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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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5~1997년형 5세대 모델
'''Oldsmobile Cutlass Supreme'''
미국의 자동차 업체 제너럴 모터스가 올즈모빌 브랜드로 1966년부터 1997년까지 생산한 중형차의 이름이다. 본래는 커틀라스의 고급 트림명으로 시작했으나 1980년대부터 커틀라스 이름을 여러 시리즈(칼레, 수프림, 시에라)로 나누면서 독립 차종이 되었다.
1978년에 출시된 4세대 커틀라스는 석유파동과 경제불황을 이유로 크기가 크게 줄어들었고, 수프림 버전과 비슷한 고급형인 칼레(Calais)가 추가되었다. 한편 이때는 패스트백 디자인이 살롱 버전에 도입되었으나, 패스트백 버전은 상당히 판매부진에 시달렸으며 일반적인 노치백 스타일의 수프림이 훨씬 판매량이 좋았다. 사실상 살롱의 대안이었던 칼레는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는 스트라토 버킷 시트, 센터 콘솔, 스포츠 스티어링 휠, 앞뒤에 스웨이 바가 설치된 재조정된 서스펜션, 차체 색상이 들어간 휠캡, 격자 형식의 그릴, 풀옵션 사양 등이 기본 제공되었다. 또한 T-탑과 썬루프도 제공되어, 기본형 수프림 쿠페도 라디오 대신 설치할 수 있었다.
또한 1978년부터 1980년 사이에는 442 패키지가, 1979년부터는 칼레에게 특별판 고성능 버전인 허스트/올즈가 제공되었다. 패스트백 대신 일반적인 노치백 쿠페에 적용된 이 패키지는 델타 88 및 98 리젠시(Regency)에서 가져온 올즈모빌 5.7리터 로켓 V8 휘발유 엔진, 허스트 듀얼게이트식 변속기 레버가 적용된 3단 터보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가 적용된 체로 총 2499대가 생산되었다.
1978년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후미등 중앙에 조명이 들어오는 올즈모빌 엠블럼이 들어있었는데 이는 이듬해에 삭제되었다. 1980년에는 2도어 쿠페에 4점식 헤드램프가 다시 적용되었으며, 4도어 패스트백 살롱이 단종됨에 따라 4도어 버전은 모두 일반적인 노치백 세단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수프림 브로엄 패키지도 제공되었고, GM 처음으로 OBD-I 배기가스 규정에 맞춘 컴퓨터 엔진 및 배기가스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또한 442 패키지도 2도어 살롱 대신 2도어 칼레로 이동했으며, 그동안 외양과 세팅만 좀 손보던 패키지 대신 기존의 허스트/올즈 버전과 비슷한 고성능 버전으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442 이름이 이때를 마지막으로 단종되어, 1985년에 다시 이름을 살려내기 전까지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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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1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브로엄 쿠페. 앞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1981년에는 쿠페 버전이 "Shovel-nose"로 알려진,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프론트 이미지를 얻었으며, 덕분에 공기저항을 15퍼센트 가량 낮출 수 있었고 1988년 단종 때까지 이대로 디자인이 유지되었다. 본래 이는 나스카 경기를 노린 조치였는데,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스카 경기에서 우승을 계속 차지해오던 올즈모빌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 번도 우승을 거두지 못하면서 1983년부터 많은 팀들이 쉐보레 몬테 카를로나 뷰익 리갈[1] , 폰티악 그랑프리 등으로 옮겨가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한편, 수프림에 4도어 세단이 추가되었으며 새로운 앞모습과 함께 세로줄 3개로 쪼개진 후미등이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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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3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칼레 허스트/올즈 에디션
