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포트바넨
Ofotbanen / Ofoten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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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 북동쪽 최상단에 검게 표시된 구역 내의 검은 선이 오포트 선이다. 사실 이 지도는 유레일 패스 지도지만, 노르웨이 내에서 유레일 패스가 안 통하는 여객 열차 노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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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나르비크역까지 철광석을 수송하는 모습.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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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화물차에 그득하니 쌓인 저게 다 철광석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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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비크역에 정차하고 있는 여객열차.
노르웨이의 나르비크와 스웨덴의 키루나를 잇는 단선 철도 노선. 총 연장 42.6km. 전 구간 전철화 되어 있으며, 1435mm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다.
1902년 11월 15일에 처음 개통된 노선이다. 이 노선이 개통될 당시에는 노르웨이는 스웨덴 내의 동군연합 내지는 자치령 정도였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별 문제 없이 노선을 개통할 수 있었다.
본래 말름 선(Malmbanan) 철도라 하여 룰레오(Luleå) 항구와 옐리바레(Gällivare)를 잇는 지역 철도에서 출발한 이 노선은, 1888년 처음 개통된 지 11년 후인 1899년 키루나(Kiruna) 광산까지 철도를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룰레오 항구는 안타깝게도 발트 해 내부 깊숙히 위치해 있던 터라 겨울만 되면 얼어붙었고, 이 때문에 부동항인 나르비크까지 추가로 철도를 연장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노선.
본래대로였으면 그대로 말름 선의 일부였을 것이다. 애초에 말름 선의 Malm이 스웨덴어로 광석이라는 뜻이다. 근데 노선이 개통된 지 불과 3년 후인 1905년 '''노르웨이가 덥썩 독립을 선언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나르비크가 노르웨이로 넘어가면서 졸지에 이 말름 선 또한 본선과 오포트 선으로 두 동강이 나 버린 것이다.
뭐 아무튼 중요한 노선이고, 스웨덴 입장에서도 키루나에서 채굴한 광석을 손가락 쪽쪽 빨면서 겨울이 다 지나가고 룰레오 항이 녹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던 노릇이라 반쯤 울며 겨자 먹기로 나르비크 항을 통해 계속해서 철광석을 수출했고, 이 덕분에 나르비크 항은 이름 없는 깡촌에서 제법 규모가 되는 항구 도시로 위상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노선이 경제적으로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했던지, '''1915년'''에, 그러니까 백 년 전에 이미 말름 선의 키루나부터 릭스그렌센역까지는 독일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전압인 교류 15kV 16 2/3Hz로 전철화되어 있었다. 말름 선의 나머지 구간도 7년 후에 전철화가 되었으니 백 년 전부터 이 노선의 중요도는 익히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노르웨이 측에서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아서 전철화 계획 자체는 1911년부터 계획되어 왔었으나 의회에서 돈을 내주지 않아서(...)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23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2년간의 공사 끝에 전철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기간 동안은 스웨덴제 기관차를 썼다나 뭐라나. 1925년에 비에른펠역이 생긴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전쟁의 마수는 나르비크에도 닥쳐서, 나르비크 전투 때 나르비크 항이 포격으로 완전히 맛이 가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철광석 수송이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철광석들은 룰레오 항을 거쳐서 수출되었고.
전쟁 약 10년 후, 1957년에 스웨덴 정부가 LKAB[1] 를 인수하면서 수송량에 박차를 가하는 움직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미 1949년부터 LKAB 측에서는 연간 800만 톤의 철광석을 수송하고 있었는데 그걸 1.5배 늘리는 시도를 벌인 바 있었고, 그렇게 수출량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수출을 공짜로 할 리는 없었고... 노르웨이에서도 스웨덴에게 돈다발을 받으면서 즐거운 마음이었겠지.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드디어 스웨덴 측에서 "야 니들 좀 너무한 거 아니냐?" 하고 운임 인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노르웨이 측에서는 나름대로 꿀 빨던 것이, '''운송으로 인한 이득의 절반을 노르웨이 측에서 가져가고 있었다.''' 이러니 스웨덴 측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고용인은 절반으로 줄었으며, 그 당시 노르웨이 측에서 올리던 수익이 연간 6~7천만 노르웨이 크로네였으니 이걸 지금 환율로 계산해 봐도 우리 돈으로 거의 연간 90억 원, 그것도 그 당시에 90억 원이니 '''그야말로 억 달러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 기준 7크로네가 약 1달러였으니 그걸로 계산하면 현재 가치로 몇억 달러가 넘어간다! 그래서 양국의 경제부가 나선 조정위원회가 설립된 일도 있었다.
