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니스 하슬렘

 


'''마이애미 히트 No.40'''
'''유도니스 조닐 해슬럼
(Udonis Johneal Haslem) '''

''' 생년월일'''
1980년 7월 9일 (44세)
'''출신학교'''
플로리다 대학교
'''신장'''
203cm (6' 8")
'''체중'''
106kg (235 Ibs)
'''포지션'''
파워 포워드
'''소속팀'''
샬롱 쉬르 손[1] (2002~2003)
'''마이애미 히트 (2003~현재)'''
'''등번호'''
40번
'''수상내역'''
NBA 챔피언 3회 (2006, 2012, 2013)
NBA All-Rookie Second Team (2004)
Miami Heat all-time rebounding leader
Second-team All-American – NABC (2002)
Third-team All-American – AP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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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2012'''
'''2013'''
1. 소개
2. 입성 전
3. 입성 후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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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히트의 최전성기에 드러나지 않지만 꾸준히 궂은 일을 도맡아 해온 선수로 현재까지 히트의 모든 우승의 순간을 함께했다. 현재는 히트에서 최고참이기도 하다. 별명은 U.D. 빈스 카터의 은퇴로 자말 크로포드와 함께 리그 최고참 선수가 되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견실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로, 히트 프렌차이즈의 리바운드 리더다.
현재 마이애미 히트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명실상부한 히트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팀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하여 본인의 최고 전성기였던 시절, BIG 3 결성과 유지를 위해 소위 말하는 밀당도 없이 자신의 페이컷을 기꺼이 감수했을 정도여서 지역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이하게 롤플레이어임에도 한 팀에만 머무는 행운을 누린 선수다. 스타플레이어들은 가치가 높기 때문에 자기 의사에 따라 팀을 선택하는 게 비교적 자유롭고, 경우에 따라 트래이드 거부 조항을 갖기도 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한 선수의 비중이 절대적인 농구에선 전술의 중심인 슈퍼스타를 잘 보내지 않으려는 경우가 있다. 아예 판을 새로 짜지 않는한. 그러나 롤플레이어들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부품처럼 사고 팔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저니맨들은 스타급은 샤킬 오닐처럼 본인이 원해서 자주 팀을 옮기거나, 90년대 스타 짐 잭슨처럼 엥간이 운이 없는 선수들 뿐이고 대부분이 롤플레이어. 저니맨까진 아니더라도 조력자 선수들은 팀내 발언권이 약하고, 옮기더라도 큰 타격이 없기 때문에 최소 몇번은 팀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하슬렘처럼 언드래프티인 선수들는 찬밥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팀이건 불러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당장 뛰어야 한다. (콜업되자마자 팀에 합류하기 위해 134마일을 미친듯이 폭주해 와 겨우겨우 경기장에 온 션 킬패트릭같은 경우도 있다) 이런 선수들은 한 팀에서 10일 계약하고 짤리고, 다른 팀에서 좀 뛰다가 트래이드되는 등 이 팀 저팀 오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하슬렘은 드래프트 낙방 얼마 후 '''고향 플로리다에 있는 팀'''의 부름을 받아 이제 17년째 뛰고 있으니 꽤나 복받은 셈. 80년생인 하슬렘은 2020-21시즌 기준으로 몇년째 거의 못 뛰고 있는데(직전 시즌까지 3년간 총 40경기) 은퇴를 고려하고 있고 1년 계약을 한 상태기 때문에 이대로 은퇴해 원클럽맨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은 하슬렘을 몇년간 데리고 있고 계약을 제시한 것 자체가 프랜차이저이자 팬들에게 사랑받는 팀의 주장을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샐러리 맞추기용으로 허무하게 트래이드될 가능성은 낮을 듯. 애초에 하슬렘이 19-20시즌 재계약 소식을 알리며 사장 팻 라일리가 한 말이 "우리 주장이 17번째 시즌을 위해 돌아온 것이 자랑스럽습니다"였다. 사실상 은퇴냐 커리어 연장의 문제지, 오랫동안 주장을 해온 (스타급들이 있을때도 공동 주장) 히트의 상징같은 선수를 팽할 확률은 거의 없다. 이후 20-21시즌에도 다시 재계약을 맺으며 주가가 높아진 '히트 문화'에서도 웃어른이자 라커룸 리더로써 역할을 다 하는 중.