1982년에는 앞바퀴굴림식 A-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올즈모빌 커틀라스 시에라(Ciera)"를 추가했는데, 이번 세대의 커틀라스의 후속이었음에도 기존의 뒷바퀴굴림 커틀라스와 같이 병행 판매되었다. 이때 수프림 버전은 4도어 세단과 웨건으로 명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1983년에는 커틀라스 칼레 쿠페에 2년간 제공될 허스트/올즈 버전이 재등장했으며, 15주년 기념판으로서 검은색과 은색 투톤 컬러가 2년간 배합 순서만 바뀌어 제공되었다. 또한 크롬 휠과 빨간색 스트라이프 장식, 고성능 올즈모빌 5리터 V8 엔진과 4배럴 카뷰레터, 이중 머플러, 자동변속기, 레버 3개가 적용되는 "라이트닝 로드(Lightning Rods)" 레버가 적용되었다. 1984년에는 뒷바퀴굴림 왜건 버전이 단종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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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6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브로엄 세단
1985년식에서는 칼레가 N-바디 기반의 앞바퀴굴림 버전으로 전환함에 뒷바퀴굴림 버전 칼레가 살롱으로 도로 개명했다. 5리터 V8 엔진이 계속 적용되었으며 수프림 쿠페와 세단은 3.8리터 V6 2배럴 카뷰레터 엔진이 기본 사양으로 장착되었다. 변속기는 토크 컨버터 클러치가 적용되는 3단 자동변속기가 쓰였으며, 서스펜션은 앞바퀴에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 뒷바퀴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앞뒤 안티롤바와 같이 사용되었다. 당시의 브로엄 세단과 쿠페는 수프림과 거의 비슷했으나 좀 더 옵션이 잘 갖추어졌고, 3.8리터 V6+3단 변속기를 공유하되 5가지 색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인테리어 마감과 분할 가능한 벤치시트, 썬바이져 거울, 경고음 시스템, 실내등으로 이루어진 편의장비 패키지가 제공되는 동시에 전용 로고로 앞모습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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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8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클래식 브로엄 쿠페
1987년에는 뒷바퀴굴림 세단 버전의 마지막 해가 되었으며, 세단과 쿠페 버전 모두 통합형 헤드램프가 장착되는 페이스리프트가 작용되었다. 엔진은 올즈모빌 5리터 엔진만 남아 있었다. 1988년식에서는 쿠페 버전의 마지막 해로서, "커틀라스 수프림 클래식(Classic)"이라는 이름 하에 총 27678대가 생산된 채로 1987년 12월에 앞바퀴굴림 버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다.
1988년 1월 13일을 맞아, 그동안 뒷바퀴굴림으로만 만들어지던 수프림도 쉐보레 루미나, 폰티악 그랑프리와 같이 GM10(혹은 W-바디) 앞바퀴굴림 플랫폼이 사용되면서 앞바퀴굴림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새 플랫폼은 로저 스미스(Roger B. Smith) 회장의 지휘 하에 당시 중형차 시장을 이끌던 일본 경쟁차들을 의식해 개발되었다. 비슷한 시기의 새턴 SL과 유사한 공기역학 중심 스타일링과는 달리, 기술적으로는 뒷바퀴 서스펜션이 가로배치 리프 스프링으로 변경되는 등으로 이전보다 고전적인 부분도 일부 있었다.
덤으로 "휴즈 일렉트로닉스(Hughes Electronics)" 사와의 협력으로 당시로서는 신기술 중 하나였던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자동차 역사상 최초로 도입되었고, 디자인적으로는 플로팅 루프가 적용되고 문손잡이가 B필러 안에 숨겨져였는 등, 꽤 공기역학적인 동시에 당대 올즈모빌 차들치고는 나름 스포티한 편이었다. 때문에 나스카 경기에서도 이러한 차체 디자인이 우수한 경기 성적으로 되돌아왔고, 올즈모빌이 나스카 경기를 그만둔 1992년까지 꾸준히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기본형/S와 SL, 인터내셔널 시리즈 등의 3개 트림 하에 2도어 쿠페 버전만 판매가 개시되었으나 1990년에는 4도어 세단과 컨버터블이 추가되었다. 또한 250대의 페이스카(Pace car)가 제작되기도 했으며, 이 중에는 미국 미시건의 브라이튼에 위치한 "카즈 엔드 컨셉트(Cars and Concepts)"의 손을 거쳐 당시에는 양산화되지 않았었던 컨버터블 버전도 50대 생산되었다. 당시 수천대까지 페이스카의 복제품들을 만들어 제공하던 당시 업체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를 생산한 편인데, 컨버터블 버전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장착하고 고객들에게 인도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도로 리콜되었다.
