유. 그나마도 팔에 바르기까지는 보급이 딸리는 위장 크림, 그리고 보급 비누가 워낙 저질이라 정비가 길어진다는 보고가 올라가서 그랬다는 썰이 있었음.)
9-1. 이것도 사실 좀 과장이고, 역시 3주에 한 번 정도. 물론 마일즈 이런 거 걸리면 2주 내도록 전반야 후반야 돌기는 했다.
24. 흔히 있는 공용화기에 대한 편의가 없음. 타 부대에서 종종 있는 군장에 K3 결속 이런 건 상상도 못하고, 작전 및 행군 시에는 무조건 좌우좌우좌우. 이런 식으로 지향사격 자세로 가야함. 특히나 소산 할 때마다 목에 걸린 총 멜빵 빼서 비껴 거느라 K3 사수들은 죽을 맛.(이것은 타부대에서 k3군장올리고 행군하다 민간트럭에 총이 치인 사고사례 때문임)
25. 제일 중요한 건데, 중대 밖 부대 내 이동 시 큰 걸음 필수. 경계근무 이동 시에도 얄짤 없고, 종교행사, 식사 이동시에는 군가 추가. 파견 인력도 예외가 없어서, 작은 걸음으로 가다 걸려서 얼차려 돈 사례도 있음. (훈련 나갈 때마다 옆 동네 백두산 부대 아저씨가 큰 걸음 부대 ㅋㅋㅋ 하고 놀리는 건 덤)
3.2. 연대장
제1보병사단 12연대장 시절 일화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 GOP 순찰 시 소초 생활관에 들어와서는 "야! 연대장 온다고 생활관에 이상한 거 뿌리지마라!"
* GOP 소초에서 똥줄 타며 브리핑했더니 아무말 없이 어깨만 딱 한 번 짚고 내려감.
* 연대장 덕분에 최우수 소초로 선발된 소초는 소초 전체 포상 나감.
* 연대장님 관사에 모셔다드리고 출발하다가 그만 연대장 사모님 승용차를 레토나로 박음. 당시 운전병은 병장이었는데 연대장에게 욕 먹고 연대장은 수송대장 (준위)을 호출함. 그날 회식운행이 있었는데 연대장이 관사에서 내리면서 "1호차 운전병이 사고나 내고!" 악수 청하고 껄껄 웃으며 관사로 들어감. 일주일 뒤에 사모님은 차 바꿈.
* 이분이 내린 명령이면 이 한 몸 불살라 적진에 뛰어들리라는 생각이 저절로 듦. 연대장을 보면서 나도 육사 갈걸 하는 병사도 있었음.
* 연대장님 이임식에서 아쉬운 마음에 우는 장병들도 있었음.
* 장병들의 특급전사 달성을 지시해놓고 연대장 본인이 제일 먼저 연병장을 돌고 있음.
* 남아공 월드컵때 소초 연등하고있는지 하루도 안빼놓고 순찰 나감. 본인이 공관에 있으면 자기도 축구를 볼것 같다고 소초 순찰 마치고 연본 앞 길가에서 대기하다 축구 끝나고 복귀함. 파라과이 전이었음.
* kctc훈련 중 예하대대와 직할대들이 계속 패배함. 근데 감독관 평가는 이러했음. "대한민국 최고의 장교가 최고의 전술로 지휘하는데 부하장교들과 병력들이 따라가지 못함." 그때 마정대대 대대장이었던 강호필 중령(현 소장, 제1보병사단장)은 kctc 끝나고 연대장실에 불려가 1시간 동안 갈굼을 당함.
* 교회 집사님이었는데 교회에서 유일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가족들이 한달에 한두번씩 같이 예배를 드리러왔음. 딸이 2명있었는데 첫째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했고, 딸의 이름은(밝히진않지만) 과거 무장공비 소탕 작전의 이름을 따서 지었음. 사모님이 굉장히 착하셨고 내조를 잘 했음. 기독교 신자로서 믿음도 특출하여 새벽에 혼자 예배당을 찾아 새벽기도를 하기도 함.
