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슈트라우스
- 서독의 정치인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를 찾으신다면 해당항목으로.
Josef Strauss 1827년 8월 20일 ~ 1870년 7월 22일
오스트리아의 경음악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차남이자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생,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형이기도 하다. 애칭은 '페피(Pepi)'.[1]
▲ 빠른 폴카 "걱정없이"(Ohne Sorgen), Op.271.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14년 신년 음악회.
1. 생애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취미 혹은 교양 삼아 음악 이론과 바이올린 연주법 등을 배웠지만, 아버지는 그를 군인으로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군 생활을 견디기에는 몸이 약한 편이었고, 대신 수학과 공학을 전공해 공학 설계사로 활동했다. 그러면서도 형이나 동생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몰래 계속 음악을 배웠다. 빈 시청과 관련된 일을 하며 거리 청소용 마차 등 몇 가지 발명품을 고안했고, 두 권의 수학 참고서를 내기도 했다. 공학자 및 음악가 이외에도 화가, 극작가, 가수로서도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형인 요한 2세가 무도음악 작곡가로 막 데뷰했을 때도 아직 본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1853년에 형이 신경쇠약 진단을 받고 치료와 요양을 위해 잠시 활동을 중단하게 되자 형과 어머니 마리아 안나 슈트라임에게 악단 지휘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약간 얼떨떨하게 사교계에 데뷰했다. 요제프는 별로 내키지도 않았고, 어차피 형의 대리였던 만큼 그냥 이번만 하고 관두자고 생각해서 자신이 데뷰 무대에서 발표한 첫 왈츠에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의외로 호응도 좋았고 적성에도 잘 맞았는지, 이내 형의 명성에 버금가는 경음악 작곡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2]
예전 직업 덕분에 공대나 산업체, 상공회의소 등에서 주최하는 무도회나 음악회의 작품 의뢰를 많이 받았는데, 공학도였던 것과는 반대로 시적이고 감수성 넘치는 곡들을 많이 만들어 젊은 층에서 특히 선호하는 작곡가로 꼽혔다. 그래서 왈츠나 폴카 마주르카 같이 다소 완만한 템포에 선율미가 두드러지는 춤곡에서 특히 명작이 많다. 심지어 요한 2세가 '나랑 막내(에두아르트)보다도 더 재능이 많다' 며 부러워했을 정도.
출판된 것만 총 283곡의 춤곡과 행진곡 등을 남겼는데, 자작곡 외에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 편곡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수백 곡이나 되는 편곡물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막내인 에두아르트의 삽질로 인해 대부분의 원고가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현재 남겨진 편곡물은 극히 적다.[3]
하지만 형에 맞먹는 격무 때문에 가뜩이나 병약했던 몸 상태가 점점 더 안좋아지게 되었고, 1870년에 폴란드에서 순회 공연 중 무대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악단은 즉시 공연을 중단하고 빈으로 되돌아왔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폴란드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온갖 뜬소문이 떠도는 바람에 사인에 관한 음모론이 돌기도 했는데, 가장 황당한 것은 만취한 러시아군 병사의 구타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뜬소문일 뿐이었지만, 유가족들이 사인을 공표하지 않고 경찰 당국의 검시까지 거부하는 바람에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임종 순간을 지켜봤거나 장례/매장에 관여한 인물들의 증언으로는 몸에 구타 흔적이 하나도 없었고, 과로사임이 확실하다고 한다.
시신은 장크트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으나, 나중에 다시 발굴되어 형과 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이 묻혀있는 빈 중앙묘지로 옮겨져 어머니 안나의 묘소 옆에 이장되었다.
2. 주요 작품들
2.1. 왈츠
- 처음이자 마지막 (Die Ersten und Letzten op.1)
- 마지막 이후 처음 (Die Ersten nach den Letzten op.12)
- 5월의 장미 (Mai-Rosen op.34)
- 오스트리아의 마을제비 (Dorfschwalben aus Österreich op.164)
- 디나미덴 (Dynamiden (Geheime Anziehungskräfte) op.173)[4]
- 거래 (Transactionen op.184)
- 헛소리 (Delirien op.212)
- 천체의 음악 (Sphärenklänge op.235)
- 수채화 (Aquarellen op.258)
- 나의 이력은 사랑과 쾌락! (Mein Lebenslauf ist Lieb' und Lust! op.263)
- 금성의 궤도 (Hesperusbahnen op.279)
2.2. 폴카
- 프랑스풍 폴카 '작은 물레방아' (Moulinet op.57)
- 폴카 마주르카 '동정' (Sympathie op.73)
- 폴카 마주르카 '불타는 사랑' (Brennende Liebe op.129)
- 빠른 폴카 '휴일에' (Auf Ferienreisen op.133)
- 폴카 마주르카 '여자의 마음' (Frauenherz op.166)
- 빠른 폴카 '짧은 전갈' (Eingesendet op.240)
- 빠른 폴카 '수다장이' (Plappermäulchen op.245)
- 폴카 마주르카 '춤추는 뮤즈' (Die tanzende Muse op.266)
- 프랑스풍 폴카 '불연성의!' (Feuerfest! op.269)
- 빠른 폴카 '걱정없이' (Ohne Sorgen op.271)
- 기수 폴카 (Jockey-Polka op.278)
- 폴카 마주르카 '해방된 여인' (Die Emancipierte op.282)
- 피치카토 폴카 (Pizzicato-Polka. 형인 요한 2세와 공동 작곡)
3. 사생활
머리가 기막히게 잘 돌아가는 천재적 두뇌에 감수성이 남다른 인물이라는 다소 모순된 양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킬박사와 하이드마냥 성격파탄자나 괴짜는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슈트라우스 형제들 중 가장 미남으로도 유명했고,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요구하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실제로 곡들의 제목을 훑어 보면 여권 신장이나 여성 옹호를 담은 것들이 의외로 자주 나오고 있고, 1857년 결혼한 카롤리네 프루크마이어와도 평생 깨가 쏟아지는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외동딸 카롤리나 안나가 있었다. 그리고 병약한 몸과 어울리지 않게 스피드를 즐기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특히 경마광이기도 했다.
