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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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의 서5남이다. 친형제로는 신빈 김씨의 소생들인 형 계양군과 의창군, 남동생 익현군과 영해군, 담양군이 있으며, 전주이씨 밀성군파의 파시조이다.
2. 생애
1436년(세종 18년)# 혹은 1442년(세종 24년)에# 밀성군으로 봉해졌다. 1444년(세종 26년)에는 민승서의 딸과 혼인하였다.
평소 행동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형제간의 트러블이 없는 것을 눈여겨 본 이복형 세조에 의해 왕실을 호위하는 오위도총부 도총관 직에 임명되었다. 이외에도 각 시(寺)의 도제조 및 의금부도위관 등을 역임하였다. 1469년(예종 1년) 남이의 옥사 때 익대공신(翊戴功臣)에 책록되었다. 그리고 그 해 세종의 영릉을 경기도 광주에서 여주로 옮기는데에 참여하였다. 이후 1470년(성종 1년)에는 순성경제명량좌리공신에 책록되었다.
3. 사망
1479년(성종 10년) 1월 23일에[2] 사망했다. 향년 38세[3] 묘는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기자산에 있으며 하남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되어있다.
4. 여담
- 1452년(문종 2년) 밀성군이 병에 걸리자 이복형 문종이 안평대군에게 승려들을 모아 흥천사에서 기도하라고 명했다.# 그 후 정말 밀성군의 병이 나았고 이에 크게 기뻤던 문종은 밀성군의 처형 2명에게 관작을 내리고 밀성군을 치료한 전의 전순의에게도 안장을 얹은 말을 하사했다.##
- 밀성군은 이복동생인 수춘군의 제사를 몰래 지내주었다. 수춘군은 후사가 없는데다 세조의 정적으로 죽임을 당한 혜빈 양씨의 아들이었기 때문. 밀성군 사후에는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모셨다.
이후 수안군이 정식으로 수춘군의 후사가 되었는데 이에 대한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따르면 중종 때라고 한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밀성군 항목에 따르면 사육신이 복권된 후인 숙종 시기라고 한다.#
5. 가족과 후손
부인인 풍덕군부인 여흥 민씨 사이에서 4남을 두었다. 장남 운산군 이계는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공신에 책록되었다. 차남 춘성군 이당은 태조의 8남 의안대군(이방석)의 봉사손으로 출계하였다. 3남은 위에 언급했듯 서숙부 수춘군에게 입적되었다. 이후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밀성군파를 이루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여, 이건명, 이이명이 그의 후손들이다. 이경여의 손자가 이건명과 이이명이다. 저 둘은 경종 시기 노론을 대표하던 대신들로, 둘 다 신임옥사에 휘말려 사형당했다.[4] 이외의 다른 후손으로는 독립운동가 이창호, 이건호, 이중각이 있다.
밀성군의 17대손이자 이이명의 형 이사명의 9대손이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야구선수 이인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