* 모든 일에 예외가 없어 장교들도 사격 훈련을 시켰고, 본인이 앞장서서 모든 훈련에 임함. K5 권총 사격 기준 미달인 장교는 계속 사격 훈련을 시켰는데 이때 부족한 총알은 사단에 연락해서 충당 했음. 당신 사단장이었던 신현돈 장군의 신임이 굉장히 두터웠음.
* 당시 연대본부에 근무했던 병사들은 진심으로 연대장을 무서워하기보다 존경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간부들은 연대장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두려워했음. 특히 연대장 주특기가 작전이었고 육사 작전 교본을 만든 전문가 중에 전문가였기에 작전과장 및 작전장교는 매일 밤샘 근무와 주말이 없이 일했음. 하지만 거의 맨날 갈굼 당함. 다만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기에 장교들도 두려워 했지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음.
공통적인 평이 능력자, 영화배우, 꽃중년, 몸짱 등 요새 표현으로 종합하면 "사기 캐릭터"였다고 한다.
연대장 역임 후 제35보병사단 참모장과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을 역임했으며 준장 진급 후 제21보병사단 부사단장, 제6군단 참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을 역임했다.
3.3. 사단장
제28보병사단장 취임 때는 이찬희 살인사건("윤일병 사건")으로 부대 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한 상태였다(사건 발발로 인해 전임자[17] 가 경질되고, 후임자로 취임한 것임). 하지만 어수선한 28사단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취임 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발생한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과 서부전선 포격 사건 도발에 대응하여 완전작전을 한 것으로 평가받음으로써 군내에서 명성을 쌓았다. 즉 병영문화도 쇄신하고, 완전작전까지 해낸 엄청난 능력자라는 것이다.
빡셀 땐 한없이 빡세고 편할 땐 가장 편했던 사단장이었기에 인권은 뒷전이고 오로지 강한 훈련만 요구한 후임자인 윤의철 장군(육사 43기)이 휘하 장병들에게 악명을 떨치는 바람에[18] 김승겸 장군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병, 간부를 가리지않고 항상 공평하고 청렴하게 대했다고 한다. 사단장이 먼저 살갑게 병사들에게 다가오는 경우는 없지만 전역 직전의 병사들을 마주할 때엔 그간 수고 많았다는 의미로 악수를 시전했으며, 8.20 완전작전이 끝나고는 간부식당에 지시해 대규모 회식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때 병사들도 고생많았다며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고 한다.
또다른 일화로 김승겸 사단장은 28사단의 병영문화혁신을 위해 취임 당시 28사단 신병교육대를 방문하였는데 위병소 근무 인원만을 제외한 모든 간부, 기간병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모든 부조리의 시작은 신교대에서 출발한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부조리를 행하는 사람은 교관, 조교를 가리지 말고 모두 내보내라" 라고 강조하였다.
심지어 "신교대 인원이 부족하여 신병교육 임무수행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부조리를 뿌리 뽑겠다" 라고 말하였다.[19]
사단장 보직 종료 후 제67주년 국군의날 행사기획단장으로 임무수행하였고, 이후 연합사 작전차장으로 영전한다.
3.4. 군단장
윤 일병 사건 후속조치를 몸소 겪은 탓인지, 군단장 시절 인권에 대해 간부들에게 수없이 강조하였다.
