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건릉

 


隆健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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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의 안내도
1. 개요
2. 융릉(隆陵)
3. 건릉(健陵)
4. 교통편
5. 같이보기


1. 개요


융릉건릉을 합쳐 부르는 말로,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에 위치한 조선 왕릉이다.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의 효성을 엿볼 수 있는 왕릉으로 1970년 5월 26일에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2015년 10월 7일 기준 24세 이하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2020년 7월 9일 기준 나이대별로 0~1000원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홈페이지
융건릉의 대략적인 조성 역사는 아래와 같은데, 1789년부터 1900년까지 조성이 이루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융릉, 건릉 문서 참고.
  • 1789년(정조 13년) 10월 16일, 사도세자가 묻힌 영우원(永祐園)을 현재 화성의 위치로 옮겨서 현륭원(顯隆園)이라 부르게 하였다.
    1816년(순조 16년) 3월 3일,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가 1815년 12월 15일에 승하한 후, 현륭원에 합장되었다.
  • 1800년(순조 즉위년) 6월 27일에 정조가 승하하자, 같은 년도 11월 6일 현륭원의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하였다.
  • 1821년 3월 9일 효의왕후가 승하하자 건릉 부근(즉, 최초의 건릉의 장소인 융릉 동쪽)에 안장하려고 하였으나 영돈령부사 김조순이 건릉이 풍수지리에 좋지 않다고 하자 건릉을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바꿔서 1821년 9월 13일에 효의왕후를 합장하여 매장하게 되었고, 능호를 건릉으로 합하였다.
  • 1899년(광무 3년) 9월 1일,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어서 장종(莊宗)이란 묘호를 올리고 현륭원도 왕의 예에 따라 융릉(隆陵)으로 격상되었다.
  • 1899년(광무 3년) 정조와 효의왕후를 각각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로 높임.
  • 1899년(광무 3년) 12월 7일, 사도세자의 묘호가 다시 장조(莊祖)로 바뀌면서, 융릉은 황제의 릉이 되었다.
  • 1900년(광무 4년) 황제의 격에 맞춰서 비각의 표석을 세움.
능역이 들어서기 전에는 수원시, 화성시오산시의 전신인 수원도호부의 읍치(邑治, 관아 소재지)가 있었다. 즉, 수원 시가지를 밀어버리고 지은 것. 그래서 성과 시가지를 이전해 새로 조성한 것이 바로 수원화성이다.

2. 융릉(隆陵)


조선의 추존왕이자, 22대 왕 정조의 생부인 장조의황제[* 대한제국때 추존 황제 되었다.]와 그의 부인 헌경의황후[* 대한제국때 추존 황후 되었다.]의 합장릉이다. 자세한 내용은 융릉 문서로.

3. 건릉(健陵)


조선 제22대 왕 정조선황제[1]와 그 부인 효의선황후[2]의 합장릉이다. 자세한 내용은 건릉 문서로.

4. 교통편


  • 지하철역에서 꽤 먼 곳에서 위치한다. 지하철 1호선 병점역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 가장 빠른 편이다.
  • 광역버스 중에 1551번 버스가 융건릉 앞에 정차한다.

5. 같이보기



[1] 대한제국때 추촌 황제되었다.[2] 대한제국때 추촌 황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