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나키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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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실제 터널과 거의 흡사하지만 실제 터널이 아니고 영화 이누나키 마을에서 재현한 터널의 모습이다. 실제 촬영 장소는 구 후키아게 터널.
실제 터널의 사진은 사람에 따라 섬뜩한 느낌을 줄 수 있으니 링크로 대체[1]

심령 후쿠오카 구(舊) 이누나키 터널. 구 이누나키 폐터널의 내부를 조사한 영상으로, 입구의 콘크리트 블록을 타고 올라가 내부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터널 내부에 박쥐가 날아다닌다. 물론 인적이 드문 터널이나 동굴, 폐가 등은 박쥐들이 서식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므로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犬鳴トンネル
1. 소개
2. 상세
3. 관련된 괴담과 이유
4. 현재
5. 관련 문서


1. 소개


일본 최대의 고스트 스팟 중 한 곳. '''구 이누나키 터널'''과 신 이누나키 터널로 구분된다. 소재지는 후쿠오카현 미야와카시카스야군 히사야마마치 사이에 있으며, 구 터널은 1926년 개통되었다가 1994년 폐쇄되었으며, 신 터널은 1975년 개통된 이래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로 읽으면 개 울음소리를 뜻하는 견명(犬鳴) 터널이 된다.
2020년에 이 터널과 터널에 얽힌 도시전설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가 개봉했다. 이누나키 마을(영화) 참조.

2. 상세


구 이누나키 터널은 이누나키 고갯길, 속칭은 이누나키 수도(隧道)[2]의 일부. 구불구불한 헤어핀 커브길을 통해 산골짜기를 타고 올라간 뒤에 산 하나를 뚫고 지나가는 터널이었는데 그걸 통과하고 나서도 구불구불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간다.
계획 자체가 1884년부터 있었기 때문에, 1920년대의 토목 기술로는 장대 터널을 뚫을 수 없어서 길을 낼 수 없는 부분만 터널을 뚫었다. 터널 총 길이는 약 150m다. 1975년 고갯길 전체를 대체하는 신 터널을 뚫으면서 자연스레 사용량이 크게 줄었는데[3], 터널이 위치한 곳이 너무 외진 곳이다보니 살인 사건이 터지고, 심령 스팟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주변 지도를 보면 변변한 마을도 잘 없는 굉장히 외진 곳이다.

3. 관련된 괴담과 이유


일본의 터널에 관련된 괴담. 특히 '''유령이 나온다는 터널에 담력 시험차 갔다가 끔찍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 중 상당수가 구 이누나키 터널이 배경'''이며, 현재 구 이누나키 터널은 완전히 폐쇄되었다.
구 이누나키 터널로 가는 길은 펜스로 막혀있으며, 터널의 입구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봉쇄되었다. 무단으로 들어갈 경우 법률, 조례 등의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 구 이누나키 터널이 폐쇄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들어가는 도로의 폭이 좁고 급커브가 심해 통행이 불편하며 근처 일부 지역에서 절벽 붕괴 등의 위험성이 발견.
- 터널 부근에 쓰레기의 불법 투입이 잦음.
- 폭주족들의 집합 장소가 됨.
- 잦은 교통 사고[4]와 1988년 이누나키 터널 살인 사건, 2000년엔 근처에 있는 에서 사체유기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엔 이누나키 터널의 귀신이 한국계라는 소문과 그 이유[5]에 관한 글이 많이 퍼졌는데, 이는 '''진짜로''' 조선인들을 동원해 지은 이코마 터널에 대한 내용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6] 이코마 터널에도 이런 유사한 괴담이 존재한다.
구 이누나키 터널의 영향으로 신 이누나키 터널에서도 귀신을 봤다는 목격자가 속출한다.