인권 등에 관련한 내용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그러면서도 현행작전부대들의 전투준비태세와 완전작전태세를 거듭 강조하였다(본인이 지휘관시절 다수의 실전경험을 토대로 현행작전을 강조하게된듯). 특히, 군단장 시절 불시 현장지도, 불시 상황조치훈련 등을 자주 하였는데, 일례로 군단 사령부 전 참모들을 대동해 전방 GOP 사단을 대상으로 말단 소초부터 불시 상황을 걸어서, 사단급 불시 GOP 상황조치훈련(FTX)를 직접 주관하여 실시한 적도 있다.(해당 사단장도 모르고 있다가 상황조치를 하러 사단 지휘소로 급하게 들어왔었다는 후문이 있다. 전 사단 병력이 예기치않게 불시에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갔었다는..) 한번은 예하 사단에서 호국훈련을 실시했는데 화상으로 현황 보고받던 중 실제로 사단장을 혼 내기도 했다. (사단 내 전원 조용...)1. 잘 쉬어야 업무도 잘한다. 아무리 급하다고 몸을 혹사시켜가면서 해야할 만큼의 중요한 업무는 없다. 시간상 도저히 완료가 안 될 업무는 과감히 보고하고 일정을 조정해라.(불필요 야근, 주말 출근에 대해)
2. 행정소요 최소화 할 것. 보고서, 회의자료 작성은 지양.[20]
3. 병영에서 자행되는 내무부조리나 불합리한 관행은 개인 이익보다는 속칭 총대를 메는 '총대 의식'을 갖고 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감, 군기, 접적지역 경계심 등의 이유가 있지만 결국 핑계다. 제일 문제가 간부들의 무관심이다. 용사들이 용사를 교육하면서 발생하는 부조리에 대해 간부들이 관심도 없고, 확인/지도하는 시스템이 없다. 등[21]
[22]4. 악기상 시 작전지역 순찰, 보수 등을 위한 무리한 옥외활동을 금지할 것. 시설물은 파손되면 조치하면 됨. 인명사고 예방이 가장 중요함.[23]
5. 예하부대 이발기구 보유 관련 보고받았는데, 간부가 물자 적정 보유량을 잘 알지 못하자 물자보유 기준을 모른다는 건 간부들이 부대관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함. 과거 윤 일병 사건 시절 해당 대대에서도 행정보급관이 진급대상자들에 대해 계급장을 신청하지 않아 용사들이 '사비'로 구매한 바 있음. 그런 세부적인 것에서 간부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무관심함을 알 수 있음. 등
한가지 에피소드로, 전방 현장지도 간 지휘기(헬기)를 타고 전속부관과 이동중에 탑승석 방향 출입문이 하늘 위에서 개방되는 일이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부관이 헬기가 착륙할 때까지 문 옆에서 군단장을 잡고 있었는데, 이 일로 감동을 받았는지 차후 군단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충성심"의 사례로 언급하면서 교육을 했다.
그리고 군단장 시절 부하(간부,병사)들을 챙겨주는 일이 정말 많았다.
군단장 시절 정말 병사들을 많이 생각해주고, 챙겨준다는 것이 병사들에게까지 느껴졌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유해지긴 한 듯.[24]* 전방 현장지도시 경호 병력으로 수행하는 군사경찰 특임중대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주고 매번 현장지도가 끝나면 고생했다고 악수해주었다.당시 군단장 임기간 매번 전방 현장지도 경호임무를 수행했던 부하(하사)의 경조사를 직접 챙겨주기도 하였다.
* 휴가 복귀 전에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는 대신 계산해주고 탕수육까지 시켜주고 가기도 했다.
* 군단사령부 본부대와 지휘관 경호를 전담하는 군사경찰단 특임중대 인원들에게 주기적으로 회식을 시켜주었다.
* 군인교회에서 활동하는 군종병들도 살갑게 챙겨주었다.
* 심지어는 군 병원에 외진 나온 군단사령부의 병사를 알아봐 준 사례도 있었다.
* 그리고 산악회관과 산악코스텔 등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면 퇴장 전에 주방까지 들어가 관리병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는데, 특히 군단장 이임 전 간부식당에서의 마지막 식사 후에도 주방까지 들어가 취사병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시전했다.
4. 여담
- 참고로 웃는 얼굴은 교회에서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며 키[25] , 체격에 얼굴마저 날카로운 미남으로 여러모로 비범한 인물. 하지만 휘하 병사들에게 살갑거나 인간미적 요소는 그리 없었다. 전형적인 맹장스타일. 체격이 크고 특유의 살기 넘치는 위압감에 차가운 인상이라 다가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역병들에게는 "나 너무 미워하지 마라"라고 농을 걸기도...(영관장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랬었던 듯. 군단장 시절은 인간미가 넘쳤다.)
- 가족으로 부인과 2녀가 있다.
- 제28보병사단장으로서는 김현집 사단장(육사 36기) 이후 6년만의 대장 진급자이며[27] 전임 제3군단장이었던 김병주 예비역 대장(육사 40기)[28] 에 연이어 진급하여 제3군단장 역시 대장 진급에 있어 제1군단, 제5군단과 함께 요직 코스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