뭐 하여간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여전히 오포트바넨은 스웨덴 굴지의 광산인 키루나 광산의 광석을 수출하는 역할을 계속해서 담당하고 있다. 이 40km 남짓한 선로가 연간 처리하는 화물량은 영문 위키백과 기준 무려 '''연간 2천 5백만 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화물 수송량을 담당하는 도담역이 1년간 처리하는 화물량이 800만 톤이니 그 세 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연히 이 노선의 주 용도는 여객 열차가 아닌 화물 열차. 여객 열차 자체가 매우 드물게 다닌다. 하루에 한두 번 수준. 그나마도 꽤나 느릿느릿한 편이라 룰레오 항에서 오전 10시 45분에 출발해도 나르비크 항에 들어가면 이미 오후 6시다. 반대로 가는 것도 오후 12시 40분에 출발해서 룰레오 항까지 도착하면 이미 저녁 8시. 은근히 근성열차.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철도로 오슬로까지 국경을 넘지 않고 직통으로 연결할 수 없는 노선이다.''' 쉽게 말해 낙동강 오리알이요 실질 월경지나 진배없는 것. 거기다가 이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가 파산하고 스웨덴에 인수된 탓도 있어서 노선의 소유권은 노르웨이 국철에 있되 운영권은 스웨덴이 주도하는 뭔가 좀 묘한 노선이다.
또한 유레일 패스로 접근할 수 있는 최북단 노선 및 역. 러시아가 유레일 패스를 개방하지 않는 한, 무르만스크역까지 유레일 패스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당분간 이 타이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최북단 역은 나르비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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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 북동쪽 최상단에 검게 표시된 구역 내의 검은 선이 오포트 선이다. 사실 이 지도는 유레일 패스 지도지만, 노르웨이 내에서 유레일 패스가 안 통하는 여객 열차 노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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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나르비크역까지 철광석을 수송하는 모습.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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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화물차에 그득하니 쌓인 저게 다 철광석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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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비크역에 정차하고 있는 여객열차.
1. 개요
노르웨이의 나르비크와 스웨덴의 키루나를 잇는 단선 철도 노선. 총 연장 42.6km. 전 구간 전철화 되어 있으며, 1435mm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다.
2. 역사
2.1. 개통과 전철화
1902년 11월 15일에 처음 개통된 노선이다. 이 노선이 개통될 당시에는 노르웨이는 스웨덴 내의 동군연합 내지는 자치령 정도였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별 문제 없이 노선을 개통할 수 있었다.
본래 말름 선(Malmbanan) 철도라 하여 룰레오(Luleå) 항구와 옐리바레(Gällivare)를 잇는 지역 철도에서 출발한 이 노선은, 1888년 처음 개통된 지 11년 후인 1899년 키루나(Kiruna) 광산까지 철도를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룰레오 항구는 안타깝게도 발트 해 내부 깊숙히 위치해 있던 터라 겨울만 되면 얼어붙었고, 이 때문에 부동항인 나르비크까지 추가로 철도를 연장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노선.
본래대로였으면 그대로 말름 선의 일부였을 것이다. 애초에 말름 선의 Malm이 스웨덴어로 광석이라는 뜻이다. 근데 노선이 개통된 지 불과 3년 후인 1905년 '''노르웨이가 덥썩 독립을 선언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나르비크가 노르웨이로 넘어가면서 졸지에 이 말름 선 또한 본선과 오포트 선으로 두 동강이 나 버린 것이다.