4. 사후의 평가
형의 명성에는 약간 떨어지지만, 아버지 요한 1세와 막내 에두아르트의 인기를 버로우시키고도 남는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형과의 비교는 다소 온당치 못한 측면이 있는데, 요제프는 한창 나이인 43세에 사망했지만, 형 요한은 74세까지 장수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절대량이나 알려진 명곡의 갯수로는 요한이 앞서지만 이는 요한이 훨씬 긴 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사실 형 요한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40대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소위 말하는 요한의 10대 왈츠 모두 42세 이후에 쓰여졌다. 요제프가 사망한 나이인 43세까지만 두고 보면 그나마 공정한 비교가 가능한데, 그때까지만 비교하면 요제프가 오히려 형 요한보다 재능이 낫다는 평도 적지 않다. 따라서 요제프가 형 만큼 장수했다면 형보다 더 유명한 작곡가로 남았을 가능성도 크다.
요제프의 왈츠나 폴카 마주르카의 특징은 특유의 서정미와 멜랑콜리함에 있다. 특히 왈츠들에서는 첫머리에서 자뭇 드라마틱하거나 미스테리한 느낌을 주며 청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고, 곡을 구성하는 짤막한 왈츠 묶음들 사이에 유기적 흐름을 만들거나 서주의 음악 요소들을 후반에 왈츠화시켜 삽입하며 데자뷰 느낌도 노리는 등 교향시 풍의 큰 스케일을 담아내기도 한다. 무도 음악으로서의 왈츠를 감상용 콘서트 음악으로 격상시키는데 요제프의 왈츠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유의 서정성 때문에 형보다 작품 수는 적지만 팬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도 요한 2세 다음으로 곡이 많이 선곡되는 작곡가로 꼽히고 있다.
과학이나 상공업 관련 전문용어로 된 작품 제목들이 많은 데, 미칠듯이 학구적이거나 세속적인 제목과 서정적이고 세련된 음악이 주는 괴리감으로 왱알앵알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5] 앞서 언급된 것과 같이 그의 원래 직업이 상공업쪽이었기 때문에 이쪽 지인들을 통해 음악회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 그러한 청중층을 맞추기 위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걸쳐 요한 2세 다음으로 클래식 음반사 낙소스 산하 서브 레이블 마르코 폴로에서 전집 세트가 나와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했다. 요한 2세보다는 작품이 적은 관계로 CD 26장에 수록할 수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이 세트 이후로 다시 시도하는 용자 음반사는 아직 없다(…).
19세기 유럽 음악계를 풍미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TV영화 <슈트라우스 왕조>(Die Strauß-Dynastie)에서도 형 요한 2세, 동생 에두아르트와 비중있는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배우는 덩컨 벨(Duncan Bell).
[1] 오스트리아에서 '요제프' 를 친근하게 부를 때 관용적으로 쓰는 단어. 독일에서는 '유프(Jupp)' 라고 한다.[2] 이 때문에 이듬해 작곡한 자신의 두 번째 왈츠에는 '마지막 이후 처음'이라는 은퇴 번복의 뉘앙스를 담은 제목을 붙여 발표했다.[3] 에두아르트는 큰형인 요한 2세가 죽고 몇 년뒤 악단을 해체하면서 형들이 남긴 자필보 상당수를 소각시켜 버렸다.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라는 사유였는데, 끝나기는 개뿔이.[4]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에 등장하는 왈츠는 디나미덴 왈츠의 주제를 변형시킨 곡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일종의 헌사라 할 수 있다.[5] 물론 요한 2세나 에두아르트도 찾아보면 진짜 괴상한 제목의 곡들이 많다. 대개 무도회 개최자나 단체의 성격을 감안해 작명을 하기 때문에, 작곡과 관련된 배경 지식이 없을 경우 아예 이해를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춤곡 듣는데 공부까지 해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