1988년에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처음 데뷔한 이들은 "레이싱 최고의 광경"을 묘사하고자 선정되었다고 전해지며, 미국 공군 출신의 척 예거(Chuck Yeager) 전 장군이 여기에 참여했다. 컨버터블 버전은 모두 수제작으로 생산되었으며, 까다롭게 선정된 50개의 올즈모빌 대리점에서 판매가 이루어졌다. 당시 가격은 최고급 사양인 인터내셔널 시리즈의 1만 4천달러에다가 13997달러를 추가한 수준의 고가였다. 비싼 값을 하는 만큼, 위에서 언급한 헤드업 디스플레이같은 호화로운 편의장비들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 뒤 GM으로 리콜되어 폐기되었고, 일부 대리점에서 남겨 둔 10대 미만의 차들만 살아남았다.
인터내셔널 시리즈의 경우, 이중 센터콘솔과 버킷시트, 운전자 정보 시스템,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이 적용되었으며 먼시(Muncie)에서 개발한 5단 수동변속기와 2.8리터 60° 엔진이 장착되었다. 1990년부터는 게트락(Getrag)제 5단 수동변속기가 2.3리터 쿼드-4(Quad-4) 직렬 4기통이나 DOHC 3.4리터 60° V6엔진과 조합되어 적용되었다. 1992년에는 전반적인 페이스리프트[2] 가 이루어짐에 따라 2~3줄짜리 라인이 들어간 클래딩이 같이 적용되었으며, 쿠페와 컨버터블에는 그랑프리 쿠페에서 가져온 "미니 쿼드(mini-quad)" 헤드램프가 적용되었고, 세단도 좀 더 스포티한 그릴이 적용되어 미미하게나마 디자인 변화가 있었다. 1994년부터는 운전석 에어백이 장착되었으며, 1995년에는 곡선이 가미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새 대시보드와 듀얼 에어백이 장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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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라인업이 급격히 축소되어 1991년에는 쿼드 엔진이, 1992년에는 수동 변속기가, 1993년에는 인터내셔널 시리즈가, 1994년에는 S 트림, 1995년에는 컨버터블, 1996년에는 3.4리터 V6 엔진이 차례대로 단종되었다. 1997년 말에 쉐보레 말리부 기반의 신형 커틀라스가 나오면서 올즈모빌 커틀라스 시에라와 같이 단종되었고, 1999년에 올즈모빌 인트리그(Intrigue)가 그 뒤를 이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는 미국 조지아의 도라빌(Doraville)에서 생산되었고, 이후에는 캔자스의 패어팍스(Fairfax) 공장에서 단종 때까지 생산되었다. 컨버터블 버전의 경우는 1995년 1월 15일이 단종되었는데, 도라빌에서 생산된 34743대의 마지막 차들은 모두 세단이였고, 쿠페 버전은 1995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패어팍스 공장으로 생산지를 옯겼으며 컨버터블 생산을 맡았던 카즈 앤드 컨셉트 사에서는 패어팍스 공장 주변에 생산 시설이 없었기때문에 부득이하게 단종된 것이라고.
비록 일본차들을 겨냥해 개발되었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았으나 포드 토러스같은 경쟁차들보다 다소 낡아 보이는 디자인이었고, 새 플랫폼 자체도 개발 시작부터 삐걱거린 데다가 공장 설비를 모두 갈아엎는 바람에 차 하나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2천 달러를 손해보고 있었다. 또한 세단이 주류였던 중형차 시장에서 쿠페 버전을 먼저 출시하는 바람에 초반 판매대수도 기대 이하였으며, 품질 문제도 겹치면서 별다른 성과를 못 거두었다는 평이 중론이다.
