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양

 




'''공동 대표
오태양'''

<colbgcolor=#2e3192> '''성명'''
오태양 (吳太陽)
'''출생'''
1975년 10월 26일[1] (48세)
광주광역시[2]
'''학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종교'''
불교
'''소속 정당'''

'''현직'''
미래당 2대 공동대표
'''약력'''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교육국장
한국 JTS 인도개발사업부 부장
좋은벗들 통일사업부 부장
청년통일네트워크 대표
21세기 진보학생연합 대표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전국순례단 집행위원장
우리미래 비상대책위원장
'''외부 링크'''

1. 개요
2. 생애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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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래당 소속 정치인이다. 미래당의 대표를 맡고 있다.

2. 생애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에서 자랐다.
서울신자초등학교, 광양중학교, 광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에 94학번으로 입학하여 인권운동을 하다가 2001년, 자신의 평화주의적인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3]
한동안 선고가 보류되고 재판이 미루어지다가 2004년 8월에서야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2004년 11월 오태양의 여동생이 오빠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며 병역법 개정안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한겨레 독자투고란에 기고하기도 했다. #
오태양 이전에도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의 윤석양 이병이나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으로 인해 탈영 후 군 복무를 거부한 전투경찰 박석진 같은 비종교인 병역거부자들이 있었으나, 오태양의 병역거부 선언을 계기로 그 동안 병역의 의무가 신성하게 여겨지던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병역거부 운동이 확산됐다.
2001년에서 2004년 사이, 병역거부를 한 뒤 스스로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저소득층 아이를 상대로 한 공부방에서 활동하고,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토론회와 강연장에 찾아와 소리를 지르거나 물병을 던지는 이들도 생겼다고. 하루는 독거노인에게 밥을 퍼서 드리는데 "매국노가 떠준 밥은 먹을 수 없다."며 식판을 내팽겨쳤다고 한다.
직업군인인 그의 동창은 이라크 파병 전날 전화를 걸어와 “나는 너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너의 선택은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오태양은 자신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지만, 참전을 결정한 친구의 선택은 존중했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후 오태양은 징역형이 확정되어 청주교도소에서 복무한 후 2005년 11월 30일 만기 출소하였다. 석방되었지만 전과로 인해 본래의 목표였던 초등학교 교사의 꿈은 접어야 했고, 그 후 인권단체 활동을 거쳐 청년당에 입당하여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2018년 현재는 원외 청년 정당인 우리미래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대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2020년, 21대 총선을 위해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비례순번 2번을 받았다. 그러나 양당정치심판, 정치세대교체를 외치며 광진구 을에 출마하기로 했다. 8번을 받았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12
정계 입문

2012 - 2017
평화재단 활동

2017 - 2020
재창당

2020 -
당명 변경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73,172 (0.34%)
낙선 (2번)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광진 을)

1,574 (1.4%)
낙선 (3위)


[1] 출처[2] 자란 곳은 광진구이며, 선거 유세 때도 광진구에서 35년을 살았다고 말한다.[3] 당시 오태양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는 오보였다. 참고로 그는 불교 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