4. 현재


  • 오사카의 이코마 터널, 교토의 키요타키 터널과 더불어 일본 3대 심령 스팟 터널로 불린다. 터널뿐 아니라 예전에 이어진 도로마저 통째로 폐지되어 더 이상 운행되지 않는 구 이누나키 터널과는 달리 구 이코마 터널은 일부 구간이 현재도 전철 선로로 사용되고 있고[7] 키요타키 터널은 시내버스도 통과하는데다 신호등까지 설치해서 잘 운영되고 있는 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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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에 새로이 개통된 신 이누나키 터널은 잘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은 구 터널과는 달리 지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장대 터널이다. 길이 약 1,560m로 꽤 길다. 게다가 커브가 있어서 그런지, 위의 사진처럼 제한 최고 속도가 겨우 40km/h이다. 그리고 신 이누나키 터널에도 귀신 목격담이 여럿 있다. 아무래도 개통된 지 45년이 다 되어가는 노후 터널인지라 없는 게 더 이상하다. 굳이 알필요는 없지만 사진 속 자동차에 무언가 붉은색의 심령같은 것이 보이는데 , 사실은 시바견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5. 관련 문서



[1] 폐쇄된 구 이누나키 터널의 모습. 온통 도배된 낙서들로 인해 매우 음침한 분위기이다. 2020년 들어서 터널 입구의 벽돌 부분에 알록달록하지만 '''여전히 음침한 페인트'''가 칠해졌다.[2] 여기서 수도는 首都(Capital)의 의미가 아닌, 터널의 한자어이다. 과거 대한민국에서도 철도 및 고속도로 터널도 일부 이렇게 표기한 바 있다. 당재수도(당재터널), 영동제1수도(영동1터널), 호남수도 등...[3] 한국으로 치면 미시령터널이 뚫린 뒤 구 56번 지방도 미시령 고갯길과 비슷하다.[4] 사고자들의 증언 중 귀신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는 식의 증언이 이상하게 높은 편이다.[5]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발된 조선인들이 터널을 뚫었고, 이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그렇게 갖은 고생 끝에 터널이 완성되자 살아남은 조선인들을 모두 터널 속에 집어넣어 몰살시켰다. '사람의 피가 섞여야 공사가 잘 된다'라는 미신 때문에 조선인 노동자들을 학살했다.(이코마 터널에 관한 소문) 때문에 당시 죽은 조선인들이 원혼이 되어 터널 안을 떠돌고 있다는 내용.[6] 1992년에 스미이 작가의 '다리가 없는 강'이라는 소설 책에 이코마 터널에서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들의 한 때문에 잇따른 사건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담겨 일본 열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이 이코마 터널을 다루었으며, 또 일본 영화 박치기에서도 "이코마 터널을 누가 뚫은 줄 알아?"라는 대사가 나왔다. 마치 유령의 저주와 잦은 출몰로 차량 사고와 터널 폐쇄가 이루어진것 같이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1900년대 당시의 공사 기술 부족과, 차량의 운행 및 관리 수준이 떨어져 어디서나 비슷하게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실제로 이코마 터널의 주요 사고는 1940년대 후반에 있었다.) 아울러 1964년에 근처에 신 이코마 터널이 새로 뚫리면서, 낡고 오래된 구 이코마 터널은 자연적으로 폐쇄되었다. 다만 키요타키 터널은 한국계와 중국계가 지은 것이 맞다. 실제로 1928년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당시 키요타키 터널을 뚫는 공사현장에서 조선인 50명이 가혹한 노동환경 때문에 폭동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있다.[7] 1965년 신 이코마 터널을 개통하면서 폐쇄되었으나, 1986년 킨테츠 케이한나선을 개통할 때 구 이코마 터널의 일부 구간 (약 400m)을 그대로 사용하여 뚫었기 때문. 사용되지 않는 구간은 비상 대피로 역할을 한다.[8] 본래 1927년 협궤철도 터널로 건설되었는데, 1972년 폐선 이후 도로터널로 개조한 것이다. 통과높이는 약 3.4m, 길이 약 500m. 물론, 키요타키 터널 입출구 직전에는 우회로 역할을 하는 길인 137번 지방도가 이전부터 만들어져 있어서 이곳을 통해 갈 수 있다.