사진은 1995~1997년형 5세대 모델
'''Oldsmobile Cutlass Supreme'''
1. 개요
미국의 자동차 업체 제너럴 모터스가 올즈모빌 브랜드로 1966년부터 1997년까지 생산한 중형차의 이름이다. 본래는 커틀라스의 고급 트림명으로 시작했으나 1980년대부터 커틀라스 이름을 여러 시리즈(칼레, 수프림, 시에라)로 나누면서 독립 차종이 되었다.
2. 역사
2.1. 1세대 (1965~1967)
2.2. 2세대 (1968~1972)
2.3. 3세대 (1973~1977)
2.4. 4세대 (1978~1988)
1978년에 출시된 4세대 커틀라스는 석유파동과 경제불황을 이유로 크기가 크게 줄어들었고, 수프림 버전과 비슷한 고급형인 칼레(Calais)가 추가되었다. 한편 이때는 패스트백 디자인이 살롱 버전에 도입되었으나, 패스트백 버전은 상당히 판매부진에 시달렸으며 일반적인 노치백 스타일의 수프림이 훨씬 판매량이 좋았다. 사실상 살롱의 대안이었던 칼레는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는 스트라토 버킷 시트, 센터 콘솔, 스포츠 스티어링 휠, 앞뒤에 스웨이 바가 설치된 재조정된 서스펜션, 차체 색상이 들어간 휠캡, 격자 형식의 그릴, 풀옵션 사양 등이 기본 제공되었다. 또한 T-탑과 썬루프도 제공되어, 기본형 수프림 쿠페도 라디오 대신 설치할 수 있었다.
또한 1978년부터 1980년 사이에는 442 패키지가, 1979년부터는 칼레에게 특별판 고성능 버전인 허스트/올즈가 제공되었다. 패스트백 대신 일반적인 노치백 쿠페에 적용된 이 패키지는 델타 88 및 98 리젠시(Regency)에서 가져온 올즈모빌 5.7리터 로켓 V8 휘발유 엔진, 허스트 듀얼게이트식 변속기 레버가 적용된 3단 터보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가 적용된 체로 총 2499대가 생산되었다.
1978년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후미등 중앙에 조명이 들어오는 올즈모빌 엠블럼이 들어있었는데 이는 이듬해에 삭제되었다. 1980년에는 2도어 쿠페에 4점식 헤드램프가 다시 적용되었으며, 4도어 패스트백 살롱이 단종됨에 따라 4도어 버전은 모두 일반적인 노치백 세단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수프림 브로엄 패키지도 제공되었고, GM 처음으로 OBD-I 배기가스 규정에 맞춘 컴퓨터 엔진 및 배기가스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또한 442 패키지도 2도어 살롱 대신 2도어 칼레로 이동했으며, 그동안 외양과 세팅만 좀 손보던 패키지 대신 기존의 허스트/올즈 버전과 비슷한 고성능 버전으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442 이름이 이때를 마지막으로 단종되어, 1985년에 다시 이름을 살려내기 전까지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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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1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브로엄 쿠페. 앞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1981년에는 쿠페 버전이 "Shovel-nose"로 알려진,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프론트 이미지를 얻었으며, 덕분에 공기저항을 15퍼센트 가량 낮출 수 있었고 1988년 단종 때까지 이대로 디자인이 유지되었다. 본래 이는 나스카 경기를 노린 조치였는데,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스카 경기에서 우승을 계속 차지해오던 올즈모빌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 번도 우승을 거두지 못하면서 1983년부터 많은 팀들이 쉐보레 몬테 카를로나 뷰익 리갈[1] , 폰티악 그랑프리 등으로 옮겨가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한편, 수프림에 4도어 세단이 추가되었으며 새로운 앞모습과 함께 세로줄 3개로 쪼개진 후미등이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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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3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칼레 허스트/올즈 에디션