2. 입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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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마이애미 고등학교 시절 1997년과 1998년에 챔피언쉽에도 이끌었다. 플로리다 대학시절 경기당 평균 13.7 점, 6.7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했고 통산 1,782득점 (플로리다 대학 통산 3위), 831리바운드 (플로리다 대학 통산 10위)를 기록한 괜찮은 포워드로 활약했지만 소위 말하는 언더사이즈 빅맨으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면서 2002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3. 입성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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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LNB 소속의 샬롱 쉬르 손과 계약해 평균 16.1득점과 9.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미국으로 귀국해 2003년에 열린 마이애미 히트의 서머 리그에서 활약을 인정받으며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
1년차 때는 브라이언 그랜트와 라마 오돔의 백업으로 뛰었으며 리바운드와 수비력을 펼쳐 NBA All-Rookie Second Team에 선출되었다. 2004-05시즌에는 오돔이 레이커스로 이적하자 샤킬 오닐, 캐론 버틀러, 브라이언 그랜트와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얻고 이적하며 파워 포워드로 정착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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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시즌에는 모든 경기에 나갔으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시카고 불스와 대결을 펼쳤으나, 하슬렘이 파울이 아니라고 항의하자 문 마우스피스를 조 크로포드 심판을 향해 던져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크로포드 심판에게 고의적으로 마우스피스를 던진건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팬들과 팀 동료들 그리고 크로포드 심판에게 사과하였다. 그리고 NBA는 이 사건을 검토한 결과, 하슬렘에게 2차전 출장을 정지시켰다. 이후에도 주전 파워 포워드로 출장하여 꾸준하게 수비, 허슬을 보여주며 활약했고, 드웨인 웨이드의 굉장한 활약을 묵묵히 도와 2006 NBA 파이널에서 챔피언인 댈러스 매버릭스를 격파하고 마이애미 히트의 창설 이후 첫 NBA챔피언 획득에 공헌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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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시즌에는 샤킬 오닐이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었고 알론조 모닝의 부상도 이어져 가고 있었으나, 하슬렘은 포지션을 센터로 변경하고 평균 12개의 득점과 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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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시즌에는 다시 파워 포워드로 뛰게 되었으며, 림프로텍터이지만 리바운드가 약한 저메인 오닐과 골밑 파트너가 되어 히트의 리바운드 리더로 활약한다. 드웨인 웨이드가 득점왕을 얻어내는 등 활약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애틀랜타 호크스에게 패하여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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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시즌에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이적한 르브론 제임스토론토 랩터스에서 이적한 크리스 보쉬 그리고 드웨인 웨이드가 재계약을 맺는 데에 성공한 데 이어, 하슬렘도 7월 12일에 히트와 재계약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댈러스 매버릭스와 6년만에 2011 NBA 파이널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복수의 쓴 맛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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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시즌에는 6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6득점과 7.3개의 리바운드를 정규 시즌에 기록하였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2012 NBA 파이널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만나 2006년 이후 6년만에 두번째 NBA 챔피언쉽을 갖게 되었다. 하슬렘은 플레이오프에서 4.8득점, 6.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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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시즌에는 셰인 배티에의 출장기회가 늘어나자 하슬렘은 교체선수로만 나왔다. 11월 21일에 열린 밀워키 벅스전에서는 알론조 모닝이 기록한 4807개의 리바운드 기록을 깨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으로 리바운드를 기록한 드래프트 미지명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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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는 3차전과 5차전에서 9개 가운데 8개를 쏘았고, 2013 NBA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만나 7차전 끝에 누르고 히트의 3번째 NBA챔피언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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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가 결승전에서 패하자, 우는 르브론을 달래고 있는 유도니스 하슬렘.
2013-14시즌에는 54승을 기록하며 4년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2014 NBA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다시 맞붙게 되었으나, 1-4로 대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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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8일에는 히트와 2년계약을 체결하였다. 2015년 2월 20일에 열린 뉴욕 닉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본인의 첫 3점을 기록하여 111-87로 승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순위권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4. 여담


  • 대학은 플로리다, NBA도 마이애미에서만 뛰어온 명실공히 지역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지만, 스타성을 비롯한 전체적인 기량이 탑급은 아니다보니 인지도는 높지 않다.[3] 그래도 지역 내 지지도와 근속 기간만 따지면 드웨인 웨이드에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의 성골.
  • 장수한 선수계의 한 획을 긋는중. 그리고 빈스 카터의 은퇴로 현역선수중 최고참이 되었다.
  • 2014 시즌 이후의 활약상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사실 진짜 활약이 없다시피하여 기록이 없는 것이다(...) 2015-16시즌에 37경기, 이후 해마다 16경기, 14경기, 10경기, 2020시즌엔 고작 4경기로, 4년 연속 평균 9분 미만으로 뛴 선수라 효율로 따지면 오래전에 버렸어야 맞지만, 워낙 마이애미라는 프랜차이즈에서 큰 무게감을 갖는 존재이기에 활약의 정도만으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상술했지만 하슬렘이 2019-20시즌 재계약했을때 히트 공식 페이지의 기사 제목이 "주장이 돌아온다(The Captain returns)"였을 정도이다. 마이애미도 그와 20-21시즌 약 200만달러에 재계약을 맺으며 극진히 대접하는 중. 클리퍼스가 지난 시즌 라커룸 리더의 부재로 침몰한 것을 생각하면 그의 존재감이 히트의 결속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2020년 마이애미가 6년만에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하슬렘은 00년대-10년대-20년대 파이널에 가본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1] 현 엘랑 샬롱[2] 단 이 파이널은 편파판정으로 논란이 많은 편인데 얼마나 논란이 크면 현재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특히나 웨이드가 돌파만 하면 수비하는 선수들은 도대체 왜 파울이나며 격하게 항의 했을 정도... 오죽했으면 필 잭슨이 댈러스의 구단주인 큐반이 그동안 심판들한테 밉보인거 같다며 아리송한 말을 남겼을 정도... 판단은 자유에 맡긴다.[3] 이는 팬덤이 팀 단위가 아닌 슈퍼스타 단위로 형성되는 국내 팬덤 얘기이다. 마이애미에서 하슬렘의 인기는 슈퍼스타들에게는 밀리지만, 오랫동안 플로리다에서 뛰어오며 사실상 성골 취급을 받느 홈타운 보이이 만큼 지지도가 상당히 높다. 애초에 기량이 거의 사라진 하슬렘을 방출하거나 트래이드하지 않고 계속 데리고 있고, 굳이 다시 한번 불러온 이유도 그를 팽하면 홈팬들에게 있는욕 없는욕 다 먹을게 뻔하기 때문. 대니 에인지가 셀틱스에서 수많은 보사구팽을 저질렀을때의 반응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