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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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 농구선수. 현재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꼽힌다.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도 최정상급 위상을 가지고 있고,''' 현역이면서도 역사적인 기록을 써내려가며 마이클 조던 이후 최고의 농구선수, 역대 최고의 스몰포워드, 21세기 농구 황제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미국 여러 매체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전미 스포츠스타 인지도, 수입 순위에서도 항상 2위 이내에 들고 있다. 또한 역대 최초로 3개 팀에서 파이널 MVP를 차지한 선수이자 역사상 제일 많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 인물로 뽑힌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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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는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서 태어났다.[9] 제임스의 어머니인 글로리아는 16살 때 제임스를 낳았다. 글로리아는 아버지 없이 르브론을 키워야 했기에 집은 매우 가난했다.[10]
르브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르브론 본인은 "그런 사람 필요 없고 어머니만 있으면 되니 신경쓰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어머니 글로리아는 르브론을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고, 5살과 8살 정도의 시기에 집을 12번 가까이 옮기며 계속 전학을 하는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11] 르브론 말에 따르자면 어린 아이에게는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없던 르브론에게 아버지나 다름 없는 사람은 에디 잭슨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르브론의 어머니 글로리아의 남자친구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했고 마약 거래로 감옥을 다녀오는 등 르브론 모자에게 집안의 가장 같은 역할을 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잭슨은 르브론에게는 자상했고, 아버지가 없었던 르브론도 주위에서 나오는 말들은 무시하고 잘 지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잭슨은 WWE를 보여주면서 르브론과 친목을 다졌는데, 르브론은 레슬러 중에 마초맨을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이 에디 잭슨은 결국 르브론이 NBA에서 데뷔하는 것을 보지 못한채 글로리아 제임스와 헤어지는데 , 그 이유는 바로 $775,000를 담보 사기로 얻은 것에 있다. 이로 인해 에디 잭슨은 3년형을 선고 받고 헤어진다. 에디잭슨은 그 후 글로리아 제임스와 헤어지고 각종 음주 운전과 같은 사고로 휘말리는 중이다.
2.2. 농구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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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르브론의 딱한 사정을 눈여겨 본 것이 초등학교 미식축구부 친구의 아버지인 프랭크 워커였다. 애크런 주택관리국에서 일하던 워커는 글로리아가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동안 르브론을 키워주기로 했다. 르브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경험했고, 워커의 다른 세 자녀와 함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르브론은 개근상을 타는 모범생으로 바뀌게 되었다. 워커의 아내인 팸 워커는 글로리아에게 임대 주택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르브론이 농구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워커는 그를 농구 스쿨에 보내 제대로 농구를 배우게 했고[12] , 르브론은 여기서 시언 코튼, 드류 조이스 3세, 윌리 맥기 등의 친구들과 키스 댐브럿[13] , 드류 조이스 2세 등 훗날 고등학교 은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Fab4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르브론과 친구들은 점차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AAU(Amateur Athletic Union) 8학년 이하 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활약을 했지만 결국 67-68로 아깝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르브론은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SVSM)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애크런에서 농구 잘하는 흑인 학생은 부틀 고등학교에 가능 것이 관례였지만 부틀에서는 초단신이었던 드류 조이스 3세를 받는 것을 거절했고, 친구와 계속 농구를 하고 싶었던 르브론은 조이스 3세가 SVSM 입학을 결정하자 미련없이 부틀 입학을 포기했다. 주로 가톨릭계 백인들이 다니던 SVSM은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학교였지만 농구에서는 완전히 무명이었다.[14]
그러나 Fab4는 빈센트-세인트 메리를 1984년 이후 처음으로 주 챔피언으로 이끄는 것을 시작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며 지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점점 몸이 자라던 르브론의 기량은 이미 고등학생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시합 중에 비트윈더렉 덩크를 작렬시킬 정도였다. 그는 3년이나 연속으로 오하이오 주의 미스터 바스켓 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싹수가 보였다. NBA의 전설 중 하나인 빌 월튼[15] 은 르브론 제임스가 한창 고등학교에서 뛸 시기에(졸업시즌이 아닌) 그의 경기를 보고 "저 아이는 지금 당장 NBA에 가도 주전으로 뛸 수 있다." 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슬램매거진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을 다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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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농구 명문을 포기하고 무명 팀에 입학하여 그 팀을 전국 최강으로 만드는 만화 같은 이야기'''에 언론의 주목도는 엄청났다.[16] 이렇게 르브론은 고등학생 때부터 어지간한 프로선수들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 코비 브라이언트나 마이클 조던도 르브론에 관한 코멘트를 했으며, 오크힐 학교와 치른 경기는 13년 만에 고등학생 농구 시합이 미전역으로 방송될 정도였다.