1982년에는 앞바퀴굴림식 A-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올즈모빌 커틀라스 시에라(Ciera)"를 추가했는데, 이번 세대의 커틀라스의 후속이었음에도 기존의 뒷바퀴굴림 커틀라스와 같이 병행 판매되었다. 이때 수프림 버전은 4도어 세단과 웨건으로 명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1983년에는 커틀라스 칼레 쿠페에 2년간 제공될 허스트/올즈 버전이 재등장했으며, 15주년 기념판으로서 검은색과 은색 투톤 컬러가 2년간 배합 순서만 바뀌어 제공되었다. 또한 크롬 휠과 빨간색 스트라이프 장식, 고성능 올즈모빌 5리터 V8 엔진과 4배럴 카뷰레터, 이중 머플러, 자동변속기, 레버 3개가 적용되는 "라이트닝 로드(Lightning Rods)" 레버가 적용되었다. 1984년에는 뒷바퀴굴림 왜건 버전이 단종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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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6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브로엄 세단
1985년식에서는 칼레가 N-바디 기반의 앞바퀴굴림 버전으로 전환함에 뒷바퀴굴림 버전 칼레가 살롱으로 도로 개명했다. 5리터 V8 엔진이 계속 적용되었으며 수프림 쿠페와 세단은 3.8리터 V6 2배럴 카뷰레터 엔진이 기본 사양으로 장착되었다. 변속기는 토크 컨버터 클러치가 적용되는 3단 자동변속기가 쓰였으며, 서스펜션은 앞바퀴에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 뒷바퀴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앞뒤 안티롤바와 같이 사용되었다. 당시의 브로엄 세단과 쿠페는 수프림과 거의 비슷했으나 좀 더 옵션이 잘 갖추어졌고, 3.8리터 V6+3단 변속기를 공유하되 5가지 색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인테리어 마감과 분할 가능한 벤치시트, 썬바이져 거울, 경고음 시스템, 실내등으로 이루어진 편의장비 패키지가 제공되는 동시에 전용 로고로 앞모습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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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8년식 올즈모빌 커틀라스 수프림 클래식 브로엄 쿠페
1987년에는 뒷바퀴굴림 세단 버전의 마지막 해가 되었으며, 세단과 쿠페 버전 모두 통합형 헤드램프가 장착되는 페이스리프트가 작용되었다. 엔진은 올즈모빌 5리터 엔진만 남아 있었다. 1988년식에서는 쿠페 버전의 마지막 해로서, "커틀라스 수프림 클래식(Classic)"이라는 이름 하에 총 27678대가 생산된 채로 1987년 12월에 앞바퀴굴림 버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다.
2.5. 5세대 (1988~1997)
1988년 1월 13일을 맞아, 그동안 뒷바퀴굴림으로만 만들어지던 수프림도 쉐보레 루미나, 폰티악 그랑프리와 같이 GM10(혹은 W-바디) 앞바퀴굴림 플랫폼이 사용되면서 앞바퀴굴림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새 플랫폼은 로저 스미스(Roger B. Smith) 회장의 지휘 하에 당시 중형차 시장을 이끌던 일본 경쟁차들을 의식해 개발되었다. 비슷한 시기의 새턴 SL과 유사한 공기역학 중심 스타일링과는 달리, 기술적으로는 뒷바퀴 서스펜션이 가로배치 리프 스프링으로 변경되는 등으로 이전보다 고전적인 부분도 일부 있었다.
덤으로 "휴즈 일렉트로닉스(Hughes Electronics)" 사와의 협력으로 당시로서는 신기술 중 하나였던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자동차 역사상 최초로 도입되었고, 디자인적으로는 플로팅 루프가 적용되고 문손잡이가 B필러 안에 숨겨져였는 등, 꽤 공기역학적인 동시에 당대 올즈모빌 차들치고는 나름 스포티한 편이었다. 때문에 나스카 경기에서도 이러한 차체 디자인이 우수한 경기 성적으로 되돌아왔고, 올즈모빌이 나스카 경기를 그만둔 1992년까지 꾸준히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기본형/S와 SL, 인터내셔널 시리즈 등의 3개 트림 하에 2도어 쿠페 버전만 판매가 개시되었으나 1990년에는 4도어 세단과 컨버터블이 추가되었다. 또한 250대의 페이스카(Pace car)가 제작되기도 했으며, 이 중에는 미국 미시건의 브라이튼에 위치한 "카즈 엔드 컨셉트(Cars and Concepts)"의 손을 거쳐 당시에는 양산화되지 않았었던 컨버터블 버전도 50대 생산되었다. 당시 수천대까지 페이스카의 복제품들을 만들어 제공하던 당시 업체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를 생산한 편인데, 컨버터블 버전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장착하고 고객들에게 인도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도로 리콜되었다.
