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명(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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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 호는 한포재, 자는 중강, 시호는 충민이다.
2. 생애
2.1. 숙종 때
1684년 과거에 급제해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정유독대[2] 이후 우의정이 되었으며 연잉군의 보호를 부탁받았다. 이후 늙은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했다. 이때 이건명은 총호사로 숙종의 장례식을 총괄했다.
2.2. 경종 때
경종의 치세때는 좌의정에 올라 노론의 영수가 되었는데 조태채 등과 연잉군을 세제로 올리자고 제안 하면서 김일경 등의 소론 강경파에게 미움을 샀다. 목호룡의 고변으로 위기에 놓이고 다행히 사형을 피하나 전라도 흥양의 뱀섬에 유배를 가며 위리안치당하고 만다. 하지만 주청사로 청나라에 가서 한 말이 문제가 됐다. 당시 청의 황제였던 강희제와 여러 청나라 대신들이 경종의 연잉군 세제 인정 요구에 의아해하며 '너네 임금 아직 젊은데 얼마든지 아들 낳을 수 있겠구만 세제는 무슨 세제냐'며 태클을 걸자 둘러댄답시고 '''임금이 양기가 없어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무엄한 망발을 내뱉었던 것. 결국 이게 빌미가 되어 소론의 탄핵을 받았고 경종도 격노하여 이건명은 목이 잘려 죽는다. 다른 노론사대신들이 죽임을 당할 때는 그냥 곱게 사약을 마셨던 것에 비하면 비참한 죽음이었다.
2.3. 사후
영조가 즉위했을때 노론의 주청으로 복권되어 충민이라는 시호를 얻는다.
3. 여담
정승으로 있을 때 백성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였다. 군포를 낮추자고 제안했다. 이는 후에 영조가 균역법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시를 잘 썼다고 한다.
4. 저서
저서에 「한포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