워낙 매스컴의 관심이 폭발하다보니 위기도 있었다. 2003년 제임스의 어머니 글로리아가 제임스의 18번째 생일 때 Hummer H2를 선물로 주었고,[17] 제임스 자신도 고가의 저지를 선물로 받아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하긴 했지만, 다행히 2게임 결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화려한 고교시절을 보낸 제임스는 졸업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함께 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지만, 워낙에 초월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던 르브론은 더이상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해서 2003년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 드래프트 1픽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되면서 르브론은 NBA 선수가 되었다.'''
2.3.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주요 기록
데뷔를 매우 어린 나이에 했고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기 때문에 정규시즌 플레이오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록을 쌓아 올렸다.
ALL- NBA 팀 16회 역대최다 수상[18]
ALL- NBA 퍼스트팀 13회 역대최다 수상[19]
4.1. 정규시즌
- 이 주의 선수상 61회
- 이 달의 선수상 44회
- 출전 시간 현역 1위, 역대 8위[20]
- 통산 득점 현역 1위, 역대 3위 [21]
- 통산 어시스트 현역 2위, 역대 8위
- 통산 리바운드 현역 6위, 역대 50위
- 통산 스틸 현역 2위, 역대 14위
- 평균 득점 현역 1위, 역대 4위 (27.2)
- 통산 야투 성공 역대 3위[22]
4.2. 플레이오프
- 출전 시간 역대 1위[28]
- 통산 출전 경기 역대 1위[29]
- 승리 수 역대 1위[30]
- 통산 득점 역대 1위[31]
- 통산 어시스트 역대 3위
- 통산 리바운드 역대 6위[32]
- 통산 스틸 역대 1위
- 통산 블락 역대 12위
- 통산 턴오버 역대 1위[33]
- 자유투 성공 역대 1위
- 필드골 성공 역대 1위
- 3점슛 성공 역대 2위
- PER 평균 3위 (28.03)
- VORP 역대 1위 (29.38)[34]
4.3. 파이널
- 출전 시간 역대 3위
- 통산 득점 역대 2위
- 통산 어시스트 역대 2위
- 통산 리바운드 역대 5위
- 통산 스틸 역대 2위
- 통산 블락 역대 6위
- 필드골 성공 역대 3위
- 파이널 통산 PER 역대 4위(27.3)
5. 사건사고 및 논란
6. 말말말
'''From Saint Vincent-Saint Mary High School and AKRON, Ohio, Number 23, LeBRON JAMES!'''[35]
[36]
7. 어록
'''This fall, man, this is very tough, this fall, I'm going to take my talents to South Beach and join the Miami Heat.'''
올 가을에는……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올 가을, 저는 제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가서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합니다.[37]
[38]
In Northeast Ohio, nothing is given. '''Everything is earned.''' You work for what you have.
I’m ready to accept the challenge. '''I’m coming home.'''
오하이오에서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쟁취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위해 우린 뛴다.