1988년에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처음 데뷔한 이들은 "레이싱 최고의 광경"을 묘사하고자 선정되었다고 전해지며, 미국 공군 출신의 척 예거(Chuck Yeager) 전 장군이 여기에 참여했다. 컨버터블 버전은 모두 수제작으로 생산되었으며, 까다롭게 선정된 50개의 올즈모빌 대리점에서 판매가 이루어졌다. 당시 가격은 최고급 사양인 인터내셔널 시리즈의 1만 4천달러에다가 13997달러를 추가한 수준의 고가였다. 비싼 값을 하는 만큼, 위에서 언급한 헤드업 디스플레이같은 호화로운 편의장비들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 뒤 GM으로 리콜되어 폐기되었고, 일부 대리점에서 남겨 둔 10대 미만의 차들만 살아남았다.
인터내셔널 시리즈의 경우, 이중 센터콘솔과 버킷시트, 운전자 정보 시스템,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이 적용되었으며 먼시(Muncie)에서 개발한 5단 수동변속기와 2.8리터 60° 엔진이 장착되었다. 1990년부터는 게트락(Getrag)제 5단 수동변속기가 2.3리터 쿼드-4(Quad-4) 직렬 4기통이나 DOHC 3.4리터 60° V6엔진과 조합되어 적용되었다. 1992년에는 전반적인 페이스리프트[2] 가 이루어짐에 따라 2~3줄짜리 라인이 들어간 클래딩이 같이 적용되었으며, 쿠페와 컨버터블에는 그랑프리 쿠페에서 가져온 "미니 쿼드(mini-quad)" 헤드램프가 적용되었고, 세단도 좀 더 스포티한 그릴이 적용되어 미미하게나마 디자인 변화가 있었다. 1994년부터는 운전석 에어백이 장착되었으며, 1995년에는 곡선이 가미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새 대시보드와 듀얼 에어백이 장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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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라인업이 급격히 축소되어 1991년에는 쿼드 엔진이, 1992년에는 수동 변속기가, 1993년에는 인터내셔널 시리즈가, 1994년에는 S 트림, 1995년에는 컨버터블, 1996년에는 3.4리터 V6 엔진이 차례대로 단종되었다. 1997년 말에 쉐보레 말리부 기반의 신형 커틀라스가 나오면서 올즈모빌 커틀라스 시에라와 같이 단종되었고, 1999년에 올즈모빌 인트리그(Intrigue)가 그 뒤를 이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는 미국 조지아의 도라빌(Doraville)에서 생산되었고, 이후에는 캔자스의 패어팍스(Fairfax) 공장에서 단종 때까지 생산되었다. 컨버터블 버전의 경우는 1995년 1월 15일이 단종되었는데, 도라빌에서 생산된 34743대의 마지막 차들은 모두 세단이였고, 쿠페 버전은 1995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패어팍스 공장으로 생산지를 옯겼으며 컨버터블 생산을 맡았던 카즈 앤드 컨셉트 사에서는 패어팍스 공장 주변에 생산 시설이 없었기때문에 부득이하게 단종된 것이라고.
비록 일본차들을 겨냥해 개발되었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았으나 포드 토러스같은 경쟁차들보다 다소 낡아 보이는 디자인이었고, 새 플랫폼 자체도 개발 시작부터 삐걱거린 데다가 공장 설비를 모두 갈아엎는 바람에 차 하나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2천 달러를 손해보고 있었다. 또한 세단이 주류였던 중형차 시장에서 쿠페 버전을 먼저 출시하는 바람에 초반 판매대수도 기대 이하였으며, 품질 문제도 겹치면서 별다른 성과를 못 거두었다는 평이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