뭐 아무튼 중요한 노선이고, 스웨덴 입장에서도 키루나에서 채굴한 광석을 손가락 쪽쪽 빨면서 겨울이 다 지나가고 룰레오 항이 녹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던 노릇이라 반쯤 울며 겨자 먹기로 나르비크 항을 통해 계속해서 철광석을 수출했고, 이 덕분에 나르비크 항은 이름 없는 깡촌에서 제법 규모가 되는 항구 도시로 위상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노선이 경제적으로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했던지, '''1915년'''에, 그러니까 백 년 전에 이미 말름 선의 키루나부터 릭스그렌센역까지는 독일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전압인 교류 15kV 16 2/3Hz로 전철화되어 있었다. 말름 선의 나머지 구간도 7년 후에 전철화가 되었으니 백 년 전부터 이 노선의 중요도는 익히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노르웨이 측에서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아서 전철화 계획 자체는 1911년부터 계획되어 왔었으나 의회에서 돈을 내주지 않아서(...)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23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2년간의 공사 끝에 전철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기간 동안은 스웨덴제 기관차를 썼다나 뭐라나. 1925년에 비에른펠역이 생긴 배경이 여기에 있다.
2.2. 전쟁 및 그 이후
그러나 전쟁의 마수는 나르비크에도 닥쳐서, 나르비크 전투 때 나르비크 항이 포격으로 완전히 맛이 가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철광석 수송이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철광석들은 룰레오 항을 거쳐서 수출되었고.
전쟁 약 10년 후, 1957년에 스웨덴 정부가 LKAB[1] 를 인수하면서 수송량에 박차를 가하는 움직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미 1949년부터 LKAB 측에서는 연간 800만 톤의 철광석을 수송하고 있었는데 그걸 1.5배 늘리는 시도를 벌인 바 있었고, 그렇게 수출량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수출을 공짜로 할 리는 없었고... 노르웨이에서도 스웨덴에게 돈다발을 받으면서 즐거운 마음이었겠지.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드디어 스웨덴 측에서 "야 니들 좀 너무한 거 아니냐?" 하고 운임 인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노르웨이 측에서는 나름대로 꿀 빨던 것이, '''운송으로 인한 이득의 절반을 노르웨이 측에서 가져가고 있었다.''' 이러니 스웨덴 측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고용인은 절반으로 줄었으며, 그 당시 노르웨이 측에서 올리던 수익이 연간 6~7천만 노르웨이 크로네였으니 이걸 지금 환율로 계산해 봐도 우리 돈으로 거의 연간 90억 원, 그것도 그 당시에 90억 원이니 '''그야말로 억 달러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 기준 7크로네가 약 1달러였으니 그걸로 계산하면 현재 가치로 몇억 달러가 넘어간다! 그래서 양국의 경제부가 나선 조정위원회가 설립된 일도 있었다.
3. 현재
뭐 하여간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여전히 오포트바넨은 스웨덴 굴지의 광산인 키루나 광산의 광석을 수출하는 역할을 계속해서 담당하고 있다. 이 40km 남짓한 선로가 연간 처리하는 화물량은 영문 위키백과 기준 무려 '''연간 2천 5백만 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화물 수송량을 담당하는 도담역이 1년간 처리하는 화물량이 800만 톤이니 그 세 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연히 이 노선의 주 용도는 여객 열차가 아닌 화물 열차. 여객 열차 자체가 매우 드물게 다닌다. 하루에 한두 번 수준. 그나마도 꽤나 느릿느릿한 편이라 룰레오 항에서 오전 10시 45분에 출발해도 나르비크 항에 들어가면 이미 오후 6시다. 반대로 가는 것도 오후 12시 40분에 출발해서 룰레오 항까지 도착하면 이미 저녁 8시. 은근히 근성열차.
4. 특징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철도로 오슬로까지 국경을 넘지 않고 직통으로 연결할 수 없는 노선이다.''' 쉽게 말해 낙동강 오리알이요 실질 월경지나 진배없는 것. 거기다가 이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가 파산하고 스웨덴에 인수된 탓도 있어서 노선의 소유권은 노르웨이 국철에 있되 운영권은 스웨덴이 주도하는 뭔가 좀 묘한 노선이다.
또한 유레일 패스로 접근할 수 있는 최북단 노선 및 역. 러시아가 유레일 패스를 개방하지 않는 한, 무르만스크역까지 유레일 패스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당분간 이 타이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최북단 역은 나르비크역이다.
5. 역 목록
[1] 광산채굴회사. Luossavaara-Kiirunavaara Aktiebolag의 약자로 키루나에서 철광석을 채굴하는 회사이다. 본사는 룰레오에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