나는 이러한 도전에 응할 준비가 됐다. 난 집에 돌아간다. [39]
"나의 실패를 고대하던 놈들은 그래봤자 내일 일어나면 이것과 상관없이 뼈빠지게 일하고 현실문제에 치여 살겠지만, 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그들은 잠시동안 이것으로 위안을 삼겠지만, 히트는 그들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어느 순간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40]
'''CLEVELAND! This is for you!'''[41]
NOT 1, NOT 2, NOT 3, NOT 4, NOT 5, NOT 6, NOT 7.....
8. 기타
8.1. Taco Tuesday!!
르브론이 LA 레이커스로 이적한 후로부터[42] 하는 르브론의 인스타그램 명물 중 하나. 매주 화요일 혹은 타코를 먹는 날에는[43] 웬만해선 빠지지 않고 가족, 혹은 팀원들과 타코를 먹을 때마다 외친다.
대략적인 패턴으로는
1. 잡설. 특히 엄살 피우는 소리를 자주 한다. 힘이 없다든지...
2. SIKE!![44] 오늘이 무슨 날이냐!
3. 카메라를 전환해 테이블의 게스트나 부엌의 가족들에게 what day is it today!?를 묻기.[45]
4. 카메라를 다시 전환 후 '''IT'S TACO TUESDAY!!!'''라고 크게 외친다.
5. 깔깔깔깔깔깔깔깔!
대략 이런식. 그 유구한 역사를 보건대...
가장 기본적(?)인 구조
모교 행사에서도 한다!
스테이플 센터를 가득 메우는 타코 튜스데이 챈트
르브론이 없으면 아이들이 한다
팀원들과 회식날에도 간단해 해주시는 릅신
갈매기도 했다! 스페인어로 함께해요[46]
네이마르도 했다! [47]
코로나도 타코 튜즈데이를 막을 수 없다
결국은 미고스가 타코 튜스데이로 노래까지 만들었다(...)
올랜도 버블에서도 외쳐주는 릅신
이 때문에 이름에 타코가 들어가는 타코 폴이 화면에 잡히면 중계진들이 Tacko Tuesday!를 외친다.
8.2. 농구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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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던과의 비교가 잦지만 르브론 본인은 조던빠에 가깝다. 조던빠 기질이 어느정도냐면 르브론은 원래 왼손잡이인데 조던이 오른손으로 슛을 쏘기 때문에 슛을 할 때 오른손으로 슛을 쏜다. 또한 본인이 조던하고 맞붙는 합성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쓰고 있을 정도. '조던 막고 르브론 뚫고' 누구의 배경화면일까 2009년 11월 경에는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였던 23번을 NBA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어서도 마이클 조던을 폄하하는 발언을 오히려 하지 않고 마이클 조던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발언을 주로 하는 편이다. 코비를 필두로 한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슈팅 가드들이 조던의 거대한 그늘에 시달리며 "존경은 하지만 난 조던이 아니다." 는 식으로 조던과 매칭되는것에 대해 상당히 진저리를 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세대가 다르고 스타일도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그런 압박은 그다지 받지 않는 편인듯. 오히려 조던은 자신의 동기부여가 된다고 발언하는 편이다.
- 새가슴 논쟁에 자주 시달리는 편인데 2010~2011시즌 피크에 달했던 시기에 하필이면 역대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로 꼽히는 조던과 비교되면서 조롱받아야 했다.[48] 하지만 바로 다음시즌 2011-2012시즌을 기점으로 플레이오프와 파이널에서 이런 논란을 일축할 만한 대활약을 선보이며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 가라앉았다. 특히 2015-16 파이널에서 3-1 상황에서 3연승을 하며 역전승을 거두고 특히 7차전에서 클러치 상황의 블락까지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가슴 논란을 완전히 떨쳐버렸다.
- 실제론 르브론은 마이애미 시절을 제외하곤 리그 최고 수준의 클러치 플레이어였다. 2000년대 이후 플레이오프 버저비터 위닝샷 갯수 독보적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고(2018년 기준 5개) 4쿼터 득점 역시 매시즌 상위권을 차지한다. 다만 클러치 상황에서 르브론은 점퍼보다 자신의 강점인 돌파를 위주로 플레이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약하단 느낌이 없지않다. 다만 18-19시즌을 기점으로 전체적인 기량 하락과 함께 클러치 능력도 다소 하락한 편.
- 카이리 어빙과의 케미가 워낙에 좋았고, 흡사 유사부자관계수준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2014-15 시즌 초반에는 르브론과 카이리 어빙 간에 볼배합 문제로 인해 손발이 안맞고 그로인해 르브론이 공격 과정에 별 다른 적극성을 띄지 않는 모습을 연출하자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이때 모 커뮤니티의 한 르브론 팬이 "르브론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다."라며 별 문제없는 사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이를 본 NBA 갤러리에서 조롱하는 의미로 '르버지'라는 별명을 만들어냈다. 아들빙이라는 별명도 이러한 맥락으로 파생된 것.
- 경기중에 멘붕한 모습이나 오프시즌의 행사 참석 모습을 두고 NBA 갤러리에서는 짤방제조기, 개념글 치트키로 취급받고 있다(...).
- 캐벌리어스를 떠났을 때의 움직임이 이미 계산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르브론의 샐러리를 안고는 프리 에이전트를 끌어들이기에는 어느정도 무리가 있고, 클리블랜드 자체가 스몰마켓이라 대스타가 오지 않는다는 점도 있어서 르브론을 가지고도 캐벌리어스는 거듭거듭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었다. 게다가 르브론이 억지로 탱킹을 하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은 캐벌리어스가 상위 픽을 받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르브론이 떠남으로 팀이 자유롭게 탱킹을 하고 상위 픽으로 젊은 유망주를 뽑은뒤 어느정도 안정된 후에 르브론이 컴백하면 자연스럽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마이애미 시절처럼 빅3나 최소한 스탁턴-말론의 픽앤롤 듀오를 만들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캐벌리어스에게 어빙을 뽑은 픽이 상당히 낮았는데 어빙을 뽑은점 이나 르브론이 떠나는 과정에서 엄청 욕을 먹었다는 점에서 결과론적인 말에 가깝다. 팀 전력을 강화시킬 목적이라면, FA로 떠나는것보단 자신을 대권후보 팀에 트레이드 매물로 쓰는게 더 나았을 것이다. 르브론 자신이 트레이드 카드였다면 몇년치 1라운드 유망주와 벤치 에이스 다수는 기본으로 받았을 터. 또한 팀에 복귀할 생각이었다면 더 디시전같은 삽질로 욕을 굳이 처먹을(...) 필요도 없었다.
- S급 선수임에도 파울콜이 짠편이는 의견이 있다. 공격비중의 절반이 돌파인데도 반칙을 잘 안불어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17-18 시즌에는 유독 그런 경향이 강해졌는데, 2017년 11월29일 열린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파울을 너무 안불어주자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재밌는것은 그의 농구 커리어 15년 동안 최초의 퇴장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트레블링 콜은 상당히 후한 편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많다.
돌파의 비중이 많은데도 하든보다 반칙을 잘 안 불어주는 이유는 수비수들이 하든같은 선수들에 비해 르브론에겐 반칙을 적게 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르브론은 파워포워드의 덩치로 가드처럼 달리는 선수이고, 빅맨이 아닌 이상, 아니 빅맨이어도 그의 돌파를 막기 힘들다. 파울해봤자 앤드원 적립이니까. 실제로 르브론이 돌파할 때는 많은 수비수들이 수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애초에 르브론은 플레이스타일상 하든보다 자유투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하든은 멸칭에 가깝게 "자유투 삥뜯기"로 불릴 정도로 어거지에 가깝게 자유투를 얻어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그가 완전히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컨택을 유도하며 들어갈리가 없는 슛을 쏘는 것도 가끔 파울콜이 불릴 정도. 이 때문에 하든은 파울이 잘 안 불릴 경우 경기를 말아먹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정상적인 자유투얻어내기를 할 때도 앤드원 플레이보다는 투샷, 쓰리샷이 많다. 포인트는 이렇다보니 하든은 파울콜 이후 대부분 슛이 안 들어가다보니 같은 수의 파울을 얻어내도 자유투 갯수가 당연히 2개 이상씩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르브론은 하든보다 압도적인 파워와 마무리 능력으로 파울 이후 슛이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고, 따라서 앤드원이 더 많다. 당연히 파울 갯수 대비 자유투는 하든보다 르브론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정도 자유투를 쏘는 것이다. 르브론에게 파울콜이 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르브론이 돌파할때마다 거의 매번 파울당했다는 어필을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치를 봐도, 경기를 봐도 그가 파울콜이 짜다고 볼만한 근거는 빈약하다. 진짜 파울콜이 짜다면 저렇게 많은 자유투를 얻어낼 수도 없고, 수비를 등한시하지 않는 이상 데뷔 후 15년동안 퇴장당하지 않을 수도 없다.
- 현 NBA 최고의 슈퍼스타인 만큼 많은 젊은 선수들의 우상이기도 한데, 실제로 루카 돈치치의 농구 우상이기도 하다.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르브론과 MVP 경쟁을 한 2019-2020 시즌 이후 한 인터뷰에서 르브론이 현재 최고의 선수이며 그를 어린 선수일 때 보는 것이 자신에게는 조던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
8.3. 농구 외
- 꽤 젊은 나이부터 탈모가 시작되어 상당히 진행되었다. 아들이 이발하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머리가 매우 부럽다는 발언을 하고 조던과 비교하는 기자의 질문에 우린둘다 대머리라고 농담할 정도로 본인도 꽤 탈모가 신경쓰이는듯. 노장이라 불려도 무리없는 최근에는 머리를 심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점점 한계가 오고 있다.
- 2014년 ESPN 기사, "LeBron James' Greatest Weapon Is His Brain"과 르브론의 팀 동료들, 측근들에 따르면 사진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53] 가끔 옛날 농구 경기를 틀어놓으면, "어, 97년 NBA 파이널 2차전이네," 라며 매번 알아맞추고, 미식축구 경기를 볼때면, "어, 저 코너백은 몇년도 몇번째로 어떤 팀에 드래프트됐어" 라며 세세한 점들까지 기억해낸다고 한다. 함께 비디오게임을 해도 르브론 혼자 모든 기술들을 외워서 매번 이긴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기억력은 2007년 파이널 등 자신이 실패했을 때 까지의 기억까지도 너무 생생나게 기억나게 하여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잦았다고도 한다. 노비츠키와 댈러스에게 패배한 2011년 파이널이 그 대표적인 경우. 2011년 이후로 르브론이 플레이오프 때면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전부 끊는 것도 기억력이 이유라고 한다. 관련 링크
- NBA가 사무국과 선수노조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2011 시즌 일부를 쉬게 되자 부업을 찾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난데없이 10월 초에 트위터를 통해 프로 미식축구리그인 NFL의 FA계약 마감일을 물어보면서 뉴스거리를 만들더니, 1주일 후엔 시애틀 시혹스의 피트 캐롤 감독과 대화를 주고받았다.[54] 물론 진짜 미식축구로 전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격렬한 스포츠를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NBA 커리어는... 그래도 사람들은 인류최종병기 수준 피지컬의 타이트엔드를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NFL의 캘빈 존슨, NBA의 드와이트 하워드 등과 함께 다음 이종까페나 격갤같은 이종격투기 커뮤니티에서 가끔 발생하는 피지컬 괴물(격투기능력이 아니라 순수한 운동능력을 말한다) vs놀이 떡밥에 고정 등판하는 선수.
- 뉴욕 양키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2007년 뉴욕 양키스와 고향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가 열렸을 때,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제이콥스 필드(2008년부터 프로그레시브 필드로 개명)에 양키스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 양키스를 응원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고향팬들에게 욕을 왕창 얻어먹었다. 절친한 관계인 CC 사바시아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FA로 풀리자 양키스로 가라고 권유한 것도 바로 르브론. 비슷하게 사바시아도 르브론한테 뉴욕 닉스로 가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 리버풀 FC의 서포터이다. SNS로도 종종 리버풀을 응원하는 글을 올리고 2011년에는 안필드를 방문해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받기도 했다. 또한 리버풀의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다.
- 2013년 9월 14일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 사반나 브린슨과 결혼했다. 사실 진작에 자식도 둘 있는 사이.
- 특이하게도 자신이 직관한 클리블랜드의 많은 경기에서 승리한다. 예를 들어 2016년 8월 19일에는 고향 연고지 야구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경기를 관람했는데, 이날 인디언스는 끝내기 동점 홈런과 끝내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승리했다. 10월 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2016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도 찾아왔으며, 이날 인디언스는 선발 코리 클루버의 호투와 타선의 힘으로 승리하여 시리즈 전적 2:0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근데 구단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일지도 모르는2016년 월드 시리즈 7차전은 직관을 갔는데도 졌다.
- 클리블랜드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팀의 슈퍼스타이다 보니 정작 자신은 농구선수인데도 같은 연고지의 슬픔을 제조하는 팀의 저지 판매량 상위권에 들어가고 있다.
- 클리블랜드 2기부터 수염을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는데 17-18시즌에서의 수염들이 미국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수염과 판박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건강을 위해 매일 조금씩 와인을 반잔씩 마신다고 한다.[55]
- 미국내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디시젼 쇼 등을 통해서 안 좋은 이미지가 약 4년간 있었으나 『아임 커밍 홈』을 통해서 클리블랜드에 복귀하고 그 과정에서 극적인 역전우승을 펼치면서 이미지가 개선되며 인기도 늘었다. 그러나 인기많은 선수 답게 안티지분도 상당하다.
2. 미셸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리아나
5. 비욘세
6. '''르브론 제임스'''
7. 오프라 윈프리
8. 톰 행크스
9. 빌 게이츠
10. 세레나 윌리엄스
남성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명인 10 명
1. '''르브론 제임스'''
2. 버락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빌 게이츠
5. 스테픈 커리
6. 도널드 트럼프
7. 톰 행크스
8. 세레나 윌리엄스
9. 리아나
10. 미셸 오바마
여성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명인 10 명
1. 미셸 오바마
2. 버락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리아나
5. 비욘세
6. 오프라 윈프리
7. 톰 행크스
8. 빌 게이츠
9. 세레나 윌리엄스
10. '''르브론 제임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해서 클리블랜드에서 반응이 안좋을거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그렇지 않다. 헤어지는 과정이 좋았기 때문에 클리블랜드에서는 헌정영상을 틀어줄 정도로 사이가 좋다.[56]
- 2 Chainz가 2019년에 발매한 신작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 르브론의 우승을 가장 많이 좌절시킨 스티브 커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리스트 시절 릅빠의 모습을 여러번 보여줬는데 우승 전이라 올타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까지 뽑히지않던 르브론을 뽑거나 우승2회때부터 올타임 탑 5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감독시절에도 파이널에서 듀란트와 르브론을 이긴 후 듀란트가 최고냐 르브론이 최고냐 논쟁이 한창이던 때 인터뷰에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르브론이 최고라고 하는 등 계속해서 팬인증을 하고 있다.
- 딸 쥬리 제임스가 유튜브를 개설했다. 르브론도 간간히 출연 중이다.#
- 2020년 타임지 올해의 운동선수에 뽑혔다. 지난 2012년, 2016년에 이어 벌써 3번째.
9. 출연작
- 모어 댄 어 게임(2008) - 주연, 기획
-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2015) - 본인 역[57]
- 스몰풋[58] - 궝기 역
- 나이키 광고 <르브론 제임스의 공포의 방(총 3편)> -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